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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제9장 강해: 사무엘과 사울의 만남

chukang 2016. 12. 18. 14:44


사무엘상 제9장 강해.hwp


사무엘상 제9장 강해: 사무엘과 사울의 만남

 

본 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왕정 체제가 사울이 왕에 등극함으로써 공식 태동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과거 신정 체제로부터의 혁명이나 반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으로 과거 시내산에서 언약 국가로 출발한 이래 왕정 체제로 바뀌었으나, 내용적으로는 신정 체제와 마찬가지로 계속하여 하나님의 뜻을 더욱 잘 실천하기 위한 체제로서의 왕정국가로 변모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4: 먼저 사울이 베냐민 지파 혈통이며 유력한 즉 당시 매우 권세가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울은 그의 아비 기스가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기 위하여 사환과 함께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과 사알림 땅과 베냐민 사람의 땅까지 두루 다니며 찾아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하였습니다.

 

1: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여 아비아의 현손이라 베냐민 사람이더라.

사울의 가계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되었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력한 사람(깁보르 하일: גבור חיל)’은 재산이 많다는 뜻과 강한 육체와 정신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기브아 싸움(20,21)에서 이스라엘 가운데서 극히 작은 지파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유력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당시 사회적 가치관에 비추어 존경 받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2:1). ‘아비엘의 아들대상 8:33; 9:39에는 기스가 의 아들로 나와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아들이나 낳다라는 말이 일대(一代) 손에게만 쓰이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면 쉽게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아들후손또는 손자로 이해할 경우 기스는 아비엘의 손자, 넬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2: 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 하더라.

준수한 소년’(바후르 와토브: בחור וטוב)는 직역하면 젊은이였으며 준수했더라.’입니다. 당시 사울은 소년이 아니라 .장년기의 젊은이입니다.(16,17: 삼상 11:6-11;13:3). 준수했더라는 말은 사울의 훌륭한 풍채와 몸가짐을 의미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움에 있어서 비신앙적인 기준(훌륭한 외관적 풍채)에 마음을 빼앗긴 것과 연관을 지닙니다(삼상 10:23,34). 인본주의적인 동기에서 왕을 구한 것(삼상 8;5)에 걸맞게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의 조건도 역시 외적인 것에 많은 관심을 집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들과 달리 먼저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삼상 16:7).

 

3: 사울의 아비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한 사환을 데리고 일어나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사환’(나아르: נער)는 본래 어린 남자 아이를 일컫는 말로 노예와 같은 신분에 있던 자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33:11)와 다윗(삼상 17:42)에게도 이 단어가 쓰였는데, 대개 청년, 소년, 하인, 종자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4: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니되 없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니라.

팔레스틴 중앙부에 위치한 산간 지대가 에브라임 산지입니다. 이곳의 대부분은 에브라임 지파의 영토였으며 일부는 베냐민 지파에게 속했습니다.(삼상 1:1) ’살리사세 개라는 뜻입니다.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살리사 땅에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와디 즉 우기에만 흐르는 협곡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알림 땅여우(수알: שׁעל)‘(삼상 13:17)과 같은 곳으로 추정이 됩니다. 이 같은 지명은 그곳이 황무지였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5-17: 사무엘을 찾아가는 사울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택정하신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게 되도록 아비의 잃어버린 나귀들을 찾아 나서게 하고 또 찾지 못하게 하셔서 결국 사무엘에게까지 찾아가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은 매우 세밀하고 빈틈없이 반드시이루어지는 것임을 분명하게 알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세우시고 아주 세밀한 부분가지 일일이 간섭하시고 주관하셔서 그 일의 성취에 한 치의 오차도 없게 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구원을 계획하시고 그 계획의 성취를 위하여 매우 세밀하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불의하게 당하는 모든 고난도 결국에는 성도들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라고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5: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하는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부친이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צוף)은 꿀벌 집이라는 뜻입니다. 요단 동편의 숩(סוף: 갈대)(1:1)과는 다른 곳입니다. 이곳은 베냐민 지파 영토의 남서쪽으로 추정합니다(삼상 10:2;35:19). 20절에 따르면 이때 사울이 아비의 나귀를 찾아다닌지는 이미 3일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이라는 지명을 언급하고 있음은 6절 이하에서 보는 대로 사울 일행이 사흘 동안 돌아다니는 중에 사무엘의 사는 곳 가까이에 와 있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당시 산지를 여행하며 숙식하는 것은 맹수의 습격에 노출되는 것이므로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사울은 이제 아버지가 자신들에 대하여 걱정할 것을 고려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사울의 분별력과 극진한 효성을 증거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신 것은 비록 촌부였지만 사울의 이러한 초기적 자세를 귀하게 보셨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6: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의 갈 길을 가르칠까 하나이다.

이 성은 대부분 사무엘의 고향 라마로 봅니다. 에브라임 산지를 출발해서 다시 그 부근으로 되돌아 온 사울 일행의 경로에 비추어 볼 때 여기서 말하는 은 에브라임 산지의 라마(삼상 1:1)인 것이 확실하게 보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런 호칭은 모세(33:1), 엘리야(왕하 1:9), 엘리사(왕하 8:2)와 같은 선지자 뿐 아니라 하나님의 훌륭한 일꾼이었던 다윗(대하 8:14)에게도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사울의 사환이 사무엘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호칭함으로써 참 선지자에 대한 신뢰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환은 여호와께서 사무엘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가 예언한 것은 조금도 틀림이 없이 다 성취된 것까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즉 사울의 사환은 사울에게, 사무엘이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임을 이 가은 말로써 주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구약 시대에도 예언한 것이 성취되느냐 여부는 참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한 객관적 기준이 되었습니다(13:1-5). ‘우리의 갈 길을 가르칠까 하나이다.’ 당시 백성들이 사사로운 문제에 있어서까지 사무엘에게 문의하였음을 시사합니다. 사울 일행이 이처럼 하나님의 종에게 문의한 행위에 대해서는 잘못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영광에 대하여 알고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 아닌 단지 잃어버린 짐승 찾는 일로 인해서만 선지자를 찾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보다 더 절박한 관심사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6:25-34).

 

7: 사울이 그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그릇에 식물이 다 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사울은 사무엘에게 줄 예물(테슈라: תשׁרה)’이 없다고 걱정을 합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선지자에게 가기 위해서 예물을 정성껏 준비하는 것은 흔히 있었던 일입니다.(왕상 14:3;왕하 5:15;8:8, 9). 그래서 사울은 예물이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8: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치게 하겠나이다.

세겔은 무게 단위로 1세겔은 약 11.4g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한 세겔의 사분 일2.9g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사울의 사환이 지니고 있던 것의 전부입니다. 그는 이것을 사울을 위해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리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환이 상전을 위하여 자신의 소유를 아끼지 않는 헌신적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또 사환의 헌신을 통해 사울의 발걸음을 사무엘에게로 인도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주 안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8:25) 것을 다시 한 번 보게 됩니다.

 

9: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옛적이라고 하는 표현은 본 서의 저자가 당시의 시점에서 사무엘이 활동하던 시대를 지칭한 것입니다. 본서의 내증(삼상 11:8)에 비추어 볼 때 이스라엘의 분열 왕국 초기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선견자(로에: ראה)’라는 말은 또 다른 선견자로 번역되는 호제(חזה)’와 함께(삼하 24:11) ‘환상을 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굳이 구분하려고 하면 로에는 일상적인 상태에서, ‘호제는 몰아지경의 상태에서 환상을 보는 사람을 가리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사무엘 시대에 선견자선지자(나비:נבא)’와 같은 말로 쓰였습니다. ‘나비는 동사 나바(נבא : 선포하다)’에서 나온 단어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한다는 것에 강조를 둔 말입니다.

10: 사울이 그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 있는 성으로 가니라.

사울이 이처럼 사환의 옳은 의견을 인정하고 그에 따르기로 한 것은 상대방의 신분에 개의치 아니한 겸손과 진정한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것은 이러한 그의 성품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제는 사울이 왕이 된 후에 점차 교만해 져서 하나님을 업신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삼상 13:8-14;15:1-29).

 

11: 그들이 성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비탈길라마가 에브라임 산지의 고지대에 위치한 성읍이었음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라마란 지명 자체가 고지란 뜻입니다. ‘물 길러 나오는 소녀들마을의 공동 우물에서 물 긷는 일은 주로 여자들이 담당했습니다(24:10-27; 4:7). 낮의 더위가 심한 팔레스틴에서 물 긷는 이 일은 저녁 때 행해졌습니다(24:11). 따라서 사울 일행이 사무엘을 만난 때는 저녁 나절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 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섰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에 들어오셨나이다.

산당(바마: במה)’이란 문자적으로 높은 장소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이전에 그곳 원주민들은 높은 곳에 자신들의 우상을 섬기는 산당을 지어 그곳에서 제사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정복 정착 시 산당을 훼파하라고 명하신 까닭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33:52).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이 건립되기 전까지 산당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소로 종종 이용되었습니다(왕상 3:4;대하 33:17). 성소가 있던 실로가 블레셋에 의하여 훼파가 된 상황에서 산당에서의 예배는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입니다(삼상 7:17 참고). ‘그가 오늘 성에 들어오셨나이다.’ 이 말은 당시 사무엘이 벧엘, 길갈, 미스바, 라마를 순회하면서 백성들을 다스린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삼상 7:15-17). 사무엘은 사사 및 선지자란 직무상 라마를 떠나 잇는 때가 많았는데, 산당에서 있을 제사에 맞춰 라마로 돌아 온 것입니다.

 

13: 당신들이 성으로 들어가면 그가 먹으러 산당에 올라가기 전에 곧 만나리이다 그가 오기 전에는 백성이 먹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라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소서 금시로 만나리이다 하는지라

본 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무엘과 백성들이 함께 먹는다는 것입니다. 즉 제사를 집전한 제사장과 헌물을 드린 백성이 함께 식사에 참여한다는 점을 보면 화목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사에 쳠여한 자들이 제물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제사는 오직 화목제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이는 사무엘이 백성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들기 전에 감사 기도를 드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백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사무엘이 제사 후에 있는 공동 식사에 특별히 초청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14: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 나오더라.

라마 성읍이 산 중턱에 있고 산당은 산 정상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5: 사울의 오기 전 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가라사대

알게 하여’ (갈라: גלה)는 사무엘의 귀를 열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특별한 사항을 비밀스럽게 계시하셨음을 나타냅니다. 갈라(גלה)나타내다또는 반포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계시를 나타내는 경우에 종종 쓰였습니다(35:7;삼상 20:12;33:16).

 

16: 내일 이 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보았노라 하시더니

여기에서 한 사람은 베냐민 지파 출신 사울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네게 보내겠다는 것은 사울이 사무엘을 찾아 갈 것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울이 아비의 잃어버린 나귀들을 찾아 헤매다가 사무엘에게로 나아간 일(3-10)이 결코 우 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었음을 증거합니다. ‘기름을 부어이스라엘 사회에서 기름부음의 의식은 제사장이나 선지자 또는 왕을 세울 때 행하던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그를 거룩히 구별하여 세우시고 신적 사 명을 주시는 것은 물론 권위와 능력을 덧입혀 주시는 것을 상징하는 의식입니다. ‘지도자’(나기드: נגד)는 왕을 지칭하는 구체적인 용어 멜렉(מלך)’과는 다소 의미의 차이가 있습니다. ‘나기드는 왕뿐 아니라 족장이나 방백 등을 가리키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기자가 멜렉이 아닌 나기드로 표기한 것은 아마도 사울은 단지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다스리는 지도자일 뿐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심을 은연 중에 강조하기 위함일 것으로 추정됩니다(삼상 12:12-15). ‘내 백성의 부르짖음(차아카: צעקה)’은 고통이 위중하여 애타게 구원을 호소하는 외침이나 통곡을 의미합니다.(19:13;3:9;27:9) 여기에서는 블레셋의 압제로 인한 부르짖음으로서 블레셋이 이스라엘에 세력을 뻗쳐 이스라엘의 고통이 심해졌음을 의미합니다. 사무엘의 활약에 의해 세력이 크게 약화되기는 했지만(삼상 7:7-14) 블레셋은 여전히 이스라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17: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통할하리라 하시니라.

통할하다(아차르: עצר)’는 근본 의미가 억압하다’ ‘제지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부정적인 의미로, 이미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것과 같은 왕정 통치에 뒤따를 수 있는 폐단을 염두에 둔 단어입니다.

 

18-27: 사무엘을 만난 사울이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 말을 사무엘로부터 듣게 됩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만나자 그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백성들의 존경 받는 자가 될 것임을 알리고 그를 유력한 자 30여 명이 모인 자리의 수석에 앉히므로 그가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임을 밝혔습니다.

 

18: 사울이 성문 가운데 사무엘에게 나아가 사로되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청컨대 내게 가르치소서

사울과 사환은 사무엘을 만나고도 단번에 알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이들이 이전에 서로 접촉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당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별다른 차림새를 차리고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사울이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도 말해 줍니다.

 

19: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선견자니라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너희가 오늘날 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되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

사무엘이 사울을 존중히 여겨 중정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하나님께로부터 왕적 소명을 받은 자임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지 않은 것입니다.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 ‘네 마음에 있는 것이란 사울의 관심사, 즉 아비의 잃어버린 나귀들의 행방을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이 묻기도 전에 이처럼 사울의 방문 목적을 미리 알고 언급하는 것은 예언적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무엘의 능력은 자연히 사울의 관심을 집중시켜 사무엘이 사울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들려줄 수 있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것은 단순히 사무엘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들려주는 계시의 말씀인 것도 인식시켜 주었을 것입니다. 사실 사울이 하나님께 택정을 받았지만 이제 그가 그러한 신적 소명을 깨다는 것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20: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비의 온 집이 아니냐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것과(삼상 8:4-22) 관련하여, 사울이 백성들이 기대하는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울에게 있어서 매우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21: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사울의 사무엘의 말에 등대하는 것을 보면 솔직한 점과 겸손한 점이 보입니다. 사실 사울이 속한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멸종당할 뻔한 지파입니다. 즉 그들은 사사 시대 말기로 추정되는 때에 레위인의 첩을 윤간하여 죽게 만든 기브아 사건(19:22-30)과 관련하여 다른 지파들의 징계를 받아 600명의 장정 외에는 살아남은 자가 없었습니다(20:1-48). 더욱이 그들은 이스라엘 여인 중에서 아내를 얻지 못하여 후사를 잇지 못할 위기까지 처했으나 이스라엘 장군들의 기지로 인해 그 같은 비극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21:1-24). 사울의 아비 기스 역시 그러한 와중에서 살아남아 가문을 보존하였을 것입니다. 사울은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있는 지파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이스라엘 중에서도 가장 비약한 지파인 베냐민 지파 중에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될 자를 택정하신 것은 첫째 사울의 왕이 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역사라는 점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움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관심을 기울이던 것과 같은 인간적인 외족 조건을 보지 않으셨으며, 셋째는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가장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반드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고전 1:26-31).

 

22: 사무엘이 사울과 그 사환을 인도하여 객실로 들어가서 청한 자 중 수석에 앉게 하였는데 객은 삼십 명 가량이었더라.

객실(리쉬카: לשׁכה)’은 아마도 산당에 딸려 있는 부속 건물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이곳에는 제사 기구들이 보관되어 있었으며 때로는 제사장이 머물기도 하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후대에 이 말은 서기관(36:12), 제사장(4);17)의 방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청한 자 중 수석에 앉게사환과 사울에 대한 이러한 극진한 환대를 단순히 손님 접대에 소홀함이 없던 고대의 풍습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이는 사무엘이 사울을 미래의 왕으로 대하고 있는 것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여기서 청함을 받은 30명의 사람들은 라마 성읍에서 가장 유력한 인물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사울이 사무엘로부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자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즉 사울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임을 목도하는 일종의 증인으로 초청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23, 24: 사무엘이 사울과 그 사환을 인도하여 객실로 들어가서 청한 자 중 수석에 앉게 하였는데 객은 삼십 명 가량이었더라. 요리인이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을 가져다가 사울 앞에 놓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보라 이는 두었던 것이니 네 앞에 놓고 먹으라 내가 백성을 청할 때부터 너를 위하여 이것을 두어서 이 때를 기다리게 하였느니라 그 날에 사울이 사무엘과 함께 먹으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제물 중 사무엘이 특별히 사울을 위해 구별해 놓은 몫이 바로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입니다. 레위기 7:32에는 희생 제물 중 우편 뒷다리, 즉 오른쪽 넓적다리는 제사장의 몫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 절에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준 것이 이런 오른쪽 넓적다리인지 아니면 왼쪽 넓적다리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사무엘이 사울을 상석에 앉히고 또한 특별히 준비해 두었던 음식을 들게 한 것이 사울을 장차 왕될 자로 예우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25: 그들이 산당에서 내려 성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하고

유대인들은 가옥을 지을 때에 옥상을 평평하게 만들었고 바깥 계단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생활을 할 수도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28:8). 그 용도도 다양하여 창고로(2:6), 저녁에는 휴식 공간으로(삼하 11:2), 심지어는 우상 숭배하는 곳으로도(19:13) 사용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이곳에서 사울과 이야기하는 중 이스라엘의 현 상황과 사울의 신적 소명 등에 대한 폭 넓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차후에 사울에게 기름을 붓기에 앞서 먼저 사무엘은 그에게 신적 소명을 확신시켜 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26, 27: 그들이 일찍이 일어날 새 동틀 때 즈음이라 사무엘이 지붕에서 사울을 불러 가로되 일어나 내가 너를 보내리라 하매 사울이 일어나고 그 두 사람 사울과 사무엘이 함께 밖으로 나가서 성읍 끝에 이르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사환으로 우리를 앞서게 하라 사환이 앞서매 또 가로되 너는 이제 잠간 서 있으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리리라.

지붕에서 사울을 불러지붕을 향하여 사울을 불러라는 뜻입니다. ‘사환으로 우리를 앞서게 하라는 말은 사무엘이 비밀리에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또한 하나님의 게시의 말씀을 들려주기 위한 조처였습니다(삼상 10:1-8). 그런데 이처럼 사무엘이 이 일을 비밀리에 행하고자 한 이유는 백성들이 왕을 선출하는 공식적인 절차를 밟기도 전에(삼상 10:17-24) 사울이 왕으로 택정된 사실이 알려질 경우, 백성들이 반발할 것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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