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 언약 창세기 15:12-21
사람들은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의 마음이 변하여 그만두기도 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게 됩니다. 그러면 하던 일을 그만두려고 할 때에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은 약속이라는 것을 합니다. 이 약속 때문에 나 혼자서는 못하거나 안하거나 하는 일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생각이 옳은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생각, 주님을 위한 생각, 교회를 위한 생각, 가족을 위한 생각, 자기 자신이 잘 되기 위한 생각들은 정말 좋은 생각들입니다. 그렇지만 마귀는 그 옳고 좋은 생각들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 밭에 악한 씨를 뿌려서 그 방향을 바꾸게 만듭니다. 바른 길을 가다가도 이 길이 바른 것인지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을 기초로 하여 목표를 설정하게 됩니다. 이 목표들은 커다란 것도 있고, 작은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장래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목표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오랜 시간들이 걸릴 수 있고, 50년이 걸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목표는 불과 몇 시간이나, 며칠, 혹은 몇 달 밖에 걸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 단기 목표, 장기 목표라고 말을 합니다.
단기 목표는 이루기가 쉬운 것들입니다. 싫증도 별로 나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장기 목표는 정말 힘든 것입니다. 오랫동안 변함없이 자신을 연마해야 합니다. 그 계획을 진행하는 과정 속에서도 작은 수정들이 이루어질 것이고, 잘 가고 있는지 확인도 해 보아야 하고, 앞으로의 변화에 잘 대처할 수 있는 방안도 준비해야 될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판단과 계획을 가지고 목표를 세웠다면 실행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의 계획은 언제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이 되기 때문에 실행 방법상의 차이점은 있을 수 있지만 그 목표만은 동일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문제는 일이 진행되어 가는 도중에 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바뀌는 것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무서운 것이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마귀의 역사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고 믿음이 떨어지게 만들어서 곁길로 나가게 만듭니다. 구성원들을 이간질하여 서로 충돌하고 미워하게 하여 목표를 향하여 가는 길을 벗어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과의 약속이 생각이 나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여러 가지 약속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마음이 변하여 그 약속을 지키지 않게 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옳은 생각은 잘 지키고 잘못된 생각은 하지 않게 될 수 있을까요?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변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3가지의 요소가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입니다. 될지 안 될지 그것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리 안 될까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다가 안 되더라도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해 보지도 않고 미리 안 될 것이라고 단정하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있습니까? 염려는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성도를 실족시키기 위하여 있지도 않은 것에 대하여 잘못된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요, 마귀만 기쁘게 하는 것임을 깨닫고 버리시기 바랍니다.
둘째,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능력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못합니다. 나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믿고 기도로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좋은 계획을 세우게 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좋은 일을 시작하게 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나의 계획을 이끌어 가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가 없는 마음은 근심과 걱정과 염려와 불평과 불만이요, 이러한 것들은 곁길로 이끌고 가서 좌절 속에 빠지게 하는 마귀의 계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마귀로부터 승리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나이가 점점 들어가고 자식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사가 없는데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상황은 메소보다미아 지역의 4개 연합군을 파하고, 조카 롯을 비롯한 사해 연안 국가들의 포로를 구출한 직후입니다. 이 사건으로 다시 그들이 재침공할 것에 대하여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실 때에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 주실 것인지에 대하여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아들이 없음을 인하여 아브람은 다메섹 출신의 종인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아 모든 것을 물려주려고 하였습니다. 당시 사회 풍습으로는 후사가 없을 경우에 충실한 종을 양자로 삼고 재산을 양도해 주는 대신 노후의 삶을 의탁하였다고 합니다. 아브람도 하나님의 언약 성취의 방법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엘리에셀을 후사로 삼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밖으로 나가서 하늘에 있는 별들을 보고 셀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자손을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후사는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끝까지 의지하려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처럼 당시에 처해 있는 형편과 무관하게 무조건 그 일의 주관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아브람은 의로운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의가 없지만 의롭게 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전가된 의입니다. 우리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불의한 우리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의로운 자로 여기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에 대하여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아브람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하는데, 그 체결 방식을 아브람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9-10절 내용입니다. 삼년 된 암소, 삼 년 된 암염소, 삼 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잡아서 중간을 쪼개어 마주 놓은 형태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이 방식은 당시 그 지역의 사람들이 행하던 관습이라고 합니다. 짐승들 몇을 잡아 둘로 쪼개어 마주보게 두 줄로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언약하는 두 사람이 함께 그 사이를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을 담보로 성실히 그 언약을 지키겠다는 것을 의미하며, 어길 경우 죽음이 있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당사자가 함께 지나가는 것은 이 언약 이행을 위해 두 사람 모두가 함께 협력하겠다는 의미합니다. 아브람이 언약의 보증을 요구하자 하나님께서는 당시 일반화된 관습을 따라 손수 보증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자상하시고 자애로우신 모습으로 아브람과 약속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해 질 때에”라는 말이 나옵니다. 앞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밖으로 나가서 별을 바라보게 하셨다는 것과 연결해서 본다면, 그 새벽부터 해 질 때가 되도록 함께 계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 계속해서 아브람은 하나님의 이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이 잠은 초자연적인 잠입니다. 아브람은 이러한 잠 속에서도 캄캄한 것이 임하여 두려워 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초자연적인 현상 속에서 아브람에게 미래의 일들에 대하여 알려주셨습니다. 후사는 기정사실로 하고, 그 후손들이 무려 4백 년 동안 이방에서 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을 ‘징치’하고 즉 징계한 후에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게 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 현재 가나안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들은 가나안에 있는 여러 종족 중에서 가장 크고 강력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의 여러 종족의 대표격으로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가나안 족속들이 범죄하기는 하였지만 아직은 ‘관영’한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즉 심판을 받을 만큼 충분하지는 않기 때문에, 400년 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을 철저하게 진멸하도록 하신다는 뜻입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서 밤이 매우 깊어졌습니다. 아브람은 이상 중에 ‘연기 나는 풀무’를 보고,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원수에게는 진노와 심판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불과 연기 나는 풀무는 하나님께서 고통 받는 선민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들 가운데 임하실 것, 즉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애굽을 철저히 징벌하고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계약 당사자들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는 것은 고대의 일반적인 계약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불꽃이 쪼갠 고기 사이를 홀로 지나가시는 것은, 쌍방(쌍무) 계약이 아닌 일방(편무) 계약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신실성 여부와 관계없이 친히 주도적으로 이루어 가실 것을 이 행동을 통해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아브람은 단지 이 일의 성취를 위해 믿음으로 기대하며 기도할 뿐 다른 아무런 노력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부패하고 변하기 쉬운 인간은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계약자의 상대로 설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바로 이렇게 좋으시고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 준수 때문에 이루어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아브람의 언약의 특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는 놀라운 사랑 가운데 주시는 복된 언약입니다. 이 복된 언약 속에 4가지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1. 보호하심: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아브람의 방패’라고 하시면서 아브람과 매우 친밀한 관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은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타향에서 객지 생활을 하고 있는 형편이었으며, 이방 국가와의 싸움 속에서 불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신을 이끌고 가서 조카 롯도 구출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지만 그 뒤에는 복수를 두려워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훗날 엘리야도 갈멜산 전투의 그 찬란한 승리 후에 이세벨의 공갈에 도망을 하여 로뎀 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방패가 되신다는 약속은 한없는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도 아브람과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2. 상급: “아브람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것은 막연한 것이 아니며 구체적이고도 분명한 것입니다. 영적이며 물질적인 측면에서 아브람이 누리게 되는 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급이 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 자체가 우리의 상급이지만,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상급과 함께 현재의 삶 속에서도 분명하게 복을 내려주시는 분이십니다.
3. 후사: 무자한 아브람입니다. 노쇠하여 생산력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식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누가 봐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약속대로 이삭이 태어났고, 그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언약의 땅: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무려 400년 후에야 가나안 땅으로 아브람의 후손이 들어오게 되었고, 또한 그들의 거듭되는 불신과 범죄로 인해 이 언약의 성취는 다윗 왕 때에 가서야 겨우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현재의 이스라엘도 수천 년 동안 나가 없이 설움을 받다가 다시 팔레스틴으로 돌아와서 나라를 이루게 된 것은 정치적인 성과가 아니며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성경 말씀과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것은 아브람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요 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재 위치는 어디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전적인 은혜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약속이 우리에게도 주어졌으며, 그 약속하신 복들을 다 받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마치 아브람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의로 여기시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실 것입니다. 아브라람의 후손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속에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들이 죄악에 관영할 때까지 기다리게 하셨으며, 그 기간 무려 400년이라는 그 긴 세월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가나안을 기업으로 얻기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우리도 역시 가나안의 기업을 얻기 위해서는 이 같은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변화되기 위해서는 연단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에 따라서 이러한 과정을 졸업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이제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한창 고통 중에 연단을 받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받는 이 환난으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이 훈련 기간이 끝난 후에는 하나님의 자녀로 대접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모든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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