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사사기 제18장 강해: 단 지파의 이주와 우상 숭배의 확산

chukang 2015. 7. 26. 20:53

 

첨부파일 사사기 제18장 강해.hwp

 

 

사사기 제18장 강해: 단 지파의 이주와 우상 숭배의 확산

 

  17장에서 시작된 미가의 개인 우상 숭배가 단 지파 전체에게까지 파급되는 개탄스런 사건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작아도 악한 것은 급속도로 퍼져 나가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단 지파가 가나안의 아모리 인들로 인해 산지로 몰려나면서(1:34) 그들이 거할 영토가 너무 협소해지자 기업을 확장할 필요성이 절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막강한 아모리인들을 대항해서 싸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여호수아로부터 할당받은 기업의 경계(19:40-46)를 다 확보하지 못하고, 방어가 허술한 라이스 땅을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해 가게 됩니다(19:47). 이런 배경 속에서, 단 지파가 라이스 땅을 정탐하러 정탐꾼을 보내는 도중에 미가의 신상과 레위 소년 제사장을 만나게 되는 장면이 보도됩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라이스 땅 정복 전쟁을 하러 가면서 레위 소년과 미가의 신상을 약탈하여 자기 지파를 위한 제사장으로 삼고 신상을 숭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 딘 자파의 정정들이 신상을 탈취당한 미가의 항의를 무력으로 제압하고 무방비 상태의 라이스를 정복한 후 계속 그 신상을 섬겼는데 거기에는 모세의 증손자까지 가세하였음이 있는 그대로 보도되었습니다(21-30). 이 때에 단 지파가 정복한 라이스 땅을 이라고 개칭하였는데, 후에 왕국 분열 시대에 여로보암이 이곳에 금송아지를 세운 것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훗날 역대기 저자는 언약의 계보를 소개할 때 단 지파의 족보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대상 2), 그리고 계시록 기자도 계 7장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 십 만 사천 명의 인원수를 말할 때, 다른 지파에 속한 자는 모두 언급하면서 유독 단 지파에 속한 자에 대해서는 한 명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역시 단 지파의 우상 숭배 사건과 결단코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을 떠난 족속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될 종국은 생명의 책에서 그 이름일 삭제되는 것임을 암시하는 데, 오늘날 무신론을 주장하며 합리주의, 과학주의, 쾌락주의, 물질주의 등의 현대판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자들에게 무서운 경고가 될 것입니다. 또한 단 지파가 여호와를 섬긴가 하면서도 여호와의 존재와 성품을 계시한 구약 계시인 율법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우상 숭배에 바지게 된 본 장의 사건은 결국 17장의 미가 사건의 연속이면서도 그 배경 및 구속사적 의미를 잘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1-10: 가나안 정복 당시 소라와 에스다올 부근을 기업으로 차지했던 단 지파(19:40-46)가 그들 기업 내에 있던 아모리 족속의 강성함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기업을 빼앗기고(1:34-36) 새롭게 그들이 거할 기업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단 지파는 그들 가운데서 용사 다섯 명을 선발하여 그들로 하여금 거할 만한 땅을 탐지하게 하는데, 그 용사들은 도중에 에브라임 땅에 이르러 레위 소년이 제사장으로 있는 미가의 집에 유숙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레위 소년을 만난 용사들은 그에게 자신들의 앞길이 형통하리라는 말을 듣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라이스 땅에 이르러 그곳이 단 지파가 거하기에 매우 적합한 것을 발견하고 귀향하여 그의 형제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단 지파는 그들의 기업을 얻기 위해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을 수립하고 조직적으로 활동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실로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아직 자기의 기업조차 차지하지 못한 그들이 마치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이라도 하듯이 행동했다는 것은 아이러니(irony)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비록 진취적이요, 신앙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불순하고 패역한 발상에서 나온 인본주의적인 것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 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미가의 미신적인 우상숭배로 인하여 종교적인 타락이 한창일 때 이스라엘에는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으로 강력한 구심점이 없었을 때입니다. 이런 정치권력의 부재 상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여러 곳에 표현된 사실은(17:6; 19:1; 21:25), 본서 기록 당시 갓 태어난 왕정체제의 정당성을 강하게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단 지파는 가나안 정복 후 여호수아와 엘르아살의 죽음 전에 제비를 뽑아 자기들의 기업을 배정 받았습니다(19:40-48). 그러나 그들은 아모리 족속의 압박과(1:34, 35) 블레셋 족속의 압력(13:21; 14:4)에 의해서 기업으로 받은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동쪽에 있는 베냐민과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단 지파는 땅을 확장하기 위해(19:47) 나서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그 때까지 소라와 에스라올 지경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단 지파는 기업의 땅을 얻었으나 자기의 기업 내에 살고 있던 아모리 족속을 정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2: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자기 온 가족 중 용맹 있는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탐지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용맹 있는’(벤 하일: בן־חיל)용맹의 아들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힘과 용기가 있는 단 지파의 군사들로서 그 지파에 속한 남자들이었습니다. 이것은 혈통과 가문을 중시하는 히브리적 표현의 한 예입니다. 지파에서 선발된 다섯 명은 그들의 정착지를 찾으러 가던 중에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미가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는 에스다올에서 북쪽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다섯 명의 정탐꾼은 블레셋과 아모리의 세력이 강했던 평지를 피해서 에브라임 산지로 방향을 잡은 것 같습니다. 그들이 미가의 집에 유숙한 사실은 후에 단 지파의 우상 숭배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3: 그들이 미가의 집에 가까이 올 때에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고 돌이켜 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음성(: קול)’은 여러 가지 종류의 소리를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말씨또는 억양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알아듣다(나카르: נכר)’식별하다, 인식하다는 의미입니다. 정탐꾼들은 레위 소년의 소리를 쉽게 식별하였는데, 그것은 그 소년의 말씨가 에브라임 사람들과는 다른 억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12:6참고) ‘네가 여기서~ 얻었으냐?’네가 여기서 행하는 것이 무엇이이며, 지금 여기서 너는 무엇이냐?’라는 뜻으로 그들은 소년의 역할과 직분을 묻고 있습니다.

 

4: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여차여차히 나를 대접하여 나를 고빙하여 나로 자기 제사장을 삼았느니라.

   고빙(사카르: שׁכר)’는 원래 학식이나 지식이 뛰어난 사람을 초대하거나 고용하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미가가 레위 소년을 돈을 주고 제사장으로 고용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레위 소년 스스로가 성별(聖別) 의식이 없이 제사장 직분을 생계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미가의 경우처럼 당시의 종교적 제사의식이 개인의 미신적 우상숭배 형식으로 전락하였음을 단적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의의 열매를 거두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6:9-14)

 

5: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보아서 우리의 행하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들에게 알게 하라.

   다섯 명의 정탐꾼들이 하나님과 그의 섭리에 대해 얼마나 경솔하고 무지한지를 알 수 있는 구절입니다. 그들은 참된 여호와와 거짓된 우상을 구별하지도 않고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도 잊은 채 헛된 우상에게 신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엘로힘(אלחים)’이란 이름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신적인 행위에불과하며 하나님을 다른 우상들과 마찬가지로 전락시키는 행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보다는 미가의 거짓 제사장과 드라빔을 더 신뢰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형통하다(צלח)’는 원래 앞으로 돌진하다는 뜻으로 유익하다’ ‘번영을 가져오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정탐꾼들이 자기들의 번영과 유익에만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단지 복의 수단으로만 이용하려는 미신적 신앙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6: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레위 소년은 정탐꾼의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먼저 에봇을 입고 드라빔에게 의논해 보는 척한 후에 그들에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평안(살롬: שׁלום)히 가라는 그들의 길이 분명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정탐은 표면적 성공이었으나 결국 그들은 우상 숭배의 패역의 길을 걷게 됩니다.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여호와 앞에 너희의 길이 있다는 뜻입니다. ‘너희의 여행은 여호와의 인정을 받았다.’는 뜻도 될 수 있습니다. 즉 여호와께서 그 길을 시인하실 뿐만 아니라 성공하도록 돌보신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런 제사장의 신탁은 분명 아첨과 거짓이 섞인 것입니다. 레위 소년은 자신을 여호와의 신탁을 중재하는 제사장으로 자처하기 위해 그럴듯한 내용으로 꾸며서 대답하며 여호와의 이름을 도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7: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잇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하여 시돈 사람 같이 한가하고 평안하니 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아무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라이스는 레센이라고도 불립니다(19:47). 이곳은 팔레스틴 북쪽, 곧 긴네렛 호수에서 북쪽으로 38km, 두로에서 동쪽으로 4km 쯤 떨어진 곳으로서 두로로 직접 통하는 길목이었으며 요단강의 원류 중 하나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라이스는 당시 시돈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시돈과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서북쪽에 레바논 산맥이 놓여있어 거의 간섭을 받지 않았으며, 동북쪽으로는 헤르몬 산이 있어서 아람 족속의 영향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지형적으로 안전한 곳이기 때문에 라이스 주민들은 전혀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지도 않았으며 또한 인접 족속과도 계약을 맺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단 지파의 정탐꾼들은 라이스를 최소의 희생으로 쉽게 정복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군대를 이끌고 왔으며, 예상했던 대로 아주 쉽게 정복을 하였습니다(27, 28).

 

8, 9: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와서 그 형제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 보기에 어떠하더뇨. 가로되 일어나서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 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말라

   단 지파의 정탐꾼들이 라이스를 자신들의 새로운 거처로 정하고 그곳을 점령하러 올라가자는 주장은 매우 도전적입니다. 그들은 그 땅이 매우 좋기 때문에 주춤거릴 필요 없이 지금 곧 치러 올라가자고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 땅을 선택했던 롯의 모습과 유사합니다(13:1-18). 즉 단 지파 사람들은 안목의 정욕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계획과는 상관없이 그들 마음대로 라이스를 그들의 정착지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10: 너희가 가면 평안한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평안한 백성은 경제적 풍요와 지형적 조건으로 인해 전혀 방어태세를 갖추지 않고 있는 라이스 거민들을 말합니다. 이 말 속에는 라이스 거민들의 방심으로 인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정탐꾼들의 확신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정탐꾼들은 백성들이 지체함 없이 즉각 라이스를 점령하러 갈 것을 재촉하며 선동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여호수아나 사사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방 민족들을 물리칠 때 자주 사용하였던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2:24; 2:23)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원래의 의미를 저버린 표현으로 정탐꾼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말에 스스로 자신감을 얻으려고 한 말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미가의 제사장이 말한 신탁의 내용을 그들이 미신적으로 믿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입니다.

 

   11-31: 다섯 용사로부터 라이스 땅이 정착지로 매우 적합하다는 희망적인 보고를 접한 단 지파는 다시 600명의 용사를 선발하여 라이스 정복에 나섰습니다. 본문은 그 도중에 발생한 사건과 이후 그들의 정착 과정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습니다. 먼저 600명의 용사들은 라이스 정복에 앞서 일전에 다섯 용사가 머물렀던 미가의 집에 이르러 레위 소년 제사장과 미가가 만든 신상을 탈취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라이스를 쳐서 정복하고 온 단 사람을 이주시켜 성읍을 중건한 뒤 그 땅 이름을 이라 칭하였습니다. 또 그 뒤에 신상을 세웠는데, 이 때로부터 블레셋의 침략 시(삼상 4)까지 그곳은 우상 숭배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분명히 알고 배격해야 할 것은 첫째 종교의 형식주의입니다. 단 자손은 미가가 그러했던 것처럼 새긴 신상들과 제사장 제도를 마치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는 보증과 같이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종교적 외양이 곧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일이며 또한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이라고 착각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종교는 타락할수록 보다 외적인 형식주의에 치우치게 됩니다. 오늘날 소위 신자라는 이름으로 사는 사람들 중에서도 형식적으로 교회에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마치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면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을 보고 판단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삼상 16:7: 51:6). 둘째 성직의 상업주의입니다. 미가의 제사장이었다가 단 지파의 제사장으로 고용된 레위인은 본래 자격과 사명감이 없이 떠돌아다니던 자에 불과했습니다. 다만 그는 미가의 필요와 자신의 생계유지를 위해 제사장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했던 그가 이제 보다 좋은 조건을 찾아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뻔합니다. 즉 중심에 올바른 여호와 신앙을 지니지 못했던 그는 오히려 단 지파 전체를 우상숭배에 빠지게 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실은 철저한 소명 의식과 사명감 없이 보다 좋은 조건을 따라 교회를 옮겨 다니는 무자격 삯꾼 목자의 영향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지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셋째 악인의 일시적 형통입니다. 단 지파는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 길이 매우 형통했습니다. 그들은 물적 자원이 매우 풍부했던 라이스 땅을 불과 600명의 군사로 정복할 만큼 쉽게 그 땅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유기하고 계신 것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악한 일을 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해도 때로는 형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 형통함이 곧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에 대한 경고임을 알아차려야 할 것입니다(73:12-30).

 

11: 단 지파 가족 중 육백 명이 병기를 띠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하여

   가족은 지파라는 뜻입니다.(7:17) 단 지파에는 한 가족 곧 수함 가족’(26:42)만이 있었기에 가족지파가 한 가지로 쓰였습니다. 단 지파가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는 64,000이었으나(26:43) 지금은 그 숫자의 100분의 1 밖에 안 되는 600명의 병력이 병기를 들고 라이스로 올라갔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정착지에 그대로 머물러 잇는 사람들을 제외한 숫자일 것입니다. 이 육백 명은 어린이나 부녀가 포함이 안 된 숫자이므로 실제 숫자는 이삼천 명 정도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12: 올라가서 유다 기럇여아림에 진 치니 이러므로 그곳 이름이 오늘까지 마하네단이며 그곳은 기럇여아림 뒤에 있더라.

   기럇여아림숲의 성읍이라는 뜻으로 단 지파의 출발지인 에스다올에서 두세 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시기에 이곳은 기브온 동맹국의 성읍 중 하나였습니다(9:127). 단 지파는 이곳 근처에 진을 치고 그곳 이름을 마하네단단의 진영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이곳은 삼손이 처음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장소이기도 합니다(13:25).

 

13: 무리가 거기서 떠나서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니라.

   단 지파의 사람들은 기럇여아림에 진을 친 후에 다시 미가가 있던 에브라임 산지로 향했습니다. 혹자는 기럇여아림에서의 단 지파의 정착 기간이 꽤 오랫동안 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14: 전에 라이스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정탐꾼들은 미가의 집에 이르러 비로소 전에 있었던 일들을 동족에게 말해 주었습니다(18:5,6). 그들은 미가의 신전에 있던 에봇과 드라빔을 자신들이 취하게 되면 그들의 앞날이 번영하고 라이스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동족을 충동한 것 같습니다. 영혼의 눈이 어두워진 그들은 이제 이 신상들을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삼으려고 했으며 그 신상들로부터 신탁을 받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15: 다섯 사람이 그편으로 향하여 소년 레위 사람의 집 곧 미가의 집에 이르러 문안하고

   미가의 집은 소부락을 이룰 정도로 여러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22). 단 지파의 정탐꾼들은 미가의 집에 속하면서도 거리상 따로 떨어진 레위 사람의 집에 먼저 가서 문안하였습니다. 그것은 레위 사람이 머물고 있는 곳이 곧 미가의 신당으로(17:5), 그곳에서 그들이 원하는 에봇과 드라빔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레위 소년의 신탁을 믿고 그를 데리고 가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16: 단 자손 육백 명은 병기를 띠고 문 입구에 서니라.

   본 절은 마치 강도떼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단 지파의 사람들은 정탐꾼들이 레위인의 집에 들어가 목적을 달성하고 나올 때까지 주변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17: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취할 때에 제사장은 병기를 띤 육백 명과 함께 문 입구에 섰더니

   단 지파의 정탐꾼들이 신당의 우상을 취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말 못하는 목석에 불과한 우상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섬기기 위해 훔쳐내는 것입니다. 그들은 신앙의 우상을 취함으로 이제 우상숭배의 죄와 도적질의 죄를 함께 범하게 된 것입니다. 원문에서는 올라가서(알라: עלה)’라는 말이 서두에 있는데, 이것은 신당이 다락방이나 윗층 건물에 있었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8: 그 다섯 사람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취하여 내매 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문 입구에 서 있던 레위 소년은 정탐꾼들이 에봇과 드라빔을 비롯한 우상들을 가지고 나오는 행위에 대하여 반응하고 있습니다. 소위 제사장으로 불린 레위 소년이 종교적 신념 없이 단지 고용인으로서 제사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정탐꾼들이 훔쳐내는 내용물 곧 신상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주인의 제사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정탐꾼들이 훔쳐내는 내용물 곧 신상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주인의 물건을 행위 자체에 대해서만 도의적인 반응을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19: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에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

   단 지파 사람들이 레위 소년을 유혹합니다. 그들은 소년을 돈과 명예로 유혹했습니다. ‘네 손을 입에 대라아무 말도 하지 말고 조용히 그대로 있으라는 뜻입니다. 단 지파 사람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이 발각되지 않고, 더 이상 일이 확대되어 소란한 일이 없도록 매우 조심하였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20: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 중으로 들어가니라.

   레위 소년의 부패한 본성이 또 다시 드러나고 있습니다. ‘기뻐하다(야타브: יטב)’어떤 일에 대해 더 잘 된 것으로 받아들여 만족하게 여기다.’란 뜻입니다. 이전에 생계를 해결해 준다는 미가의 제안으로 제사장이 된 레위 소년은 이제 명예와 권위까지 약속한 단 지파 사람들의 제안을 듣고 아무 거리낌 없이 그들을 따라 나선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미가가 소중히 여기던 신상들도 자신해서 가지고 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명감과 신앙을 잃은 타락한 성직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백성 중으로 들어가니라’. 단 지파의 백성 가운데 제사장으로 거하게 되는 레위 소년은 이제 단 지파 전체를 우상 숭배와 거짓된 신탁으로 타락의 길을 걷도록 만드는데 앞장서게 됩니다.

 

21: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을 앞에 두고 진행하더니

   어린 아이들(히타프: הטף)’는 어린 아이만이 아니라 어린이처럼 연약한 여자와 가족 집단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가축고대에 가축은 가정의 중요한 재산으로서 취급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축에 해당되는 미크네재산이란 뜻도 함축하고 있습니다. ‘물품(케부다: כבודה)’귀중품으로 번역될 수도 있는데(31:1), ‘존귀’, ‘영광이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것이 방금 훔쳐낸 신상들과 에봇과 드라빔을 가리킨다고도 봅니다. 단 지파는 어린 아이와 가축과 물품을 선두에 두어 미리 행진하게 하고 용사들은 후미를 지키게 했는데, 이것은 미가가 자신들을 뒤에서 좇아 올 것을 미리 예상하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22: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난 때에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미쳐서는

   소부락처럼 구성된 미가의 집에는 이웃 주민들이 함께 미가의 신상을 섬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미가의 신당은 에브라임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단 자손을 따라 미쳐서는미가는 그의 신상이 약탈당하고 제사장이 도망갔음을 알고 최대의 힘을 모아 약탈자들을 추적했습니다. 미가와 함께 단 자손을 추적한 이웃들은 아마 미가의 신당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던 자들로 추측됩니다. 그들은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으로 인해 행군이 지체 된 단 지파를 쉽게 따라 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23: 단 자손을 부르는지라 그들이 낯을 돌이켜 미가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 가지고 왔느냐

   단 지파 사람들은 미가가 따라 온 이유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른 체하며 이 같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은 주로 폭력배들이 즐겨 사용하는 것인데, 우리는 여기서 단 지파 사람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에도 불구하고 수적인 우세함을 믿고 힘으로 미가를 협박하려 함을 알 수 있습니다.

 

24: 미가가 가로되 나의 지은 신들과 제사장을 취하여 갔으니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 하느냐

   미가의 영적 상태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가는 신상들과 에봇과 드라빔을 자신이 만든 자신의 신이라 지칭함으로써 오직 한 하나님만이 계시다는 이스라엘의 정통 신앙에 정면으로 위배된 생각을 드러내었습니다. 이처럼 천지만물과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만을 경배해야 하는 사람이 오히려 자신이 손으로 만든 것을 신이라 부르며 숭배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영적 무지와 어리석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1:18-25)

 

25: 단 자손이 그에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하고

   노한 자들영혼의 쓴맛 있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몹시 불만족하여 화가 난 자를 가리킵니다. 바로 단 지파 자신들입니다. 이처럼 자신들을 노한 자들이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강한 자의 입장에서 미가의 세력을 폭력으로 위협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기와 수적인 힘으로 미가를 협박하고 도적질한 행위를 정당화시켰습니다. 이처럼 사악하고 사리를 분간 못하는 사람들은 의로운 행위를 하라고 충고 받을 때 오히려 화를 내고 대적하여 싸우려고 합니다.

 

26: 단 자손이 자기 길을 행한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미가는 자신의 생명과 가족들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신들을 찾을 요기도 없었고 또 그 신들이 그를 지켜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데 대한 절대적인 신앙도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순순히 신들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미가가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미가의 신앙이 물질적이고 미신적인 복에 급급하였을 뿐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번 일로 우상을 진심으로 버렸다면 그의 손실은 오히려 큰 유익이 되었을 것입니다.

 

27: 단 자손이 미가의 지은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고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불로 그 성읍을 사르되

   단 지파 사람들은 옛날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와 유사한 방법으로 라이스를 정복했습니다(6:4; 8:19; 11:11). 이는 라이스가 시돈과는 거리가 멀고, 동맹국들이 없으며, 또한 그들이 무방비 상태였음을 말해줍니다. 단 지파는 라이스 거민들을 죽이고 그 성읍을 불살랐습니다. 이처럼 단 사람들이 마음 놓고 라이스 거민들을 도륙했다는 사실은 가나안 정복과는 전혀 다른 성격으로 그들의 침략적 패괴함과 타락상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입니다.

 

28: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상거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며

   베드르홉 가까운 골자기는 소바 왕 하닷에셀의 아비의 이름인 르홉에서 유래한 것으로 르홉의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삼하 8:12). 이곳은 간단히 르홉이라고도 불리는데(13:21), 아셀 지파의 변경에 위치했으며, 예루살렘으로부터 최북단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흘러나온 물이 요단강의 북쪽 평원까지 다다랐습니다.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대조한 것처럼(27) 단 지파의 침략적 정복이 부당한 죄악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9: 이스라엘의 소생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더라.

  라이스를 점령한 일부 단 지파 사람들은 비록 들들이 소라 땅에 남아있는 그들의 형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그들은 단 지파의 태생이라는 것을 표시하고자 조상의 이름을 따서 그 성읍 이름을 단 이라고 하였습니다. 단 지파에서 라이스 점령으로 인해 이후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의 영토를 표시할 때에 단에서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라고 하였습니다(20:1).

 

30: 단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려야 했지만, 미가에게서 빼앗아 온 새기 신상을 세워놓고 그들의 모든 성공의 영광을 우상에게 돌렸습니다.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이 요나단은 처음에 미가의 집 제사장으로 활약하다가 나중에 단 지파의 제의를 받고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된 레위 소년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19, 20). 본 절은 그가 모세의 증손자였음을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사로잡히는 날사로잡히는 날이 언제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셋에 의한 유수로 보는 견해(왕하 15:29; 17:6). 둘째 31절을 근거로 블레셋 사람들이 실로에서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아 간 날로 보는 견해(삼상 4:17)가 있는데 많은 학자들은 둘째 견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실로의 회막이 사무엘 때까지만 있었다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이후 곧 북쪽 이스라엘까지 영역을 확정한 다윗시대나 성전 건축이 실현된 솔로몬 시대까지 단의 신당이 존속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가의 신상이 앗수르의 침입 시기까지 계속 단에 존재하였다면 분열왕국 시대에 여로보암이 구태여 그곳에 송아지 우상을 세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실로에 하나님의 집, 곧 성막이 있었다는 언급은 단 지파의 신당이 실로의 하나님께 대한 참된 예배와 대립되었음을(18:1) 암시합니다. 실로가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적 중심지였을 동안에도(삼상 1:3), 단 지파 사람들은 우상숭배를 계속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배교 행위는 사무엘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으나 솔로몬 이후 분열 왕국 시대에 이르러 다시 단은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왕상 12:29). 결국 미가의 우상 숭배는 단 지파 전체로 확산되었고, 단 지파의 배교 행위는 훗날 여로보암 1세가 단에 북왕국의 신당을 세우는 기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단 지파의 신당은 실로에 있는 성도와 대립되어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화합을 깨뜨리는 요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후에 단 지파가 이스라엘 족보에서 사라지게 도니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