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제4장: 요단 도하 완료 및 기념비 건립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된 가나안 땅에 진입하기 위하여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이 앞 장에 이어 계속해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요단강은 가나안 정복에 있어서 전략적으로 매주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요단강은 가나안 땅의 동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천연적 요새로서, 가나안 족속의 편에서 보면 외부의 침략을 봉쇄할 수 있는 천연적 방벽이며, 이스라엘 편에서 보면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의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는 군사적, 지정학적 요충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 서의 초점은 요단강 도하를 가나안 정복을 위한 전략적 측면에서 기록하기보다는 오히려 영적이며 종교적 측면을 더욱 강조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장에서 보듯이 요단강 도하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 행동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본 장에서는 그 같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사건을 자손 대대로 기념하고 교훈 삼도록 하는 데 강조점을 두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여호와의 법궤가 요단강 가운데 서 있는 동안 요단강이 갈라져 있는 기적이 계속됨으로써 이스라엘 전 회중이 무사히 요단강을 건너게 되고, 끝으로 여호와의 법궤도 무사히 건너서 가나안 본토에서는 최초로 길갈에 진을 치게 됨으로써 요단강 도하가 종료되었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두 열두 돌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직접 지시하신 것으로써 놀라운 기적은 이스라엘의 구속을 위한 것이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때와 동일하게 오늘날에도 우리 성도들의 구원을 위하여 놀라운 기적과 이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1-9절: 요단강 도하를 끝낸 후 기념비를 세운 것의 기록입니다. 요단강 바닥에서 모두 24개의 돌을 취하여 12개의 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입성한 후 첫 숙영지인 길갈에 기념비로 세우고, 또 12개의 돌은 요단 강 한 가운데 기념비로 세웠습니다.
1: 온 백성이 요단 건너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요단 강 동편에 땅을 분배 받은 르우벤 지파,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 속하는 사람들 중에 그들의 형제 지파를 돕기 위해 요단을 건넌 4만 여 명의 용사를 포함하여 나머지 9지파 반에 해당하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1절은 3장 전체를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장에서는 요단강을 건너는 부분에 전체를 할애하였다면, 4장에서는 기념비를 세우는 부분에 할애되었습니다. 4장 1절에서는 3장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여 3,4장을 연계하는 동시에 4장의 내용이 새로운 사실에 주목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백성의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두 사람을 택하고
이들은 이미 3:12에서 택함을 받았습니다. 이들의 임무는 강 가운데 제사장들이 서 있던 곳에서 12개의 돌을 취하여 기념비를 세우는 데 있었습니다.
3: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둘을 취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의 유숙할 그곳에 두라 하라.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 섰던 그곳에 기념비를 세운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후손들에게 요단강에서의 이적을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게 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돌을 취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가 있는 그곳을 잊지 말고 늘 기억하라는 암묵적인 표현입니다. 기념비는 이스라엘 각 지파의 대표가 각각 1개의 돌을 취했기 때문에 1개의 돌로 세워졌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통일성을 보여주고, 그들의 단결을 고무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기념비를 볼 때마다 그들이 한 조상에서 난 한 민족임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며, 그들의 분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예비한 그 열 두 사람을 불러서
예비하다는 말은 준비하다, 확정하다는 뜻이 있는데, 여호수아가 이들을 불렀다는 사실에서 이들은 이미 요단 도하 이전에 선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들어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취하여 어깨에 메라.
이는 기념비를 세우기 위하여 각 사람이 취한 돌이 어께에 메어 운반할 수 있는 크기였음을 암시해 줍니다.
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이 무슨 뜻이뇨 하거든
표징이란 ‘기념물, 증거물’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계셔서 요단과 같은 거대한 장애물도 갈라 주심으로 백성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요단 가운데서 돌 12개를 취해 기념비를 세움으로 후대에 전할 뿐 아니라 증표로 삼으로는 뜻입니다.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말은 출애굽 사건과 관련해서도 사용된 것으로(출 12:26; 신 6:20), 자녀교육, 혹은 신앙 전승을 위하여 이스라엘 가정이 지켜야 했던 규례의 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의 전승을 위해 유월절 기념행사 때마다 부자(父子)가 문답하는 형식으로 유월절의 참의미를 되새기고, 또한 이스라엘에 해방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회상하며 감사하였다고 합니다. 아들은 신앙의 도리를 묻고, 아버지는 출애굽과 광야 생활, 그리고 가나안 정복 정착 등 모든 역사 속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을 그대로 증거한 것입니다. 그 같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요단강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이적 또한 빠질 수 없는 신앙 전승 내용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교육의 방법과 도구는 변한다 할지라도 그 내용과 중심 사상은 계속 유지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
‘기념(지카론: זכרון)’이라는 말은 과거에 일어났던 한 사건을 생각나게 한다는 의미로 쓰여 출 12:14의 유월절이 ‘출애굽’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날이었듯이, 이 돌 기념비는 요단강의 기적을 상기시큰 기념물이 된다는 뜻입니다.
8: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의 명한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서 돌 열둘을 취하여 자기들의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 두었더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말씀하시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도 빗나감 없이 온전히 순종하였음을 나타내줍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유랑 생활을 통해 체험한 신앙의 유산이었으며, 그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얼마나 간절히 사모했는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뽑힌 12명은 제사장이 서 있던 요단강 가운데서 돌 열둘을 취하여 그들의 진영이었던 길갈에 옮겨 놓았습니다.
9: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 있더라.
지금까지 하나님의 명령에만 따라 행동하던 여호수아가 본 절에서는 자신의 생각으로 직접 행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즉 길갈에 세우기 위한 기념비의 재료로 12개의 돌을 취하게 하는 동시에, 다시 흐르게 될 요단강 바닥에 12개의 돌을 세운 것입니다. 이는 길갈에 세울 기념비 외에도, 법궤를 메고 섰던 제사장들의 위치를 알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언약의 확증과 전통과 보전을 위해 길갈에 세워진 기념비와 함께 이중 표징 행위로서 사건의 확실성과 중대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학자 중에는 떠내려갈 요단강 바닥에 세우는 것은 그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칼빈은 그들의 마음속에 기념비를 세운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두었을 것이 틀림없다고 말합니다. ‘오늘까지’ 이 표현은 여호수아서에 12번 이상 기록된 것으로, 여호수아가 본서를 기록한 시기, 즉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이 거의 마무리 되고 여호수아 자신도 남은 생애가 얼마 남지 않은 때를 말합니다.
10-18절: 요단강 도하의 재 언급으로 당시 광경을 보충 설명하고 있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모든 백성들이 요단강을 다 건너기까지 강 한 가운데 계속 서 있었던 사실과 백서들 앞서 르우벤과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용사들이 먼저 강을 건너 사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요단 도하 사건의 주역인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존귀케 하신 사실 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10: 궤를 멘 제사장들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이르게 하신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한 일이 다 마치기까지 요단 가운데 섰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지난 날 므리바에서의 불순종 사건(민 32:16-32: 신 3:18-20)으로 인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인 가나안으로 백성들을 인도할 것을 지시하였습니다(신 1:38; 3:28; 31:3).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과 함께 하신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도 함께 하실 것이라고 격려했습니다.(신 31:7) 본 절은 바로 이 일을 의미합니다. ‘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강바닥에 굳게 서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을 빠르게 건너갔습니다. 이들이 왜 강을 서둘러 건넜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언약궤를 메고 있는 제사장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1: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백성의 목전에서 건넜으며
백성들이 목도하는 가운데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강을 건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15-18절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12,13: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 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사만 명 가량이라.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서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
10,11절의 보충 기사 격으로,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할당된 땅은 요단 동편입니다(수 1:12-15). 따라서 그들은 요단강을 건널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용사 중 일부가 무장하고 요단을 건너 이스라엘 본 지영을 앞서 간 것은 모세와의 약속, 즉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동편을 차지하는 대신 요단 서편 땅 정복 시 선봉에 서서 싸운 다는 약속을(민 32:16-32; 신 3:18-20) 지켜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를 도와 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 용사의 수가 약 11만 명이므로 4만 명은 약 1/3에 해당합니다. ‘여리고 평지’(아르보트:ערבות)는 사막 혹은 개간하지 않은 땅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요단을 건넌 이스라엘 선봉대가 진 친 곳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입니다. 이곳은 요단 강 서쪽에 위치한 초원 지대인 ‘아라바’나 ‘골’을 가리킨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입니다. 이곳은 여리고 성 근교 저지대로서 비스듬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걸ㅇ서 약 3시간 반이나 4시간 정도가 걸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14: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의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 같이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요단을 건너기 전에 하신 약속의 성취입니다.(수 3:7,8) ‘크게 하다’(가달: גדל)는 ‘명예롭게 하다, 자랑스럽게 하다.’는 뜻으로 여호수아가 요단 강 도하 사건을 통하여 모세의 후계자로서 지도자적 권위를 확고하게 담보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호수아 개인의 명예나 영달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즉 강력한 지도력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전쟁 수행에 가장 필수적인 것 중의 하나였기에 하나님은 특별한 사건을 통하여 그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높이신 것입니다. ‘그의 생존한 날 동안에’ 여호수아가 살아있는 날 동안이라는 의미로, 여호수아는 후에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딤낫세라를 분배 받았고(수 19:50), 150세에 죽어 이곳에 매장이 되었습니다.(수 24:30)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 같이’ 수 1:5에서 하신 말씀처럼 모세에 이어 이스라엘을 이끌 공식적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다’(야레: ירא)는 경외심으로 인해 나오는 두려움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15-1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증거궤를 멘 제사장들을 명하여 요단에서 올라오게 하라 하신지라.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요단에서 올라오라 하매
‘오르다’(알라:)는 ‘높은 곳으로 오르다’는 뜻으로 당시 요단 강 도하 장면을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육지보다 얕은 강바닥에 서 있었으므로 요단 서편 강둑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제사장들이 여호수아의 명령이 있기까지 아직도 요단강 바닥에 있었던 것은 그들이 임의로 행동하지 않고 철저히 명령에 따라 순종했음을 보여줍니다.
18: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 여전히 언덕에 넘쳤더라.
‘육지’(하라바: חרבה)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넜던 요단 강 속의 ‘마른 땅’(수 3:17)과는 구별되는 단단한 땅을 의미합니다. 또한 ‘밟다’(나타크:)는 ‘뽑다, 들어 올리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서 있던 강바닥이 비록 ‘마른 땅’으로 묘사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물기가 빠진 ‘부드러운 땅’을 의미한다는 것을 암시해 줄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이 지금 발걸음을 부드러운 땅에서 굳은 땅으로 옮기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발을 요단 동편 물가에 들여놓자마다 물의 흐름이 멈추고, 그들이 다시 요단 서편 육지를 밟았을 때 물이 원상태대로 흘렀다고 하는 것은, 물의 흐름을 멈추게 한 것이 ‘언약궤’로 표상되는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요단강 도하 사건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다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 ‘도로’(슈브: שׁוב )는 ‘돌이키다’, ‘제 곳으로 가다.’는 뜻이 있습니다. 또한 ‘흘러’(얄라크: ילך)는 ‘가다’(to go)라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요단 강물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것은 자연의 원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언덕에 넘쳤더라.’ ‘여전히’(키트몰 쉴숌: כתמל־שׁלשׁום)는 ‘이전’(before)이라는 뜻의 ‘몰’(מול)과 숫자 3을 가리키는 ‘솰로쉬’(שׁלשׁ)가 합쳐져서 즉 3일전 또는 그저께를 나타내는 합성어 있습니다. 이것은 요단강의 지금의 모습이 이스라엘이 강을 건너기 3일 전의 모습과 똑같다는 뜻입니다.
19-24절: 요단 강 도하를 무사히 끝낸 백성들이 길갈에 진을 친 후 요단강에서 취한 12개의 돌로 기념비를 세우고 있습니다. 이때는 출애굽 제41년 1월 14일로,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난 지 어언 40년이 흐른 때입니다. 애굽의 라암셋에서 길갈 까지는 약 보름 거리에 불과하지만,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40년 동안 방황한 끝에 비로소 이곳에 당도하게 된 것입니다.(민 14:34)
19: 정월 십 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서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진 치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것은 첫째 달 10일인데, 이 날은 40년 전에 이스라엘이 유월절 어린 양을 성별하여 출애굽을 준비한 날입니다(출 12:3). 저자가 이와 같이 정확한 날을 기술함으로써 유월절을 상기시킨 것은 출애굽과 요단강 도하 사건을 의도적으로 결부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월에 해당하는 히브리 월력은 ‘아빕월’로 오늘날 태양력으로 3,4월에 해당합니다. ‘아빕’은 ‘푸른 잎이 돋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이 이미 거의 다 익어 추수할 때가 가까워옴에도 여전히 푸른 색깔을 띠는 보리에서 유래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모맥 거두는 시기’라는 기사(수 3:15)에 의해 더욱 확실시 됩니다. 한편 이 아빕월은 베벨론 포로 이후에 고대 파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새 날이라는 뜻의 ‘니산월’(민 2:1; 에 3:7)로 개칭이 되었습니다. ‘길갈’은 ‘굴리다, 옮기다’는 뜻의 ‘갈랄(גלל)’에서 파생된 지명으로, 이스라엘이 이곳에서 할례를 행한 후에 붙여졌습니다.(수 5:9). 한편 이곳은 요단강으로부터 약 8km 정도 떨어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여호수아가 이곳에 진을 치고 가나안 전복의 교두보로 삼았습니다. 이곳은 훗날 정치, 군사, 종교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습니다(삿 2:1; 삼상 11:14,15; 삼하 19:15).
20: 여호수아가 그 요단에서 가져 온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열두 돌을 세워 기념하게 하신 이유는 이때 뿐 아니라, 오는 세대에게 기적을 통하여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운 이유는 요단강을 건너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성읍이었고, 요단강 도하 후 최초로 유숙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21,22: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가로되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현대와 같이 체계적인 학교 교육제도가 생기기 전인 고대 사회에서는 가정에서의 교육이 참으로 중요했습니다. 특히 유대 사회에서의 가정교육은 매우 엄격했으며 중시되었습니다(신 6:7-9, 20-25). 이것은 자녀들이 가정에서 부모를 통하여 여호와 신앙을 전수받고 또한 여호와께서도 가정을 통하여 구속사의 기초를 놓으셨음을 보여줍니다.
2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홍해 도하 사건과 요단 도하 사건은 공히 같은 공통점을 갖습니다. 즉 첫 번째는 그 사건의 백성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과 역사에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이적의 목적이 세상 열방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서포하고,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출 14:4,18,31; 신 3:24; 수 4:24; 시 89:13).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는 동일한 분임을 보여주며 당신의 백성에 대한 사랑이 영원함을 보여줍니다.
24: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땅’(에레츠:ארץ)는 ‘그 땅’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땅의 모든 백성’은 가나안 거민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홍해를 가르신 일이나, 요단 강물의 흐름을 멈추게 하신 사건은 당시 근동의 모든 지역에 하나님의 능력을 전파해 주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때문에 본 절의 의미를 온 땅의 열방, 즉 온 세상 사람으로 해석해 무방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에서 ‘손’(야드:יד)은 ‘능력’ ‘힘’을 상징하는데(신 8:17), 특히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과 함께 사용될 때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권능을 의미합니다(대상 29:12; 시 89:13; 사 59:1). 한편 하나님께서 친히 손을 들어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신 예는 출애굽 사건(출 3:3-16)과 함께 요단 도하 사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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