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성경 말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바울의 감사와 격려

chukang 2010. 7. 31. 21:36

 

첨부파일 바울의 감사와 격려 데살로니가 후서 1.hwp

 

바울의 감사와 격려 데살로니가 후서 1:1-12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을 할 때에(A.D.49-52) 기록한 데살로니가 전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교훈과 또 재림을 갈망하는 성도들은 성결한 생활을 하도록 교훈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잘못 이해하여 바르지 못한 종말관을 가지고 무위도식하며 방종하는 행동을 보이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잘못에 고치기 위하여 데살로니가 후서를 기록하여 보내게 되었습니다. 살전 5:3을 보면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즉 주님께서 ‘갑작스럽게’ 재림하실 것으로 생각하여, 당시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잘못 이해한 사람들이 많았으며, 이로 인하여 성도가 마땅히 취해야 할 규모 있는 삶을 포기한 경우도 발생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했는데, 이장림이라고 하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1992년 휴거설을 주장하여 교계 및 나라를 온통 혼란스럽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장림 목사는 10년 3개월 동안 ‘생명의 말씀사’에서 번역 담당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1990년 신광성결교회 협동 목사로 있다가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라는 뜻의 ‘다미선교회’를 만들었습니다. 다미출판사의 이름으로 『다가올 미래』 Ⅰ,Ⅱ,Ⅲ,Ⅳ 의 책을 출간하여 1992년10월28일 휴거 된다고 주장함으로 이를 믿고 따르는 전국에 산재한 신도들이 지부를 형성하여 활동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휴거설은 불발로 끝나고 이장림 목사는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1992년 이장림이 구속되어 징역 1년에 미화 2만 6천불 몰수령을 받고, 다미선교회를 공식 해체하였는데 출소 후 이장림 목사는 교회명칭을 지금의 새하늘교회로 개칭하는 한편 자신의 이름도 “OO답게 살기 위하여”, ‘이답게’로 개명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는 왜 1992년에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휴거는 예수님의 재림 시에 성도가 하늘로 들리어 올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천지창조 6일을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같다” 는 신약성서 베드로전서 3장 8절에 근거하여 인류역사를 6천년으로 계산하고 안식일을 천년으로 계산하여 7천년 째는 천년동안 안식할 것이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1999년이 6천년을 마지막으로 보고 그 마지막 이전에 7년 대환란이 있을 것이라는 성서에 근거해 1999 - 7 = 1992년에 종말이 오고 휴거가 있다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1992년 휴거를 부정하는 자는 휴거하지 못하게 되므로 지옥에 가든지 부끄러운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장림 목사는 1991년 당시 중학생이었던 하방익 군과 권미나 양이 받은 1992년 10월 28일 휴거계시가 성경적이고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들게 막대한 헌금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이것은 이장림이 아직도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성경적 계시의 계속성을 말합니다. 이장림은 그들이 계시를 받았다는 말을 성서적 계시로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이미 성경으로 종결이 되었으므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모두 이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종말론 환상에 빠진 추종자들은 예수 재림이 오기 전에 정성을 다하겠다는 일념과 휴거가 되는 상황에 돈이 무슨 소용이 있냐며 많은 돈을 이장림 목사에게 바쳤고 학업과 직장 포기사례가 속출하였습니다. 이장림과 핵심 추종자들도 성도들을 부추겨 재산을 바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일부에서 휴거시 몸이 가벼워진다며 낙태까지 하는 일도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1992년 10월 28일 자정에 이들은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휴거를 기다렸습니다. 방송국에서도 카메라를 설치하고 중계를 하였고,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을 비롯한 불신자들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지만 결국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장림은 체포 되었습니다. 1993년 5월 20일 서울 형사 지방법원 항소 6부(재판장 김연태 부장판사)에서 열린 이장림에 대한 항소심 공판에서 신앙적인 확신에 따른 헌금에 대해 사기죄가 적용되어 징역 1년에 미화 2만 6천불의 몰수형을 선고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은 경북노회와 포항노회의 ‘이장림 목사의 이단성 여부에 대한 질의’에 따라 제 75회기 사이비신앙운동 및 기독교 이단대책위원회는 연구결과 이단으로 밝혀졌다고 총회(제 76회 1991년)에 보고해 그대로 가결되었습니다. 현재는 철저히 외부와 단절한 채 일반 교회의 모습으로 예배와 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장림 목사가 이름을 ‘이답게’로 바꾸고 외부에는 시한부 종말론은 잘못된 것이며 종말의 때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하나 아직도 시한부 종말론에 입각한 휴거 환상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이 목사를 정신적인 지주로 삼고 있으며 이 목사 또한 ‘레머 선교회’를 조직하여 과거의 시한부 종말론의 정당성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가는 종말의 때에 출현할 사이비(似而非) 재림주에 대한 예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전한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막 13:5-6).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막 13:22).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막 13:21). 누가도 예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눅 21:8). 복음서 저자 마태도 예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마 24:11).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 24:23).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 24:26). 2천 년 전에 이미 예수님께서는 는 종말 시에 거짓 그리스도와 자칭 재림주들이 나와서 사람들을 미혹하게 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예언 그대로 이미 역사상 많은 거짓 재림주들이 나타났다. 19세기에는 오늘날 안식교의 전신인 밀러(Miller) 무리들이 재림주가 온다고 미혹하였으나 불발하자 그 추종자들이 만든 교회가 오늘날 제칠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이다. 문선명, 박태선, 양도천 등이 자칭 재림주로 행세하였다. 1992년 다미(‘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라’의 약칭)선교회가 재림주의 오심을 퍼뜨리면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르고 균형 있게 믿는 신실한 성도들은 특정한 인물을 재림주로 지정하고 어떠한 특정한 장소와 일시를 퍼뜨리는 집단(안산홍의 하나님의 교회, 신천지 등)은 반드시 이단적 교리를 만들어 성경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들 거짓 그리스도와 사이비 재림주들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거나 조작하여 많은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막 13: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병 고침이나 방언이나 예언도 기독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 종교(무속 종교, 불교, 이슬람교 등)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비스러운 일을 한다고 하여 기독교인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재림주는 다름 아닌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역사적 예수님은 도둑같이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시는 날짜와 시간을 모른다는 뜻입니다. 이 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오심이지 어떤 신비로운 우주적 인물의 오심이 아닙니다. 초림(初臨)의 예수,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께서 영광스러운 인자, 메시아적 권능을 지니시고 재림(再臨)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피 흘려 우리를 구속하신 분만이 다시 오셔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실 수 있습니다.

  재림하시는 인자는 사이비 재림주 처럼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뉴욕이나, 뮌헨이나, 런던이나 파리나, 서울이나 경기도 부천이나 충남 계룡산 이나 강원도 원주 등에 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특정 지역에 나타나는 것은 사이비 재림주입니다. 주님께서 어느 시간에 어느 지역에 오신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고, 오시는 장소는 공중에 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그 순간 성도들은 저절로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듯이 주님을 영접하러 공중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사이비 교주(敎主)처럼 단지 자기에게 속한 신도들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더욱이 구원을 받기 위하여 다미선교회나 각종 열광적 집단(박명호의 엘리야 복음선교원, 정명석(JMS)의 애천교회, 박옥수의 구원파 등)처럼 재산을 바치거나 헌금을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시는 예수는 우리들에게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주님의 사랑을 행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 25:44-46)라고 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다시 편지 하는 목적이 오늘 본문에 3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1. 성도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기 위하여

  바울이 감사하는 것은 바로 데살로니가 성도의 믿음이 자라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에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초대 교회의 모습이며,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행해야 하는 성도의 착한 행실입니다. 그러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형편이었을까요? 부자들이 많은 교회였을까요? 아무런 문제가 없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교회였을까요?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계속적인 핍박을 받고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믿음으로 인내하는 신앙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규모 있고 절제 속에 믿음의 생활을 잘 하고 있었지만, 일부 성도들 중에는 주님의 재림 문제와 관련하여 다소 방종에 휩싸여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성도들을 의식하여 대부분의 성도들이 갖고 있었던 성실함을 애정 어린 표현으로 그들이 속히 이러한 행동에서 벗어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2. 악한 자들에 대한 징계를 밝히기 위하여

  바울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받는 고난과 환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성도를 연단하여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모습으로 세우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현재 당하는 고난과 핍박,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강인한 인내의 모습이 바로 마지막 심판 날에 잘했다 칭찬을 받으며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는 근거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를 핍박하는 자들은 단 한번 주님의 재림 때에만 심판을 받고 말까요? 본문에서는 종말론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악인들이 단 한번만 심판을 받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도 단 한 번만 칭찬과 상급을 받는 것도 절대로 아닙니다.

  헤롯왕(아그립바 1세)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야고보 사도를 처형시키는 등 기독교인들을 대대적으로 박해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와 완악함과 교만을 보시고 벌레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그를 징계하지 않으셨습니까?(행 12:21-23)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즉각적인 죽음이었습니다. 바울의 선교를 방해하던 박수 엘루마는 바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즉각적인 응답으로 소경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행 13:6-11).

이와는 조금 다르게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면서 얼마나 고통을 많이 받았습니까? 적국인 블레셋에 망명하기도 했고, 거기서 도망도 나오고, 왕위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연단을 받았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방법과 그 시기는 역시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나 다윗과 같이 끝까지 참고이기는 자에게는 반드시 악인의 멸망을 보게 될 것입니다.

 

3. 성도로 하여금 주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하여

  어쩌면 여러분은 성도들이 받을 상급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할 때에, 사람의 생각으로는 잘 먹고, 잘 살고, 권세를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의 때나, 천국의 생활은 로마서 4:17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의 반대는, 악한 자들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것이요, 성도가 주님의 얼굴을 보지만, 악인은 보지 못하는 것이며, 성도가 주님의 영광에 참예하지만, 악인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지 못하고 단절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심판의 양면성을 말합니다. 성도에게는 주님께서 오시는 것이 큰 영광이 되며, 주님과 함께 천년 동안 왕 노릇하게 되지만, 반대로 악인에게는 최의 심판이요, 천국 대신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성도가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모두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모두 구원의 반열에 들 것임을 확신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또 성도도 마지막 때에만 위로를 받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단 한 번의 기회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악인의 심판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내가 알지 못하고,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주님께서는 시시때때로 여러 가지의 도움을 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만 성도는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 현실 속에서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여 절망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현실적인 복을 받기보다 환난과 핍박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해도 좌절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현재 당장 환난에서 구원하시고 복을 내리지 않는 것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당장 갚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장차 반드시 공의로운 보응을 내리실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종말이 왜 이렇게 더디게 올까? 언제 이 고생이 끝이 날까를 고민할 것이 아닙니다. 시한부 종말론자들과 같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휴거를 기다리는 자세도 옳지 않습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것처럼, 하루하루 복음에 순종하는 가운데,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오직 주님의 이름만이 영광을 얻고 높아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재능, 물질, 모든 환경을 이용하여 우리의 이기적인 욕심과 세상적인 자랑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므로, 상급을 받지 못해도 아무런 항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가 이렇게 당연한 일을 하는데도 큰 복과 영광의 상급을 더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을 행함에 먼저 겸손한 자세로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난 속에서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것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롬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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