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여호수아 제 5장 강해: 할례 시행 및 유월절 준수

chukang 2013. 7. 13. 21:28

 

첨부파일 여호수아 제5장 강해.hwp

 

여호수아 제5장: 할례 시행 및 유월절 준수

 

  본 장은 요단강 도하와 가나안 입성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 1-5장 중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다음 제6장부터는 본격적인 정복 전쟁이 개시됩니다. 정복전쟁을 위한 본영(本營)을 길갈에 설치한 일을 중심으로 그 내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요단강 도하로 말미암아 초긴장 상태에 빠진 가나안 족속들과 대치한 상황 속에서 시행 한 할례 및 유월절 준수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인 동시에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겠다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민족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1절: 할례 시행 및 가나안에서의 첫 유월절을 준수하는 내용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사건은 가나안 족속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요단 강물을 멈추고 강바닥을 마른땅과 같이 건넌 소식을 들은 가나안 족속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기사에 대한 소문을 듣고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기생 라합이 정탐꾼들에게 말한 내용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증명합니다.(수 2:9-11) 이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들에 대해서는 그 누구든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약할지라도 권능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 열국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줄로 믿습니다.

 

1: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은 요단 강 서쪽에 거주했던 모든 가나안 족을(수 3:10) 대표적으로 지칭합니다. ‘아모리(אמרי)’는 ‘높은, 고상한’ 뜻으로 아모리 족속은 주로 산지에 거주한 자들이었으며(민 13:29; 수 11:3), ‘굽은 자’라는 뜻을 가진 ‘가나안인’(창 9:25)들은 주로 평지(지중해 해변)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모리인들은 신장이 거대해서(수 10:5)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고, 가나안 정복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갖게도 했습니다(민 13:32-14:4). ‘요단 서편’은 문자적으로 ‘요단 건너 바다 쪽’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 표현은 ‘해 돋는 편’(수 1:15)으로 표현되는 요단 동편과 구별하여 수 2:10에 나타난 ‘시혼’과 ‘옥’이 통치하던 아모리 사람과 본 절의 아모리 족속이 다름을 밝혀주기 위함인 것으로 보입니다.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더라.’ ‘녹았다(마사스: מסס)’는 말은 공포로 인해 ‘약해지다’ ‘황폐해 지다’는 뜻으로 ‘마음이 녹았다.’는 것은 더 이상 절망적일 수 없을 정도의 심적 상태를 나타냅니다. 또한 ‘정신을 잃었더라.’를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호흡이 멈추었다.’ 또는 ‘호흡을 빼앗기다.’는 뜻으로, 그들을 압도했던 극단적인 놀라움이나 두려움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동안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적(수 2:10)으로 인하여 매우 큰 심적 고통을 느끼던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의 요단 도하 사건 이후에는 아주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음을 보여줍니다.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요단 강 도하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갈에 장막을 쳤고, 가나안 족속들은 그로 인해 낙담하였을 때입니다.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것은 ‘돌칼을 만들어’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추림(צרם)’이라는 단어는 ‘초르(צר:출 4:25)의 복수형으로 ’돌칼‘이라는 뜻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청동기와 철기의 혼합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돌을 사용해서 할례를 행하도록 한 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에 쇠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율법에 충실하기 위함입니다(출 20:25; 신 27:5; 수 8:31).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하례를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의미가 강하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다시 할례를 행하라.‘ ’행하라(슈브:שׁוב)‘는 ’향하고 있던 쪽에서 반대쪽으로 돌리다.‘(turn around)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이미 받은 사람이 다시 한 번 더 할례를 받으라는 뜻이 아니라 이전에 행해왔던 할례 행위를 다시 행하라는 뜻입니다. 출애굽 당시 모든 백성들은 율법에 따라 할례를 행했지만,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들은 모두 죽고 그들의 2세는 할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가나안에 도착한 출애굽 2세대에게는 ’이전 조상과 같이 너희도 다시금 할례를 받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진 것입니다. 할례는 남자 성기의 표피 맨 끝 부분을 잘라내어 포경을 제거하는 수술로, 율법에는 남아가 태어난 지 8일 만에 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창 17:9-14).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례를 행하니라.

  ‘할례산’은 문자적으로 ‘양피의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이 용어의 유래에 관하여 세 가지의 견해가 있습니다. ① 단순히 할례를 베푸는 산을 뜻하는 일반명사로 보는 것 ② 언덕을 뜻하는 히브리어 ‘기브앗’과 할례를 뜻하는 히브리어 ‘하아랄롯’의 합성어로 ‘할례의 언덕’, 곧 양피를 묻은 지역으로 보는 것 ③ 할례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기브앗 하아랄롯’ 전체를, 일종의 지명을 뜻하는 고유 명사로 보는 것입니다. 한글 개역 성경에 의하면 ①과 ②가 유력하나 ‘기브앗’이라는 지방이 아이성 근처 (예루살렘 북쪽 약 6km 지점)에 있는 점과 관련해서 볼 때에 ③의 견해도 무방한 것으로 보입니다.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죽었는데

  이스라엘 남자들은 20세가 되어 성인이 될 때에야 비로소 한 인격체 및 책임 있는 인간으로 대접을 받았으며, 이스라엘 성원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이 때부터 가족을 보호할 책임과 병역의 의무를 감당했습니다(민 1:2,3) ‘광야 노중에서 죽었는데’ 출애굽 제2년,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불신앙 사건으로 인해 출애굽 1세대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이후 38년 동안 광야 노정에서 모두 죽고 만 일을 가리킵니다. 당시 모세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12정탐꾼을 파송하였습니다. 이 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은 가나안 정복이 불가능하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에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모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중도에서 죽고 말 것이라는 징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역사상 그 일은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오직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광야 생활 도중에 태어난 백성들은 할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여행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린 데에 근본 이유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배교로 아브라함과 하신 약속을 무효화시키셨고(민 14:34,35), 그에 따라 언약의 표징이었던 할례(창 17:11)가 38년간 중단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마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로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 행하였더니

  이 구절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를 대적하여 일으켰던 패역한 모습을 잘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비유하는 것은 비옥하고 숲이 있는 등 의 윤택한 모습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곳은 풍요의 땅이 될 수 있다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가나안을 출애굽 1세대는 그들의 패역으로 인하여 볼 수 없게 되고 광야 40년 생활 동안 모두 멸절되고 말았습니다.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치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여기에서 ‘대를 잇게’ 이 말은 ‘대신하여 세운 이 자손’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배척한 출애굽 1세대를 모두 광야에서 죽게 하심으로 그들을 징벌하시고, 이제 출애굽 당시 20세 미만의 자손들과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새 세대를 세워 가나안 땅의 주인으로 삼고자 그 징표로 할례를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할례 의식은 하나님의 백성 된 외적 증거요,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한 표일 뿐만 아니라 정욕 제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할례가 없었다는 것은 곧 하나님 없는 백성, 또는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지 못한 백성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언약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할례를 행해야만 하였습니다.

 

8: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할례를 받은 남자의 수는 대체적으로 70만 명 가량으로 추정합니다. 이는 두 번째 인구 조사를 근거로 합니다(민 26:51). 즉 인구 조사 당시 20세 이상의 남자는 601,730명이었습니다. 따라서 20세 이하를 합한 남자의 수를 최소 약 100만 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데스에서의 사건 당시 20세 미만이었던 남자들은 이미 할례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5절) 그들을 약 30만 명으로 본다면 할례 대상자는 약 70만 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할례 받은 30만 명이 70만 명에게 할례를 실행했을 경우, 그것은 하루 만에 충분히 행해질 수 있었을 것이며, 나흘 뒤에 잇을 유월절 기념행사를 치르기에 아무런 무리가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할례를 받은 후 아물기까지는 약 3, 4일 정도 조용히 집 안에서 기다렸습니다. 3일 째 되는 날에 최고의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창 34:25).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애굽의 수치’는 정확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하여는 3가지의 견해가 있습니다. ①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의 과거 신분 ②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께 대한 죄와 불신으로 인해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애굽 인들이 조롱하고 비난한 것 ③ 위의 두 견해를 모두 내표하는 견해 등이 있습니다. 백성들이 길갈에서 할례를 행한 후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자세를 회복하고, 이후 더 이상 방황치 않게 된 점에 비추어 두 번째 견해가 근접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는 위의 모든 견해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길갈’(גלגל)은 수레바퀴라는 뜻으로, 구르다, 옮긴다는 뜻에서 파생했습니다. 따라서 길갈은 수치의 해소, 또는 불행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합니다. 신 11:30절에도 이미 길갈이라는 명칭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에 이스라엘 백성의 할례 후에 붙여진 것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동기에서 ‘길갈’을 재차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0-12절: 길갈에서의 유월절 준수에 대한 내용입니다. 길갈에 진을 친 백성들이 할례를 시행한 데 이어 유월절을 지키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0: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 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저녁에는’(바이레브 베아레보트: בערב בערבות)라는 말은 ‘황혼이 지는 무렵’이란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날 해 질 때부터 다음날 해 질 때까지를 하루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십사일 저녁이란 율법에 기록된 대로 아빕월 14일 저녁부터 유월절로 하룻밤을 지키도록 되어 있던 날을 말합니다. 그 다음날부터 시작하여 21일 저녁까지는 무교절로 지켰습니다(출 12:6, 18; 레 23:5). 여리고 평지에서 지켜진 유월절은 이스라엘 역사상 세 번째로 지켜진 것입니다. 첫 번째는 출애굽 직전(출 12:3-38)에 지켰고, 두 번째는 시내 광야(민 9:1-5)에서 지켰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이르는 38년 동안 유월절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 유월절 행사가 중단된 이유에 대해서는 ① 무할례자의 유월절 참여 금지 규정 때문이라는 것(출 12:48) ② 유월절이 가나안에서 지킬 예식이라는 점(출 12:25), ③ 시내 산에서의 유월절은 특별한 명령으로 준수되었다는 점, ④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동안 희생과 소제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아모스 선지자의 말(암 5:25), ⑤ 광야 기간 동안은 유월절 빵을 먹을 만한 밀가루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점등입니다.

 

11: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소산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니

  유월절이 아빕월(니산월, 태양력 3, 4월) 14일이므로 그 다음날인 15일을 말합니다. 15일부터 칠 일 동안은 무교절이 이어집니다(렘 3:6).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교절 첫날부터 ‘그 땅 소산’을 먹었습니다. 여기에서 ‘소산’(아보르: עבור)은 햇곡식보다는 대개 ‘묵은 곡식’을 뜻합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동편을 정복했을 때(신 2,3장) 그곳 곳간에 쌓인 곡식을 탈취하여 간직해 오다가 이 날에 먹은 것으로 추정합니다(칼빈, 메튜 헨리). 그러나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이른 때가 팔레스틴의 보리 추수 때였음을 짐작해 볼 때에(수 3:15), 그 땅의 소산은 길갈 들판에 자라던 보리를 뜻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성이 있습니다. 뒤에 나오는 볶은 곡식이라는 말과도 잘 부합이 되는데, 볶은 곡식은 볶은 이삭을 나중에 비벼서 알곡을 가려낸 것으로, 아랍인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도 행해지고 있는 풍습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레 2:14; 삼상 17:7; 삼하 17:28).

 

12: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40년 동안 먹었던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주신 양식입니다(출 16:14,15). 이것이 가나안 땅에서 난 소산으로 무교병을 만들어 먹자 더 이상 내리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는 땅의 소산을 먹게 된 이스라엘에게는 더 이상 하늘의 양식을 내려 줄 필요가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만나가 우연적이거나 자연 현상에 의해서 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하신 계획과 이적으로 내렸다는 것을 증거 해 줍니다. 그리고 이는 자연적인 방법, 즉 노동으로 식량을 얻을 수 있을 때는 초자연적인 방법에 의해 식량을 얻으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도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13-15절: 여호수아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군대 장관에 대한 내용입니다.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한 말은 40여 년 전에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을 당시 들은 말과 같습니다(출 3:5).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웠을 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이스라엘이 여리고에 도착했을 때에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나타났다는 것은, 이제 곧 전개 될 가나안 정복 전쟁이 단순한 민족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셔서 친히 싸워주실 성전(聖戰)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수 1:2-4). 여호수아가 본 한 사람은 여호와의 군대 장관인데, 여호수아가 환상을 본 것입니다. 이 군대 장관이 칼을 빼어들고 있는 모습은 전쟁과 관련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즉 가나안 정복의 합법성과 전투를 앞둔 여호수아를 격려하는 이중적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겠습니다.

 

14: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일반적으로 성경에 나타난 ‘여호와의 군대’는 하늘의 군대(왕상 22:19; 시 103:21; 사 8:2)를 가리킵니다. 여호와의 군대 장관은 여호와의 사자와 동일시되며 제2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보거나(창 16:7; 18:1; 32:24), 또는 천사장으로 봅니다. 일반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로 봅니다. 가나안 정복해야 하는 성전을 앞두고 나타난 여호와의 군대 장관 앞에서 여호수아는 엎드려 경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여호수아의 신앙은 철저했다고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결코 전쟁을 승리할 수 없음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5: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이 표현은 출 3:5에서 모세에게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합니다. ‘신’은 거룩과 상반되는 세상의 죄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여호수아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시에 신을 벗어야 했던 것은 당연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깨끗케 하신 후에 은혜를 내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