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성경 말씀

기도와 언어생활

chukang 2010. 5. 30. 00:24

성도의 기도와 언어생활 골로새서 4:2-6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하면 참 부드러운 느낌을 받고 계속해서 더 이야기하고 싶어 기분이 좋아지지만, 또 어떤 사람은 말도하기 싫어지고 빨리 헤어지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손해를 보면서도 기꺼이 상대방을 위하여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반대로 주는 것 없이 미워지는 사람도 있고, 내게 유익이 된다고 해도 별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이 말 한 마디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큰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들은 주위에서 말을 잘못해서 큰 손해를 보기도 하고, 반대로 말을 잘해서 큰 이익을 얻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말에 대한 습관은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것이므로 누구나 언어 사용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성도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욱 언어 사용에 주의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성도의 바람직한 언어생활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1. 진실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거나 이익을 얻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은 잠깐 동안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원히 속일 수는 없으며, 진실은 곧 밝혀지기 마련입니다. 잠언 21:6을 보면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고 하였습니다. 재물에 눈이 멀어 정당한 방법을 외면하는 악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 사용하지만 그의 행위는 공의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목전에 다 드러나고 말기 때문에 결국에는 불의한 모든 재물을 모두 잃어버리고 궁핍함에 처하게 됩니다. 남을 속이고 피해를 주면서 부정하게 재물을 모으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멸망을 재촉하게 됩니다. ‘불려 다니는 안개’라는 말은 사막에 흔히 나타나는 신기루를 뜻하는데, 이를 통해 불의한 재물은 실제는 없는 것이나, 마치 있는 것과 같이 사람을 유혹하는 신기루와 같이 헛된 것임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기루와 같은 재물을 좇는 사람으로 하여금 참된 길을 잃게 만들어 멸망에 빠뜨린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벧전 2:3)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지은 말’ 곧 거짓말을 하면서 유익을 추구하지만, 이런 것에 대한 심판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반드시 이루어지고 있으며 저들은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은 물질에 관련된 것만이 아닙니다. 어떤 것이든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거짓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요 8:44을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거짓말의 폐해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마귀의 자녀”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거짓말하는 것을 우습게 생각합니다. 야단을 맞을까봐 거짓말을 하고, 손해 볼까봐 거짓말을 하고, 체면을 깎일까 거짓말을 하고, 이해관계에 얽매어 거짓말을 하면서도, 그 거짓말들이 나에게는 물론이요 남에게도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줄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자기에게 세상적인 불이익이 돌아온다고 할지라도 바르고 진실 된 말을 함으로써, 그 악의 폐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정의로운 말을 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언어생활에서 자신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한 말을 하면 된다는 것은 개인적이며 소극적인 자세입니다. 성도는 빛의 자녀이기 때문에 세상에 빛을 비출 수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즉 세상의 거짓을 드러내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를 담대하게 말하는 정의로운 언어생활에까지 나가야 할 것입니다. 출 20: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웃 사람에 대한 거짓말뿐만 아니라 공식적으로 위증 행위에 대한 금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회나 혹은 학교에서 한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는데, 야단맞을 것이나 징계를 받을까 하여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그런 것을 보고 알고 있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밝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갈등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나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내 입은 침묵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것은 곧 거짓 증거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정의를 지키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힘 센 친구가 잘못을 해 놓고, 그것을 본 나에게 ‘너 선생님한테 이르면 죽어~’ 이렇게 협박을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진실을 덮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친구는 계속해서 나쁜 짓을 할 것이며, 또 거짓말을 강요하는 일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은 폐해가 나타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심하면 인생 자체를 망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 58:1 “인자들아 너희가 당연히 공의를 말하겠거늘 어찌 잠잠하느뇨? 너희가 정직히 판단하느뇨?”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죄가 되는 것입니다.

 

3.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언어생활에는 진실하고 정의로운 말 위에 사랑이 더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이 단지 진실과 정의만을  앞세우는 말은 서로 간에 미움과 다툼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잠언 15:1을 보면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잘못을 했을 때에, 그 사람도 그 잘못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모를 수도 있거나,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을 할 때에 사랑이 없게 되면, 그 사람의 화를 불러일으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잘못한 사람과 나와 관계가 좋지 않은 경우에 ‘옳지 잘 됐다.’하는 마음으로 비난하는 말투나 미움을 담아서 말하게 되면, 상대방은 자신의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잘못된 것에 대한 죄책감보다 나에 대한 분노가 더 크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비록 거짓되고 불의한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그들이 돌이켜 진실되고 정의로운 길을 행하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으로 말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이런 저런 어려운 일을 당해서 힘들어 하거나 낙심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위로의 말을 해 준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 모습을 기뻐하시겠습니다. 당사자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에게 바른 길로 행하도록 권면의 말을 해 주어야 합니다(잠 12:6). 그러나 말을 할 때에는 사랑을 담아서 해 주어야 하고, 또한 부드럽고 공손한 말로 함으로써(잠 25:15)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합니다.

 

4. 복음적이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백성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진실로 진실로”라고 하는 단어를 앞에 사용하셨습니다. 이 단어는 천국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은 진실 된 것이므로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조금도 거짓된 것이 없었습니다. 그 말씀의 중심 내용은 주의 택한 백성들의 구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삶 전체가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한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저속하고 쓸데없는 농담을 많이 할 때가 있습니다. 성도들은 항상 복음적인 언어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복음적인 언어생활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 성도들의 언어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인도하심을 나타내어야 합니다(엡 4:29). 둘째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시 145:11,12). 셋째,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살전 2:2)이 바로 복음적인 언어생활입니다.

 

  야고보서 3:6에서는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고 경고합니다. 잘못된 말 한 마디가 사람의 영혼을 멸망시킬 수도 있고,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 수도 있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킬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얼마나 언어생활을 조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다운 바른 언어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또한 불신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생활에 주의를 기울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우리가 진실한 말, 정의로운 말, 사랑의 말, 복음적인 말을 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상대방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어 있고, 내 심리 상태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고, 주위 환경이나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서 같은 말도 달리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사도 바울은 먼저 “기도에 힘쓰라.”고 말을 꺼내었던 것입니다. 살전 5:17에서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말씀을 잘 알아도, 그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성령의 충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에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은혜가 임하게 되고, 그 은혜는 바로 성령의 은혜요 도우심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있을 때에 말씀을 바로 깨닫게 됩니다. 말씀을 바로 적용할 수 있게 됩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말씀을 더욱 사모하게 되고, 말씀을 읽게 되고, 말씀을 더욱 가까이 하게 되고, 말씀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이 임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적인 생각이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닌 내 뜻대로가 되고, 사람의 뜻대로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내 뜻과 사람의 뜻이 앞서게 되면, 우리가 말하는 것도 그대로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나를 앞세우고, 내 감정을 앞세우게 되고, 사랑과 용서보다 헐뜯고 비방하고 욕하고 정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 말뿐이겠습니까? 우리의 행동도 역시 은혜롭지 못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생각도 역시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에도 악한 원수 마귀는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해서든지 잘못하게 만들고, 잘못된 행동과 말을 하도록 하여,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그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약화시키고 의심하게 만드는 작업을 쉬지 않고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충만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귀는 우리의 생각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교만하기 때문에 마귀가 우리의 마음을 마음대로 조종을 해도 그것을 눈치를 채지 못하고, 내 마음이 가장 정직한 줄로 착각하게 되고, 내 생각이 가장 옳고 바른 것인 줄로 착각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옳고 상대방은 그른 것으로 생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 눈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상대방의 티끌이 눈에 들어오고, 비판과 정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실수가 많은 것이 말입니다. 기도를 하게 되면, 자신의 실수를 깨닫게 되고, 회개하게 되고, 다시 말씀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고, 말씀은 은혜가 되어 더욱 기도에 힘쓰게 하고, 성령이 충만해 지는 순환의 고리가 형성이 됩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에 마귀가 내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지 못하게 되고, 우리의 얼굴 빛은 빛나게 되고, 육신도 건강하게 되고, 내 입술이 열릴 때에 은혜로운 말이 나오게 되고, 칭찬의 말이 나오게 되고, 복음의 말이 나오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루에 3번씩 정해 놓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른 새벽에, 정오에, 그리고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도, 따르는 무리들도 깨닫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외로움도 기도하는 가운데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한 싸움도 기도함으로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부족한 것이 많은 인생들이 아닙니까? 믿음도 부족하고, 소망도 부족하고, 사랑도 부족하고, 지혜도 부족하고, 용기도 부족하고, 모든 것에 실수투성이 인생을 살고 있지 않나요? 기도하면서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언행으로 이끌어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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