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하

사무엘상 제12장: 신정왕국의 시작과 사무엘의 설교

chukang 2017. 1. 22. 22:54


사무엘상 제12장 강해.hwp



사무엘상 제12: 신정왕국의 시작과 사무엘의 설교

 

앞에서 거론하였듯이 신정왕국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닌 새로운 정치체제 아래서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기 위한 즉 언약 국가로서의 역사를 계속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제 왕정 체제가 시작이 되면서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서 직무를 잘 감당한 사무엘은 고별 설교를 통하여 경고와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언급한 것은 자신은 오직 하나님의 일만을 사심 없이 했다는 것이며 이에 백성들은 모두 인정을 하였습니다.(1-5), 그 후에는 이스라엘 왕정이 개시되게 된 과정에 대하여 요약하면서 과거 하나님께서 선민으로 택해주신 이래 계속 보호해 주셨지만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고통을 겪게 되자 근본적인 신앙개혁은 하지 않고 정치체제의 개혁만 요구했다는 잘못을 지적하였습니다(6-13). 그러나 왕정체제가 시작된 마당에 다시 한 번 백성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큰 심판을 내리실 것을 우뢰와 비의 증표로서 경고했습니다. 이것은 비록 형식적으로는 왕정이 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과거 신정 체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유일할 주관자이심을 선포하면서 앞으로도 계속하여 하나님께 대한 순종만이 평화와 번영의 관건임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14-18)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심으로써 왕정이 시작이 되었으므로 하나님께 순종만하면 번영이 오지만 불순종하게 되면 몰락만이 있을 것이라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19-25).

 

1-5: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왕정 체제 출범의 산파 역할을 담당했던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경고와 권면의 설교를 한 내용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먼저 자신의 설교가 전혀 사심이 없는 것임을 강조하고 그 설교의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행한 양심선언입니다. 역사상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자기 양심에 비추어 볼 때 권력을 가진 자 중에 이와 같이 청렴결백하다고 증거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아마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즉 권력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크든지 작든지 수많은 부정과 불의를 행해 왔음을 인류 역사는 잘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백성을 잘 다스렸던 것입니다. 사무엘이 그렇게 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이었다고 하겠습니다(28:1). 오늘날 정치인들은 사무엘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온 우주의 최고 통치자가 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통치권을 부여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선한 통치 원리와 결과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기 유익과 권력 유지를 위해 국민을 속이거나 압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국민을 지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셋째 뇌물을 취하거나 부정 축재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뇌물은 판단을 흐리게 하고, 부정축재는 국민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짓이기 때문입니다(20:17;23:8). 넷째는 권력의 자리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적절한 시기에 물러날 줄 아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권력의 자리에 연연한 자의 종말이 무엇인지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삼상 31:1-13). 비단 정치인 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종국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회계 받게 됩니다(25:19).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불꽃같은 눈동자로 모든 인생을 주시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진정 일순간이라도 부끄러움 없는 삶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코람데오이 단어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10:16;16:19;2:15;7:26) .

 

1: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히브리 원문 제일 앞에는 그리고(: ו)’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즉 사무엘의 연설은 온 백성들이 길갈에 모여 사울의 왕위 즉위식을 갖고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린 때(삼상 11:14, 15)에 행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게 한 말이란 이스라엘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찾아와 열방의 왕과 같은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했던 것을 가리킵니다(삼상 8:4,5). 이는 곧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게 된 동기가 백성들의 요구에 있었다는 것(삼상 8:5, 20)을 상기시켜 줍니다. 사무엘이 이 말을 자신의 연설 초두에 한 것은 앞으로 왕 때문에 백성들이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삼상 8:10-18) 그 책임은 전적으로 백성들이 왕을 구한 죄에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함입니다.

 

2: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었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날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출입하다(할라크: הלך)’의 기본 의미는 걷다’ ‘행동하다’ ‘이끌다는 뜻입니다. 이는 삼상 7:16에서 보듯이 백성을 다스리며 가르치는 행위를 뜻하기도 하는데, 본 절에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늙어 머리가 희었고그동안 이스라엘의 사사, 선지자, 제사장으로 활약해 왔던 사무엘 자신이 그 같은 공식 직무에서 은퇴할 때가 되었음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이 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자신이 늙었음을 밝히는 부연 설명이라는 것입니다. 즉 성장한 아들들의 나이로 인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나이를 생각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사무엘의 아들들도 여타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왕의 백성이라는 말로 보는 견해입니다. 사무엘의 늙음과 그 아들들의 비리를 이유로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된 동기와 부정직(不正直)(삼상 8:5)을 책망하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중 어느 견해를 취하여도 문맥의 흐름에서 크게 이탈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견해를 포괄적으로 적용하여 이해해도 좋을 듯합니다.

 

3: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사무엘이 하나님의 지시를 좇아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운 사울을 가리킵니다(삼상 10:1, 17-24). 그런데 여호와와 더불어 사울 왕이 함께 언급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 왕이란 모름지기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며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해서 백성들을 다스려야 하는 하나님의 신복이기 때문입니다.(14, 15) 사무엘이 이처럼 하나님과 왕 앞에서 양심선언을 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께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오랜 세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다스려온 사무엘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자신의 직무 수행에 대해 백성들의 정당한 평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삶이 공명정대한 것이었음을 입증하기 위해 백성들을 증인으로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결백을 외치는 것에는 인본주의적 동기에 의해 세워진 왕은 장차 백성들에게 전횡을 일삼을 터이므로, 백성들이 하나님의 신정 통치를 거부하고 왕을 요구한 것이 잘못 되었음을 경고하기 위한 의도도 들어 있습니다.

 

4,5: 그들이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뉘 손에서 아무것도 취한 것이 없나이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손에서 아무것도 찾아낸 것이 없음을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거하시며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도 오늘날 증거하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그가 증거하시나이다.

백성들은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동안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공명정대하게 행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곧 그들이 신정통치 아래서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지내왔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열방과 같은 왕을 요구한 것은 잘못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속이지 아니하였고속이다(아솨크: עשׁק)기만하다는 뜻 외에도 압력을 가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는 타인의 소유물을 빼앗기 위해 공갈과 협박을 가하는 행동도 가리킵니다.

 

6-18: 사무엘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회고하면서 하나님께 불순종한 백성들을 책망하고, 저들의 배반을 경고합니다. 즉 사무엘은 먼저 이스라엘을 죄와 악의 세력에서 건져내시고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언급하시고, 그 다음 그런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죄를 돌아보아 신앙개혁은 하지 않은 채 왕만을 요구한 불신앙적 행동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그 같은 저들의 죄가 큰 것임을 지적하면서 이후로도 계속적으로 범죄할 경우 하나님의 징벌을 피할 수 없으리라고 경고하였습니다.

 

6: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을 세우시며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는 여호와시니

사무엘이 과거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상기하고 있음은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어떠한 분이신지를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저들이 지금 하나님께 대하여 취하고 있는 행동이 그릇된 것임을 지적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 애굽에서 억압 받고 학대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친히 지도자를 세우시고 그들의 인솔 하에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신 분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참된 구원자이시오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인간 지도자를 세워 주시는 분임을 증거해 줍니다. 따라서 이상과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열방과 같은 왕을 요구한 것은 일종의 반역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7: 그런즉 가만히 섰으라 여호와께서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행하신 모든 의로운 일에 대하여 내가 여호와 앞에서 너희와 담론하리라.

가만히 섰으라.(야차브: יצב)’견디다’ ‘머무르다는 뜻으로 어떠한 중대한 일을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갖추는 것을 뜻합니다(33:5). ‘담론하리라(솨파트: שׁפט)’재판하다’ ‘논쟁하다’ ‘변호하다는 뜻으로 법정적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본 절 전체는 내가 여호와 앞에서 너희와 논쟁하리니 너희는 법정에 서 있는 것처럼 마음을 가다듬으라.’는 뜻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신실성과 의로우심을 증명함으로 그에 반한 자기의 백성의 불의를 상대적으로 증명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8: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후 너희 열조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사 그 두 사람으로 너희 열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이곳에 거하게 하셨으나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12:31-42)과 가나안 정복 정착 사건(1-21)을 일컫는 구절입니다. 실로 그 같은 대역사는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언약의 성취였습니다(15:13-21). 즉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 후(1:7) 약속하신 때가 되매 그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들이신 것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그 분과 맺었던 시내 산 언약(19:3-8)에 누구보다도 충실해야 했습니다.

 

9: 그들이 그 하나님 여호와를 잊은지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솔군장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붙이셨더니 그들이 치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점차 여호와를 의식치 아니하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2:10,11)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의 영도자 여호수아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의 가르침을 좇아 여호와를 경외하며 하나님과의 맺은 언약에 충실한 삶을 살았습니다(24:31). 그러나 이후 가나안 땅에서 정착하여 비교적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되고 여호수아도 죽자 점차 여호와와를 잊고 자신의 소견대로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21:25). 이방 족속의 침공이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모든 민족을 자신의 뜻대로 주관하시는 우주적인 통치자이심도 증거합니다. ‘하솔 군장 시스라하솔은 갈릴리 호수 북쪽 16km 지점, 훌레 호수 남서쪽 8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이곳은 여호수아 당시에 이어(11:1) 사사 시대에도 가나안 왕 야빈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4:2). 그때 야빈의 군대 장관인 시스라는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는데(4:3) 헤벨의 아내 야엘의 활약에 의해 결국 죽임 당하였습니다(4:17-22).

 

10: 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기므로 범죄하였나이다. 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지난 역사를 통하여 그들의 흥망성쇠는 오직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달려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관은 성경 전체에 기술되어 있는 이스라엘 역사를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기초가 됩니다. 본 절에서는 특히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회개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저들이 환난 가운데서 구원 받을 수 있었던 것(11)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재정립에 있었음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저들의 안녕은 열방과 같은 왕정 체제 구축과 같은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11: 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베단과 입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 내사 너희로 안전히 거하게 하셨거늘

이스라엘이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한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였을지라도 저들이 돌이킬 경우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저들을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마침내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고 저들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겠다고 한 하나님의 언약(19:6)에 근거한 것으로 하나님의 신실성을 다시 한 번 증거해 줍니다. ‘여룹바알본래 이름은 기드온으로 미디안 족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입니다. 그는 자기 아비의 바알 시산을 파괴한 일로 인해 바알에게 대항하다.’는 뜻의 여룹바알로 불려졌습니다(6:25-32). ‘베단은 이스라엘 역사상 이러한 이름을 지닌 사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이름에 대해서 여러 이견이 있습니다. 베단을 단 지파의 아들이란 말로 이해하여 삼손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 베단을 압돈을 가리키는 또 다른 말로 이해하여 사사 압돈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 베단을 필사자가 바락을 오기한 것으로 이해하여 바락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중 비교적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견해는 세 번째입니다.

 

12: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의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실지라도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사무엘은 지금가지 이스라엘 과거 역사를 상기한 데 이어서 현재의 문제인 왕을 구한 이스라엘 백성의 죄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환난 가운데 처했을지라도 저들이 회개하면 구원하여 주셨는데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저들이 암몬 족속의 침공에 대응하기 위해 왕을 구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암몬의 침입과 관련하여 왕을 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같은 환난의 근본 원인인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해야 했습니다. 본 절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한 후 암몬의 침공을 맞이한 것(삼상 11:1-11) 외에 그 이전에도 계속해서 암몬의 위협을 당한 사실이 있었음을 시사해 줍니다.

 

13: 이제 너희의 구한 왕, 너희의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허용하신 것이기는 하지만(삼상 8:4-9) 어디까지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동기는 그릇된 것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왕을 세워주셨지만 그것이 기쁘게 세우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너희의 구한 왕’ ‘너희의 택한 왕이란 앞 구절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다만 이는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삼상 8:10-18)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자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것을 가리킬 뿐입니다(삼상 8:22). 따라서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이니 왕과 백성들 모두 자신들의 최고 통치자 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여전히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14, 15: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좇으면 좋으니라마는,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열조를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비록 이스라엘이 왕을 세워 왕정 체제를 구축했을지라도 이스라엘의 역사는 여전히 하나님과 백성간의 관계에 의하여 흥망이 결정되어집니다. 즉 하나님의 복과 징계의 기준은 백성들의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불순종의 여부에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언약(28)에 신실하심과 통치 원리가 불변함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원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믿느냐 불신하느냐에 따라 구원이 결정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3:16). 이는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새 언약(31:31-34)의 성취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인본주의적 동기에서 열방의 왕과 같은 왕을 구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이 당신의 뜻대로 백성들을 통치하여 공의를 실행하는 신정주의적 정치를 펼쳐 나가기를 기대하셨던 것입니다.

 

16: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가만히 서서중요한 일을 앞두고 마음 자세를 가다듬는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17,18: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뢰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로 밝히 알게 하시리라.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 그 날에 우뢰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이스라엘에서 보리는 대개 3-4월경에 베고 밀은 5-6월에 벱니다. 이때는 늦은 비(11:14)가 그치고 건조기가 시작되는 때로서 봄 추수의 적기입니다. ‘우뢰’(: קול)는 성경에서 종종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 주는 현상으로 언급됩니다(9:33; 18:24). 여기서도 비가 내리지 않는 건조기에 우뢰와 비가 내린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앞으로도 저들이 불순종하면 받게 될 징벌을 경고하기 위한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본 백성들은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어 하나님과 그의 선지자 사무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19-25: 사무엘은 백성들을 책망하고 경고한 뒤에 이제 위로하며 권면함으로써 그의 설교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책망과 경고를 듣고 자신들의 죄악을 깨달은 백성들에게 비록 왕정 체제를 요구했던 저들의 동기와 자세는 나빴지만 왕정 체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님을 밝힙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허락하사 왕정 체제가 수립되었으니 그 같은 체제하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진실히 섬김으로 민족적 멸망의 비극을 당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여 자신은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며 선하고 의로운 도로 그들을 가르칠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비록 시대적 변천에 따라 인간 제도나 정치 형태는 변할지라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니 이데올로기나 정치 체제에 관계없이 늘 하나님만을 바로 섬기는 것이야말로 복과 구원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교훈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로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징조를 본 백성들은 죽음의 공포에 싸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에게 자신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죽음에서 구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사무엘은 저들을 위하여 결단코 기도하기를 쉬지 않겠다고 확약합니다. 성경에는 타인의 죄를 위해 중보하는 기도가 자주 나타납니다(12:13; 9:20; 1:9; 4:12).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모두의 중보자로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8:34). 이와 관련 우리 역시 타인을 위해 기도함은 중요한데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노고와 감사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딤전 2:1). 사무엘의 논리 정연한 지적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징조를 본 백성들은 이처럼 자신들의 모든 죄를 깨닫고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사무엘은 저들을 위로할 뿐 아니라 이후로 저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하는 가운데 진정한 회개의 삶을 살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20: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좇는데서 돌이키지 말고 오직 너희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돌이키다(수르: סור)’떠나다’ ‘이탈하다’ ‘내버리다는 뜻으로 전인격적, 전의지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즉 여호와를 섬기는 도에서 떠나 다른 길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입니다.(4:27). 이는 자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여기지 말고 그분께 순종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참된 열매를 맺으라는 권면의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3:8). 회개하고서도 여전히 죄악 중에 머무는 것은 개가 그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26:11)

 

21: 돌이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좇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유익하다(야알: יעל)’은 어떠한 방면에서든 소득이나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구원하다(나찰: נצל)’은 어떠한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베푸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방인들은 우상이 이 모든 면들을 충족시켜 준다고 믿고 숭배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우상이 이 중 아무 것도 충족시킬 수 없음을 밝히며 그러므로 그것이 헛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이방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이스라엘에 있어서 우상 숭배하는 오히려 재난과 영적 타락을 가져다 줄 뿐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사람의 본분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데 있다고 고백한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이유에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12:13). ‘헛된 것을 좇지 말라헛되다(토후: תהו)텅비다’ ‘무가치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사람을 환난 가운데서 구원하지도 못하고 복을 가져다주지도 못하는 우상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도를 버리고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22: 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그 크신 이름(: שׁם)을 인하여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합니다. 그러한 이름이 하나님과 관련되어 사용되었으니 본 절은 하나님의 신실성과 불변성을 인하여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과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저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19:5,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같은 자신의 언약에 신실하기 위해서도 끝까지 자기 백성들을 권념하실 것이라는 게 본절의 의미입니다.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요하나님께서는 한 번 택하신 자기 백성을 결단코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다 구원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사도 바울도 강조하고 있습니다(11:26-29).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이스라엘 또는 자기 백성은 공동체적 개념이지 결코 혈연적 또는 일개인적 개념이 아닙니다. 이는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개종하여 선민 공동체의 일원이 된 자들이 있음에 의해 분명해집니다(1:16,17). 그리고 주님께서도 아브라함의 혈통을 좇아 난 자들이라고 해서 다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사실에 의해서도 뒷받침 됩니다(3:9). 그런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신 뜻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념하여 가자가 그 뜻을 좇아 살아야 했습니다(19:3-6).

 

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지금까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해 왔듯 앞으로도 그러하겠다는 사무엘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는 기도 쉬는 것을 죄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그가 선지자로서 백성들을 위한 기도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음을 증거해 줍니다. 이러한 자세는 사도 바울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고전 9:16).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선한(토브: טוב)과 의로운(야솨르: ישׁר)는 같은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를 중복 사용한 것은 곧 강조적 용법입니다. 그리고 (데레크: דרך)’는 사람이 좇아야 할 길이나 도리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본 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가르치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사무엘의 굳은 의지를 보여줍니다(딤후 3:16,17). 이는 실로 목양자의 심정과자세로 백성들을 돌보는 참된 지도자의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큰 일은 사무엘이 본 장에서 지금가지 언급한 하나님의 모든 위대한 구원 사역을 가리킵니다(6-22). 사무엘의 연설의 마지막 결론으로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진정한 왕이시니 결단코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라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명령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신적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6:5).

 

25: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하나님의 명령을 어길 경우 따르는 비극적 결과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개인과 국가의 흥망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백성들의 자세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주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비록 이스라엘에 왕정 체제가 수립되었을지라도 여전히 그들을 통치하시는 최고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재천명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제12장 강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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