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설교

2019년 추석 가정 예배: 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은

chukang 2019. 9. 12. 01:46

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은

 

성경: 갈라디아서 5:16-26 찬송: 309, 312, 323

 

우리는 즉 성도는 자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불신자는 자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보혈의 능력이 임하였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중의 특권이 바로 자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모두 자유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 있느냐 하는 것에는 물음표가 붙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많은 성도들이 자신이 자유자라고 하는 그것에 대하여 잘 알고 있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자유의 개념이나 자유라는 단어에 숨어 있는 그 놀라운 진리에 대하여 바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실 때에 주신 그 자유는 소위 말하는 자유의지입니다. 이 자유의지의 본래적인 의미는 스스로 하나님을 섬기며 경배할 자유입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은 받은 아담과 하와는 이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자신들이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데에 사용하고 말았고, 그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정녕 죽으리니이 말 속에는 육적인 죽음과 영적인 죽음이 모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 이후로 모든 인간들 자유의지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즉 죄에 속한 자들이 된 것입니다.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바라볼 때에 인간은 완전한 타락이 되어 영원한 죽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즉 태초에 인간에게 주어진 그 자유의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 하나님을 스스로 섬길 수 있는 자유가 손상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남아 있는 자유의지는 악으로만 향할 수밖에 없는 자유의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자유의지라고 잘못알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는 결코 스스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자유의지이기 때문에 성경은 사람들을 향하여 전적 타락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들의 전적으로 타락한 심령을 다시 살리셨고 자유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 증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은 성도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라고 1절에서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즉 죄에 대하여 종노릇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유자가 된 성도는 항상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가야합니다. 우리의 생활 모든 부분에서 믿음을 지키고 구원의 소망을 가지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가 모두 느끼고 있겠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항상 두 가지가 싸우고 있습니다. 선과 악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양심에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착하게 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살라고 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우리 마음속에 있는 악령은 세상을 따라서 살아도 된다고 유혹합니다. 너희가 살고 있는 곳이 세상인데 세상을 따라 사는 것이 왜 잘못되었느냐고 반문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보다는 악으로 끌려가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곳이 세상이요, 이 세상은 마귀가 권세를 잡고 있고, 사람이 입고 있는 육신은 땅에 있기 때문에 천국의 소망보다는 육신의 정욕을 더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자유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17절을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둘이 항상 우리 마음 속에 있습니다. 타락한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성 즉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새사람이 되어 받은 새 성풍입니다. 이 둘이 항상 충돌하여 육체의 소욕은 성령의 뜻을 거스리려 하고 성령은 육체의 소욕을 제어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 성도는 자기 행동에 있어서 양쪽의 견제를 받아서 그가 원하는 것을 쉽게 이를 수 없게 됩니다. 바울도 이로 인하여 몹시 괴로워 했지만(7:21-24) 결국에는 이 대립적인 상태에서 성령의 확실한 승리를 믿었습니다(8:1,2 고전 15:55-58).

 

그런데 사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성령을 따라서 살기에는 참 힘이 듭니다. 우리의 판단으로 볼 때에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것이 지혜로운 것 같이 보이고,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은 우매하고 바보스럽게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결론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고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25)라고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살면 손해 는 것 같으나 그 손해는 하나님께 반드시 만회시켜 주십니다.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바보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연약한 것 같으나 강건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 당장은 아닐 수 있고 모를 수도 있지만 지나고 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항상 주님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임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가위는 풍요로움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열매를 풍요로움을 누리는 성도가 되고, 가정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