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사사기 제17장 강해: 미가의 신상(神像)

chukang 2015. 6. 2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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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제17장 강해: 미가의 신상(神像)

 

  본 장에서부터는 연대기 순에서 벗어나 신앙 타락으로 인한 가나안 완정 정복의 실패와 또 그 부작용으로 나타난 이방 족속의 압제, 그리고 이스라엘의 이방 족속과의 교류를 통한 신안 타락이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깊어만 가던 혼돈과 타락의 암흑시대를 폭로하는 대표적 실례 두 개를 예화 편집하여 보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는 주로 범죄의 결과로 주어진 이방 족속의 압제로부터 구원 기사를 다룬 반면에 본장 이후부터는 민족 내부의 정치, 종교적 분열과 부패로 인한 사사 시대의 죄악상 자체를 다루고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17-18장은 미가의 신상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의 신앙 타락을, 19-21장은 한 타락한 레위인과 베냐민 지파의 불량배 사이에서 일어난 끔찍한 강간치사 사건이 빌미가 되어 이스라엘에 동족상잔이 발생한 사실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사회적 생활에 있어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레위인들의 타락상을 통해 이스라엘 전체의 부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 훗날 우상숭배의 온상 역할을 했던 미가의 신상이 만들어지게 되는 경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미가가 모친의 돈 일천 일백을 훔치면서 시작이 됩니다. 즉 자신의 돈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 미가의 모친은 마구 저주를 퍼붓고 그 아들 미가에게도 알렸습니다. 미가는 모친의 저주에 두려움을 느끼고 그 어미에게 사실을 고하고 훔친 돈을 돌려줍니다. 이에 미가의 모친은 심히 기뻐하며 그 중 일부를 취하여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그녀가 우상을 만든 것은 자신의 저주로 인해 아들이 화를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미신적 행위였습니다. 미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에봇과 드라빔도 만들어 자기 아들에게 입혀 자기 신당을 관리할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이 사건이 정확히 어느 사사 때의 일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저자가 나타내기 위한 것은 바로 사사 시대의 종교, 정치적 상황입니다. 당시 상황을 정리해 보면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 종교적으로 여호와 신앙과 우상 숭배 신앙이 혼합된 종교적 혼합주의가 심했다는 것입니다. 외양적으로는 여호와 신앙의 모습을 갖추었으나 그 내면에는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것입니다(2:11-13; 4:2; 6:10; 8:33; 11:39). 둘째 사사 시대는 이스라엘의 지정한 왕이신 하나님께서 통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눈에 보이는 왕이 없었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율법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시대였습니다. 미가와 그의 모친은 가증한 신상을 만들어 섬기면서도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라고 생각할 정도로 영적 무지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 하는 사람이 있더니

   미가의 이야기는 그 역사적인 시기와 배경은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 일들은 사울 왕이 등극하기 전에 일어난 것이며(17:6; 18:1),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18:30)과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에 대한 언급(20:28)이 있는 것을 볼 때에 삼손의 활동 시기보다 훨씬 이전의 사사 시대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라는 구절을 볼 때에 정치적 구심점이 없는 무정부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 장에서는 미가의 우상숭배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타락 상황을 조명합니다. 그리고 16장과 17장이 연관이 있다면, 삼손과 미가 모두 단 지파에 속했다는 것밖에 없는 것이 저자의 의도를 더욱 확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사들은 인간적인 약점을 쉽게 드러내고 그 백성들은 매우 변덕스럽게 타락과 부정을 일삼았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이 상실될 위험에 처하고, 이스라엘의 무정부적 상태에 의해 사회 체제가 붕괴될 우려를 발생하였습니다. 이러한 혼란을 막는 길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백성들을 통치하는 강력한 군주가 등장하는 신정(神政) 체제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미가(מיכה)’라는 이름은 여호와와 같은 자가 누구냐?’ ‘누가 여호와를 닮았는가? 라는 뜻입니다. 이는 불법적인 제사장으로서 이교적인 신당을 세운 미가의 우상숭배와는 전혀 다른 뜻입니다. ’에브라임 산지는 팔레스틴의 중앙에 위치한 에브라임 지파의 산지입니다. 이곳은 당시 언약궤가 있었던 실로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3:27참고).

 

2: 그 어미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일천 일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취하였나이다. 어미가 가로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미가의 모친은 은 일천 일백을 잃어버린 것으로 되어 있는데, 미가가 훔친 것입니다. 이런 미가의 절도 행위는 당시의 부도덕한 타락상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저주하다’(알라: אלה)‘탄원하다‘ ’간청하다혹은 엄히 명하다는 뜻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미가가 훔친 돈을 다시 내놓은 이유는 아마도 어머니의 탄원하는 저주 소리를 듣고 두려워하였거나 혹은 어머니의 엄명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그것을 취하였나이다.‘에서 취하다(לקח)‘잡다‘ ’‘ ’얻다‘ ’맡다등의 뜻으로 여기서는 탈취하다또는 도적질하여 얻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미가는 어머니의 저주를 듣고 자기의 도적질을 고백하였는데, 죄를 자백할 뿐 참된 신앙의 회개는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이러한 어머니의 축복은 앞서 내려진 저주의 말을 상쇄시키는 것입니다. 고대인들의 의식 가운데는 이처럼 축복함으로써 이미 주어진 저주를 풀리게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신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고대의 미신적인 주술의 한 형태입니다. 미가의 모친은 이방족속의 풍습을 그대로 받아들여 타락하고, 종교적으로 혼란한 당시의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3: 미가가 은 일천 일백을 그 어미에게 도로 주매 어미가 가로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 차로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돌리리라

   한 신상을 새기며(페셀: פסל)’ 이는 돌이나 나무를 깎아 새긴 것인데, 간혹 은이나 금을 입힌 우상을 가리키기도 합니다(7:25). ‘부어 만들(מסכה)’은 주조(鑄造: 녹인 쇠를 부어 만든 것)한 신상입니다. 이러한 주조 형태의 우상은 아론이 송아지 우상을 만든(32:4) 때부터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울 때까지(왕상 12:28, 29) 대부분 송아지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미가의 에미가 만든 신상의 수()에 대해서는 페셀마세카는 중언법적 표현으로 단지 하나의 우상이라는 주장과 먼저 은으로 주조한 뒤에 끌로 새기고 다듬어 만든 하나의 우상이라는 주장이 잇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우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사기 18:30, 31에서 페셀만을 언급하고 있고 또 그것이 단수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이 됩니다. 18:17, 18에서는 에봇과 드라빔이 함께 언급되어 분명히 구별되고 있기 때문에 돌이나 나무로 새겨 만든 신상과 녹인 금속을 틀에 부어 만든 신상 등 두 가지의 우상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상을 만들어서 여호와께~ 드리노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10계명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20:4; 4:16)고 하셨으며 일찍이 하나님의 형상을 금송아지 모양으로 부어 만든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셨습니다(32:23-28). 따라서 페셀마세카를 만들어 섬기는 행위는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 버린’(1:23) 가증한 죄악입니다. 이는 가나안의 우상숭배를 일상생활 속에 받아 들인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네게 도로 돌리리라이는 그 돈으로 우상을 만들어 미가에게 돌려주겠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신상을 만들어 아들에게 주고자 한 그녀의 의도는 아마 돈을 도둑맞기 전부터 이미 계획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돈을 찾은 그녀는 이제 그 계획을 순조롭게 실행하게 된 것입니다.

4: 미가가 그 은을 어미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미가 그 은 이백을 취하여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그 은 이백을 취하여미가가 에미에게 돌려준 금액은 은 일천 일백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미가의 에미는 은 이백만을 취하여 은장색에게 준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나머지 은 구백의 행방에 대해서 이견이 있어 왔습니다. 어쨌든 미가의 에미는 신상 제작을 위하여 거액을 지불했습니다. ‘은 이백은 이백 세겔인데 은 한 세겔은 일반 노동자의 4일치 품삯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이는 엄청난 금액이 아닐 수 없습니다.

 

5: 이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더라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신당은 신들의 집(בית אלהים)’입니다. 칠십인 역은 이를 하나님의 집으로 번역했습니다. 이 신당은 인근 지역에 있는 백성들의 요구를 충족시킨 듯하며(8:22), 아마 이곳에서 부패한 우상숭배 의식이 행해졌을 것입니다. 이처럼 미가는 자신의 신당에 에미가 제공한 우상을 htushg고 자기 아들을 불법적인 제사장으로 세워 본격적인 배도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적 상황이 매우 무질서하고 혼란했음을 드러냅니다.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에봇(에포드: אפוד)’은 원래 어깨에 걸쳐 입는 대제사장의 겉 예복입니다. 이 예복이 기드온 때에는 우상숭배에 사용되었으며(8:27), 그 후 종종 우상의 도구로 전락되었습니다. 여기서 미가가 사사롭게 제작한 에봇도 우상숭배 의식에 사용된 것입니다. ‘드라빔(테라핌: תרפים)’은 본래 치료자라는 뜻이나 신들의 집’(NIV)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이 드라빔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 가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숭배되었는데(31:19; 삼상 15:23; 19:13), 이것을 어떤 형식으로 종교적 행사와 관련시켰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 드라빔이 점을 칠 때(21:21)와 허탄한 예언(10:2)을 할 때 사용된 것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로 볼 때 드라빔은 에봇과 마찬가지로 신의 뜻을 알기 위한 신탁의 도구로 사용된 듯 싶습니다. 어떤 학자는 에봇이 페셀’(새긴 우상)을 둘렀던 겉옷이고, 드라빔은 에봇에 붙어서 신탁을 주는 증표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확실하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튼 에봇과 드라빔이 우상숭배 의식에 사용되었다는 점 역시 이스라엘의 종교적 혼란상황을 여실히 반증하고 있습니다.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더라.’ 이같은 미가의 행동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무질서의 주된 표본입니다. 원래 제사장직은 하나님에 의해 인정된 레위지파에게 위임되는 직분입니다(28:1; 29:9). (40장 참고) 미가는 신적 권위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은 것입니다. 물론 미가가 후에 레위인으로 하여금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지만 이것 역시 자기의 신당과 우상숭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가정에 속한 제사장이 맡은 역할은 에봇과 드라빔으로 신탁을 묻는 것이었으며(18:5; 6), 제사 행위에 필요한 의식을 집행하는 것이었습니다(18:19).

 

6: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미가의 범죄와 같은 반()율법적 범죄가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해 주는 구절입니다. 그 이유로 제시되는 왕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은 결국 이스라엘이 영적으로든지 정치적으로든지 강력한 지도력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을 신앙적으로 정치적으로 통일시킬 자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는 자기 준에 옳은 대로 행하다’(KJV, RSV)입니다. ‘옳은’(야솨르: ישׁר)편리한이란 뜻도 있기 때문에 자기 보기에 적당한 대로’(NIV) 또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LB)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부패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7-13: 미가가 떠돌이 레위 소년을 자기 집의 정식 제사장으로 고요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레위인들은 그들의 직분이 사명이라기보다는 직업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기도록 거룩하게 구별된 자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타락해도 여호와 신앙을 보존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지닌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돈 몇 푼에 신앙 양심을 팔기도하면서 오직 아론 자손만이 수행할 수 있는 거룩한 제사장 직분(28:1-3)을 외람되게 하였습니다. 또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당연한 본분을 망각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인을 푸대접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7: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소년이 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 우거하였더라.

   가족(미쉬파하: משׁפחה)’는 말 그대로 가족이나 친척 또는 씨족을 뜻하며, ‘지파(쉐베트: שׁבט)’와는 구별이 됩니다. ‘유다 가족에 속한은 레위인이 아니라 바로 뒤이어 나오는 유다 베들레헴을 가리킨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상응하여 70인 역은 유다 가문의 베들레헴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이 레위 소년이 베들레헴에 정착한 레위 가문의 일원으로서 행정상 유다에 속한 것으로 설명하거나 아니면 그 소년의 모계가 유다 가문에 속했기 때문에 베들레헴에 정착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는 레위 지파가 기업을 받지 않고(13:33) 다른 지파들이 차지한 땅에 널리 퍼져 살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에 의해 지지됩니다.(35:1-8; 21:1이하).

 

8: 이 사람이 거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서 행하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찾다(마차: מצא)’발견하다’ ‘획득하다는 뜻으로 무엇을 얻기 위하여 애쓰는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레위 소년은 또 다른 거주지를 찾기 위해 살고 있던 베들레헴을 떠나서(얄라크: ילך)’는 방랑생활에 접어든 것입니다. 이처럼 레위 소년이 원래의 거주지를 떠난 것으로 보아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에 정한대로 십일조를 바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18:21-31). 이 같은 상황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적 지도력의 부재를 낳아 타락의 악순환이 계속되게 만들었으며, 정신을 차려야 할 제사장마저 타락하게 되었으며 생계를 위해서 마음대로 다른 거주지를 찾아 나서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레위인들의 방랑은 사사 시대의 종교적 무질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미가의 집에 이르매생계를 위해 새로운 거처를 찾아 나선 레위 소년은 방랑 도중에 우연히 미가의 신당을 보았을 것이고 살 방도를 찾아 미가의 집을 찾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9: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뇨 그가 이르되 나는 유대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레위인이 미가를 방문한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단지 양식과 잠잘 곳을 찾았을 뿐이지 결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찾은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10: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하여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주리라 하므로 레위인이 들어갔더니

   아비(아브: אב)’의 일반적인 의미인 아버지조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 남을 가르치며 조언할 권리를 가진 자에게 붙여진 존경의 호칭인 것 같습니다.(45:8; 왕하 2:12; 6:21) 일반 대중의 지도자로서 제사장은 교육의 권위를 가진 아버지처럼 영적인 일을 도모하는데 있어서 영적 아비의 권위로서 그 역할을 담당하여 존경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경륜을 묻는 자들에게 그 뜻을 제시하는 제사장의 특별 업무와 관련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신탁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18:5). 이처럼 미가는 레위인으로 하여금 신탁의 업무를 맡게 함으로서 그를 존경의 위치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가의 나를 위하여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기의 복을 위한 이기적인 결정이며, 또한 그 대상이 거짓된 우상을 섬기는 것이었기 때문에 미가의 행위는 매우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도 레위인은 생계의 안정을 위하여 미가의 제안에 동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공적으로 수행하는 레위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바치는 거제물과 십일조를 응식으로 삼게 되어 있습니다(18: 참고). 그래서 레위인들에게 기업은 따로 주지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레위 제사장들의 기업이요, 분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가는 레위인에게 제사장의 일을 맡기면서 그의 생활비를 주겠다고 제안하여 공인으로서의 제사장을 자기의 사적인 소유로 삼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이는 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행위였으며 종교 질서를 무너뜨리는 죄악입니다. 이처럼 성직자를 개인적인 욕구의 방편으로 삼아 삯꾼으로 전락시키는 미가의 행위는 당시 종교적 부패가 얼마나 심각했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의복 한 벌의 뜻을 가진 에레크(ערך)’는 본래 순서대로 정돈되거나 배열된 것을 뜻하기 때문에 진설병으로 언급되기도 했으나(40:23), 여기서는 유추된 뜻으로 평가’ ‘가치’ ‘등을 의미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하 한 벌의 의복(a suit of apparel)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KJV, RSV). 70역이나 제롬은 동복이나 하복일 것라고 해석도 합니다. ‘레위인이 들어갔더니여기에서 들어가다(얄라크: ילך)’갔다는 뜻입니다. 그는 그의 길을 간 것입니다. 그러나 레위인이 미가의 제안을 생각하기 위해 잠시 떠났다가 그 제안에 동의하고 다시 돌아왔을 것으로 보입니다.

 

11: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으니 이는 그 소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레위인은 그가 행하는 일미 미신적인 우상숭배였으며 보수도 수치스러운 것이었으나 레위인은 이에 대해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생계가 보장된 것에 대해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만족하다(야알: יאל)기쁘게 받아들이다란 뜻으로 레위 소년이 미가의 요청을 쾌히 승낙했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레위 소년은 생계보장을 위한 물질에 유혹되어 자기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우상숭배를 권장하는 타락한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레위 소년은 미가의 아들들처럼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호의적으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는 레위인의 본문을 편안한 삶과 맞바꿔 우상숭배의 우두머리가 된 것입니다.

 

12: 미가가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소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거한지라

   미가가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이는 원문을 보면 미가가 레위인의 손을 채웠다.’로 되어 있습니다. ‘채우다(말레: מלא)’충만하다’ ‘확인하다’ ‘만족시키다등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손을 채웠다.’는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단지 레위인에게 돌려질 은 열과 의복과 음식으로 그의 손을 채워 만족시켰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레위인의 권위(야드: יד)세웠다(‘말레의 또 다른 뜻) 의미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레위 소년이 공적인 신분을 잃어버리고 미가를 위한 사적 소유물처럼 되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아닌 미가의 사람이 되어 우상우배의 의식을 집정하며, 거짓된 신탁을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미가를 버리고 자기의 욕심을 따라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 간사함을 드러냅니다(18:20). 이처럼 미가뿐만 아니라 레위인 자신도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하는 사사 시대의 전형으로 언급되어 그 불법성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13: 이에 미가가 가로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미가는 자기 신당(神堂)의 정당성을 위하여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고용했으면서도 제사장을 합법적으로 위임시켰기 때문에 그것을 여호와께서 인정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가는 또한 이번 계기를 통하여 모친의 저주에서 벗어나고 또 여호와의 복도 받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이러한 미가의 생각과 판단은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즉 미가의 신앙은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가나안의 다른 우상과 같이 미신적으로 대했을 뿐, 진정한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창조주요 언약의 주권자이심을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가는 여호와를 올바르게 섬기지 못하고 단지 자신에게 임할 복의 방편으로 대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미가의 잘못된 신앙의 결과는 복이 아니라 오히려 우상숭배자가 마땅히 당해야 하는 재앙과 심판입니다. 이처럼 당시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사회는 타락한 미신적인 신관으로 인하여 혼합주의적인 우상숭배와 비인격적인 삶으로 일관된 배교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