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제11장: 사울의 암몬 정복과 등극
본 장에서부터 하나님께 의하여 이스라엘 왕정 체제가 초대 왕 사울의 등극으로 공식 태동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정이 과거 신정 체제로부터의 혁명이나 반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으로 그 옛날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언약 국가를 수립한 이래 계속되어 온 신정 체제에서 자연스럽게 이양되어 건립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비록 정치 체제의 형식은 왕정 체제로 바뀌었으나 신정 체제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뜻을 더욱 잘 실천하기 위한 체제로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이스라엘 왕정 체제는 신정적 일관성을 계승한 신정적 왕정 체제였음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사울은 이미 왕으로 선출되었으나 아직 공식적으로 왕위에 오르지 않았던 사울이 하나님의 신의 감동으로 떨쳐 일어나 민족을 영도하여 혁혁한 군사적 공로를 세우고 비로소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등극 이전의 사울의 신앙적 모습과 등극 이후 내내 보여 준 사울의 비신앙적 모습을 대조하면서, 인간은 그 자신의 능력이나 지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신, 성령에 의해 감동되었을 때에는 완전한 승리와 백성들의 신망을 얻었지만, 등극 후에는 자기 뜻대로 행동하다가 개인과 국가적으로 쇠퇴와 분열만 초래하게 만든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5절: 사울이 왕으로 선출되기는 했지만 전폭적인 지지는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암몬족의 침공을 잘 막아내어 온 민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고 즉위까지 하게 됩니다. 특이한 사실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온 이스라엘을 향하여 구원을 호소할 수 있도록 요청하고 암몬은 허락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세계 전쟁사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입니다. 아마도 암몬족은 이스라엘의 전력이 매우 미흡하기 때문에 100% 승리를 예상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을 단순히 암몬의 군사적 우월감 때문이라고만 생각하기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로 하여금 백성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 암몬족 나하스의 탐욕과 교만한 마음을 이용하신 것입니다.
1: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를 대하여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암몬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입니다(창 19:30-38). 이들은 아르논 강과 얍복 강 사이의 요단 지경에 정착해 왕국을 이루었는데 그 수도는 랍바였습니다(삼하 12:260. 이스라엘과 형제국인 이들은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에 세력이 강성하여 점차 이스라엘과 분쟁을 일으켰습니다.(삿 11:13-18) 나하스는 사울과 다윗 시대에 걸쳐 암몬을 다스리던 왕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에 대해 적대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윗과는 우호 관계를 유지했었습니다(삼하 10:2). 그러나 나하스의 아들 하눈이 다윗을 대적하였으니 이후 이스라엘과 암몬의 관계는 다시 악화되었습니다(삼하 10:3-14). ‘길르앗 야베스’는 요단 강 동쪽, 갈릴리 호수 남쪽 의 므낫세 반 지파의 기업입니다.(민 32:39-42; 수 17:6). 암몬 족속은 사사 시대 때부터 이곳을 탐내어 침공했다가 사사 입다에게 대패하였습니다(삿 11:13). 그러다가 이제 나하스가 다시금 이곳을 빼앗고 과거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쳐들어 온 것입니다. ‘우리와 언약하자’ 구약 시대 당시 국가 간에 체결된 언약은 대개 대등한 관계가 아닌 종속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조약이었습니다(창 21:32;신7:2;삼하 3:21). 여기에서 언약은 이러한 형태의 것을 뜻합니다. 즉 ‘항복하겠으니 침략 행위를 중단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는 싸워보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한 나약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하나님을 전혀 의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그만큼 당시 암몬 족속의 세력이 강력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암몬 족의 침략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선출되었다는 것도 크게 작용하였을 수 있습니다(삼상 10:17-24). 나하스는 사울 왕이 강력한 통치권을 구축하기 전에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세력을 약화시켜 놓으려고 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2: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어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오른쪽’은 주로 권능과 복을 상징합니다(마 25:33;엡1:20). 여기서도 오른 눈은 그런 맥락에서 인간의 가장 중요한 시체 기관을 대표합니다. 따라서 나하스가 이스라엘을 다 불구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뜻으로 평화를 위한 조약을 체결할 뜻이 없다는 말입니다. 나하스는 단순한 영토 확장뿐만 아니라 과거 입다로부터 당한 조상들의 수치를 앙갚음하겠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야베스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유예를 주어 우리로 이스라엘 온 지경에 사자를 보내게 하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하니라.
사울이 왕으로 선출되었지만(삼상 10:17-24) 아직 즉위식을 갖지 않아 정식으로 왕정 체제가 출범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기 성읍 장로들의 지도 아래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장로는 나이가 많으면서도 덕망이 있어 지도자적 역할을 담당하던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이들은 왕정 체제 하에서도 각 성읍 주민들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구원할 자’(야솨: ישׁע)는 ‘항보하다’ ‘단념하다’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본 절은 이스라엘 전역에 구원을 요청해서 응답이 없으면 그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갈테니 기다려 달라는 요청입니다. 사울이 왕으로 선출되었음에도 아직 이스라엘은 각 지파별로 힘이 분산되어 있어서 방어력이 약한 상태였습니다. 이때는 사사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로 아직 중앙집권적 왕정 체제가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하스는 이처럼 7일을 기다려 달라는 이스라엘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대략 3가지를 들어 볼 수 있는데, ❶ 이스라엘이 연합군을 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❷ 연합군이 오더라도 쉽게 이길 수 있다는 군사적 자신감 ❸ 야베스와의 국부적인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어 보복의 여지를 남기는 것보다 이스라엘 전체와의 싸움을 통해 완전한 승리를 거둔 후 이스라엘을 영구적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야심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4: 이에 사자가 사울의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고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
‘사울의 기브아’ 예루살렘 산지에 있는 기브아(수 15:57)와는 다른 곳으ㅗ 베냐민 지파의 지경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이곳은 사울의 고향으로(삼상 10:26) 기르앗 야베스와의 상거는 70여 km입니다. 당시 이곳에는 왕으로 선출된 사울이 내려와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백성’이란 기브아 성읍의 주민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동족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위기 가운데 처했음과 자신들에겐 그들을 도울만한 힘이 없음을 안타까와 하며 슬피 울었을 것입니다.
5: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아로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로 고하니라.
사울이 왕으로 선출된 후에도 집에 돌아와(삼상 10:26) 여전히 농사일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왕적 소명을 받고서도 사울이 우유부단하여 자신의 통치권을 행사하지 아니하였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아직 공식적인 즉위식을 갖지 않은 상황에서 사울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린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와중에서 사울이 자신의 일상생활에 충실하고 있었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6-11절: 암몬의 침공을 알게 된 사울은 백성들을 소집하여 암몬족을 쳐부수고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교만한 자의 교만을 꺾으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는 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자신의 미천함을 깨닫고 겸손했던 사울을 들어 나하스의 교만을 꺾으시고 그로 하여금 명예와 영광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사랑하시되 변함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수많은 죄악 중에서도 항상 대적의 손으로부터 구원하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특히 암몬과의 전쟁에서 사울이 백성들을 소집할 때에 백성들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소집에 임하여 군대가 갖추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심령을 주관하셨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울이 군대를 소집하여 암몬족을 쳐부수고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사울은 암몬족의 야베스 침략 소식을 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큰 노를 발합니다. 그리고 암몬족을 쳐부수기 위해 백성을 소집하는데, 이 때 모인 백성의 수가 삼십삼 만에 달했습니다. 그리하여 다음날 사울은 백성을 이끌고 나아가 암몬족을 쳤는데, 이때 암몬족은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을 정도로 큰 패배를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6: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
‘하나님의 신’은 성령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권능을 덧입어 이제 큰 일을 감당하게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노가 크게 일어나서’ ‘노’는 단순한 인간적 분노나 혈기 따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들에 의해 능욕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의분입니다.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울은 이제 자신의 소명을 자각하고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떨쳐 일어난 것입니다.
7: 한 겨리 소를 취하여 각을 뜨고 사자의 손으로 그것을 이르사엘 모든 지경에 두루 보내어 가로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며 그들이 한 사람같이 나온지라.
사울이 군사를 모집하면서 이처럼 비단 자신뿐만 아니라 사무엘의 이름까지도 들먹인 데 대해서는,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이스라엘의 왕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번 군사 모집에 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의 모병이 단순히 사울 일개인의 권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적 권위에 입각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번 군사 모집에 필히 응해야 했습니다. ‘여호와의 두려움’이란 여호와께서 주신 두려움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의분을 주시고 백성에게는 이처럼 사울에 대한 두려움을 주시어 백성들이 모두 사울을 따르도록 만드셨습니다. 이는 곧 여호와께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주관하고 계심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8: 사울이 베섹에서 그들을 계수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 만이요 유다 사람이 삼 만이더라.
‘베섹’은 유다 지파에 속한 베섹(삿 1:3,4)과 구별되는 곳으로 잇사갈 지파에 속한 이스르엘 평원 안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곳은 세겜 부근의 나블루스에서 25km북쪽에 위치하였다고 합니다. 아직 이스라엘이 남북 왕국으로 분리되지 않았는데도 이처럼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지파가 구분되어 언급된 데 대하여 사람 학자에 따라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가 본서를 기록한 때가 솔로몬 사후, 분열 왕국 초기로 추정됨에 비추어 보면 의문이 풀릴 수도 있습니다. 남북 분열 왕국 시대 이전에도 유다 지파와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은 지역적, 미묘한 힘의 역학적 관계 등으로 인해 자연스러운 구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러한 구분이 돌이킬 수 없는 분열 상황으로 굳어진 것이 바로 남북 왕국의 성립입니다. 당시 20세 이상의 남자 수는 601,730명이었습니다(민 26:51). 따라서 이번 모병에 모든 사람이 다 응소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당시 이스라엘이 여전히 블레셋의 위협에 대처하고 있던 준전시 상황이었음에 비추어 보면 납득이 갑니다. 일부 백성들은 블레셋의 침입에 대비해야 했던 것입니다.
9: 무리가 온 사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 하라 사자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기뻐하니라.
‘해가 더울 때’ 햇볕이 한창 내리쬘 때입니다. 정도 무렵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사울을 중심으로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기가 충천하여 승리를 확신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야베스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선 지금까지 근심에 싸여 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사실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다가 이제 구원 받게 되었으니 저들의 기쁨은 이 세상의 어떠한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영원한 죽음의 순간에 처해 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0: 야베스 사람들이 이에 가로되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소견에 좋을 대로 우리에게 다 행하라 하니라.
이는 야베스 사람들이 암몬 사람들을 속여 저들의 경계심을 풀게 하기 위하여 한 말입니다. 야베스 거민들은 기대하지 않았던 사울의 군대가 진격해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승리를 위한 계략을 세운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들에게 무조건 항복 의사를 밝히므로 저들의 경계심을 늦추려 한 것입니다. 사실 이 말을 들은 암몬 족속은 전쟁을 치루지도 않고 야베스를 수중에 넣게 되었다고 만심하였을 것입니다.
11: 이튿날에 사울이 백성을 삼대에 나누고 새벽에 적진 중에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한 자가 없었더라.
‘새벽에 적진 중에 들어가서’ 이스라엘이 불시에 기습 작전을 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긴장을 푼 채 곤히 자고 있던 암몬 군을 새벽에 기습 공격한 것은 아주 효과적이었습니다. 이는 사울의 군사적 재능을 드러내 주는데 실상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도 이러한 그의 재능을 염두에 두셨기 때문이었습니다(삼상 9:16). 암몬 족속이 얼마나 철저하게 패하였는지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패배 이후 암몬 족은 계속 사울에게 패하여(삼상 14:47)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있다가 다윗 시대에야 다시금 언급되기 시작합니다(삼하 10장).
12-15절: 사울은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사울이 일찍이 자신이 왕으로 선출된 것을 인정하지 아니했던 자들을 용서하고 사울이 길갈에서 공식적인 즉위식을 가졌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권력을 휘둘러 반대자를 숙청하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과거 자기를 반대했던 무리를 정죄하고자 한 백성들의 행동을 만류하며 관대하게 용서하고 온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도록 화합을 도모했던 것입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가르침과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집권 초기에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신정주의적 왕정 체제를 유지하였고 그의 길이 형통하였지만, 갈수록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업신여기며 추악한 정치적 탐욕에 사로잡혔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끝까지 자만심을 경계하며 자신에게서 경건의 능력이 떠나지 않도록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12: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 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이번 전쟁의 승리로 인해 사울이 백성들의 돈독한 신임을 얻었습니다. 사울이 암몬 족과의 싸움에서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자 백성들은 모두들 만족해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사울이 왕으로 선출된 것을 비웃었던 비류들을 죽이려 한 것입니다.
13: 사울이 가로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자고(自高)하기 이전의 사울의 겸손과 넓은 아량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암몬과의 전쟁에서의 승리가 여호와의 구원의 역사였음을 인정하는 사울의 겸손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구원 역사에 근거한 그의 관용적 제사도 보여줍니다. 이번 전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듯이 그도 자신의 대적자에게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이러한 사울의 관용은 백성들의 마음을 더욱 더 사로잡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후 사울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즉위식을 거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잘못된 실수에 대하여 너그럽게 관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영벌에서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기본자세입니다.(빌 4:5).
14: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나라를 새롭게 하자’는 말은 이번 전쟁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민족적 분위기를 새롭게 하자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 사무엘은 온 백성과 더불어 사울의 즉위식을 가졌을 뿐 아니라 백성들의 여호와 신앙을 재 고취시켰습니다. 길갈은 길르앗 야베스에서 약 60km 떨어진 곳으로 여리고 부근의 성읍입니다. 이곳은 사무엘이 매년 순회하며 통치하던 성읍이자(삼상 7:16) 일찍이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에 임하기 앞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했던 곳입니다(수 5:1-12). 사무엘은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장소에서 나라를 새롭게 하기 위해 백성들을 이끌고 그곳으로 이동하였을 것입니다.
15: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사울은 이미 앞서 사무엘에 의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고(삼상 10:1) 또한 모든 백성들 앞에서 제비뽑혀 왕으로 선출이 되었습니다(삼상 10:24). 이제 공식적인 즉위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아무튼 이로서 이제는 사울의 왕권에 대해 누구도 시비하는 자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왕 됨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삼상 9:16) 의한 것임을 사울도 백성들도 잊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사울 자신이 먼저 이 사실을 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화목제는 하나님께 드렸던 제물 중 하나님과 제사장의 몫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경배자들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제사입니다(레 7:15-18). 그리고 하나님과 경배자 간의 화목 및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의미를 지닌 제사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도 전쟁에 승리케 하시고 자신들에게 왕을 세워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백성들 간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화목제를 드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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