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성경 말씀

내가 받은 선물

chukang 2012. 6. 10. 08:38

내가 받은 선물 사도행전 2:37-41

 

사람은 누구든지 선물을 다 받아 보았을 것입니다. 받은 선물 중에는 어떤 것은 내게 별 쓸모가 없는 것들도 있고, 실망한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내가 너무나 갖고 싶어서 간절히 바라던 것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내게 꼭 필요한 선물에 기뻐한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선물 중에서는 먹는 것과 같이 금방 없어지는 것도 있지만, 귀금속과 같은 것들은 오랫동안 보관하는 것도 있습니다.

  선물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물이라는 것은 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받고는 싶은데 주는 것에 인색한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각자의 사정에 따라서 줄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선물을 받는 것에는 대환영입니다. 내가 주는 사람이 되는 경우에 받은 사람이 좋아하고 기뻐할 때에 보람을 느끼고 마음도 뿌듯해집니다. 선물을 주는데 받는 사람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으면 괜히 선물을 했나 하는 후회가 될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계산적으로 선물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말로는 선물이지만 사실은 선물이 아닙니다. 어떤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선물을 하면 그것은 뇌물이 됩니다. 또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것을 주었기 때문에 나도 할 수 없이 주어야 한다면 그것도 진정한 선물을 아니고 물물교환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진정한 선물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렇게 물질적인 면에서 선물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선물은 꼭 물질에 국한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선물에 담긴 마음이 선물보다 더 귀한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생각할 줄 알아야 하고, 물질적인 것이 아닌 마음, 혹은 영적인 선물은 더욱 고귀한 선물이라고 하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어떤 선물들이 나오고 있을까요?

 

1. 아름다움의 선물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선물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생활에 필요하다고 그것이 꼭 물질적인 것은 아닙니다. 여자들이 특히 좋아하는 선물이 있습니다. 전도서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지으셨는데, 그 만물들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는 것은, 춘하추동 4계절 모두 제각기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이 있기에 따뜻한 봄의 새싹과 꽃들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고, 무더운 여름이 있기에 시원한 가울 바람이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황량한 사막이 있기에 풀 한포기, 꽃 한 송이가 더욱 귀하고 아름다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천지만물 중에 으뜸으로 아름답게 지어진 존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아름답다는 말의 본래 의미는 ‘밝다’ ‘꾸미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상징적으로 ‘어여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자신을 치장하고 화려하게 꾸며서 다른 것들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내 보인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일 마지막으로 창조하신 사람에게만큼은 모든 자연만물보다 훨씬 더 많이 꾸며주셨습니다. 천지만물 중에 가장 아름답게 창조된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어진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욕구가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드러나기를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연만물 중에 으뜸가는 아름다운 존재로서 사람을 만들어 주셨더니, 사람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 더욱 아름다운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욕심꾸러기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두 말할 것도 없이 마귀로 인한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남의 것을 탐내는 욕망이 있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영광의 아름다움을 탐내어 자신도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하다가 마침내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타락한 후에는 하나님의 것이 우리 사람들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쳐 범죄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도 죄를 지은 이후로는 남의 것을 탐하는 욕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욕망은 내가 남보다 잘 나기를 바라고, 남보다 내가 더 인정받기를 원하고, 내가 남보다 더 아름답고 예쁘기를 바라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 영혼은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어 집니다. 우리의 영혼에는 다른 피조물이 갖지 못한 ‘지, 정, 의’라고 하는 인격이 들어 있습니다. 만물을 통치할 수 있는 권한도 위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준 이 특별한 아름다운 선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알며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고, 다른 피조물과는 차원이 다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런 인격적인 존재로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은, 보이는 외면보다 내면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고 외면적인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창조물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사람은 더욱 그렇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른 특징과 다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길 가의 풀 한포기도 서로 다른 모습 속에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 어찌 동일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쌍꺼풀이 있는 눈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쌍꺼풀이 없어도 아름답습니다. 칼날 같이 오뚝한 코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둥글게 생긴 코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뾰쭉한 브이 라인 턱 선만 아르다운 것이 아니라 사각에 가까운 턱 선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아름다움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즉 사람에게는 그 누구든지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모양이 있고, 그 모양은 각각 다른 아름다움이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 모양만 아름답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다 똑같은 모양으로 창조하셨지 왜 서로 다른 모양으로 창조하셨겠습니까? 그러므로 획일적인 외적 아름다움보다는 내면적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 나갈 때에 외면적인 모습도 아름답게 보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화장을 하면 일시적으로 아름다울 수는 있지만 결코 내면적인 아름다움이나 영혼을 아름답게 가꿀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 사람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모’라는 말은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영원이라는 말에는 ‘숨겨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좀더 의미를 확장시키면 일반적으로 사람의 힘으로 생각할 수 없는 시간으로서 미래의 비밀에 가려진 그 어떤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짐승과 다르게 누구나 숨겨진 비밀, 곧 영원에 속한 것을 알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그곳에서 평안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파스칼은 이러한 사실을 문학적으로 표현하여 ‘인간은 누구나 뻥 뚫린 가슴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철학이나 도덕이나 선과 혹은 외면적인 아름다움을 가꿈으로써 이 마음의 커다란 공백을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비밀 속에 감추어진 영원에 속한 진리는 이러한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시간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시는 바를 통해서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충족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얼마만한 구멍이 뚫려 있습니까? 삶이 허무하게 느껴집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있어도 허전한 마음이 듭니까? 세상 사람들은 허전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우상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절대자를 사모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특성입니다. 이 영혼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만 주신 선물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내 마음을 채워야 그 알 수 없는 마음의 허전함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의 허전한 마음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채우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3. 먹고 마시며 수고함의 낙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사람이 행하는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이 먹고 마시고 또 수고 즉 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갈 때에 날마다 어떤 특별한 일들이 생겨난다면 그 생활이 즐거울까요? 아마도 스트레스 때문에 우리의 수명이 자꾸만 줄어들 것이며, 온갖 질병과, 마음의 고통으로 괴롭지 않을까요?

  진시황이 불로장생을 위해 애를 많이 쓴 것을 누구나 잘 압니다. 그는 얼마나 살았을까요? 불과 49세 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조선시대 왕들 평균 수명이 44세입니다. 영조대왕이 82세까지 살았고, 태조가 73세, 세종대왕은 53세에 죽었습니다. 왕들의 수명은 일반 백성보다 더 짧았습니다. 이를 분석하였더니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났는데, 첫째는 운동부족이고, 둘째는 보약 중독이었다고 합니다. 왕들은 태어나서부터 온갖 시중을 다 받습니다. 좋다는 보약은 다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일찍 죽은 원인은 주로 ‘퇴행성 질환’이라고 합니다.

  옛날에 불로장생을 위하여 먹는 보약 중에서 ‘단약(丹藥)’이 선호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단약은 재료가 주사(朱砂)나 광명단(光名丹)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수은과 납을 말합니다. 수은과 납은 인체에 치명적인 성분입니다. 보약에 이런 성분을 섞어 불로장생을 바랐으니, 요즘 의학으로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오늘날 인간의 수명은 70-80세입니다. 우리는 조선시대 왕들보다 30-40년을 더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요? 과학자들과 의학자들은 불과 20년 안내 120세까지는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50년 안에는 과학의 힘으로 150세까지도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 거의 정설이라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오래 살기 위해서는 먹고 마시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잘 먹고 잘 마시는 것은 ‘수고함’으로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용하는 용어로 말하면 적당한 노동이 있어야 잘 먹고 잘 마시를 수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있어야 할 노동과 먹고 마시는 것이 잘 조화가 될 때에 ‘낙’이 된다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6일 동안은 힘써 일하고 하루는 안식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안식은 영혼의 쉼을 뜻합니다. 육신은 쉬고 영혼에는 하나님의 힘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체의 원리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와 능력으로만 세속적인 낙을 누리려고 하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성취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만족은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육신을 위해서는 땅의 것을 취하고, 영혼을 위해서는 하늘의 신령한 것을 취하여 영육간의 균형을 맞추는 대에 진정한 인생의 낙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4. 성령의 선물

  우리기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성령’입니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외적인 것보다 내면적인 것이 더 아름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외적인 것만 가꾸려고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선물을 받을 때에 물질적인 가치가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결국 없어지고 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없어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영적인 것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 영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영혼입니다. 이 영혼을 위한 선물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요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영혼이 하나님께로 가야합니다. 우리의 영원을 찾아가야만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로 갈수 있도록 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죽음 뒤에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서는 그저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정확한 답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마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도가 된 사람이 의인입니다.

  우리가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을 때에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회개에서 죄 사함에 이르는 과정은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과정의 시작부터 결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능력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라고 할 때에 흔히 ‘은사’(고전 12:11이하)로 생각하기 쉬우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죄인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사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 믿고 천국가게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생활 속에서 초점이 우리의 영혼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잠시 사는 세상에 모든 것을 걸 수는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선물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겉모습의 아름다움을 꾸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의 영혼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입니다. 영혼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 회개입니다.

  주님께서 보내 주신 성령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에 선물로 들어와 계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 속에 역사하시는 그 말씀을 경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심령 속에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우리가 죄를 깨닫게 만드시는 작업입니다. 왜 죄를 깨닫게 만드실까요? ‘너는 죄인이다.’ 이렇게 인정하고 벌을 주시려고 하는 것일까요? 성령께서는 우리를 정죄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를 깨닫게는 하지만, 그 죄를 버리게 하시고, 죄로 인하여 지옥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음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례는 성령세례와 물세례가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우리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으로, 마음을 씻는 것을 뜻합니다. 물세례는 우리의 마음이 회개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음으로 밖으로 나타내는 표식입니다. 성령세례로 이미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생을 이미 얻었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감사하고, 십자가의 은혜에 감격하고, 영생을 받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을 밖으로 표시하여 다른 사람들도 주님을 영접하도록 내 믿음을 세상에 공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물세례인 것입니다.

  다시 전도서로 돌아가서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전 3:12) 선을 행하는 것은 그저 살면서 착하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으로 착한 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행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성경에서 선이라고 하는 것은 ‘구원 사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이 선한 일은 성령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괴로운 일이 아니라 사는 동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없다고 전도서 기자는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없어질 것이기는 하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육신 속에 담겨져 있는 우리의 영혼을 성령으로 인도하셔서 천국으로 이끌어 가시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이 육신을 통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 선한 일은 주님을 증거하는 일이요,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육신적인 일보다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고 행하라고 주문하고 계십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은 우리들은, 성령께서 내 심령에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말씀을 따라 살 때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가장 큰 낙이라고 하였습니다. 삶이 힘들고 고달프고 심령이 허전하다면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 속에서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활이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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