알기 쉬운 성경 말씀

영적 전쟁

chukang 2010. 8. 2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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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쟁 에베소서 6:10-20

 

  어린아이들이 싸우는 것을 볼 때에 어른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싸움은 어릴 때부터 시작하여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 정도로 싸움이라는 것은 예상외로 우리 인간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싸움은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을까요? 죄가 이 땅에 들어 온 때부터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뒤 즉시 싸움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서로 ‘너 때문’이라고 싸우기 시작하였고, 가인과 아벨이 싸웠고, 그 뒤로부터는 요한계시록까지 싸움에 관한 기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과 개인의 싸움, 가족의 싸움, 집안과 집안의 싸움, 마을끼리 싸우고, 지역끼리 싸우고, 동족끼리 싸우고, 이웃 나라와 싸우고, 세계 전쟁까지 일어나지 않습니까? 인류의 역사는 어떤 면에서 보면 싸움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싸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누구의 잘못으로부터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같이 잘못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의롭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은 불의하다고 생각이 되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남의 것이 좋아 보여서 그것을 빼앗으려다가 싸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싸움의 원인은 바로 “교만”에서 시작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교만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남보다 높아지려고 하고, 남을 깔보고, 남을 짓밟으려고 하는 것이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나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들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만의 근원은 바로 마귀입니다. 에스겔 28장을 보면 마귀는 ‘두로 왕’으로 묘사가 되는데, 지혜로 장사를 잘 해서 큰 부자가 되었는데, 자신이 스스로 ‘신’이라고 칭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마음이 하나님 같은 체’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또 12-15을 보면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두로 왕으로 묘사되고 있는 사단은 그 지혜가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으며, 그 모습은 온전히 아름다웠다고 하였고, 온갖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는 덮는 그룹임이여” 이는 사단이 천사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룹’은 천사의 종류 중에 하나입니다. 그룹은 창세기에는 생명나무의 경호자로서 보이며(창 3:24), 거의는 성전의 봉사자로서의 천사처럼 생각되고, 하나님의 보좌의 운반자(시 18:10,80:1), 혹은 언약궤 및 성전의 보물의 수호자로 보입니다(출 25:18-20,37:7-9,왕상 6:23-28,대하3:10-13). 따라서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상징적 조상(彫像)으로 되어, 날개를 가진 사람, 사자, 소, 독수리 등의 형상으로서 표시되고, 선지자 에스겔의 이상 상아세공(象牙細工)의 그룹에서는 극명하게 그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겔 10장). 후대의 유대교에서는 천사의 최고의 계급에 속한자로 스랍과 함께 배열되었고, 계시록에 있어서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미하는 생물로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토록 지혜롭고 아름다우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가 쫓겨나게 되는 것은 바로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에스겔 28:17을 보면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지혜로워도, 아무리 아름다워도,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교만하게 되면 결국에는 한갓 구경거리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최고의 높은 위치 최고의 아름다움과 지혜를 가진 사단이었지만, 교만으로 인하여 하늘에서 쫓겨나고 말았듯이,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는지 모르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모르지만, 얼마나 지혜로운 존재인지 모르지만, 하나님보다 높은 체 하고, 하나님보다 지혜로운 체 하고 있습니다. 잠언 18:12을 보면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에, 그리고 교회 안에 얼마나 교만한 사람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교만한 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으며, 사단의 영향 속에 영혼이 죽어가는 지도 모르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반드시 사단의 전철을 밟게 될 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는데,

첫째, 영적 전쟁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씨름(팔레:πάλη)”라고 하였습니다. 씨름은 두 사람이 맞붙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던져 내리 누르는 경기입니다. 바울은 당시의 운동 경기를 성도들의 영적 전투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혈과 육’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성도들의 싸움은 바로 이러한 연약한 인간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세상의 권세자인 마귀와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가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마귀(디아볼로스)는 모든 악마의 머리로서 ‘사단’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궤계’는 기술을 사용한다는 뜻에서 ‘속임’, ‘모략’, ‘교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단은 교활하여 성도들의 약점을 잘 파악하여 여러 가지 속임수와 능숙한 기술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대적할 수가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전신갑주를 입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귀의 공격에 소극적인 대응으로 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항하여 승리를 거두어야만 하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힘을 받고 기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오직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할 때에 강건해 질 수 있고, 마귀와의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의 힘을 믿고 강건한 체 하여 전쟁에 임할 때에는 반드시 패배하였지만, 무기도 없고 연약한 상태에 있지만, 하나님을 믿고 달려 나갈 때에는 반드시 승리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귀와의 싸움에서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절대로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와 마귀와의 싸움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권투 경기를 예를 들면, 1회전이 3분씩으로 경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두 선수가 싸울 때에 한 선수가 상대방을 잘 가격해서 다운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 이제 다운 시켰으니까 됐다 하고 가만히 서있게 되면, 상대방은 일어나서 공격을 하고 자신이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 종이 울리기까지는 조금도 늦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와 사단의 싸움은 종이 울릴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은 링 안에서 복서들이 싸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들려오는 종소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신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는 한시도 사단과의 싸움은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영적 전쟁을 위한 성도들의 준비를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기든지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수영 경기를 하려면 수영 모자와, 물안경과, 수영복을 착용해야 합니다. 권투선수는 글러브와 권투화를 신어야 합니다. 모든 경기마다 규정하고 있는 복장과 도구를 착용하지 않으면 실격하게 되어, 싸워보지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는 능력을 가진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마귀와의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승리의 다른 방법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신갑주만이 우리의 최대의 방어책이 되고 공격 수단이 될 것입니다.

바울은 당시 로마 병사들의 전투시의 복장을 비유로 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진리의 허리 띠: 일반적으로 진리는 성경과 주님 안에서의 ‘진리’인 하나님의 계시 혹은 말씀을 의미하지만, 여기에서 ‘성실’이나 ‘정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거짓과 기만의 아버지인 마귀의 궤계를 깨드리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성실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병사들이 옷을 단단히 동이고, 검을 붙들어 매는데 사용했던 가죽 허리띠에 성도들의 신앙을 비유한 것으로 ‘어떤 행동을 준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사야 11:5을 보면 “공의로 그 허리 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고 하였습니다.

 

2. 의의 흉배: 의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풀어 주신 ‘칭의’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원칙과 행동으로 충성하는 것입니다. 곧 도덕적으로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흉배는 굳은 가죽, 쇠, 구리 등으로 만들어 병사의 가슴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서 착용했던 것입니다. 가슴에는 심장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의로운 삶(의의 흉배)은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심장을 보호하여 주는 것입니다.

 

3. 평안의 복음의 신: 평안의 복음은 하나님과 조인 사이에서 화평케 하시는 중보자의 역할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화평의 복음입니다(엡 2:14). 그리고 ‘예비한 것’은 ‘준비, ’채비‘, ’견고함‘을 의미합니다. 신은 로마 병사들이 전쟁할 때 신더 것으로 긴 행군을 하기에 용이하고 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막아주며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여 전쟁을 효과적으로 치루기 위한 필수품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악한 영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화평으로 견고히 서야함을 의미합니다. 성도가 늘 불화하며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는 결코 마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므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사단의 공격을 막아낼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평안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과 형제들과의 관계 속에서 화평하도록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가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4. 믿음의 방패: 방패는 작은 것이 아니라 길이가 1.2m x 0.77msk 되어 전신을 다 가릴 수 있는 긴 장방형의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곧 전신을 다 가리는 방패하는 뜻입니다. 이 방패는 적군이 쏘는 ‘화전:불화살’을 막아 낼 수가 있습니다. 의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사단의 무서운 모든 공격을 막아내야 할 것입니다.

 

5: 구원의 투구: 구원의 은혜는 주님 안에서 성도들에게 주어진 가장 확실한 승리의 보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소유한 구원의 소망(살전 5:8)과 확신은 사단의 그 어떠한 공격이라도 능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당시 로마 병사들의 투구는 도끼나 망치로 내려치지 않는 한 뚫어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여 머리를 보호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전쟁할 때에 머리에 ‘철모’를 씁니다. 이제는 철모보다 더 탄탄하면서도 가벼운 탄소섬유로 된 ‘화이바’라는 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총알에 맞아도 뚫리지 않는 것입니다. 로마 병사들은 투구에 깃털과 같은 장식을 했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을 꾸며 주며 보호해 주고, 그로 하여금 확신과 기쁨으로 머리를 들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그가 구원 받았다는 사실이다.’(Hodge)고 해석을 하기도 했습니다.

 

6. 성령의 검: 성령의 검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도의 무장에서 유일한 공격용 무기가 성령의 검입니다. 우리가 사단을 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단을 물리치실 때에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단의 공격을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교만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왜곡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단의 공격을 유효하게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배우고, 바로 알고, 바로 실천하여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영적 전쟁의 수행 방법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항상 깨어 기도하는 것이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병사가 아무리 무장을 철저하게 하고 있어도 적의 공격에 대배하지 않으면 필연코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쫓다가 피곤하여 동굴 안에 들어가 쉬다가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굴 안쪽 깊은 곳에는 이미 다윗과 그 부하들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사울과 부하들이 잠든 것을 알고는 그들을 다윗의 부하들이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베고 가만히 동굴을 빠져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상 24:1-7)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은 어떻게 하여 다윗이 물매로 던지 돌멩이 맞아서 죽었을까요? 방심했기 때문입니다. 조그만 소년이 아무 무기도 없이 팔을 빙빙 돌리고 달려 나오는 것을 보고 우습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체격이 크고 무장을 잘 하고 있어도 방비가 없으면 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잡히시기 위하여 미리 겟세마네 동산에서 바위에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깨어서 기도하라고 당부하였지만, 제자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도하심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십자가에서 승리하실 수 있었지만(마 26:38-42), 제자들은 주님의 당부에도 깨어있지 못하여 영적 전투에서 패하고 결국 예수님을 부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마 26:40,41, 56, 69-75).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도가 기도하기를 힘쓰며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에 의존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데,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아시는 분은 오직 성령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밖에서 기도하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진정한 의미에서 기도가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성도 안에 거하시며 그들을 위해 친히 간구하시며 성도들을 통하여 기도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롬 8:26).

  바울은 성도들에게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여러 성도들을 위하여 깨어 기도하기를 항상 힘쓰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영적 전투에서 성도들의 공동의 책임 의식과 기도를 통한 영적 군사들 간의 연합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딤전 2:1).

어떤 싸움이든 힘이 없으면 지고 맙니다. 힘이 아무리 강해도 방비하고 있지 않으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늘 깨어 기도하므로 사단의 공격에 방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준비를 잘 하고 있어도 마귀의 힘과 궤계는 얼마나 강하고 간교한지 성도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의심하게 만들고 교만하게 만들고 무방비로 빠져들게 만드는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한시라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실패할 수도 있고, 싸움에서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금 기도하면서 실패한 원인을 찾아내고 다음에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아서 준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런 모습일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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