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이 되게 하리니 요한계시록 3:7-13
빌라델비아라는 도시는 주변의 여러 도시들로 통하는 지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사람의 왕래 잦은 매우 번성한 도시입니다. 직물, 피혁 공업이 매우 발달했고 양질의 포도주를 수출하여 비교적 부요한 도시 중에 하나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도 역시 부근의 도시들과 같이 우상 숭배와 사치, 도덕적 문란이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특히 포도주가 특산물이어서 이 도시는 술의 신이라고 하는 ‘디오니소스(Dionysus)'를 섬겼고, 그 결과 방탕과 향락 풍조가 도시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에는 유대인이 많이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면 좋은 일이 많이 있을까요? 아니면 좋지 않은 일이 더 많을까요? 우리나라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우리 민족에게 많이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부자가 되면 부러워하지만, 친한 사람이나 친척이 부자가 되고 공연히 시기하고 질투하고 험담하고 좋지 않은 말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모습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종교적 관점에서 같은 유대인이지만 유대교를 믿지 않고 예수님을 영접한 기독교인들에 대해서는 이 민족들보다 더 미워하고 심지어는 죽이려고 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즉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기독교인들이 항상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소아시아의 7교회 중에서 서머나에 있는 교회 성도들은 핍박을 받아서 항상 목숨을 위협 받고 있었습니다. 빌라델비아는 그보다는 좀 더 나은 상황이기는 하였지만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문 말씀을 잘 읽어보면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은 사회적으로 약자에 속하였던 것 같습니다. 8절을 보면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한 것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인 면에서도 또 재능적으로도 연약하고 부족하였기 때문에 핍박을 받게 되면 극복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임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은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충실히 지키고 행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주님께서는 그들을 칭찬하셨습니다. 소아시아의 7교회 중에서 서머나 교회와 함께 책망을 듣지 아니한 영광스러운 신앙의 대열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들이 장차 자기들을 핍박하던 자들을 굴복시킬 것이며, 마지막 심판의 고통을 면제 받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리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만 앞으로 이들이 해야 할 것은 자신들이 가진 그 믿음을 굳게 지켜서 그들이 받을 복을 잃지 않게 하는 일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빌라델비아 교회는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몇 가지의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시대적인 흐름을 좇아가기가 바쁜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불신풍조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 있습니다. 거기에 전 세계적 경제 위기로 인하여 일반 국민들은 매우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치게 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에 어딘가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 그 마음이 주님을 향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들이 찾는 것은 미신이요, 무속신앙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신문에서도 사주팔자를 봐 준다고 유혹하고, 토정비결을 봐주고, 운세풀이를 하고, 점성술까지 동원하고 있습니다. tv 프로그램도 이러한 무속신앙, 미신, 불교 등을 집중 조명하고, 인기 있는 연예인들을 동원하여 청소년들의 마음까지도 흔들어 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이런 가운데 성도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거나, 기타 힘든 일들이 발생할 때에 불신자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 마음이 끌리기 쉽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그렇게 열심히 다니고 헌금을 하는데 왜 복을 받지 못하느냐고 비아냥거리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데 왜 그렇게 문제가 많이 생겨나느냐고 비꼬지 않습니까? 나를 비방하면 그냥 괜찮을 것 같은데, 교회를 비방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말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어지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흔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올 한 해도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었지요? 그래도 믿음을 잃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을 볼 때에 저는 참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흐뭇해하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지나 온 한 해 동안에 나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가? 그리고 또 새해에는 어떤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그가 얼마나 큰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받은 능력의 범위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누가복음 12:48을 보면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行)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者)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을 것을 찾고, 적게 준 자에게는 적은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남들은 전도를 10명 했는데, 누구는 100명을 했다던데, 누구는 건축헌금을 얼마를 했데, 누구는 몇 천 평의 땅을 바쳤데... 누구는 목사님하고 사모님하고 같이 어느 뷔페에 가서 식사대접을 했다는 등등의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도 과부의 두 렙돈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습니까? (막 12:42, 눅 21:2)
하나님께서는 제일 먼저 마음 중심을 보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음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내가 처해 있는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내가 큰 일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책망을 하지 않으십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책망을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내 능력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성실하게 행할 때에는 반드시 칭찬이 따를 줄로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충성이라는 것은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있는 성도는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는 성도인 줄로 믿습니다. 다니엘서 3장을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극렬한 풀무 불 속에 던져졌지만, 주의 사자가 함께 하여 그을림도 없이 무사히 나온 기사가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기의 신상에 절을 하지 않는다고 그들을 풀무 불 속에 던져 넣겠다고 협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건져 주실 것이라고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건져 주지 아니하실지라도 절대로 우상에게는 절하거나 섬기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였습니다. 왕의 명령을 받아, 그들 세 명을 잡아서 불 속에 던지던 병사는 그 자리에서 타서 죽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이런 신앙이야말로 최고가 아닐까요?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시지 않아도, 너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인데도 해결해 주지 않으시더라도 믿음을 변치 않는 바로 여러분들과 같은 성도야말로 죽도록 충성하고 있는 신앙인 줄로 믿습니다. 바로 이런 성도가 상상하지도 못한 크고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상급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 변함이 없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성도가 아무리 확고한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더라도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교만은 내 믿음을 떨어뜨리고 마귀로 하여금 빼앗아가도록 하는 독약과 같은 것입니다. 초지일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의 뜻이 끝까지 가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을 받았습니다(계 2:4). 에베소 성도들은 믿음이 참 좋았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인내할 줄도 알았습니다.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거짓 사도들을 구별해 낼 정도로 좋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 사랑’을 잃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에 여러 요소들이 있는데, 바로 처음 주님을 만난 그때의 심령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를 여러분들이 선택할 때에 어떤 이유나 계기가 있었더라도, 내가 그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교회의 형편에 따라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기도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하고, 순종을 잘 하다가도, 문제가 해결되면 언제 하나님 앞에서 울면서 기도했던가? 언제 내가 어려운 일이 있었던가? 내가 지금 이정도로 출세하고, 이정도로 잘 살고 있는데, 좀 더 큰 교회에서 격에 맞는 신앙생활을 해야지~! 이런 모습은 처음 사랑을 버린 신앙입니다. 진실한 성도는 하나님께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변함이 없습니다. 끝까지 변함이 없이 충성함으로 받은 구원과 은혜를 지키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신앙은 바로 이기는 신앙입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12절). 과거 솔로몬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의 현관에는 두 기둥이 서 있었는데, 하나는 ‘야긴’이요, 다른 하나는 ‘보아스’라고 하였습니다(대하 3:15-17). 이 두 기둥은 모두 굳거함과 영구성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기둥이란 항상 중요하고도 굳세고 의연하고 영구한 이미지를 제공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 즉 구원을 받은 성도들의 총체인 교회에서 그 만큼 확고부동한 위치를 확보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전’은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소로 거룩한 장소(holy place)입니다. 구원의 확실성을 보장 받은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장차 누리게 될 중요한 지위, 곧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될 영광이 클 것임을 시시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필요한 지도자나 일꾼을 가리켜서 기둥이라고 표현합니다(갈 2:9). 기둥이 없이는 건물이 절대로 바로 설 수도 없고 지탱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기둥은 믿음으로 승리한 자들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매우 중요하고 꼭 필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정말 큰 복입니다. 세상에서도 꼭 필요하고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도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인데, 하물며 하나님의 거룩하고 위대한 나라에서 꼭 필요하고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할렐루야! 여러분 모두 다 기둥으로 쓰임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믿음으로 승리해서 기둥이 된다고 하였습니까? 첫째는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둘째는 충성을 다해야 하고, 셋째는 변함이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세 항목이 굳건한 신앙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내가 죽어져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나무라도 그 나무가 기둥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베임을 당해야 하고, 아무리 귀한 대리석이라고 할지라도 한 건물의 기둥이 되기 위해서는 깨어지고 다듬어져야 합니다. 톱으로 자르고 대패로 깎고 다듬은 나무가 기둥이 될 수가 있습니다. 정으로 깨뜨리고 쪼아지고 갈아낸 대리석이 기초 위에 기둥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교회 안에 일꾼들이 성전의 기둥이 되려면 잘려지고 깨어지고 다듬어져서 예전의 자기 모습을 버리고 죽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조상으로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에서 떠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창 12:1). 그리고 주님께서도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물고기를 잡던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아버로 쓰시려고 배와 그물을 버리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도 역시 세리의 직업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전의 기둥 같은 일꾼이 되려면 철저하게 이전의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일꾼으로서의 마땅한 모습으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적인 정욕의 뿌리도 완전 끊어야 합니다. 이전에 거하던 죄악 된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불필요한 자신의 죄 된 모습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자신의 뜻과 고집과 탑욕과, 악한 구습들을 잘라내고 의롭지 못한 성품들도 갈고 다음어서 내 모습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되어 질 때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성전의 기둥으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지난 한 해에 죽이지 못한 것들을 새해에는 꼭 죽이고, 깨어지고 부서지는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2. 튼튼해야 합니다.
속이 비어있는 나무는 절대로 기둥이 될 수 없습니다. 약한 나무도 기둥으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기둥으로 사용되는 나무는 재질이 튼튼하고 단단한 나무들입니다. 온갖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견고하게 버티고 서서 성장을 멈추지 않는 나무가 보다 굵고 튼튼한 나무로 자라나는 것이며, 그렇게 연단 받는 가운데 성장한 나무가 좋은 기둥으로 사용되어 지는 것입니다. 교회의 기둥 같은 일꾼이 그냥 세워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오는 여러 가지 환난이나 궁핍이나 고난과 실패와 좌절 등 이러한 비바람으로 인하여 여러분의 신앙은 재질이 튼튼하고 단단해 질 줄로 믿습니다.
기둥과 같은 일꾼은 그 믿음의 심지가 굳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하게 무장하여 어떤 풍파 속에서도 견고하게 서서 믿음을 성장시킨 사람이어야 합니다.(고전 15:58). 그래야만 어떤 일이 있어도, 또 어디에 갖다 놔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헌신을 다하고 하나님의 뜻에 절대로 순종하는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연단이 없는 성도는 절대로 튼튼해지지 않습니다. 겉만 번지르한 성도는 그럴 듯 해 보이는 외양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지만, 절대로 오래가지 못하고 쓰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튼튼한 기둥으로 쓰시려고 이처럼 연단시키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곧아야 합니다.
굽거나 비뚤어진 나무는 가운데 기둥이 될 수 없습니다. 똑바른 뻗은 나무만 중심을 바로 잡고 건물을 바르게 떠 바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역시 곧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기둥 같은 일꾼이 되어질 수 있습니다. 신실한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열심을 다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될 수 있습니다. 형편과 처지에 따라 믿음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사람, 세상의 형편을 보고 이리 저리 기웃거리는 사람, 하나님을 바라보다가도 어느 새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을 바꾸는 사람, 이런 사람은 굴곡이 심하고 비뚤어진 재목이기 때문에 기둥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새해에는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의 기둥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나를 죽이고, 튼튼한 믿음과 올바른 신앙관으로 주님께 인정을 받고 사용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얼마 남지 않은 올 해의 마지막 시간들을 과연 나는 한 해 동안 얼마만큼 성전의 기둥이 될 만큼 깎아지고 다듬어지고 새롭게 만들어졌는가? 정말로 하나님 성전을 떠받치고 있을 만큼 튼튼한 믿음이 있는가? 얼마나 올바른 믿음으로 신앙이 성장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새 해에는 더욱 힘써 변화되어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성전의 기둥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알기 쉬운 성경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공하는 해로 만들려면 (0) | 2010.01.02 |
---|---|
2010년 송구영신예배 물에 던지라 (0) | 2009.12.31 |
성탄절 설교 (0) | 2009.12.24 |
징계의 감사 (0) | 2009.12.19 |
의인의 삶이 왜 이럴까 (0) | 2009.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