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서론과 제1장 강해
신명기(申命記) 한자의 신(申)은 “거듭하다, 되풀이하다, 말하다, 경계하다”는 뜻입니다. 명(命)은 “목숨, 운수, 운, 명령”이라는 뜻입니다. 기(記)는 “기록하다, 적다, 외우다, 문서, 글”이라는 뜻입니다. 한문으로 신명기를 풀이해 보면, “거듭하는 명령을 기록한 책” “명령을 되풀이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고, 좀 더 강하게 표현한다면 “목숨을 경계하게 하는 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듭해서 강조하며 가르치는 것이 신명기의 목적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인간의 목숨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 불행, 장수, 단명, 이 모두가 하나님 말씀의 순종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에 대한 적절한 제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의 제목은 ‘하데바림(םירבדה)’으로 뜻은 “그 말씀들”입니다. 70인 역(LXX)에서는 출애굽 이후 주어진 율법의 대해석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율법의 복사’ 또는 '제2의 율법‘이라는 뜻을 지닌 “듀테로노미온(Deuteronomion)"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어 성경 제목은 여기에 따른 Deuteronomy라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구성
모두 4부로 되어 있습니다. 제1부는 1:1-4:43로 제1차 설교이며 과거 역사의 회고이며, 제2부는 4:44-26:19로 제2차 설교로서 각종 율법의 재해석입니다. 제3부는 27-30장으로 제3차 설교이며 미래 역사를 전망하며, 제4부는 31-34장으로 모세의 죽음과 여호수아의 등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신명기의 주제
1. 하나님은 전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과거에만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 나아가 세상 끝 날까지 구원 행동을 계속하신다. 따라서 인간도 전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2.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는 분이시다(7:8). 언약의 근간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약속의 땅을 제공하시며,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각종 율법에 대한 백성들의 헌신적인 응답이다.
3. 언약에 대한 인간의 응답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주로 믿고 사랑하는 것이다(신 6:5-9). 예수님께서도 바로 이 말씀이 성경의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2:37,38)
4.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단순히 종교적인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 영역까지 확장이 된다.
5.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언약한 모든 복을 받을 수 있지만, 불순종은 파멸과 추 방 즉 언약의 저주를 받게 된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에 복을 받지만, 불순종하면 징계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은 영적인 삶과 육체적인 삶에 모두 적용이 된다.
6. 성도는 자신의 후손들에게 물적 유산보다는 영적인 신앙의 유산을 풍성히 남겨 주도록 힘써야 한다.
신명기 제1장 강해
애굽의 멍에와 사슬에서 해방되어 출애굽한지 제40년 째 되는 해 11월 초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입성을 두 달 열흘 앞두고 모압 평지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는 불과 열 하룻길입니다. 그러나 불순종과 반역으로 인해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고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이던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모세는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서 출애굽 제2세대에게 설교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신명기를 여는 첫 부분 1-5에서는 신명기에 기록된 설교 및 사건들이 주어진 역사적 상황에 대한 서론적 개관을 기록하고 있고, 6-8절에서는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정복을 명한 사실, 9-18절에서는 호렙 산에서 출발하여 가나안 정복을 위해 행군하기 직전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제안에 의해 백성들을 준 군대 조직 형태로 편성한 사실을 회상합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이 얼마나 감격과 희망에 차 있었는가를 회상시킴으로써, 그 후 약 38년이 지난 지금 가나안 입성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 제2세대들에게 과거 그들의 아비들도 자신들과 동일한 희망을 가졌음을 상기시켜 주 고 있습니다. 19-46절에서는 가데스 바네아 반역 사건을 회상하였습니다. 이것은 호렙 산에서 그토록 희망찬 출발을 했던 이스라엘이 왜 38년간이나 광야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가르쳐줍니다.
1: 이는 모세가 요단 저편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모세는 이 말씀의 기록자이면서도 ‘화자’ 즉 말하는 사람입니다. 현재의 장소를 구체적으로 지명을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설교를 합니다. 이스라엘의 무리를 기본적으로 200만으로 추산할 때에 이들 모두를 모을 수는 없었을 것이며, 백성의 대표들인 장로와 족장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그들은 또 자기의 지파에 돌아가서 이를 반복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2: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에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호렙 산은 시내 광야 남단에 위치한 ‘시내’산(출 19:20)과 동일한 곳입니다. 모세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며(출 3장), 출애굽 이후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습니다(출 19장). 세일 산은 에돔 족속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은 세일을 돌아서 가데스 바네아로 향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는 신 광야에 위치한 오아시스 지역으로 오늘날까지 큰 샘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12명의 정탐꾼을 선발하여 가나안은 정탐하였습니다. 호렙 산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리는 약 264km입니다. 노약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 24km 즉 60리씩을 걸을 경우, 11일에 통과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러면 왜 이 거리를 밝히고 있을가요?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의 남방 경계선인 브엘세바까지는 약 80km이므로 계속해서 하루 24km씩 행군을 하면 나흘만에 약속의 땅에 도착할 수 있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순종한 결과 38년이 지난 지금에야 가나안이 바라보이는 모압 평지에 이른 것입니다. 이로 하나님께 불순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백성들로 하여금 충분히 깨닫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3: 제 사십 년 십일 월 그 달 초일일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설교가 행해진 시점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이 종료되고 있음과,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말합니다.
4: 때는 모세가 헤스본에 거하는 아모리 왕 시혼을 쳐 죽이고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하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남부 지역을 거쳐 모압들에까지 이르는 동안 그렇게 강력한 가나안 왕들이 패망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이 있으신 분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설교함으로서, 그 효율을 극대화시키고 있습니다. 바산 왕 옥은 이스라엘이 모압 평지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다가 멸절된 왕입니다(민 21:33-35).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를 거역하는 자는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패망할 수밖에 없음을 밝히는 것은, 앞으로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반드시 멸망을 당할 것이며, 가나안은 이스라엘에게 정복될 것임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아모리 왕 시혼은 바산 왕 옥 보다 이스라엘의 진군을 방해하다가 죽었습니다(민 21:21-32). 헤스본은 요단 강에서 동쪽으로 약 29km 지점에 위치한 아모리 남 왕국의 수도입니다.(민 21:26).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 수 12:4, 13:12,31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바산 왕 옥은 에드레이와 아스다롯 두 곳을 수도로 삼고 있었습니다.
5: 모세가 요단 저편 모압 땅에서 이 율법 설명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1절의 재 언급과 같습니다. 이곳은 요단 건너편, 여리고 맞은 편입니다. 이 율법은 이미 이전에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율법이며, 다음 절에서부터 나오는 율법의 설명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에게 주어질 율법입니다. 새롭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율법을 신세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입니다.
6-18절은 가나안 정복 명령과 행정 기구의 조직에 대한 내용입니다.
6: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우리’라는 표현은 강한 연대감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연결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신적인 권능을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언약 백성으로서의 특별한 관계에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호렙 산에 도착한 때는 그해 즉 B.C.1446년 3월 15일이며(출 19:1), 다음 해 2월 20일에 그곳을 떠났습니다(민 10:11). 이스라엘은 호렙 산에서 1년을 체류했습니다.
7: 방향을 돌려 진행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지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방향을 돌려 진행하여’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시내 산으로 올 때에는 동남쪽으로 진행했지만, 시내 산을 떠날 때에는 북동쪽으로 나아간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한 것입니다. 아모리 족속은 함의 후손인 가나안 일곱 족속의 가장 강하였으며(창 15:16), 아모리 족속을 정복하는 것은 가나안 전체를 정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중 ‘아모리 족속의 산지’를 정복의 첫 번째 대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과거 이스라엘의 통과를 거절하고 대적하다가 살육당한 적이 있습니다(민 2:26-36; 21:21-26). 또한 이스라엘의 가나안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아모리의 다섯 왕이 연맹하여 대적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우박으로 인해 실패했습니다(수 10:1-21).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들을 완전히 섬멸하지 못했으며(삿 1:34-36), 후에 통혼을 하고(삿 3:5,6), 솔로몬 시대에는 노예로 부리게 되었습니다(왕상 9:20,21). 아라바~큰 강 유브라데는 이스라엘게 기업으로 약속하신 땅의 대략적인 범위를 말합니다. 유브라데까지 점령하지는 못했지만,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삼하 8:3; 대상 18:3; 대하 9:26).
8: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이스라엘의 조상이며 가장 존경을 받는 세 사람과 한 맹세, 아브라함(창 12:7;13:15;15:18), 이삭(창 26:3), 야곱(창 28:13)을 거명하여 이들과 한 맹세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이제 얻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9-11: 그 때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는 홀로 너희 짐을 질 수 없도다.
문맥으로 보아 가나안 정복 명령에 뒤이어 나온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호렙 산에 도착하여 율법을 전수받기 이전에 이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시간적 순서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기 위한 관용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당시 혼자서 백성들의 송사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출애굽 직후이기 때문에 수많은 송사가 이어졌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으로 내려갈 때에 70명이었으나 이때에는 부녀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하고 장정만 60만이나 되었습니다.
12: 그런즉 나 홀로 어찌 능히 너희의 괴로운 것과 너희의 무거운 짐과 너희의 다툼을~
‘괴로운 것’은 ‘지나치게 짐을 싣다’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백성들이 가진 여러 가지 원인에 따른 낙심 등의 정신적인 고통을 의미합니다. ‘무거운 짐’은 ‘운반하다’는 뜻에서 나온 육체적 고역을 가리킵니다. ‘다툼’은 ‘논쟁, 싸움’에서 나온 말로 백성사이에서 일어나 논쟁 자체뿐만 아니라 법정적 용어로서의 소송까지 의미합니다. 이렇게 모세는 정신적 육체적 고역과 격무를 혼자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세가 그 힘들고 괴로운 고통을 밝히려는 것이라기보다는 백성들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알고 함께 괴로워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3-15: 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유명한 자를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이런 방법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에 의해 제안이 되었습니다(출 18:17-26). 이들은 재덕이 겸전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며 진실하고, 공의로움 등에서 백성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을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패장으로 삼아 모세의 일을 돕게 했던 것입니다.
16: 내가 그 때에 너희 재판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너희 형제 중에 송사를 들을 때에~
이들에게 재판을 할 때에 이스라엘 인이나 타국인에게 억울한 피해하자 없도록 공정하게 재판할 것을 주문했다고 했습니다.
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이것은 모든 재판장들이 하나님의 위임을 받은 대리자임을 말해 줍니다. 재판장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판결해야 했습니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 신분의 귀천이나 사회적 지위나 조건을 무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차마 감당하지 못할 일은 모세 자신에게 돌리도록 했습니다.
19-46절은 가데스 바네아 사건의 회고 내용입니다. 과거 호렙 산을 출발하여 가데스 바네아에 이른 이스라엘 출애굽 1세대는 정복 전쟁을 치러야 할 가나안 땅에 대한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어느 길로 전진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지 알기 위하여 12명의 정탐꾼을 선발하여 가나안에 보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행위는 일견 사건에 철저한 준비를 행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지 못하고 인간적 수단을 강구한 불신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같은 정탐 결과를 보고를 받은 백성들이 보인 반응은 더 큰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정복에 나서기만 하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땅의 원주민의 강대함을 보고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을 쏟아내는 불신앙과 반역을 범하였기 때문입니다(민 13:25-14:3). 이에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모두 죽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통곡에도 귀를 기울이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완전히 잊으신 것은 절대로 아니기 때문에 4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자녀로 하여금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에도 큰 교훈을 줍니다. 첫째,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준엄하시며, 그 죄 값을 반드시 찾으시는 공의로운 분이시지만, 한편으로는 자비로운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은 때때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반격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끝까지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당신이 한 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삼상 15:29). 넷째, 형신적인 회개와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결코 움직일 수 없으며 따라서 죄 사함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이스라엘의 광야의 방황은 우리 신앙에 있어서도 동일한 절차를 반드시 밟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영적인 광야 생활을 통하여 신앙을 바로 세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호렙 산에서 발행하여 너희의 본 바~
호렙 산에 도착한지 1년여 만에 바란 광야를 거쳐 가나안으로 출발하였는데, 그 때가 출애굽 제2년 2월 20일입니다(민 10:11). 호렙 산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의 길에서 본 것은 ‘크고 두려운 광야’였습니다. 그곳은 고도가 높은 사막 지대입니다. 물이 희귀하며, 모래가 많아 농경에 부적합하여 목축이 성행하였고 특히 불부 지방은 울퉁불퉁한 암석 지대와 큰 모래 언덕들로 이루어졌으며, 모래 바람도 빈번한 곳입니다. 이 같은 지대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과했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엄청난 보호와 인도를 체험했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러한 사실은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반역이 얼마나 불신앙적이며 죄악이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게 합니다. 아모리 족속의 산지 길은 크고 두려운 광야와 같은 뜻입니다. 적군이 진을 치고 있는 곳입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량한 곳도 삶에 있어서는 적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곳을 지나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습니다.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모리 족속의 산지에~
이 말씀은 아모리 족속의 산지가 필연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점령당할 수밖에 없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단지 이 사실을 믿고, 그 땅을 위한 정복전쟁을 담대히 펼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셨다’는 것은 땅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 소유권을 넘겨 그 사람의 처분 아래 두는 것까지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또 ‘주셨다’는 것은 자신들의 힘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셨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였을 때에 그들의 눈에 ‘아모리 족속의 산지’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21: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 즉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20절의 ‘주셨다’는 말과 ‘두셨은 즉’이라는 말은 같은 단어입니다. 이 말은 이방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필연적 승리를 강조할 때 자주 사용이 됩니다(수 8:1;10:8;삿 1:4). “올라가서” 고대의 도시들이 산 위에 건설되어 성곽에 의해 요새화되어 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르는 것은 단순한 행위보다 정복의 목적이 담긴 행위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얻으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하여 인간이 받아들이는 행위를 묘사한 것으로 가나안 정복과 소유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간에게 주어졌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22: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 앞서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앞 절에서 하나님의 행위와 약속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은 정탐꾼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이것을 묵인해 주셨습니다.(13:2) 이런 사실을 통하여 우리들이 행하고 있는 많은 일 중에, 하나님께서 묵인하고 계실 뿐이지 그분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음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그랬듯이 교묘한 인간의 지혜가 신앙으로 착각되고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23: 내가 그 말을 선히 여겨 너희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두을 택하매
정탐꾼의 파송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지만 모세는 백성들을 선무하려는 뜻에서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만일 거절했다면 반역을 꾀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24,25: 그들이 앞으로 가서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하고
여기에서 산지는 아모리 족속의 산지를 말합니다.(민 13:17) 비옥한 골짜기로써 포도산지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현재도 이곳에서 질 좋은 포도가 나고 있다고 합니다. ‘에스골’이라는 말은 꽃이나 과일 등의 큰 ‘다발’ ‘송이’를 뜻합니다. ‘그 땅의 과실’ 에스골에서 정탐꾼들이 딴 것입니다. 혼자 들고 올 수가 없어서 막대에 꿰어 둘이 메고 왔습니다(민 13:23). 포도 외에도 석류와 무화과도 가지고 왔습니다. 이들 과일은 그 땅의 비옥함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신실한 것이었는지를 사실적으로 확증하는 증거물이 되었습니다. 정탐꾼들도 그 땅이 좋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26: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즐겨 아니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거역하여
그렇게 좋은 땅임을 알면서도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은 것은 백성들의 명백한 불신앙 행위입니다. 이 불신앙은 가나안 족속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땅을 정복하고 빼앗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장막 속에서 원망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불평을 넘어서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는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처럼 좋은 땅을 주시려고 하는데, 백성들은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들을 미워하여 가나안 족속에게 죽게 만들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정탐꾼들의 불신앙적 보고를 받은 백성들은 그 땅의 거민이 장대하고, 성읍이 크다는 말에 낙심하고 말았습니다.
29-33: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무서움은 자기보다 더 강한 적으로 인한 떨리는 것이며, 두려움은 위협적인 사람이 환경, 혹은 현상으로 인한 놀라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앙으로 일어나는 인간의 반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셨기 때문에 절대로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고 백성들을 설득 시키고 있지만 백성들은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30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쉽게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미리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 대적하지 못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시는 것입니다. 왕벌을 미리 보내시는 것이라는 뜻과 같습니다. 애굽에서 그 큰 기적들을 일으키신 것과 같이 가나안에도 그같이 행하실 것이라고 모세는 백성들을 위무하고 있습니다. 또한 광야 길을 통하여 가데스 바네아에까지 오는 동안에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심을 체험하면서도 믿지 못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34,35: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사 맹세하여 가라사대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이스라엘이 하는 말소리는 마음에서 또 입에서 하는 원망이며,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제안이었습니다(민 14:4). 이들은 가리켜 ‘이 악한 세대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시 20세 이상이던 모든 사람들은 결국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남들이 순종을 포기하였을 때에 갈렙은 순종하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악한 세대 사람들’과 강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갈렙에게는 통상적인 지분 그 이상의 것이 가나안에 보장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헤브론 전체를 자신과 그 후손의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수 14:6-15).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상급은 믿음과 그에 따른 이 세상에서의 수고 등 크기게 따라 결정됨을 깨닫게 됩니다(빌 3:14).
37: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도 진노하사 가라사대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 곧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과 그 반역 사건 후에 되풀이 되는 또 다른 반역 사건들(민 20:1-13)과 관련이 있습니다. 물의 부족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할 때에, 모세는 격분하여 반석을 쳐서 물을 냄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그 결과 모세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 모압 땅 느보산에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34:4,5). 여기에서 모세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거역하는 불순종은 물론이요, 아무리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며 지도자라고 할지라도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때에는 진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약속의 땅은 오로지 순종으로만 받을 수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38: 너의 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고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케 하라~
‘너희 종자’는 ‘네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를 담대케 하는 이유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차기 지도자가 되기에 적합하도록 소명의 의식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이며(34:9), 그 사명을 감당하기에 충분하다는 확신을 주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고, 정복전쟁을 수행하고, 그 땅을 분배하는 집행자가 되었습니다.
39: 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일에 선악을 분변치 못하던 너희 자녀들~
민수기 14:3을 보면 당시 20세 이상이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녀들마저도 죽일까봐 두려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시 어린아이였던 지금의 백성들을 가나안에서 산업을 주어 주인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40-44: 너희는 회정하여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하시매
이는 하나님의 징계로 다시 광야로 이스라엘을 돌리시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다시 광야로 가고 싶은 마음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광야로 가는 것을 면해 보려고 가나안으로 올라가서 싸우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에 대한 그 징계가 다시 광야로 가는 무서운 것인지를 미처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싸우려고 산지로 올라가려고 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올라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전쟁에 패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은 불순종 위에 또 불순종을 하여 산지로 올라갔으나, 아모리 족속은 이스라엘을 파하고 세일산을 지나 호르마까지 쫓겨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45: 너희가 돌아와서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며~
“돌아와서”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아모리족속에게 패한 후에 다시 가데스로 돌아 왔다는 뜻과, 자신들의 범죄함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백성들이 돌아와서 통곡을 하였습니다. 이는 믿음이 없어 패했다는 회개의 눈물이라기보다는, 전쟁에서 무참하게 패함으로 인한 한탄의 눈물입니다.
46: 너희가 가데스에 여러 날 동안 거하였었나니 곧 너희가 그곳에 거하던 날수대로니라.
처음 도착하여 패배를 거쳐 다시 광야로 들어가기까지의 기간이 길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로 다시 들어가리라는 형벌적 명령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심히 고민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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