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롬 물가 여호수아 11:1-15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은 가나안 남부 다섯 왕의 동맹군을 완전히 섬멸하고(수 10:6-27), 이어 가나안 남부 지역의 모든 성읍들을 정복했습니다(수 10:28-43). 이 소식은 가나안 북부 지역의 가나안 족속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소식이 가나안 북부 지역에 전해지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두려움을 느낀 북부의 모든 거민들은 하솔 왕 야빈을 중심으로 동맹을 맺고(1-4)절), 이스라엘과 대적하기 위해 메롬 물가에 진을 쳤습니다.
하솔은 ‘울타리로 둘러막은 경내’, ‘요새’라는 뜻입니다. 당시 가나안 북부에서 가장 강력한 성읍으로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서 가나안 족속들 가운데서 형성된 동맹국들의 우두머리입니다. 이곳은 갈릴리 바다 북쪽 16km, 훌레 호수 남서쪽 8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오늘날 ‘델 엘 케다’라고 불리는 곳으로, 이집트에서 북쪽과 동쪽으로 이르는 고대의 교역로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하솔은 야빈 왕이 이스라엘과의 메롬 전투에서 패하므로 폐허가 되었으나, 사사 시대에 다시 복구가 되었다고 하며(삿 4:2; 삼상 12:9), 솔로몬이 축성하여 요새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왕상 9:15). 그러나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에 의해서 함락되어 그곳 거민들은 모두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습니다(왕하 15:29).
야빈은 ‘지혜로운 자, 지적인 자’라는 뜻으로 곧 ‘지략가’를 뜻합니다. 애굽의 ‘바로’(Pharaoh)와 같이 하솔을 통치하는 왕을 부르는 공식 명칭입니다(삿 4:2, 23, 24). 야빈은 가나안 중부와 남부에서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을 비롯한 아모리 다섯 왕이 동맹을 맺어 이스라엘과 화친한 기브온을 치려고 했지만 길갈에서 패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수 10:3-11), 북부 왕들과 규합하여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과 일전을 벌리고자 했습니다.
야빈은 마돈 왕 요밥, 시므론 왕, 악삽 왕, 북방 산지, 긴네롯 남편 아라바와 평지와, 서방돌 “서쪽에 있는 ‘돌’(가이사랴 북족 14km 지점으로 갈멜 산 아래 쪽으로,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는 무역 항구)”과 갈릴리 바다 좌우편의 가나안 족속, 아모리 사람, 헷 사람, 브리스 사람, 산지의 여부스 사람, 미스바 땅 헤르몬 산 아래 히위 사람을 규합하였습니다.(2-3절)
성경에 자주 나와서 우리에게 익숙한 지명은, 사사기에도 나오는 ‘미스바’는 ‘망루, 높은 장소’라는 뜻으로 다른 미스바도 있습니다. 유다에 두 번, 길르앗에도 두 번 나타나는데, 이는 미스바(מצפה)란 이름이 아름다운 경치와 관련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산지의 여부스 사람’ 여부스는 예루살렘 근처에 있었던 성입니다. 아직은 예루살렘이 정복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예루살렘 주변의 도시들이 동맹을 맺어 이스라엘에 대항을 했을 것입니다. ‘헤르몬 산’은 아람의 가장 높은 산으로 ‘봉헌된 장소’라는 뜻이며, 일명 ‘시룐’, ‘스닐’, ‘시온’ 산으로도 불립니다(신 3:9; 4:48; 아 4:8). 이곳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였을 때 북방 경계선이었으며 당시에는 히위 족속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북쪽이라고 하는 지역은 예루살렘부터 헤르몬 산에 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으로 이곳에 거주하는 전쟁에 나갈 수 모든 장정들이 다 모였기에 4절을 보면 그 수가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많은 수를 시적으로 표현할 때에 ‘해변의 모래’와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가나안 북쪽 동맹군의 숫자가 많은 것입니다. 또한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다고 했습니다. 당시에 기병대와 병거는 사람들에게 매우 위협적이었습니다. 병거는 나무로 만든 바퀴가 달려 있었고, 이것이 발전하여 바퀴에 ‘칼’을 달아서 병거가 지나가는 곳의 적군의 다리를 자르는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이런 형태의 병거는 ‘고레스 시대’에 처음 소개가 되고(삿 1:19), 영화 ‘벤허’에 나오는 수레에도 이 칼이 달려 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북방 연맹군이 30만 명의 보병과, 만 명의 기병대, 그리고 2만의 병거를 가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북부 동맹군이 싸운 주 격전지는 ‘메롬 물가’입니다. ‘메롬’은 ‘높은 곳의 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호수는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내륙 호수이며, 반은 습지, 반은 호수로 요단강의 근원지입니다. 갈릴리 바다 서북쪽 15km 지점, 갈릴리 고산 지대와 헤르몬 산 사이에 위치한 길이 약 25km, 너비 약 6km 정도가 되는 함몰지라고 합니다. 우기와 건기에 따라서 그 폭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평지 지역으로 실제로 전차를 동원한 전투에 용이한 지형이라고 합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나타난 특징을 살펴보면 1. 하나님께서 지휘관이 되셨습니다. 2. 가나안 족속의 동맹 3. 이스라엘의 순종이라는 3 가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1. 지휘관 되신 하나님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가나안에 입성하면서부터 모든 전쟁을 진두지휘하였습니다. 숱한 전투를 통하여 많은 전략을 익히게 되어서 누구보다도 전쟁에 대해서 이기는 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호수아 역시 사람입니다. 전쟁 앞에서 그 누구도 초연할 수는 없습니다. 전쟁은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입니다. 전쟁에 이기면 땅을 차지하고 많은 전리품을 얻을 수 있지만, 패하게 되면 죽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사람이 죽고 나면 가지고 있는 금은보석 귀중품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 지는 것입니다. 단 한글자로 모든 것이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바로 죽음과 직결되기 때문에 어찌 여호수아인들 두렵지 않을 것이며, 이스라엘 민족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럴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부르셔서 말씀을 주십니다.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일 이 맘 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라.”(6절) ‘두려워 말라.’ 이 말씀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진입할 때부터 주신 말씀입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수 1:9) 이 말씀을 여호수아에게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지 마음을 단단하게 먹고 전쟁에 임하라고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 정복의 모든 계획을 세우신 분이 여호와시며,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이끄시는 분이 여호와시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지만, 승리하게 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도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그 크신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하게 전쟁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군대와 기병대와 병거는 위협적이었지만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의지하여 용기를 얻고 나가서 싸울 때에 승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내가”(아노키: אנכי)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어떤 것을 동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친히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대적들을 진멸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전쟁의 수행자는 이스라엘 군대지만 승리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 9, 10장에서는 놀라운 이적으로 남부의 연합군을 패배케 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북부의 연합군을 친히 진멸하시리라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들의 생사를 이스라엘의 손에 내어주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의 주관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전쟁터로 그냥 몰아낸 것이 아닙니다.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백성이기 때문에 친히 전쟁터의 최고 사령관이 되셔서 지휘해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사랑하는 자녀들이 영적인 전쟁터에 그냥 내 몰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혀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전신갑주는 대적들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뿐만 아니라 승리할 수 있는 능력도 되는 것입니다.(엡 6:10-17) 우리의 지휘관은 성령님이십니다. 승리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악한 세력의 동맹
동맹을 맺는 것은 자기편에 어떤 유익이 돌아오기 때문에 맺게 됩니다. 동맹을 맺어 큰 힘을 갖게 된다면 다른 나라를 공격해서 멸망시키고 그 나라를 쪼개어 자신의 나라에 편입시키고, 전리품을 나누어 가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연약한 나라들도 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의 힘이 부족한 것을 알기 때문에 힘을 합쳐 싸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북부동맹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동맹을 맺은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강한 적군인 이스라엘로부터 승리하여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죄악이 가득하여 반드시 멸망해야 할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동맹을 맺어 메롬 물가에 모인 것은 이스라엘이나 가나안 동맹이나 한 번에 끝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들이 동맹을 맺도록 두시고, 그들이 한 곳 메롬 물가에 모이도록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악한 저들의 세력을 단 한 번의 전쟁으로 끝내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전쟁을 하지 않고, 한 곳에서 승리를 거두게 만드시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끝내도록 하신 것입니다.
가나안 북부 동맹은 북부 전 지역이 가담하여 엄청난 세력을 형성하였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매우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고 총 단결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는 절박한 사정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데 큰 장애를 만난 셈이 되었고 한편으로는 최대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남부 지역 다섯 왕들에게도 그러했던 것처럼 가나안 북부 거민들도 한 곳에 모이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이 가나안 북부지역을 정복하기에 보다 손쉽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에 그들의 어마어마한 군대와 병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전쟁의 승패는 군대의 숫자나 무기의 성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외형상으로 대단한 위세를 보였지만 실상 그것은 그들의 멸망의 전조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여 동맹을 맺어 사방으로 압력을 가하지만, 성도의 입장에서는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성도가 이길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합니다.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어 주시면 그 어떤 대적이 올지라도 반드시 이기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직 주님 의지하여 믿음으로 달려 나갈 때에 그 싸움은 성도의 승리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을 길게 끌 필요가 없습니다.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들은 우리들을 삼키려고 동맹을 맺어 덤벼들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런 저들을 한꺼번에 처리해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온전한 순종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대적들의 동맹과의 싸움을 앞두고 어떤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막강한 적군 앞에서 하나님께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가서 싸우라고 할 때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한 채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제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뒤에 범죄하여 미디안으로부터 압제를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선택하셨습니다. 기드온과 선발된 300 용사는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승리할 수 있는 원인은 하나님께서 친히 전쟁을 진두지휘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걸 어떻게 해’ ‘나는 할 수 없어’ 큰일을 만날 때에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 큰일을 해결하지 않고는 안 된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해결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때 해결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 만날 때에도, 두려운 상황에 처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 마음에 말씀을 주십니다. 다만 우리가 그 말씀을 애써 외면하기 때문에 실패와 좌절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내 믿음이 연약하기 때문에 내 마음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방식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처음 형편은 어쩌면 잘 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결국은 패배와 멸망만이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게 되면 처음에는 힘듭니다. 질 것 같습니다. 너무나 벅찹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순종과 믿음을 보시고 권능의 손으로 대적을 물리쳐 주시기 때문에 내가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순종할 때에, 믿음으로 달려 나갈 때에 하나님의 능력은 내 능력이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의 바른 교훈을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허탄한 이야기를 좇게 됩니다(딤후 4:3,4). 겉으로는 믿음 생활 잘 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불신이 가득합니다. 말씀은 그렇지만 어떻게 사람이 세상을 사는데 말씀대로만 살 수 있느냐 하고 스스로 합리화를 시킵니다. 이는 불신앙입니다. 그 결과는 실패요 멸망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매달리는 성도가 될 때에 주님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며, 나와 동행하며, 내 앞길을 열어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6.25 기념 주일입니다. 낙동강을 경계로 풍전등화와 같이 나라가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유엔 안보리 회의를 통하여 16개 나라를 통하여 군대를 보내시고 의료진을 보내시고 구호물자를 보내주셔서 구해주셨습니다. 이는 사람의 생각으로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의지하는 가운데 악의 세력인 공산주의와 맞서 싸우며 승리하게 만들어 주실 이 땅의 수많은 성도를 보호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나라가 진정한 기독교 국가가 되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 믿음 가운데 나라가 바로 서고, 세계 각국에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기 위하여 전쟁에서 건져주시고,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은 갈수록 믿음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온갖 이단들과 자유주의자들이 말씀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성도들도 말씀에 온전한 순종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진정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말씀을 귀히 여기고, 말씀을 지켜야 할합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고 외친 것처럼 시대가 불신앙으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여호수아와 같이 내 믿음을 외칠 때에 하나님께서 불신자들로부터 나를 보호하시고 도와주시고 승리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나라가 있어야 내가 보호 받을 수 있습니다. 나라가 있어야 신앙도 지킬 수 있습니다. 나라가 부강해야 더 큰 영향력을 세계에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물자가 풍부한 것 있습니까? 영토가 크기나 합니까? 그러나 하나님만을 섬기는 나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나라가 될 때에 세계 열강 중에 우뚝 설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는 나라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달려가는 믿음의 군사가 되고, 대한민국이 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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