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제7장 강해: 아이성 정복 실패와 아골 골짜기
6 장의 여리고성 정복 성공의 기사와 본 장의 처절한 패배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리고는 매우 견고하고 큰 성읍이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적의 대승리를 얻은 반면, 자만에 빠져 인간들만의 힘으로 정복을 시도하다가 우습게 알았던 상대에게 오히려 패배하여 전민족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게 되고 만 것입니다.
1-5절: 아이성 전투의 패배는 아간의 범죄 때문입니다. 정탐꾼들이 보고한 바대로 불과 이삼천 명의 군사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스라엘은 이 전투에서 36명이나 죽임을 당하는 실패를 거두고 말았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여리고 성을 정복한 후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은금과 동철 기구를 여호와의 집 곳간에 저장하였습니다. 따라서 그 물건은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음 내키는 대로 처분할 성격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물건에 대한 소유권이 하나님 앞으로 이전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간은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헤렘:חרם)을 제 것처럼 취함으로써 하나님의 권리를 넘보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어떤 금지 사항을 어김으로 말미암아 죄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행 5:2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신들이 바치겠다고 한 재산의 반을 감출 때에 그것을 죄로 표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것이었지만 바치겠다고 약속한 직후 하나님의 것이 된 것을 빼돌린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 아간의 죄는 ‘이스라엘의 자손’의 죄로 표기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한 조상에서 나온 혈연공동체이며, 한 분 하나님을 섬기는 언약 공동체였기 때문에 각 개인은 한 몸의 지체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한 형제요 지체입니다(골 3:15), 그러므로 성도들은 서로 권면하여 범죄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다른 성도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기쁨을 함께 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니라.’ 는 불이 붙는다는 뜻으로 죄를 파괴하는 힘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은 아간의 범죄를 보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 가운데 있는 죄를 자신들이 스스로 찾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16-26절). 따라서 성도들이 때때로 심한 고통을 당할 때에는 혹시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인해 초래된 결과가 아닌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죄 중에 처해 있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려고 드는 사랑의 매라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2: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편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일러 가로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현재의 ‘베이틴’으로 추정하는데, 가나안 남북의 경계를 이루는 곳입니다. 이곳은 요단 서쪽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교통의 요충지로 본래 명칭은 ‘루스’이나 야곱이 개명을 하였습니다(창 28:19). ‘아이(Ai)'는 ’폐허‘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정탐꾼들을 벧아웬으로 보내어 아이성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아이성은 해발 800미터 정도 되는 험준한 산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3: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 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고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 하므로
수 8:25에 의하면 아이성의 거민은 남녀 도합 만이천명입니다. 여자와 어린 아이와 늙은이를 빼면 싸움터에 나가 싸울 수 있는 군인은 매우 적은 수라고 하겠습니다. 아이성의 정세를 분석한 정탐군들은 여호수아에게 2,3천명만 선발하여 아이성을 정복하도록 보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은 민족적 대업으로서 언제나 총력을 기울여 전투에 임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탐꾼들은 여리고 성의 전투에서 승리한 경험만을 의식하여 안일한 처방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는 신앙적 측면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는 적은 무리로도 능히 어떤 성읍이든지 정복할 수 있으나,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성전(聖戰)에 부르심을 받은 군사들은 그들의 행할 전투를 충실히 감당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4: 백성 중 삼천 명 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아이에서의 이스라엘 참패 원인은 근본적으로 아간의 범죄에 있었지만, 부차적 원인으로 정탐꾼의 처방으로 인한 백성들의 교만과 안일한 태도를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영적 전투를 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지켜야 할 것이며,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당해 열심히 일하되 교만과 무사안일의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5: 아이 사람이 그들의 삼십육 인쯤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와서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스바림’은 ‘산산조각이 나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아이 근처의 채석장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이스라엘은 예상과 달리 36명의 전사자만을 내고 패주하게 되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더 놀라고 두려운 것은 수 3:10의 약속이 중단되고 그들을 돕고 있다고 생각한 하나님의 능력이 사라진 데 있었을 것입니다.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이는 믿음이 없어진 사람들의 마음에는 염려과 걱정과 공포만이 남아 마음을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6-21절은 이스라엘 패배의 고통은 죄로 말미암은 것이므로 백성들이 회개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패배의 원인으로 이스라엘의 범죄를 지적하시고, 그 범죄자를 신적 방법으로 전 백성들 앞에서 색출해 주시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옷을 찢는 것과 머리에 티끌을 올려놓는 것은 모두 고대 근동 지방에서 흔히 있는 애통의 표시입니다. 티끌을 올리는 행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모를 당했을 때에 취해졌습니다. 이런 행위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헬라인과 로마인들 사이에서도 행해졌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극한 슬픔을 당하면 금식하기도 했습니다(신 9:18; 삼상 7:6; 사 20:23). 따라서 여호수아가 이 두 가지 자세를 모두 취한 것은 아이 성 전투에서 뜻하지 않은 패배를 당했음을 물론 36인의 전사자까지 발생한 데 대한 극도의 슬픔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창 37:29, 34; 출 5:22; 삼상 4:12).
7: 여호수아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편을 족하게 여겨 거하였더면 좋을 뻔 하였나이다.
여호수아의 이 기도는 얼핏 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여 불만을 토로한 내용과 거의 비슷합니다(민 14:1-4). 그러나 여호수아의 기도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역한 당시의 백성들의 불신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즉 여호수아의 기도는 불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복되지 못한 아이성이 마땅히 정복되어야 한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로써 하나님과 씨름을 하는 담대한 신앙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시작할 때와 같이 중단하지 마시고 끝까지 수행해 주시도록 간절히 호소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변개치 않는 하나님에 대한 여호수아의 확고한 신이라고 하겠습니다.
8: 주여 이스라엘이 그 대적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이는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서 하는 질문은 아닙니다. 9절과 연관이 되어, 이스라엘 가나안 족속에게 패주한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영광을 가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는 뜻입니다. 여호수아는 지금 전쟁에 대한 패배를 모면할 방도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가나안 족속에 의해 멸시 당하지난 않았을까 하는데 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인의 중요한 자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체면을 더 중요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참 신앙인라면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는 행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9: 가나안 사람과 이 땅 모든 거민이 이를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과의 전투를 통해 자신들이 믿던 신보다 뛰어난 위력을 발휘한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당시 철벽 요새였던 여리고가 힘없이 무너지자 그들은 이스라엘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 성에서 이스라엘이 패했다는 전쟁 속보는 인근의 도시 국가들에게 자신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전열을 재정비하여 이스라엘은 전멸시키기 위해 세차게 공격할 것입니다. 본 절은 그 결과 어쩌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 정착은커녕 목숨조차 보존하지 못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10: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본 절은 여호수아에 대한 여호와의 즉각적인 응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재빨리 반응하신 이유는 그의 기도가 올바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수아는 자신의 평판,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간구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망령되이 불리지 않도록 간구한 것입니다.
11: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겼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패배 원인을 정확히 짚어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을 인도할 지도자가 전쟁의 패인을 명확하게 알아야만 다음 전투에서 승리할 작전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는 소경된 지도자는 결국 양들을 구렁텅이에 몰아넣게 됩니다. 패배 원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수 6:18,19의 명령을 불이행한 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아간의 범죄로 인하여 그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욕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리고 훔친 것을 자기 장막 속에 감추어 둔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바쳐야 하는 물건을 취하므로써 그들 스스로가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13: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의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역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항상 성결이 요구되었습니다(출 19:10; 수 3:5).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파괴하는 범죄 행위에 연류되어 있었기 때문에(11절) 스스로 성결케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14: 아침에 너희는 너희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 뽑히는 지파는 그 족속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족속은 그 가족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가족은 각 남자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며
범죄자가 속한 지파에서 족속으로 그 족속을 구성하는 각 세대로 세대 중에서 남자만으로 좁혀져서 범인을 색출하고 있습니다. ‘뽑히는’ 이는 제비뽑기를 가리킵니다(삼상 14:42; 잠 18:18). 이런 제비뽑기는 목격자가 없는 범죄자를 가리는 데 흔히 사용되었으며(욘 1:7) 사람을 선택하거나 하나님의 계시를 나타내는 방법으로도 사용이 되었습니다(잠 16:33; 행 1:26). 제비뽑기의 구체적인 방법은 알 수가 없습니다.
15: 바친 물건을 가진 자로 뽑힌 자를 불사르되 그와 그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이는 여호와의 연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라 하셨다 하라.
25절에 의하면 돌로 쳐서 죽인 다음 불에 태워야 합니다. 시신을 불태우는 것은 저주의 성격을 지니는 아주 극한 형벌입니다(레 20:14). 범인을 이렇게 처형하도록 지시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고, 또한 그로 인하여 신앙공동체인 이스라엘 전체에게도 누를 끼쳤기 때문입니다. ‘망령된 일’은 어리석고 사악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주로 고의적으로 죄를 범한 것에 쓰어졌는데, 성경에서는 대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합치되지 않는 범죄 행위를 저지른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이 되었습니다(창 34:7; 신 22:21; 삿 19:33).
16: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유다지파는 장자인 르우벤의 범죄로 인하여 그의 장자 명분을 넘겨받았기 때문에(창 49:1-12), 12지파 가운데 그 수효도 많았고(민 1:27), 세력도 강하여 항상 지도적 위치에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가나안에서도 최초로 그리고 가장 좋은 기업을 차지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수 15:1-12).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 가운데 아간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한 죄를 범한 것입니다.
17,18: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하나님 앞에서는 감추인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마 10:26). 그런데도 아간은 끝까지 자신의 죄악을 숨기다가 결국 드러난 것입니다. 사실 그에게는 제비뽑기가 진행되는 중에라도 회개하고 사죄의 은총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하여 양심의 가책이 없었고, 그 마음이 무뎌져 스스로 멸망의 길을 차조하고 만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은총을 베푸시지만 죄인들은 자신의 교만과 정욕으로 인해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멸망을 당하고 만다는 것을 교훈해 줍니다.
19,20: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여차여차히 행하였나이다.
여호수아는 아간을 향하여 ‘내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신실한 부성애의 입장에서 진실을 고백하도록 사랑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간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잘못을 행한 것에 대하여 사실대로 고백을 하면서,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또한 하나님의 영광과 권위를 회복시키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21: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취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아간의 범죄는 두 가지의 성격을 갖습니다. 첫째는 여리고 성에서 탈취한 물건을 전부 불살랐어야 했는데도 외투 한 벌을 취한 죄이고, 둘째 은금과 동철 기구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어야 했는데 감춘 죄입니다. 특히 두 번째 죄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것입니다. 시날산 외투는 고대 바벨론 땅에서 생산되는 물품으로 갖가지의 무늬가 예쁘게 수놓아진 값비싼 것입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아간이 훔친 외투가 금실로 전체를 엮은 왕의 의복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아간의 범죄는 하나님의 명령을 우습게 여긴 태도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아간이 훔친 물건은, 불사르거나 저장했던 물건(수 6:24)의 총액에 비하면 극히 미세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를 돈의 가치로 계산하지 않으십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고 작건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행 5:1-11; 약 2:10; 요일 3:14).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기사와 비슷한 내용으로(창 3:6) 죄를 범한 아간의 심리적 상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는 눈으로 보는 데서 시작되며, 마침내 마음까지도 타락시키고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22-26절은 아간의 처형으로 이스라엘 전 회중이 민족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자세를 가다듬은 사실 등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22: 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를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물건이 그의 장막 안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어떤 사람이 죄를 범했을 때, 그를 고소하기 위하여 최소한 2명 이상의 증인이 필요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수아도 아간의 진술에 의거해 그를 범죄자로 고소하기 위해서는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보냈는데 결과는 아간의 말대로 였습니다.
23: 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놓으니라.
아간의 범죄는 당연히 온 이스라엘 회중에게 알려져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정복되어야 할 지역이 많이 남아 있는 그들에게 아이 성의 참패는 전의를 상실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참패의 직접적인 원인을 그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아간이 훔친 물건은 마땅히 하나님께 바쳐야 했던 것으로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쏟아 부었습니다.
2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율법은 한 사람의 죄를 다른 가족에게까지 전가시키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신 24:16). 따라서 본 절은 아간의 자녀들이 함께 죄를 지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아간의 범죄에 동참했거나 범죄의 사실을 알고도 묵인 방조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아간이 훔친 물건을 장막 안에 감추었다는 점은 이런 추측을 가능하게 합니다. 성도들은 먼저 스스로 죄를 짓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만 가족과 이웃의 죄를 묵인해서도 안 되며, 범죄한 자마다 죄에서 돌이키도록 권면해야 합니다(삼하 12:1-15). ‘아골 골짜기’는 ‘고통의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여리고 부근이었다는 사실 외에는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훗날 아골 골짜기는 선지자들에 의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고 소망과 회복의 상징적 장소로 언급이 되었습니다(사 65:10; 호 2:150.
25: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돌로 치는 형벌은 하나님을 모독한 죄(레 24:10-16), 안식을 범한 죄(민 15:32-35), 우상숭배의 죄(신 13:5-10), 사술이나 요술을 행한 죄(신 18:10) 등에 해당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하였으므로 하나님을 모독한 죄에 해당합니다.
26: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가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돌무더기는 이스라엘이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쌓았습니다(창 31:46-52; 신 13:16; 수 8:28,29; 삼하 18:17,18). 아간의 범죄도 이스라엘이 잊어서는 안 될 영원한 교훈의 표식이었기에 그의 주검 위에 돌무더기를 쌓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판의 채찍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간의 정죄의 형벌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백성들이 성결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대한 범죄를 척결한 후에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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