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8일 추석 가정 예배
성경: 시편 23편 <내 편이신 여호와 하나님>
찬송: 통일찬송가 341(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344(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453(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우리나라 성도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구라고 하죠. 아무리 읽어도 좋은 주옥같은 말씀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전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편’이시기 때문입니다. 애들 때에는 나쁜 애들을 보면 ‘적’이고 착하고 친하게 지내는 애는 ‘우리 편’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같은 편은 도움을 주고 다른 편은 나에게 해를 끼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항상 흑과 백, 선과 악, 성도와 불신자 이렇게 둘로 갈라져 있습니다. 세상적인 구분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지만 대체로 셋으로 나누죠. 흑, 회색(중간지대), 백입니다. 밝은 쪽, 어두운 쪽, 그리고 그 중간지대를 회색으로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2분법입니다. 신앙에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죽음 뒤에도 천국과 지옥 둘 뿐입니다.
근 몇 년 동안 천국과 지옥을 다녀왔다는 등 하는 간증이 참 많이 나오고 있고, 불을 지핀 사람은 유명교회에 유명한 목사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가 쓴 책 머리말에서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눈치를 챘어야 합니다. 그는 단테의 신곡에 빠져있었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단테는 천주교의 면죄부 시대의 소설가입니다. 즉 단테의 신곡은 소설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옥, 연옥, 천국으로 나누어져서 공로를 많이 쌓으면 지옥에 있는 영혼도 연옥을 거쳐서 천국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가장 큰 공로는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헌금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인이 죽으면 천국으로 가기 쉽고 큰 죄를 지었어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헛소리가 바로 면죄부입니다. 가족이나 친족 혹은 친구 등도 지옥에서 천국으로 보낼 수 있다는 당시 천주교의 영향 속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단테의 신곡입니다.
성경에는 돈으로 천국에 간다는 말이 전혀 없습니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어린이 복음성가에도 있지 않습니까? 힘으로도 못가고 지식으로도 못하고, 주님의 십자가 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 갈 수 없는 곳이 천국입니다. 또한 눅 16장을 보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하여 보여지는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두 곳은 서로 왕래를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지옥은 그 어떤 요청도 허락이 되지 않는 곳입니다.
바울도 자신이 ‘삼층천’(고후 12:2)에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삼층천은 낙원 곧 천국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곳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거짓말이 탄로날까봐? 아닙니다. 천국은 우리에게 아직까지는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을 들었지만, 연약한 자에게 자랑이 될 것 같아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고, 혹 사람들이 자신의 천국에 대한 말을 듣고 ‘지나치게 생각’할까봐 그만 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간증하는 사람들은 한결 같이 자신이 천국에 갔다고 자랑을 합니다. 지옥에도 갔다 왔다고 합니다. 지옥에 가는 중간에 지옥에서 마중을 나온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참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것이 소설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자신이 겸손한 척하면서 하는 말이 자신이 천국에 갔는데 제일 훌륭한 사람부터 줄을 섰는데 자신은 8-9번째 정도 되더라면서 겸손한 척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10 손가락에 들 정도라고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증하는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과 중간 지대에 대해서 다 같이 말을 하기는 하지만 조금씩 다 다릅니다. 통일성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것은 주관성입니다. 객관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성경에서만 그 증거와 답을 찾아야만 합니다.
자 왜 이렇게 오늘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가 하면, 시대가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대는 사이비가 판을 치게 됩니다. 악령이 강하게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짜가 진짜 노릇을 하고, 진짜가 가짜로 전락하는 시대입니다. 말세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핍박을 받습니다. 진실한 성도들이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너만 잘났니 나도 잘났다. 네 믿음만 믿음이냐, 너만 성경을 아느냐 하는 등등 여러 가지로 핍박을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돈이 진리가 되고 권력이 진리가 되고 힘이 진리가 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이사야 5:4)
그러면 진실한 성도가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다윗이 사울에게 핍박을 받을 때 그렇지 않았습니까? 세상 권력을 가진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얼마나 열심을 가졌습니까. 만일 오늘날 성도들에게 다윗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 과연 견뎌낼 수 있었을까요?
다윗은 목숨이 경각지경에 달린 수많은 위기의 상황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내 편이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의 표현이 시편 23편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결국 아무리 악한 원수 마귀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해도 내편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낮의 해도 밤의 달도 캄캄하고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그 하나님께서 바로 나의 하나님이시오,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내 편이 아닌 것 같이 느낄 때가 참 많을 것입니다. 세상의 불공평을 볼 때에,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나쁜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볼 때에,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때, 나는 참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등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하나님이 내 편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내편이시기 때문에 중간 과정에서 더욱 성숙한 믿음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만 바라게 하시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그렇게 하시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어떻게 노래하였습니까?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며’ 이것이 바로 전세역전입니다. 나를 비웃고 조롱하고 핍박한 자는 형벌을 받는데 바로 그 앞에 나는 상을 받습니다. 면류관을 받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집에 영원토록 거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내편으로 만들 수 있나요? 오직 믿음입니다. 단 한 가지의 방법 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하나님을 내편으로 만들고, 내가 하나님의 전에 영원히 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비결입니다.
이 세상의 삶은 성도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육신에 거하기 때문에, 육신의 목구멍은 포도청과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끝없는 욕망과 이 암울한 시대의 불안함 등 그래서 자꾸만 눈앞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그것입니다. 마귀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런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지금은 조금 힘들고 어렵지만 가는 길이 외롭고 쓸쓸할 때도 있지만, 종국에는 하나님께서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자신이 넘치나이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추석 명절은 풍요롭습니다. 거두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봄부터 씨뿌리며, 씨를 뿌릴 때는 나지 아니할까 근심과 걱정이요, 여름에는 비가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 태풍으로 농사를 망칠까 걱정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추수 때가 이르고, 그간의 모든 수고와 괴롬을 다 잊고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처럼 씨를 뿌리는 때부터 거두기까지의 과정에는 참 어려움이 많고 악한 것들이 역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는 이방 종교와 거짓 기독교 무리들인 W.C.C.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등 우리가 하나님을 내편으로 하여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천국에 가기까지 수많은 악한 마귀의 세력이 얼마나 괴롭힙니까? 얼마나 나를 유혹합니까? 혹시 천국에 가지 못할까 두려움이 듭니까? 그러나 내편이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편이 되시고 내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어주셔서 나를 보호시며 천국까지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오직믿음으로 주님의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힘이 들고 어려워도 천국만을 향하여 나아가는 저와 어려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상을 받고, 잔이 넘치는 은총과 사랑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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