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제6장 강해: 여리고 성 함락
이스라엘이 건넌 요단강 지역은 가나안의 중부 지역입니다. 이곳은 전략적으로 보면 가나안 중부 지역을 먼저 공격하여 도시국가 체제로 나누어져 있는 가나안 족속들의 세력을 양분하고, 가나안 전국의 주요 전략 거점을 이달 장악을 쉽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계획 소에서 여호수아는 첫 공격 목표를 가나안 중부 지역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여리고로 정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성 공격 전략으로 계시해 주신 내용은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이제 가나안 정복 전쟁의 시발점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전쟁의 승리와 그 이후의 복을 주실 능력이 있으며, 또한 그것은 백성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하고자 하는 의도적 명령입니다.
1-7절: 여리고 성 공격 전략에 관한 하나님의 지시 사항, 8-21절: 여리고 성 함락 과정, 22-27절: 라합과 그 가족에 대한 2장의 약속 이행으로 인한 구원과 여리고 성 재건 금지 명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7절: 1-5장까지는 정복 정착 전쟁을 위한 이스라엘의 사전 준비과정이었던 베 반해, 본장에서부터 11장까지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중부(6-8장)와 남부(9-10장), 북부(11장)를 차례로 정복하는 과정입니다. 본 장은 이스라엘이 첫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여리고 성 정복 사건에 대한 언급입니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여리고 성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이중으로 축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견고하여 섣불리 공격하면 도리어 실해할 위험이 컸다고 합니다. 특히 여리고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고 요단 동편 아모리인의 두 왕을 격파했을 뿐만 아니라(수 2:10,11) 얼마 전에는 요단강을 마른 땅과 같이 건넌 사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성문을 굳게 닫고 철통 방어를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정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 아래서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리고를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음을 분명히 밝히시고, 여리고 성 공략 방법을 지시하셨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
여리고는 오늘날의 ‘텔 에스술탄’이라는 곳으로 일종의 구릉지대입니다. 당시 여리고는 가나안 중앙에 위치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정복을 위해서 반드시 점령해야만 하는 요충지였습니다. ‘종려의 성읍’ ‘향기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성읍의 크기는 약 2만㎡로 그렇게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언덕 위에 성이 세워졌고 성벽이 이중으로, 그것도 외벽은 경사지게 축조되어 있어 외부에서 성벽을 기어오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전해집니다. 이스라엘이 공격해 온다는 소식에 여리고 성문은 굳게 잠겼습니다. 출입하는 자가 없다는 것은 문이 굳게 닫혔다는 것을 더욱 보강해 줍니다. 칼빈은 이에 대하여 여리고 거민이 이스라엘의 기습 공격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여정을 환히 알고 있는 그들로서는 이스라엘에 대항한다는 것은 무모한 것임을 깨닫고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던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대해 심히 떨 정도로 두려워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수 2:9,10).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5:15절과 연결되는 것으로, 여리고가 폐쇄 작전으로 나오자,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작전을 시달하셨습니다. 본 절의 ‘여호와’는 5:14절의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승리의 성취는 아직 미래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것이다.’라는 미래 표현이 되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의 승리를 작정하셨고, 또 이스라엘은 그 결정된 일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므로 ‘이미 그렇게 했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작정은 그 누구도 바꾸거나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만 믿고 순종하는 자는 반드시 승리의 담보를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단의 세력도 결국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과 함께 성도의 신앙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3: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이 말씀은 백성들의 신앙과 인내와 순종을 시험하기 위한 하나님의 전쟁 수행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수단으로 볼 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데도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진정으로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믿는지 시험해 보시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성을 매일 같이 도는 것은 이미 소문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들었던 터라 여리고 주민들의 심리적인 압박을 가중시키는 결과도 초래했을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쟁 수행 방법이 결코 터무니없는 비과학적인 성격의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 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일곱(7)은 신적섭리나 사역과 관련하여 주로 사용되었으며(창 21:18, 30; 출 20:10,11; 왕하 5:10), 보통 ‘완성’ ‘완결’ ‘성취’ 등을 상징합니다. 이 일곱이라는 숫자가 본 절에만 네 번, 본 장에서 열네 번(6, 8, 13, 15, 16절)이나 사용되었다는 것은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과 관련하여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가나안 정복이 단순한 침략전쟁이 아니라 이방의 우상을 철폐하고 저들의 죄악을 척결하기 위한 성전(聖戰)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은 국가 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를 회복하는 하나님의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양각 나팔’은 ‘나팔(쇼파르:שׁופר)’와 ‘뿔’(요벨:יובל)의 합성어입니다. 이것은 보통 성전이나 전쟁 때 사용된 은 나팔(10:1)과는 달리 ‘구부러진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로, 축제를 위해 사람을 불러 모으거나 어떤 사람의 출현을 알리기 위해서 불었습니다(출 19:13; 레 25:9). 따라서 양각 나팔을 부는 것은 군사적인 의미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종교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며(출 19:16, 19; 심하 6;15), 또한 승리의 축제를 위한 전주곡이라 할 것입니다(레 8:6). ‘행할 것이요’ 행하라는 것은 ‘들어 올리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제사장이 언약궤 앞으로 양각 나팔을 가져오라는 의미입니다. 7일간 계속해서 도는 것은 철저한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차기까지 인내하며 순종하라는 것이요, 마지막 제 7일에는 일곱 번을 돌아야 하는 것은 7일이 기간적인 완전을 상징하고 ‘일곱 바퀴’는 양적인 완전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원 사역을 완전히 성취하시기 위해 내정한 기한과 분량이 차기까지 계속 순종하며 각자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고전 4:2).
5: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길게 울려 불어서’ 이는 기쁨의 나팔을 길게 뿜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 나팔 소리 역시 이중적인 역할을 합니다. 빗장까지 걸어 잠근 여리고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소리이지만,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증거입니다(출 19:13).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큰 소리’(테루아:תרועה)는 함성을 뜻하며, 회쳐 부를(루아:רועה)은 귀먹게 할 정도로 소리를 지른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귀먹게 할 정도의 큰 함성을 지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큰 소리는 이미 간담이 녹아있던 여리고 거민들로 하여금 싸울 의사마저 상실하게 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무너져 내리리니‘ 주저앉는다는 뜻입니다. 지진이나 진동 그 밖의 원인으로 성벽의 기초까지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아무리 방비를 철저히 해도 이처럼 철저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창 19:29; 사 14:15)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성벽이 완전히 무너졌으므로 좌우를 보며 망설이지 말고 바로 성 안으로 들어가 공격하라는 뜻입니다. ’올라가다(알라: עלה)‘란 동사는 축제 때 거룩한 곳에 올라가는 의식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닌 축제의 기쁨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더욱이 여리고 성이 언덕 위에 축조되어 있었던 것을 상기한다면 ’올라가라‘는 말은 행동상의 실제적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6,7: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행하라 하고,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 행할지니라.
여호와의 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입니다. 이를 행진 대열의 선두에 세운 것은 여호와와 함께, 여호와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동행하겠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또 백성에게 이르되’는 ‘와이오메루’(ויאמרו) 즉 그들이 이르되‘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직접 하나님의 지시를 전달한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나 유사들을 통하여 전달했음을 의미합니다(수 1:10, 11; 3:2, 3). ’무장한 자‘ 이는 전쟁을 하기 위해 무장을 갖춘 자를 뜻합니다.
8-21절: 여리고 성을 함락 정복시키는 장면입니다. 백성들은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엿새 동안 하루에 한 번씩 성 주위를 돌았고, 제 7일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를 신호로 하여 일제히 함성을 지르자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백성들은 무너져 내린 여리고 성으로 진격하여 모든 여리고 거민들과 각종 가출을 진멸하였습니다. 사실 백성들이 언약궤만을 앞세우고 성 주위를 돈다는 것은 전략상 매우 위험하며, 여리고 사람들이 보기에도 우스운 일일 수 있습니다. 만일 여리고 사람들이 화살로 공격이라도 한다면 필경 백성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백성들이 그처럼 단순히 성을 맴돈다고 하여 그 견고한 여리고 성이 자연히 무너질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했고 그 결과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발적이고 철저한 순종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점을 가르쳐 줍니다. 또 이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결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점도 교훈해 줍니다(마 17:20; 빌 4:13).
8,9: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진행하며 후군은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더라.
3-5절 사이에 빠진 행진 순서에 대한 보충 설명으로 맨 앞에 무장한 군사, 그 다음에 양각 나팔을 부는 일곱 제사장, 그 뒤에 여호와의 언약궤, 맨 뒤에느 이스라엘의 주력 부대 순으로 행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후군(마아세프:מאסף)’은 ‘용사들’이라는 뜻으로, 맨 뒤에 따랐던 사람들은 20세 이상의 군인들이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1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라에 외칠지니라 하고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조용하게 행진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들레지 말며(로 데쉐미우:לא־תשׁמיעו)’는 마음이 들떠 잡담을 하거나 소날을 피우는 행위를 금하라는 뜻으로, 완전한 침묵을 명령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 주위를 도는 동안 침묵이 요구된 것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간주되는 거룩한 나팔 소리를 백성들이 보다 주의 깊게 듣고 따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주장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실천하는 자세가 더 요구되는 것입니다.
11: 여호와의 궤로 성을 한 번 돌게 하니라 무리가 진에 돌아와서 진에서 자니라.
‘자다(룬:לון)’은 어떤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을 묘사한 말로 ‘머물다’ ‘경야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전투에 대비해 언제라도 기동성을 발휘할 수 있게 사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야영지가 어디인지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아마도 여리고에 가까운 길갈 근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12-14: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라.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니라.
하나님의 지시에(3-5절)에 따라 백성들이 6일 동안 똑같은 행동을 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백성들이 하나님과 여호수아의 명령에 얼마나 철저히 순종하고 신뢰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15: 제 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날뿐이었더라.
여기서 ‘새벽에’는 ‘새벽이 밝았을 때’ 혹은 ‘새벽이 되자마자’입니다. 이들이 다른 엿새 동안과는 달리 새벽 일찍이 일어난 것은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도는 시간과 전투를 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여리고 성 규모로 모아 성 주위를 일곱 번 돌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시간 정도는 걸렸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여전한 방식으로’는 이러한 방법에 따라서라는 뜻으로 엿새 동안의 방법과 같은 방법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 관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기고 끝까지 순종한 것입니다.
16: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4절 참고하세요.
17: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바치다’(하람:חרם)는 ‘저주하다, 멸절시키다, 넘겨주다’는 뜻으로 21절에서는 ‘다 멸하되’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즉 이 말은 어떤 물건이나 사람이 완전히 하나님께 바쳐져서 다시 되돌려 받거나 팔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레 27:28, 29). 또한 바쳐진 대상물이나 사람이 완전히 파멸되었음을 뜻하기도 합니다(민 13:16). 여리고를 진멸하라는 명령은 신 7:1-4; 20:16, 17)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느 때와 달리 이번에는 그곳의 모든 가축까지 다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리고가 이스라엘로는 처음으로 함락시킨 가나안 족속의 성이었으므로 그 성의 생물을 모두 진멸함으로써 그 성을 온전히 하나님께 첫 열매로 바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로써 가나안의 모든 땅을 하나님께 받았다는 증표로 삼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라합과 그의 가족은 멸절 대상에서 제외되었는데, 이는 라합이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주었기 때문입니다(25절: 수 2장).
18: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바치다’(하람: 17절 참고) 원문에 더 가깝게 해석을 하면 ‘너희는 멸할 물건으로부터 너희를 보호하라. 너희가 그 멸할 것을 어느 것이라도 너희가 취하면 이스라엘 진이 저주를 받아 화를 당케 될까 두려워하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예언은 아간의 범죄로 현실화 되어 이스라엘은 아이 성 전투에서 패하고 말았습니다(7:24-28). 이는 언약 공동체의 삶을 파기한 한 개인의 불순종과 탐욕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19: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성 안의 모든 물건은 소각했으나(24절), 금이나 은과 같이 불로써 정결케 되어 남아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소유하지 못하도록 모두 여호와의 곳간으로 옮겨졌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곳간’이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여 지은 성막을 가리킵니다(출 25:8, 9). 이처럼 여호와의 곳간에 비축된 금속들은 솔로몬 당시 다른 금속들과 함께 성전 건축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대하 3장)
20, 21: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5절의 성취입니다. 여리고 성은 내부의 분열이나 외부의 침략에 의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저절로 아래쪽으로 무너졌습니다. 고고학의 발굴에 위하면 실제로 B. C. 1500-1400년경에 여리고 성이 파괴된 적이 있었던 것으로 판명이 되었습니다. 성의 파괴 원인은 지진 등과 같은 큰 진동으로 인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성의 무너짐이 전적으로 당신의 권능에 있음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여리고 성의 거민들로 방비를 더욱 튼튼히 하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인간이 보기에 우스꽝스러운 전략을 실행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정된 시각이 되자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비록 지진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초자연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여리고 성 안의 남녀노소와 생물을 모두 죽인 것은 한편으로는 아주 잔인하게 보이지만 이것은 여리고의 극렬한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공의를 실현한 것일 뿐입니다(신 20:16, 17). 이 세상이 오랫동안 하나님을 대적하지만 결국 멸망할 것임은 여리고 성의 무너짐에서 그 모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렘 51:1)
22-25절: 구원 받은 라합과 그 가족에 대한 내용입니다. 여리고 성을 정탐하기 위해 파송된 두 정탐꾼이 위기에 처했을 때 라합은 그들을 구해 주고 또한 선대하여 그들이 이스라엘 진영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한 바가 있습니다(수 2:1-7, 15, 16). 그리하여 그 때 라합은 그 대가로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장차 이스라엘의 여리고 공겨시, 구원을 받으리라는 약속을 얻었습니다(수 3:1-14, 17-21). 본문은 바로 그 약속을 이제 여호수아가 실행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22: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여호수아는 여리고를 정탐했던 두 사람에게 라합과 맹세한 것을(2:12-21)을 이행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여호수아의 신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23: 정탐한 소년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 부모와 그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 진 밖에 두고
‘소년(나아르: נער)’는 ‘어린이, 젊은이’ 등과 같은 뜻이 있지만 그들의 활약상으로 보아 20세 이상의 성인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라합과 그 가족을 이스라엘 진영 밖에 둔 것은 아직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결례를 통하여 외면적, 내면적으로 옛 이방인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경우로는 포로 된 이방 여인이 이스라엘인의 아내가 될 때 정결례를 행하여야 했던 것을 들 수 있습니다(신 21:11-14).
24: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이는 신명기 13:16에 기록된 규례를 시행한 것인데, 심판의 철저함을 다시 한 번 보여줍니다. 이런 불의 심판을 통해 여리고 성은 지상의 기억에서 점차 희미해져 갔습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서(수 2:1) 길갈을 거쳐(수 5:10) 여리고에 도착하는 데에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3절: 수 4:19; 5:10).
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
여호수아는 두 정탐꾼이 라합과 맺은 약속을 잘 지켰습니다. 라합과 그의 가족은 구원을 얻어 이스라엘 선민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방인 선민의 대열에 끼어 들어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모든 민족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예시해 줍니다(롬 1:16). 라합 가족은 이방인의 생활 양식을 청산하기 위해 얼마 동안을 이스라엘 진영 밖에서 지내다가 드디어 언약 백성의 공동체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라합은 유다 족장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음으로 말미암아 구속사의 계보를 이어주는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마 1:5). 이 사건은 율법에서 정죄시하는 기생처럼 비천한 신분일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자비에 의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26: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여리고의 폐허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분명한 증거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다시 건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신 13:16). 이 규례는 아합 때까지 약 500여 년 동안 지켜졌습니다. 그러나 아합 왕 때에 히엘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려다가 본 절의 예언대로 그의 두 아들 아비람과 스굽의 생명을 대가로 치뤘습니다(왕상 16:34).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결코 변하지 않고, 일점일획까지도 그대로 성취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증거 해 주는 일례라고 하겠습니다(마 5:18).
2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이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여 형통케 하리라는 약속(수 1:1-9)의 실현입니다. 철통 방어를 자랑하던 여리고 성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일순간에 무너진 것은 그 일대에 하나님의 성호는 물론 여호수아의 이름까지도 널리 퍼지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들어 사용하시는 자는 높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장중에 온전히 사로잡혀 하나님과 동행동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앞날을 형통케 열어주시고 또한 그 이름이 별처럼 빛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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