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여호수아 제1장 강해 - 가나안 입성 명령 및 준비

chukang 2013. 3. 1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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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제1장 강해 - 가나안 입성 명령 및 준비

 

  여호수아서는 구속사의 한 위대한 전환점에서 시작이 됩니다. 모세의 죽음으로 40년간의 출애굽 시대가 마감되고 여호수아를 새 지도자로 하는 가나안 정복 시대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새 시대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 옛날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가나안 정복 명령을 다시 주시는 장면부터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1-4절) 애굽 시대의 구속사와 가나안 정복 시대의 구속사가 서로 연결된 하나의 역사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새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위로와 권면 그리고 동행의 약속을 주셨습니다.(5-9절) 그리고 새 지도자로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유사 등에게 요단 강 도하 준비를 명하는 장면(10-15절)과 이스라엘 온 백성이 여호수아의 명령에 절대 순종할 것을 맹세하는 장면(16-18절)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본 장은 구속사의 전환점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새 지도자를 중심으로 영육 간에 새 마음으로, 개인과 전민족의 자세를 바로 하고 단결을 새로이 하였음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인 모세는 죽었지만 하나님의 구속사는 결코 단절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한 단계 발전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위대한 지도자라고 해도 그저 짧은 한 세대를 살다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홀로 영원하셔서 시대에서 시대로, 이 종에서 저 종으로 당신의 섭리를 계승하게 하면서 일관되게 택한 자의 무리 곧, 교회를 구원하기 위한 구속사를 진행하시는 것입니다.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글 성경에는 없지만 원문에는 첫 단어가 ‘그리고(와우: ו)’로 시작이 됩니다. 즉 모세 5경과 깊은 연결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종’은 모세가 하나님과의 관계 하에서 불려진 가장 합당하고 아름다운 명칭 중의 하나입니다. 여기서 ‘종(에베드:עבד)’이란 ‘예속되어 섬기며 일하는 존재’란 뜻으로 그 모든 결정권과 생사권 및 소유권이 주인에게 이양된 자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모세가 여호와의 ‘종’이라 일컬어진 것은 곧 그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여 오직 하나님을 위해 일해 왔음을 암시하는 참으로 명예로운 직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이란 말은 흔히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받은 자들에게 주어져 ‘대리자’, ‘사자’ 등의 의미로 사용이 되었습니다(창 24:24; 왕상 8:66; 상 20:3). 모세는 누구보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대망했지만, 여리고 맞은 편 비스가 산 정상에서 가나안을 조용히 응시하면서 120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습니다(B. C. 1404년, 신 34장). 모세의 죽음은 혈기와 교만과 방종으로써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시사합니다. 2차적으로 율법으로도 구원을 얻지 못하며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 곧 예수를 믿음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롬 3:19-28). 이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시종으로써 힘썼으며,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 안수를 받은 여호수아에게 이제 비로소 공식적이고 직접적으로 그에게 지도자로서의 위치와 그에 따른 자세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와 동일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받았으며, 백성들도 그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 사후 지체하지 않으시고 여호수아의 마음속에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을 만큼의 확신에 찬 메시지를 전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신정 통치를 유지하셨습니다.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인도해 오던 모세가 요단강 목전에서 죽었다는 것은, 그의 실수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백성이 물이 없어 갈증을 견딜 수 없게 되자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모세를 비난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민 20:8)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지도해 온 모세는 그들의 악한 소행을 참을 수가 없어서 백성들이 모였을 때에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라’고 하며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쳤습니다.(민 20:10).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의 행동을 불신앙적인 행위로 평가하셨고(민 20:12), 시편 기자는 ‘모세가 망령되게 말하므로 하나님을 거역했다.’고 말했습니다(시 106:33). 이런 과정을 볼 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어야만 했던 모세의 종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결과입니다(민 20:12).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죽음은 새로운 후계자의 동장과 함께 중요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그것은 이 사건이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의 한 장을 매듭 짖는 동시에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구속사의 전개를 알리는 전환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를 지명하여 모세의 위치로 올리셨으며, 그에게 직접 계시를 하심으로써 그에게 힘을 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이 말은 가나안에 들어갈 당사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임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땅입니다.

 

3,4: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은 모세에게 당부하고 약속하신 말씀인 신 11:23-32의 내용입니다.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 아브라함 때부터 대대로 내려온 것입니다(창 12:1-3; 13:14-17; 출 23:30). 이는 실제로 차지하리라는 강한 암시가 들어 있습니다. 남으로는 아라비아 사막, 북으로는 레바논 지점, 동으로 유브라데 강, 서로는 지중해 연안까지를 그 경계로 합니다.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이미 주었으며 지금도 주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경계는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 당시에는 차지하지 못했으나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비로소 약속된 지경가지 완전히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삼하 8:3-14; 대하 9:26).

 

5,6: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당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너의 평생에’는 ‘너의 생명이 존재하는 모든 나날들’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생애 전반에 걸쳐 그의 절대적 후원자가 되실 것을 본 문장을 통해 나타내신 것입니다.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이는 모든 족속이 네 앞에서 완전히 굴복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수히 많은 전쟁을 치러야 할 여호수아에게 특별한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며 여호수아가 수행해야 할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 중에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실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야말로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보장입니다.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내가 너를 저버리거나(포기하거나)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여호수아에게 장차 닥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시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간과하지 않으시며 설령 범죄한 중에서라도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내 그들과 함께 해 주시는 것입니다(신 31:8).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이는 5절의 임마누엘의 약속에 따른 요구사항입니다. 결코 굴하지 않는 강력한 승리의 확신과 용맹성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7, 9, 18절에서도 거듭 제시되면서 그 의미가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에 함께 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지만, 인간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또한 있음을 강하게 주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백성으로~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하나님의 맹약인 동시에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당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그 땅을 이 백성으로 하여금 기업으로 상속 받게 하라고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오직~ 극히’(라크 메오드: רק מאד) 이 두 수식어는 6절에 언급된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일이 가장 결정적인 관건이 되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유지를 위한 율법 준수 명령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여호수아는 정복 정착 전쟁에 있어서 그 어떤 행동 규범보다 하나님의 율법을 신실히 준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자, 곧 자신의 삶을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며 그 분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복된 길로 인도하실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신 28:15-68).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사 1:10).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 율법의 형식적, 문자적 준수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내포된 진의와 궁극적 목표를 살피고 주의 깊게 상고하여 그 모든 것을 지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이는 율법의 정도로부터 이탈되어 인간적인 생각을 좇아 행하는 것을 금하라는 명령입니다. 또한 율법에 예민하지 못하고 둔감하거나 원뜻을 깊이 묵상하며 실천하기보다는 그 자구(字句)적 해석과 실천에만 얽매이는 편협성(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이)을 버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말씀대로 따를 때에 형통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8: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이는 단순히 율법 책을 읽는 차원을 넘어서 항상 그 말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네 기억과 생각에서 영원히 지원지지 않도록 계속 읽으라.’는 뜻입니다.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묵상하다(하가:הגה)’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읊조리다.’는 뜻으로 ‘어떤 목적을 설정하고 그에 온 마음을 집중하여 사색하는 행위’를 지칭합니다. 이 묵상은 정체된 관념적 명상이 아니라, 자신의 전의지 곧 지, 정, 의를 동원한 총체적 사고로서 실천에까지 이르는 추진력을 지닙니다. ‘다 지켜 행하라’ 율법 교육이나 묵상은 그 자체로서의 중요성보다 실천으로 옮겨짐으로써 그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입니다(tm 7:10; dir 1:22-25). ‘평탄~ 형통하리라.’ 이는 조건부 언약입니다. 번영과 평안과 희락을 얻는 관건은 주의 말씀에 청종하는 삶을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진정 말씀을 실천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생활 중에 하나님의 동행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신 29:9; 요 14:21; 딤후 4:17). 이 약속은 신약에서 모든 것 가운데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으로 표현됩니다.(롬 8:28)

 

9: 내게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긍정 의문문입니다. 가나안 정복과 율법 준수 명령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강조하여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모든 일정을 계획하시고 주도해 가실 것이라는 말씀은 여호수아에게 큰 힘과 소망을 주고 있습니다. 이는 성전(聖戰)입니다.(수 5:14) 오늘날의 불의한 세상, 사악한 마귀와 대항하며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가는 우리 역시 바로 이 성전의 군사들입니다(살전 5:8).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한 것은 모세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셨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4중적 권면입니다. 이는 여호수아를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후원과 도움의 완벽한 약속입니다. 이 약속과 함께 임마누엘의 약속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이야말로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발생하는 모든 악재들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무기이며 보장입니다. 이런 임마누엘의 은혜가 있기에 우리도 역시 비록 악한 것이 판치는 세상이라도 의연히 맞서며 천국 가나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10,11: 이에 여호수아가 백성의 유사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진중에 두루 다니며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예비하라. 삼일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얻게 하시는 땅을 얻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대면 후에 어떤 회의나 염려나 시간적 지체도 없이 곧 가나안 정복 태세로 돌입하게 하였습니다. 유사들(쇼테림:שׁטרים)은 문자적으로 ‘글 쓰는 자들’ ‘서기들’이란 뜻인데 오늘날의 행정직 관리를 지칭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백성의 감독자’ ‘백성에게 명령하는 사람’ ‘백성의 재판관’ 혹은 ‘통치자’ 등 여러 의미로 사용이 되어 백성들의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첫 번째 내린 명령은 전투 식량을 비축하라는 것입니다. 당시 아직 만나가 매일 공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양식을 예비하게 하는 것은 전투 중에 만나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며, 또 무엇보다 얼마 있지 않아 만나 공급이 중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수 5:12). 이 때 비축된 양식은 ‘여행용 식량’의 의미하는 것으로 만나가 아니며, 사냥해서 얻은 고기 또는 요단 동편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식품들로 보입니다. ‘삼일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3일은 ‘머지않아, 곧’이란 의미입니다. 여리고 정탐꾼들이 돌아오고 유사들이 진중에 두루 다니며 여호수아의 명령을 전한 이후로부터 3일입니다. 정탐꾼들이 여리고에서 3일 동안 정탐을 마친 후(수 2:22), 여호수아는 싯딤에서 떠나 요단강에 이르러 그곳에서 3일 동안 유숙하면서 유사들에게 명령을 하달하여 백성들에게 요단을 건널 준비를 시킨 것입니다. 이는 주먹구구식이 아닌 철저한 준비를 한 후에 실행하는 것입니다.

 

12,13: 여호수아가 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이미 요단 동편 땅을 기업으로 받을 때에 약속한 대로 성전에 앞장 설 것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또한 전쟁에 동참하는 것은 의무이며, 하나님의 명령은 어느 한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성도에게 적용되는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을 완수하는 데는 강한 형제애와 연대의식 및 공동체 정신이 필수적입니다.

 

14, 15: 너희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고, 여호와께서 너희로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 형제도 안식하게 되며 그들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을 얻게 되거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해 돋는 편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너희 용사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11만 명(민 26:7,18,4) 가운데 4만 명(수 4:13)이 차출, 파견되었고, 나머지 7만 명은 처자와 가축 보호를 위해 남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들 지파에게 가장 용맹한 병사들을 요구했을 것입니다.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이들이 최선봉에 서서 전장에 나가게 된 근본 이유는 그들의 극단적인 인기주의와 공동체 의식 분열을 조장한 허물 때문입니다(민 32:1-16, 20-27). 저들은 아직 가나안 서편 땅을 정복하지 못하고 겨우 동편 땅만 정복한 상태에서, 그곳 땅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요구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가운데에도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생각하는 소아병적 사고는 철저히 근절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정녕 사랑과 나눔의 삶을 추구해야 할 성도들의 마땅한 자세가 아닙니다(행 2:44-47). ‘너희로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안식의 기본적인 의미는 쉬다, 정착하다, 차지하다(왕하 2:15)는 뜻입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이 이후로 계속해서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의 위험을 감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미 안식을 누리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틀림없이 성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을 얻게 되거든’ 요단 동편 땅을 차지할 두 지판 반은 이처럼 우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정복 전쟁을 완수한 후에야 비로소 그들의 안식처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수 22:1-4). 이는 모든 성도가 삶의 우선순위를 자기 위주로 맞춰서는 안 되며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마 6:33).

 

16: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두 지파 반은 여호수아의 명령에 절대 순종할 것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전체 사기는 한껏 고조되었습니다. 또 영적, 군사적 연합 전선이 확고히 구축되었을 것입니다.

 

17: 우리는 범사에 모세를 청종한 것 같이 당신을 청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역사상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수없이 항거하고 반역한 무리들이었습니다(민 14:2; 신 9:24; 31: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단 동편 지파가 이같은 말을 한 것은 그들 자신이 완전무결한 순종을 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여호와 신탁의 대행자로 모세를 기본적으로 인정했던 것처럼 이제 여호수아의 권위를 이정한다는 차원에서 한 말입니다. 저들은 새 지로자로 여호수아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지도자를 전적으로 인준하는 가장 중요한 관건은 그 지도자 위에 여호와의 신, 곧 성령이 머무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것입니다(삼상 11:6; 16:13).

 

18: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시는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는 자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

  이 엄숙한 맹세는 과거 여호수아의 명령을 하나님의 명령과 동일시하는 백성들의 인식에 기초한 것입니다. 또한 이 맹세는 모세가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가 고하는 말을 듣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벌을 받을 것이라.’(신 18:15-19)고 한 것에서 연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는 구속사적 맥락에서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백성들은 그런 의미보다 단지 여호수아를 모세와 같은 선지자 중 하나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보내며 순종하는 것은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입니다.(롬 13:1). 백성들은 절대적 복종 의사와 더불어 선민의 새 지도자로서 자기들을 소신 있게 인도해 줄 것을 여호수아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훌륭한 백성이 만들어 내는 것으로, 백성들이 지도자를 위해 기도와 격려를 아끼지 않을 때 그 지도자는 맡은바 소임을 훌륭하게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