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죄인이 되었나? 창세기 3:1-13
봉독한 말씀은 인류 역사 중에서 가장 슬픈 인간 타락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이라고 하는 너무나 아름답고 복과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장소를 만들어서 사람에게 선물을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 좋은 곳에서 너무나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뱀이라고 하는 동물이 여자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꾀어 스스로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에게도 줘서 먹게 하고 마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에덴 동산은 폐쇄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와 뱀은 각기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의 원인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유혹한 뱀이라는 존재가 있고, 뱀은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이용하였고, 여자와 남자는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이렇게 뱀과 선악과와 따 먹는 행위라고 하는 3가지의 원인으로 인하여 인간은 죄인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1. 뱀은 어떤 존재인가?
뱀(나하쉬: נחש)은 “쉿쉿 소리를 내다(hiss)", "속삭이다(whisper)"는 뜻에서 나왔습니다. 속삭이듯이 날름거리는 혀, 그리고 지나갈 때 쉿쉿 소리를 내는 뱀의 특성이 잘 나타나는 명칭입니다. 이 뱀에 대하여 ”가장 간교“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간교’(아룸: ערום)라는 말은 ‘영리한, 신중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선하신 분이시므로 뱀까지도 영리하고 신중한 존재로 지으셨으며,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 중에 좋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창 1:31).
뱀은 인간으로 하여금 선악관을 따먹게 한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하였습니다. 물론 그 뱀의 뒤에는 사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뱀을 대행자로 내세운 것은 뱀이 가지고 있는 ‘간교함’ 때문이었습니다. 간교라는 뜻은 ‘교활하고 속임에 능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뱀을 지으셨을 때에는 조심성 있고, 신중하고, 슬기롭게 지으셨기 때문에 뱀은 가치가 많은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뱀은 자신에게 주어진 귀한 은사라고 할 수 있는 ‘슬기’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사단과 영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데 이용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이 얼마든지 나쁘게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거스른 반역자 사단은 자신의 사악한 목적을 위해 뱀의 이러한 영특함을 이용했습니다. 결국 뱀은 사단의 도구로 전락함으로써 오히려 그 지혜로움이 사악하고 교활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뱀의 모습은 모든 인간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말에 능한 사람은 자신의 언변으로 죄를 범하기 쉽습니다. 학식이 있는 사람은 이를 이용하여 더욱 하나님을 멀리하고 자신을 드러낼 수가 있습니다. 미모가 뛰어난 사람은 인간의 정욕에 휩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힘이 센 사람은 그 힘으로 남을 괴롭히는데 사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박사들, 아름다운 미녀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자들이라면 그들이 가진 지식과 재능과 아름다움은 뱀과 같이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라고 하는 우리들 가운데도 사단은 역사하는데, 하물며 불신자들의 마음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경계심을 가지고 내 마음과 내 생각과 내 지식과 내 육신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늘 깨어서 기도하는 가운데 사단의 모든 세력들을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2. 여자가 선악과를 먹게 만든 뱀의 수단은?
사단의 도구로 전락한 뱀은 그 스스로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과 지혜로움을 가지고 여자에게 접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위하는 말을 합니다. 여자를 동정하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여자로 하여금 욕망을 일어나게 만들었습니다. 여자가 가지고 있는 그 욕망은 바로 악한 정욕입니다. 고린도전서 11:13-15을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뱀은 자신의 외적인 조건과 지혜를 이용하여 여자를 위해 주는 척하면서 접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뱀에게 주신 슬기로운 지혜를, 뱀은 간교함으로 바꾸었습니다. 뱀은 간교한 말장난으로 여자의 마음은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면 뱀은 왜 남자를 택하지 않고 여자를 택했을까요? 그것은 여자가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3:7을 보면 여자를 “보다 연약한 그릇”이라고 하였습니다. 뱀의 간교함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창세기 2:16,17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18절에 남자를 위하여 배필을 지으시기로 하셨고, 21절 이하를 보면 아담의 갈빗대를 가지고 여자를 만드셨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로 볼 때에 어쩌면 여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선악과를 따 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 말씀을 듣지 못했을 수 있고, 남편인 아담으로부터 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여자에게 접근한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단에게 유혹의 기회를 준 여자에게도 문제점은 있었습니다. 남편과 떨어져서 ‘금단의 나무’에 가까이 홀로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점은 남편인 아담에게도 문제가 됩니다. 아내를 떼어 놓고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여자는 남편이 곁에 없는 상황에서 뱀이 이야기를 걸어오자, 즉시 반응을 하였습니다. 뱀과 대화하고 그의 말을 들어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유혹들에 대하여 단호하게 대적하고 물리치라고 하였습니다(마 4:10; 약 4:7). 잠언 4:15에는 “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제일 먼저 묻는 말을 보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뱀의 간교함은 두 단어 ‘참으로’와 ‘모든 나무’라고 표현한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진실로 그렇다는 말이냐? 는 뜻입니다. ‘과연 그럴까?’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적인 진실성을 의심하게 하고 하나님의 신적인 권위를 무시하게 할 목적에서 의도적으로 놀란 것처럼 외치는 표현이었습니다.
뱀의 이 질문은 뱀이 ‘이간자’로서의 사단의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활동을 제한시키고 속박하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폭군이나 전제자로 소개함으로써 인간의 불만을 야기시키려고 충동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라, ‘동산의 각종 실과를 임의로 먹도록’ 허용하신 자유와 사랑을 주신 하나님이심을(창 2:16)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뱀하고 사람하고 어떻게 이야기가 통했을까 하는 의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심은 매우 좋습니다. 민수기 22:28-30을 보면 여호와께서 나귀의 입을 빌어서 이방 술사 발람을 견책하신 일이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에 사람과 뱀과 대화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뱀이 여자를 유혹할 때에는 아직 타락하기 전 상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뱀도 타락하기 전이므로 오늘날처럼 혐오스러운 존재가 아닌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또 창 2:19,20을 보면 아담이 모든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도 역시 사람과 동물 사이의 대화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런 뱀의 간교한 말에 여자가 어떤 식으로 대답을 했느냐 입니다. 두 가지의 잘못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만지지도 말라’고 뱀에게 대답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 2:17에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할 때에, ‘만지지도 말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없는 말을 덧 붙였습니다. 두 번째는 ‘죽을까 하노라’고 대답했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여자는 하나님께서 선악과 복용의 금지에 대하여 불만과 의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점일획”도 가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마 5:18,19; 계 22:18,19)
뱀은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을 합니다. 이때의 대답하는 내용은 마치 자신이 하나님 행세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계시하시듯이 뱀이 여자에게 자신의 간사한 의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여자에게 있어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계실 자리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가 대신 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보다 다른 존재의 언어가 더욱 호소력 있게 들리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죄악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첩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코’ 2:17절에서 ‘정녕’으로 번역된 말과 동일합니다. 곧 사단은 여자의 불만과 의심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제 직설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가 되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44에는 사단을 ‘거짓의 아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단은 자신의 가장 큰 속성이요 특징인 거짓을 드러내고야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역시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은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스리고, 죄의 삯을 기쁨이라고 우리들의 귓가에 속삭이고 있습니다.
사단의 거짓말은 계속됩니다.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사단은 하나님께서 마치 인간의 행복과 명예를 질투하고 두려워한 나머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비겁자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인간의 눈이 뜨인다는 것입니다. 눈이 뜨인다는 말은 어떤 비밀이나 계시를 확실히 이해했을 때의 상황을 묘사할 때에 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즉 사단은 ’선악을 알 줄 아는‘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와 같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신적인 능력과 지위를 회득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단의 논리는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들이 전능한 당신과 같이 되는 것을 시기하여 선악과에 관함 금령을 내렸다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이기적인 신이요, 거짓과 위선의 신이라고 매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금령에 담긴 비밀(인간이 신과 같이 될 수 있다는)을 이미 일찍부터 알고 계셨다고 말합니다. 결국 이 말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을 원치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인간의 행복과 명예를 질투하고 두려워 한 자는 바로 사단입니다.
인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신뢰하였다면, 후일의 예수님처럼 “사단아 물러가라!‘(마 4:10)는 말을 외쳤을 것입니다. 더 이상 상종하지 말아야 옳았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뱀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줄을 뻔히 알면서도 스스로의 욕망과 교만에 빠져 계속 상종하였습니다. 따라서 타락 그 자체가 있기 전에 이미 타락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본인의 동의 없이는 세상의 그 어떠한 힘도 죄를 짓게 할 수는 없습니다.
3. 여자의 행동과 아담의 행동
여자는 사단의 말에 이미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눈을 들어서 선악과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선악과는 더 먹음직스럽게 보였습니다. 보암직도 했습니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과일은 다 먹음직스럽고,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것들입니다. 선악과만 더욱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사단의 유혹에 빠져 자신의 현 상태에 대한 불만과 하나님과 같은 분별력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는 교만의 마음으로 욕망과 탐심의 눈을 들어 선악과 나무를 보았을 때에 유난히 그 열매는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게 보였던 것입니다. 사단적인 소욕을 좇아 육신과 안목의 정욕으로 바라본 결과였던 것입니다.
여자는 남편인 아담에게도 그 열매를 주었습니다. 아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먹었습니다. 디모데 전서 2:14을 보면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자는 뱀의 꾀임으로 선악과를 따 먹는 불순종의 죄를 짓자마다 곧 유혹자가 되어 남편 아담도 먹게 만든 것입니다. 사단의 목적은 여자를 타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담을 타락시키는 것이 최종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예나 지금이나 가까운 자를 내세워 목적한 사람을 죄 짓도록 유혹합니다. 욥을 타락시키기 위하여 그의 아내를 내세웠습니다(욥 2:8, 9).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께는 그의 수제자인 베드로를 유혹자로 내세웠습니다(마 16:21-23).
이러한 맥락에서 모세는 형제나 자녀나 품의 아내나 친구가 다른 신을 섬기자 할 때엔 긍휼히 여기지 말고 죽일 것을 명했고(신 13:6-11), 주님께서도 아비나 어미, 또는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자는 천국에 합당치 않다고 교훈하셨습니다(마 10“34-39). 그러나 아담은 물리치지 못하고 아내가 건네주는 선악과를 덥석 받아먹고 말았습니다. 이는 곧 아담도 역시 스스로 죄를 지은 것입니다.
4. 선악과의 의미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에덴 동산 중앙에 선악과나무를 심어 놓으셨을까요? 그리고 왜 그것을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아담과 그 아내는 선악과 외에는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자유를 허용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여자가 자발적으로 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지 않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아담과 그 아내는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었고, 에덴 동산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는 그 순간 선악과를 먹게 되었고, 그 결과 죄를 짓고 말았던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뒤에 어떤 현상이 나타났을까요? 정말로 눈이 밝아졌습니다. 아담과 그 아내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을 갑작스럽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유혹한 뱀의 말은 순식간에 성취가 되어 그들로 하여금 초경험적인 인식 능력을 가지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이 경험한 것은 뱀이 제시하였던 그런 지복하고 낙관적인 모습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엉클어진 양심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영적, 육체적으로 벌거벗은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자신들과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됨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마음의 고통과 뼈아픈 고독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비참하게도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그 아내의 눈은 죄로 오염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영적 순결의 눈은 어두워진 반면에, 세상적인 죄의 눈은 밝아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사단의 속임수에 놀아난 것입니다. 눈은 밝아졌으되, 거룩과 영광의 눈이 아니라, 수치와 공포의 눈만이 밝아졌기 때문입니다.
유혹자인 뱀은 인간을 선악과나무로 데리고 갈 수는 있지만 입안으로 선악과를 넣어 줄 수는 없습니다. 선악과를 따서 입에 넣은 것은 분명히 여자였습니다. 그리고 여자도 아담에게 선악과를 줄 수는 있었지만, 먹은 것은 아담 스스로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만 합니다.
아담과 그 아내는 스스로의 교만과 불순종으로 인하여 선악과를 따 먹고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 심령이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편과 아내의 그 사랑의 관계는 이미 금이 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선악과를 먹은 것에 대한 추궁을 하실 때에, 아담은 아내에게, 아내는 뱀에게 잘못을 전가시켰습니다. 그것이 바로 양심의 타락 증거인 것입니다. 양심이 타락하게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남에게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죄책으로 인하여 가슴을 치며 통회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자에게 긍휼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사단은 우리 모든 성도들의 귓가에 속삭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입니다. 아담과 그 아내는 다 잘 지켰지만 단 한 가지 선악과의 금령을 어겼기 때문에 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귀에 사단이 매 주일 마다 나오는 교회 한 번씩 빠져도 괜찮다고 속삭이지는 않습니까? 매일 하는 기도 어쩌다 안 해도 된다고 속삭이지 않습니까? 늘 듣는 설교 듣기 싫어지지 않습니까? 성경에 써 있는 내용들 중에 하나라도 의심이 가는 것은 없습니까? 작은 의심이 하나님을 배반하게 만듭니다. 한 가지의 싫증이 시작되어 교회를 떠나게 만들고 하나님을 배반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편하고 좋을 것 같으나 아담과 그 아내와 같이 불안과 공포가 엄습하고 괴로움이 더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속삭임은 처음에는 금지된 선악과의 달콤함과 같았으나 그 결과는 죄와 죽음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의심의 구름이 밀려올 때에 주님과 같이 ‘사단아 물러가라’고 단호하게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악을 멀리하려고 하는 그 모습을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힘과 용기를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말씀에 나를 복종시키며 지키는 자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하나님 안에 있을 때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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