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제5장 강해 호렙 산 언약
신명기 제5장은 4:44부터 시작되는 제2차 고별 설교의 시작부분입니다. 6절까지는 서론 부분이며, 이미 요단 동편을 정복하고 곧 가나안을 향하여 진군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계속 받기 위한 조건으로서 율법을 다시 요약하여 강해하고 있습니다(7-21). 모든 율법의 핵심으로서, 각종 하위법 위에 있는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의 내용이 먼저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 자신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보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내용이 22-33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1-6절은 십계명을 재차 언급하기 위한 도입부입니다. 율법을 지켜 행하라는 원론적인 명령과, 호렙 산 언약의 의의와, 언약 체결 당시의 상황에 대한 언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 귀에 말하는~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 명령들을 준수하라는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에게 “듣고, 지키고, 행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한 백성들의 세 가지 영역의 의무입니다. 성경은 오직 이러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는 성도가 복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계 1:1-3).
2: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지 제 3워에 있었던 일입니다(출 19:1). 이 언약은 무려 40년 가량이 지났기 때문에 출애굽 제2세대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우리’라는 대명사를 사용하여 그 언약의 대상이 그 당시의 세대만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모든 이스라엘임을 분명히 시사하고 있습니다.
3: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이 언약’은 호렙 산에서 맺은 시내 산 언약입니다. 뒤이어 나오는 ‘열조’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시내 산 언약을 맺을 때에 참여했던 출애굽 제1세대를 가리킵니다. 즉 호렙 산 언약은 당시의 세대에만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내 산 언약에 참여하지 않았던 제2세대들에게도 적용되고 유효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즉 가나안에 들어가는 출애굽 제2세대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행하며 살아야 한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4: 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기 위하여 스스로를 낮추심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인간들과 언약을 맺으신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자기 비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것은, 최소한의 거리 즉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감히 인간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만 모세만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대표자격으로 율법을 수여받았습니다.
5: 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접근을 허용하셨는데도 두려움 때문에 그리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접근을 엄금하셨기 때문입니다(출 24:2).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을 보여 주는 ‘불’자체가 백성들을 두렵게 하였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허용으로 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중보자의 자격을 말합니다. 이 자격은 제2세대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지금 모세의 설교는 하나님과 제2세대의 언약의 체결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6: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
옛날에는 ‘종주권조약(宗主權條約)’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강력한 군주와 그 군주의 보호 아래 있기를 원하는 신하나 백성 사이에 체결이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실 수 있는 자격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주체자로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언약을 맺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7-21절은 십계명의 강론입니다. 십계명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5계명, 6-10계명으로 구분하는 방법과, 1-3계명, 4-10계명, 혹은 1-4계명, 5-10계명으로 구분하는 방법입니다. 이 가운데 첫 번째 구분은 부모 공경이 종교적인 계명의 범주, 즉 하나님을 경경하라는 명령에 포함된다는 것이 특색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모 공경에 대한 교훈을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같은 비중을 두고 말씀하신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마 15:4-9). 또 두 번째 구분은, 안식일 준수가 사회 규범 중의 하나에 포함된다는 것이 특색입니다. 안식일은 단순히 종교적인 측면에서 준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의 연장으로서의 안식일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 구분은 하나님께 대한 계명과 사람에 대한 계명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특색입니다. 구분은 어떻든지 간에 십계명은 오직 한 가지 사랑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마 22:37,38)
7: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제1계명
고대 근동 사회의 다신교와 확실하게 구분되는 내용입니다. 다른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며 그 중에서 하나님 선택하여 섬기는 일신교를 장려하는 게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참신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다른 신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여호와에 의하여 피조되었다가 타락한 악령들일뿐입니다.
8: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제2계명
신상 제작 금지와 신상 숭배 금지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요 4:24) 형상화될 수 있는 분이 아니시며, 보이는 것을 섬김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불신앙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질투하는 하나님’ 여호와 자신의 신적인 권위와 지위를 어느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고 그것은 오로지 여호와 자신의 독보적인 것임을 밝힙니다. ‘나를 미워하는~’ 하나님 이외의 다른 무엇을 섬기는 행위는 곧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임을 말합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을 따르지 아니하는 자는 비록 그분께 직접 대적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분을 훼방하는 자인 것과 동일합니다(마 12:30). 이런 자에게는 죄를 3-4대에까지 이르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저주가 우상숭배자와 그 자손에게 그대로 임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조상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후손들이 고통을 당하는 사실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삼하 12:15-18;21:1-9). 특히 우상숭배자들의 후손들은 조상으로부터 죄악적인 영향을 받아 조상들의 죄악 된 삶을 답습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만일 그 후손들에게 저주가 임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이거나 혹은 그들이 죄악 된 삶을 살지 않은 결과일 뿐입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우상 숭배자들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을 때 받은 징벌이 삼, 사대에 이르다는 말과 대조되는 것으로, 하나님은 저주하기보다는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며, 언약 혹은 계명의 목적을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려는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성도가 말씀을 지키는 것은 복을 받을 수 있는 특권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11: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제3계
'망령되이‘라는 말은 헛되게, 무익한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특히 우상숭배와 관련되어 쓰이는 용어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경스럽게 부르는 것 이상의 말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이방인들이 자신의 욕심과 목적을 위하여 신을 주술적으로 부르듯이 부르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욕심을 채워주고 이익을 도모하여 주는 헛된 신이 아니라, 하나님은 자신이 모든 일에 주인이 되셔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가는 참 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이익이나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동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12-15절은 안식일에 대한 계명으로 출 20:8-11에 나오는 것과 조금 다릅니다. 즉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14)은 동일하지만 안식일의 신학적 의미(15)는 다른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안식일을 하나님의 천지 창조와 관련시키지만 여기서는 애굽으로부터의 구속과 관련시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 때 안식일의 신학적 의미가 바뀌었으며, 또 안식일의 신학적 의미는 다시 바뀔 수 있었음을 시사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안식일의 근본적 변화 혹은 변질을 뜻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학적 의미가 구속사의 흐름과 관련하여 발전된 표현을 나타내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세상 끝 날의 완전한 구속(재창조) 를 바라보면서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도 그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안식일(주일)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과 재창조의 완성을 세상에 널리 공포하는 날입니다.
16: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제5계명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는 장수의 복을 말합니다. 이것은 고대 사회에서의 가장 소중한 복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소중한 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여기에는 육적.영적 복이 아울러 포함이 됩니다(엡 6:1-3). ‘공경’이라는 말의 기본형인 ‘카베드’는 ‘무겁다’는 뜻입니다. 부모 공경에 큰 비중을 두고 공경하며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에서의 위계질서 파괴는 전 사회에서의 질서 파괴로 연결되며, 부모 공경은 하나님 공경을 배우는 훌륭한 방편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17: 살인하지 말지니라. 제6계명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인간의 독특성에 근거하며(창 1:26,27;9:6),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시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웃을 미워하는 일까지도 본 계명의 위반으로 간주하셨습니다. (마 5:21,22).
18: 간음하지도 말지니라. 제7계명
간음은 자기 아내와 남편 외에 성관계를 뜻합니다. 이 계명은 일부 일처의 창조질서 유지(창 2:24,25), 우상 숭배라는 영적 간음의 죄악성에 대한 환기의 목적도 있습니다. 특히 바알 숭배와 더불어 집단 혼음이 성행했던 당시의 형편에서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으로 짓는 것도 죄라고 선언하셨습니다(마 5:28).
19: 도적질 하지도 말지니라. 제8계명
도적질하다는 기본형 ‘가나브(גנב)는 ’사기치다, 속이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부당한 방법을 동원한 유.무형의 재산을 취득하려는 모든 시도를 금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노력한 대가를 누리기보다 불로소득을 노린 계책이나, 즐기는 행위 또한 도적질의 의미에 포함이 됩니다.
20: 거짓 증거하지도 말지니라. 제9계명
“까닭없는 참소 행위, 법정에서의 위증, 일반적 의미의 거짓 행위 모두를 금하고 있습니다.
21: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도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도 말지니라. 제10계명
‘탐내지도’의 기본형 ‘아와(אוה)’는 ‘소원하다, 사모하다’는 뜻입니다. 타인의 아내에 대하여 흑심을 품는 것을 금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자제하지 않을 경우 인간의 연약성으로 볼 때 실제적인 간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위험한 것입니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도 말라는 것에서 ‘탐내지도’의 기본형 ‘하마드(חמד)’는 ‘열렬히 사랑하다’는 뜻으로 상대방의 소유에 대한 강렬한 소유욕은 결국 그것을 취하려는 행위로 옮겨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한 것을 절제시키는 것입니다.
22-33은 모세의 중재 사역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수여하실 때 모세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한 데 대한 최고입니다.
22: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을 산 위 불 가운데,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서 큰 음성으로~
십계명이 수여될 때의 그 장엄한 풍경을 강조하여 회고하고 있습니다. 총회(카할:קחל)은 신앙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 회중 전체를 지칭할 때 사용합니다.(민 16:2) 특히 이 용어는 신약의 교회를 의미하는 모체가 되었습니다. ‘더 말슴하지 아니하시고’ 십계명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주어졌음을 가리킵니다.(출 20:1-17) 기타의 율법 규정들은 중보자 모세를 통해 하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돌판에 십계명을 친히 기록하셨습니다. 처음에 받은 두 돌판은 모세가 백성들의 우상숭배를 보고 땅에 던져 깨지고, 모세는 스스로 두 돌판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돌판에도 친히 기록하셨습니다.
23: 산이 불에 타며 캄캄한 가운데서 나오는 그 소리를 너희가 듣고 너희 지파의 두령과 장로들이~
이것은 모세가 소명을 받을 때 호렙 산의 가시떨기 나무에 불이 붙어 있었으나 그 나무가 타 없어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의 현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셨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또 다른 임재의 상징은 ‘검은 구름’입니다. 당신의 영광을 백성들에게 가리우셨습니다.
25: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이 큰 불이 우리를 삼킬 것이요~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게 될 경우 죽고 말 것이라는 근심을 반영하는 반문입니다. 불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상징하며, 그 거룩을 범하는 자를 범하기 위한 심판의 도구입니다(신 4:24; ,레 10:2). 따라서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은 하나님의 거룩을 범한 것이라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6,27: 무릇 육신을 가진 자가 우리처럼 사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불 가운데서 발함을 듣고~
육신은 ‘바사르(בשר)류 죄악에 오염되기 쉬운 인간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로 죄를 갖고 있는 모든 인생을 의미합니다(롬 3:23). 죄의 오염아래 잇는 인간이 함부로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또한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까닭은 죄와 거룩은 도대체 조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지만, 신약의 성도들은 주님의 완전한 제사를 힘입어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히 10:19, 22).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혼자 가서 듣고 전해달라고 요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28,29: 여호와께서 너희가 내게 말할 때에 너희의 말하는 소리를 들으신지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백성들의 말이 옳다고 하시는 것은, 여호와의 음성을 듣는 인생은 죽고 말 것이라는 생각과, 모세가 중보자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29절에 따르면 여호와의 음성을 듣는 인생이 죽는다는 것에 더 강조점이 있습니다. 십계명을 받을 때의 이런 두려운 마음은 나중에 십계명을 지킬 때에 두려운 마음으로 지키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십계명을 지키는 것은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30: 가서 그들에게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라 이르고
백성들이 자신의 거처로 돌아갈 것이 명한 내용입니다. 이 명령은 오직 모세만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 산으로 올라갔으며, 그 위에서 체제 기간 40일이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31: 너는 여기 내 곁에 섰으라. 내가 모든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네게 이르리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기 위하여 부르시는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모세가 아론과 제사장 3명과 장로 70명과 함께 산 중턱까지 올라갔으며(출 24:12). 하나님의 재차 부르심에 따라 오직 시종 여호수아만을 데리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율법을 주시는 목적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행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얻은 모든 성도들에게 여전히 모든 율법이 필요한 사실과 마찬가지입니다(마 5:17-20). 구약 성도나 신약 성도나 모두 믿음으로 구원에 들어가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율법을 지킴으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2: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삼가 행하여’ 지키라는 뜻입니다. 경솔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조심스러운 마음가짐을 뜻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지표로 삼아 거기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명령입니다. 유일한 삶의 원칙인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나는 죄를 짓지 말라는 뜻입니다.
3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오직 율법의 올바른 준수만이 타국으로의 추방을 면할 수 있는 비결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복이지만, 그 복을 받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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