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설교

광복절축포

chukang 2020. 3. 26. 18:25

광복절 축포 미가 1:1-9

 

  사람은 그 누구라도 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작은 게임을 하더라도 지는 것보다는 이기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하물며 큰일이나 자신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고 하면 반드시 잘되어야 합니다. 마음과 생각은 잘되기를 바라지만 실제로는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 같이 직장생활이 불확실한 시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나와서 퇴직금으로 개인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그 모든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이 사업을 시작할 때에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성공 확률이 높은 종목을 선택합니다. 물론 지리적인 요건이나 연령별 취향 등등 많은 조사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중팔구는 실패한다고 합니다. 한 개인, 한 가정도 잘살기를 바라는 것처럼, 한 민족이나 국가의 경우에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어제 새벽에는 동메달을 놓고 우리나라와 일본의 축구 경기가 있었습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일본이 이길 것이라고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승리는 우리나라의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승리한 데에는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정신력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마음가짐, 정말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드리볼 기술이나 전술은 일본보다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하나가 된 것입니다. 광복절을 축하하는 듯이 축포를 두 골이나 쏘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을 많이 당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중국, 일본 등에 왜 침략을 당하고 주권을 빼앗기는 고통을 당하는 것일까요? 국가 내에서 정쟁에 휩싸이고, 위정자들이 자기 이익만을 위하여 정치를 할 때에 반드시 침략을 당하고 패전하였습니다. 국가라는 큰 틀을 잘 운영하지 못하고 개인의 작은 이익이나 권력에 집착하게 될 때에, 이미 그런 위정자들은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닫힌 상태가 된 것입니다. 설마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고 해도 바로잡을 수 없는 불능의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이번 주 수요일은 8월 15일 광복절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금요일에 울릉도를 거쳐 독도까지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어제 새벽에는 축구에서 이겼습니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사람들을 볼 때에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고 하겠지만, 그러나 제3자가 볼 때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독도를 한국영토라고 했던 것을 고쳐서, 영토분쟁지역으로 바꾸어 표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기는 했지만, 군사적으로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미국이라고 하는 세계 최강국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고, 경제적으로도 수출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일본이나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IMF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 김대중은 1998년 일본과 어업협정을 맺었는데, 그 때에 독도가 공동관리수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독도를 공동관리수역에 넣은 것입니다. 이때부터 일본은 더욱 노골적으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사마리아와 유다는 당시 강국이던 앗수르에 크게 의존하는 정책을 펼쳤고, 심지어는 앗수르의 우상 제단을 본뜬 단을 예루살렘 성전 안에 만들어서 성전 제사를 모독하는 등의 가증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당시 활동하던 선지자인 미가는 호세아, 아모스, 이사야와 같은 시대의 선지자로, 특히 히스기야의 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대한 예언 활동을 하는 도중에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메시지는 대부분 남유다 백성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남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메시지를 선포하면서도 마음속에는 항상 선민 이스라엘 전체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남유다에는 히스기야가 왕위에 올라 선왕의 종교적, 정치적 폐단을 바로보고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선왕 아하스 때 만들어진 각종 우상은 물론 어떤 왕도 해결하지 모한 산당까지 제거하여 유다의 종교적 분위기를 일신시켰습니다. 이런 때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미가 선지자는 남유다 백성들 사이에 퍼져있는 죄악들을 지적하며,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비롯한 여러 가지 경고를 했습니다.

  1절에서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고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가가 하는 예언의 출처가 바로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는, 곧 신적인 권위를 갖는 여호와의 말씀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은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와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이 멸망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2-5절은 전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하여, 6,7절은 사마리아의 멸망에 대하여, 8-16절은 남유다의 멸망과 포로에 대한 예언입니다.

 

1. 심판의 이유

  ‘다 야곱의 허물을 인함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를 인함이라.’(5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택한 백성을 심판하실 때에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그러나 심판하지 않고는 그들을 살릴 방법이 없기 때문에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원인은 ‘야곱의 허물’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야곱의 허물은 곧 북이스라엘의 허물입니다. 남유다의 예루살렘 보다 먼저 언급이 되고 있는 것은, 북이스라엘의 죄악이 남유다보다 훨씬 크고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수도입니다. 수도는 정치, 경제의 중심지입니다. 특히 신정국가에 있어서 수도는 종교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수도가 타락하게 되면 그 영향은 나라 전체에 심각하게 미치게 마련입니다. 이런 점에서 미가 선지자는 사마리아를 북이스라엘의 바알 숭배를 비롯한 온갖 죄악의 본거지로, 예루살렘을 남유다의 모든 죄악의 근원으로 일컫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의 산당’ 남유다에서 우상 숭배가 행해지던 대표적인 장소입니다. 산당은 본래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우상 숭배를 하던 장소입니다. 중앙 단일 성소인 성전이 세워지기 이전에는 임시적인 예배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성전 건립 이후에도 이것이 계속 존속됨으로 인하여 점차 중앙 성소의 기능을 약화시키거나 우상 숭배의 본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즉 산당이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한켠에는 우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신데(요 4:24), 인간들은 신을 보이는 것으로 형상화하여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겼고, 그런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잘못된 신앙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대형교회 건물 전면에는 예수님으로 상징하는 사람이 지팡이를 들고 양을 안고 있는 그림을 크게 붙여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잘못된 신앙의 행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화상숭배의 일종인 것입니다.

  이렇게 산당이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고, 왕들도 그곳에서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산당을 없애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산당을 헐었다는 그것만으로도 그의 신앙은 매우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산당이 곧 예루살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루살렘이 바울과 아세라를 섬기는 산당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뜻합니다. 온 예루살렘이 우상덩어리가 된 것입니다. 이는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도시 전체가 죄악이 관영하여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2. 사마리아의 심판 예언

  ‘사마리아로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들의 무더기는 농부들이 밭을 갈 때에, 밭에 흩어져 있는 돌들과 땅을 일구면서 나오는 돌들을 모아서 한쪽에 모아둔 것을 말합니다. 지금 현재 사마리아는 매우 번영한 상태이기 때문에 보석과 같은 것들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지만, 이제는 돌무더기와 같이 폐허가 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논과 밭에 있는 돌무더기는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필요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있으면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이는 사마리아가 단순히 황폐화 되는 것을 지나 그 위에 포도밭이 형성됨으로 인해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임을 말합니다. 나쁜 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좋지만, 사람의 기억에서 잊혀 진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결국 그 화려함을 자랑하던 도시는 황폐하게 되고, 나중에는 사람들이 일구어 밭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아무도 남지 않게 됩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사마리아는 앗수르에 B. C. 722년에 완전히 멸망하고, 사마리아는 파괴되고, 사마리아에 살던 귀족들은 붙잡혀 앗수르의 변방으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그 대신 앗수르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보내어, 남은 사람들과 혼혈이 되고, 여호와 신앙은 완전히 파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으로 취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접촉을 해도 부정하다고 생각하여, 북쪽에 볼일이 있을 때에는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멀리 둘러서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인들을 피하지 않고 직접 지나가시다가 수가라는 성읍에서 한 과부를 만나고, ‘영생하도록 솟는 샘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인 예수님 자신을 가르쳐 주셨습니다.(요 4:3-14)

  ‘그 새긴 우상을 파쇄하고’ 사마리아에 임할 심판의 구체적인 적용 대상이 우상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가 타락하게 된 첫 번째 원인인 우상, 곧 돌에 새긴 우상(사 10:10)이나 나무로 만든 우상 모두를 없애실 것입니다. ‘음행의 값을 다 불사르며’ 이는 우상 숭배와 관련하여 바쳐진 모든 재물들이 대적들에 의해 탈취되거나 불태워질 것을 가리킵니다.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우상에게 바쳐진 모든 보물들은 기생의 몸값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가 곧 영적 매춘 행위라는 것입니다(사 23:17; 겔 16:30-34; 호 2:5, 8, 12). 그리고 우상 숭배로 모은 그 재물들은 적국에 의해 정복, 탈취를 당하여 그들의 다른 우상에게 바쳐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스스로 계시지만 보이지 않는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을 하나님이라고 섬기는 자들은 반드시 그 가진 모든 것들을 빼앗기고, 그것들은 또 다른 우상들에게 바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3. 예루살렘의 심판 예언

  미가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비통해 하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 백성을 향한 사랑은 뜨겁지만 어리석음과 완악함으로 끝까지 죄에서 돌이키지 않아 이제 심판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을 가슴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잘 대변해 주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도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면서 우셨던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눅 19:41).

  미가는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침공해 올 때 그 경로에 위치한 주요 10 성읍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그 멸망의 소식이 블레셋 땅 가드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라고 호소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에게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데에 대한 미가의 안타까움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런 상황을 초래한 유다에 대한 책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벌거벗은 몸으로 들개 같이 애곡하고’ 미가는 벌거벗은 몸으로 애곡을 하고 있습니다. 벌거벗은 몸이 되는 것은, 선지자의 상징적 행위입니다. 심판 받을 대상과 관련된 특정 행위를 선지자 자신이 직접 행하는 것으로, 그 목적은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어 좀 더 실감 있게 전하기 위함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임박한 이스라엘의 멸장 직전에 포로 생활이 끝난 후 다시 귀환할 것에 대한 상징으로서 고향 아나돗에 가서 밭을 산 행위(렘 32:6-15)가 같은 상징적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벌거벗은 몸으로 다니는 행위는 장차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해 신과 옷을 벗기운 채 포로가 되어 잡혀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이런 행위는 단지 상징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동족의 멸망에 대한 자신의 지극한 슬픔의 표시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역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일원으로 동족이 당할 심판의 대상자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동족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들개같이 애곡한다고 하였습니다. 들개의 울음소리는 흡사 지나친 슬픔으로 인해 저절로 터져 나오는 미가의 탄식 소리를 비유합니다. 이는 어떤 것으로도 위로 받을 수 없는 선지자의 비애와 함께 임박한 심판의 심각성을 강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미가 선지자 자신이 들개와 타조처럼 애통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그 누구도 치유할 수 없고, 막을 수도 없다는 절망감이 미가의 슬픔을 배가시킨 것입니다. 그 슬픔이 더 가중 된 것은 ‘유다까지도 이르고’ 때문입니다. 앗수르 왕 사르곤 2세(B. C. 722-705)가 B. C. 722년 북이스라엘을 정복한 후 B. C. 701년 경 산헤립(B. C. 705-681)이 남유다까지 침략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때 남유다의 왕 히스기야는 예루살렘 함락 직전에 많은 조공을 바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B. 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매우 심각합니다. 수많은 이단들이 제각기 자기들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참 교회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단 중에 매우 흥하고 있는 것 몇 개가 있습니다. 안상홍증인회가 운영하는 교회의 이름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이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있으므로 하나님 어머니도 있어야 한다고 하여 장길자라는 여자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하나님이라고 숭배하고 있습니다. 신천지는 유재열의 증거장막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이만희라는 자가 만든 것입니다. 또 ‘기쁜소식 선교회’가 있고, 다락방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통교단의 허울을 쓰고 “종교다원주의”를 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W.C.C. 총회가 내년 부산에서 열리는데, W.C.C.에 속해 있는 한국교회협의회를 N.C.C.K.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고, 그 가는 길과 믿는 방식만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 예수님을 제대로 믿지 않는 엉터리 교인들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대충 믿는다고 말만해도 다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어떻게 써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 5:22, 2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한국 교회가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먼저 회개하는 것이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회개치 않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회개하지 않으면 한국 교회는 모두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저 이방인들과 불신자들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복음을 주시고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국가로 세우셨는데, 이 복음의 사명을 감당치 않는 우리나라는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고 아파하시면서도 징계를 하실 것입니다.

광복은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광복이 귀중한 것이지만 없는 것만 못합니다. 애초에 침략을 당하지 않는다면 왜 광복이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주변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를 맡길 때에만 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썩어질 것으로 인하여 우리의 영혼과 양심을 팔고 나라의 영토와 주권을 팔아먹는다면, 어찌 그런 사람을 국가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광복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짓을 하면서도 이제는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려고 하는 자들이 오히려 날뛰고 큰 소리를 치고 있는 대한민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성도가 바른 신앙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도부터 회개하고 돌이킬 때에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서 찾지 못한 의인 열 명을 찾으시고 보호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진정한 광복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나라가 되어야 세계 만국에 우뚝 선 강대국이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