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제3장 강해 - 요단강을 건너다
이스라엘은 드디어 출애굽 40년을 마감하고 대망의 가나안 땅에 진입하기 위하여 최후의 관문인 요단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요단강 도하 개시에 앞서 이스라엘은 그 준비 과정을 이미 끝마쳤습니다. 요단강을 건넌 후에 공격해야 할 첫 번째 대상으로 여리고 성이 정해졌습니다. 모든 정보도 제2장에서 언급이 되었습니다.
1-6절: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가에 집결하여 모든 준비를 갖춘 후에도 3일을 더 유하면서 영육의 성결을 재점검하는 장면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로 하여금 언약궤를 맨 제사장만 바라보고 그 뒤를 좇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바로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것인즉 오직 그 뒤만 따르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성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을 건너기 전에 몸과 마음을 씻어 깨끗하게 해야 했습니다.
1;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서는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서 유숙하니라.
여호수아는 여리고 정탐꾼이 돌아온 다음날 일찍부터 요단을 건너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아침에’(밥보케르: בבקר)는 날이 샐 무려이나 그 이전을 뜻합니다. ‘일어나다’(솨캄: שׁכם)는 그 자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을 뜻하므로, 여호수아의 행동 시기가 ‘이른 아침’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처럼 ‘아침에’와 ‘일찍이’가 자주 병행하여 기록되었습니다(창 22:2,3; 28:18; 삼상 1:19).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수 6:12;7:16;8:10). 이는 그가 안일함을 좋아하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매우 즐겨했으며, 그 맡겨진 일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앞서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었음도 시사해줍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민족은 아침 일찍 싯딤을 출발하여 요단 강 가에 이르렀습니다. 요단 강 가에서 다시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하여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2: 삼일 후에 유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삼일 후는 싯딤에서 출발한 때로부터 3일째를 말합니다. 요단을 건넌 때는 아빕월 10일이므로(수 4:19) 정월 8일에 싯딤에서 출발하여 12km 떨어진 요단 강 가에 도착하여 진을 치고 그날 밤부터 요단을 건너기까지 유숙했습니다. 이 기간에 이스라엘 민족들은 모두 가나안 입성에 필요한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3일째 되던 날 유사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을 전달받기 위해 모여야 했고, 또 그 명령을 백성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두루 돌아다녀야만 했습니다. 이는 여호수아와 유사들과 백성들이 모두 합심 단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3: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제사장은 레위 지파 중에서도 오직 아론의 후손들에게만 주어진 직분입니다. 그리고 레위인들은 성전 봉사를 담당했습니다. 언약궤를 메는 직분은 고핫 자손의 몫이었지만(민 4:4-15), 이 경우에는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었습니다. 3일 동안 기다리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세한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언약궤를 제사장이 메고 출발하면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이제 지난 40년 동안 함께 하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언약궤를 바라보고 그 뒤를 좇으라고 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므로 그 뒤를 좇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을 뜻합니다.
4: 그러나 너희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궤를 좇아야 했지만,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거리는 2천 규빗으로 약 912m입니다. 이는 언약궤의 신성함과 그것이 나타내는 하나님의 임재의 거룩함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삼하 6:6,7). 하나님은 인간을 초청하여 가까이 하시지만, 인간은 여전히 죄인이기 때문에 그의 거룩함을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이 언약궤를 바라보기에 쉽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을 잘 볼 수 있도록 이천 규빗 정도 떨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5,6: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강을 건너는 날이 다가오자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성결’을 요구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성결은 구체적인 행위로서의 성결, 즉 의복을 세탁한다든지, 여인을 멀리하는 행위 등과 같은 외부적 성결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내부적 성결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당시 상황으로는 그러한 준비를 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나 여건이 허락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성결은 영적 성결, 즉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그의 약속을 신뢰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기사를 행하시리라.’ 기사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로 특별히 심판과 구원과 연관된 하나님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7-13절: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백성들에게 요단강을 건너기 위한 세부 지시 사항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삼으신 후 크신 위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용기를 주셨습니다(수 1:1-9). 이번에는 큰일을 앞두고 여호수아에게 재차 용기와 확신을 갖도록 격려하심으로써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널 수 있도록 하시고 계십니다. ‘오늘부터’는 요단강을 건너는 시점입니다. 하나님은 요단강에서의 이적을 시작으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단에서의 이적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높이고 영화롭게 하시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을 기적적으로 도와주실 것입니다. ‘알게 하리라’ 하나님은 홍해 도하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모세를 하나님의 종으로 확실히 인정하게 하셨습니다(출 14:31). 이제 하나님께서는 요단강 도하를 통하여 모세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도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과거에 모세는 지팡이를 홍해 위로 내밀러 기도하므로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여호수아는 제사장에게 명을 내려 요단에 들어서게 함으로써 물이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백성을 대표한 제사장들 앞에서 여호수아의 위치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명령에는, 순종하는 자에게는 은혜가 주어진다는 구속사적 진리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함으로써 생생한 신앙 체험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요단에 들어서라.’ 이는 머무르는 것입니다. 비록 강물이 범람하며 물살이 급할지라도 겁내지 말고 그곳에 들어가서 서 있으라는 것입니다.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기 위하여 가까이 오도록 소집한 것은 다음에 발표될 선언, 즉 10절 이하에 나타나내는 내용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10: 또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사시는 하나님’ 이 칭호는 ‘온 땅의 주’로서 살아계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방의 신과 같이 나무나 돌을 조각하여 만든 죽은 우상이나 썩어질 형상이 아니십니다(시 96:5; 롬 1:23).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면서 우주의 운행과 인간의 모든 역사를 친히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의 죽은 신을 몰라내고, 가나안 7족속을 멸하심으로써 그가 사시는 하나님이심을 친히 들어낼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계시사’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실 것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친히 이스라엘 백성의 앞 길을 인도하신다는 약속입니다.
11: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
당시 근동의 사람들은 그들이 믿는 신을 민족신 혹은 어느 한 지역의 수호신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만약 다른 지역으로 옮길 때에 옮긴 지역의 풍속을 따랐고 그 지역 사람드이 믿는 신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본문을 통하여 그러한 사고를 완전히 불식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지역과 민족을 초월하는 ‘온 땅의 주가’ 계심을 선포함으로써, 하나님을 어느 특정 지역의 수호신이나 유한한 존재로 국한시키려는 시도를 사전에 방지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성과 무소부재하심을 드러냈습니다. 또한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대한 이 칭호를 요단강 도하와 관련하여 사용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께서 삼라만상 위에 뛰어난, 천지를 주관하시는 전능한 창조이시므로, 바다나 강들도 역시 그의 통치 아래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12: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십 이명을 택하라.
요단강 도하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한 여호수아는 최종적으로 매 지파에 한 명씩 12명을 택하도록 명했습니다. 이들은 여호수아 혹은 제사장의 곁에 서 있다가 그들에게 그 때 그 때 맡겨지는 임무를 수행했을 것으로 보입니다(수 4:3이하). 어떤 학자는 이들이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설 때에 함께 감으로써 이스라엘 가운데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다 더 직접적으로 목도하는 증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12명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 민족의 통일성과 완전성, 그리고 대표성을 의미합니다. 훗날 예수님께서도 12명의 제자를 세우셨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구속 사역을 직접적으로 목도한 증인일 뿐만 아니라 또한 복음 사역을 도운 사역자들이었습니다(눅 1:2; 벧후 1:16).
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요단강은 헬몬 산 부근의 3개 지류와 레바논 산지에서 흐르는 물이 합쳐져서 형성이 됩니다.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은 바로 이 네 개의 수원을 가리킵니다.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하나님은 광야 모래밭에서나 반서에서 물을 내실 수도 있듯이(출 17:6) 또한 물의 근원을 막을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마찬가지로 흐르는 물을 끊어 세우실 수도 있습니다. 모든 우주의 운행이 그것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14-17절: 하나님의 지시를 받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입니다. 먼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백성들 앞서 행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널 때의 시기와 흐르던 요단 강물이 멈춘 사실과 백성들이 요단을 마른 땅으로 건너는 장면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14,15: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모맥은 ‘밀과 보리’입니다. 팔레스틴은 아열대 지역이면서 지중해성 기후를 띠기 때문에 태양력으로는 3, 4월 즉 아빕월에 보리 추수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5, 6월에 밀 추수를 합니다.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넌 시기가 바로 이 때였습니다. 요단강은 평소에는 수영으로 건널 수 있을 만큼 좁은 지역도 있지만, 이 시기는 물살이 세어 어느 고에서도 수영으로 건널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시기에 요단을 건넌 것이 성경에 놀라운 사건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대상 12:15). 처자와 짐승과 짐까지 있는 상황에서 수영으로 요단을 건널 수는 없습니다. ‘발이 물가에 잠기자’ 범람하는 강물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언약궤를 메고 강물 속으로 담대하게 들어간 제사장들의 믿음은 높이 살만합니다. 그들의 순종은 온 백성들에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또한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는 실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진리의 산 증거입니다(막 9:23).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잠기자 요단강의 흐름은 멈추었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흘러내리던 물은 불어나 쌓이고 역류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의 운행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그 운행의 과정을 바꾸실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자연의 성질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요단강 물이 멈추는 것은 ❶ 사건이 예언되었고 ❷ 강물이 범람할 때에 일어났으며 ❸ 시간이 정확했고 ❹ 물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모두 건너기까지 갈라져 있었으며 ❺ 강바닥이 순식간에 말랐고 ❻ 백성들이 강을 다 건넌 후 다시 흘렀다는 점을 볼 때에 요단강이 멈춘 사건은 제2의 홍해 사건이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 사건 중의 하나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마른 땅’은 16절의 ‘온전히 끊어지매’라는 말과 관련된 것으로, 물기가 없는 굳은 땅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을 건너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습니다. 한편 ‘굳게 서다’는 '하켄(חכן)‘은 ’고정시키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을 다 건너기까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발을 매어 움직이지 않았음을 시사합니다. ’요단을 건너니라.‘ 하나님은 홍해를 마르게 하셨던 것처럼(출 14:5-12), 요단강의 흐름을 멈추게 하셨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효를 약 200만 명으로 추산한다면(민 26:51), 요단강을 건너는 데는 약 반나절이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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