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엔 계실까? 빌립보서 2:1-11
여러분은 마음이라는 것이 우리 몸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의학에서는 마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두뇌에서 명령하고 느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어릴 때부터 들어 온 것은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정신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고 때로는 ‘의지’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영어로 ‘heart'라는 것은 심장, 흉부, 가슴, 마음, 심정, 애정, 사랑하는 사람, 용기, 기억, 중심, 열의 등 매우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이라고 해석할 때에는 'mind'으로 의지, 지성, 감성 등의 뜻이 있고, 요즘 유행어가 되는 ’멘붕‘이라는 단어는 ’mental 붕괴‘ 정신이 붕괴 된다는 뜻으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정신 혹은 영혼이라는 단어로 spirit과 soul을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학적으로는 설명이 잘 안되지만, 우리가 기쁜 일이 있을 때 혹은 슬픈 일이 있을 때, 또는 놀라게 될 때에는 손이 가슴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가슴 부근에 어떤 자극이 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보면 ‘마음’이라고 하는 장기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기쁘고, 벅차고, 슬프고, 아프고, 짠하고, 괴롭고 이런 표현을 하게 되는데, 실체는 없지만 가슴을 중심으로 어떤 느낌이 오기 때문에 옛날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For God hath not given us the spirit of fear; but of power, and of love, and of a sound mind.)”(딤후 1:7) 두려워하는 마음에서는 ‘spirit'를 사용했고, 근신하는 마음에서는 ’mind'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서는 주로 mind가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2절의 ‘같은 마음(like-minded)' 3절에서도 mind, 5절에서도 mind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생령‘은 ’living soul'(창 2:7),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에 아내 사래에게 누이라고 말해야 자신의 목숨을 보존할 수 있다고 했는데, 목숨을 soul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욥기 7:1에서는 영혼을 ‘spirit'으로 사용하였으나, 10:1에서는 soul했습니다.
성경에서 spirit, soul, mind heart 등의 단어를 찾으면서 잠언 20:27에서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The spirit of man [is] the candle of the LORD, searching all the inward parts of the belly.)” 말씀을 찾았습니다. 사람의 영혼이 여호와의 등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the mind of the Spirit)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7)고 했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soul and spirit)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라고 하신 말씀을 종합해서 볼 때에 '영혼‘이라고 하는 것이 영어로 어떤 단어가 사용이 되었든지,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을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영혼이 여호와의 등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마음, 우리의 생각, 우리의 모든 것들을 살피는 도구로서 ’영혼‘이 사용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영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불어 넣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우리 몸에 넣어 주신 순수한 영혼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 수 있었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몸과 마음이 움직이도록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면서부터 우리의 영혼은 병이 들고, 병든 영혼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이때부터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사탄에 의하여 조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 되었다는 것은 곧 ’전적 타락‘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전적으로 타락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특별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 14:6)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당연하게도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구원을 받게 되는 이유는 첫째는 우리 마음에 예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마음에 계신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주님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일까요? “너희가 주님의 영향을 받고 있느냐?” “너희가 주님을 닮아가고 있느냐?” 이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내용이, 우리는 과연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성도라는 말은 거룩한 신도라는 뜻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구별이 되엇다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께로부터 선택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선택을 받는 자로서의 생활을 영위하는 자들이 바로 성도입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보여야 할 생활이 바로 ‘깨끗한 생활’(purity of life)입니다. 깨끗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역시 우리의 마음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할 것입니다.
1. 깨끗한 마음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 - Let us draw near with a true heart in full assurance of faith, having our hearts sprinkled from an evil conscience, and our bodies washed with pure water.)고 하였습니다. ‘양심의 악을 깨닫고’ 이 말은 ‘사악한 양심에 뿌림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마귀로 인하여 더러워진 양심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뿌림을 받아 깨끗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더러운 자, 마음이 마귀에게 붙들려 있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볼 수 없으며,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겼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고 대접을 받으면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주님께서 청결하게 만들어 주신 이 마음을 계속해서 청결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면 할수록 또 다른 마음이 생겨납니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마귀의 영향은 받은 사악한 마음입니다. 이 사악한 것들이 우리 마음에 그대로 있습니다.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이 더러운 것들을 덮어 놓았지만, 자꾸만 더러운 것들은 뚫고 나오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이 계속해서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 볼 수가 있겠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면, 주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만드셨다면, 우리 마음속에 있던 그 더러운 것들을 완전히 소멸시켜 버리지 왜 그대로 덮어 놓으셨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너의 의지’로 깨끗한 생활을 해 보거라! 이렇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가까이 가려고 하면 방해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면 할수록 방해를 합니다. 우리가 깨끗한 생활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마귀는 우리의 지난 옛 생활, 묻어 둔 추한 것들을 꺼내어 우리를 다시 더러운 옛 생활로 이끌어가려고 합니다. 생활 속에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믿음도 흔들어 놓습니다. 의심 구름이 밀려옵니다. ‘정말 그럴까?’ ‘넌 정말 그걸 믿니?’ ‘네가 그렇게 산다고 누가 인정해 주는 줄 아니?’ ‘그래 봤자 너만 손해야’ ‘어떻게 해서든지 성공하고 출세해야 되는 거야.’ 바로 이런 것에 우리는 계속적으로 끌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활은 천국에 가기 전에는 성공하는 것이 없습니다. 인생은 어떤 면에서는 모든 것이 실패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는 이 실패하고 또 실패하지만 그 결국은 성공으로 귀결이 되는 것입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언 24:16)고 하였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아무리 넘어뜨리고 멸망시키려고 해도 주님의 힘으로 일어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내 마음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실패하고 넘어지지만 주님께서는 실패하는 법이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몸이나 의복이 더러워지면 씻거나 빨면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영혼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으로만 깨끗해 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영접한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안중근 의사는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습니다. 좋은 책을 읽지 않으면 가시가 돋친 말을 하게 되어 남의 마음을 찌른다는 뜻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으면 은혜로운 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성령께서는 깨끗한 우리 심령 속에서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실 것입니다. 소망을 굳건히 붙잡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2. 사랑의 마음
주님께서 왜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17)고 물으셨을까요?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주님께서 베드로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으셨습니다. 다만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마음에 있는 ‘사랑의 본질’에 대하여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기는 했지만, 그 사랑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얼마나 큰 것인지 스스로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는 하는데, 그 작은 것을 어찌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가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렇게 밖에는 대답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을 물으심으로써 베드로가 가지고 있는 주님을 향한 작은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뒤에 베드로는 주님만을 위하여 온전히 헌신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어떤 사랑이 있을까요? 베드로와 같이 세상적인 사랑, 친구들과의 우정, 가족을 사랑하는 사랑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베드로처럼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세상적인 사랑에 비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주님을 향한 사랑은 얼마나 보잘 것이 없고 초라한 것인가를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작은 사랑이 정말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에 주님께서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주님을 향한 사랑도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랑에 대한 우리의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세상적인 사랑이 더 커 보입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오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까? 아니면 두렵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주님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믿음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떨어질 때에, 믿음이 생기게 되고, 믿음은 소망을 줍니다. 이 소망의 결국은 천국과 부활입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야 비로소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닮아가기를 원하는 것, 주님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 헌신하는 것, 예물을 드리는 것, 이 모든 것이 믿음으로 드릴 때도 있고, 혹은 하나님의 것을 떼먹거나, 하지 않으면 징계가 올까 두려워서 할 수도 있지만, 진정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감사하게 된다면 그 때는 사랑으로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게 오신 것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게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 속에도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비록 겨자씨와 같이 작은 것일지라도 그것이 땅에 심어지기만 하면 크게 자라나서 새들도 깃들이는 큰 나무가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진 사랑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꽁꽁 싸매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보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심을 때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을 심어야 합니까? 우리가 가진 물질들은 나누어 주면 자꾸만 줄어듭니다. 그런데 사랑을 나누어 주면 줄수록 자꾸만 더 많이 우리 마음에서 자라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작은 사랑 하나를 나누어 주면 하나가 열이 되고, 열이 백이 되는 것이 바로 사랑의 법칙입니다. 이는 내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성도로서 사랑을 나누어 주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결코 빛은 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주님의 사랑의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내가 가진 사랑이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사랑의 행위가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성도는 어떤 착한 일을 하든지 주님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을 나누는 방법입니다. 이런 사랑을 할 때에 내 마음 속에 주님의 사랑은 샘솟듯 솟아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내게 필요한 것들도 주님께서 채워 주실 것입니다.
3. 겸손한 마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막 10:45) 주님께서는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이 되기까지 겸손해지셨습니다. 구원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받은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누구나 다 있습니다. 나를 인정해 주는 것도 좋은데, 게다가 나를 잘 대접해 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대접을 받는 것이 습관이 되면 자신이 뭐가 된 것처럼 생각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제는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마음이 자꾸만 생겨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대접을 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참 힘이 듭니다.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오래 행해야 내게 돌아옵니다. 내가 손해를 보는 일을 감수해야만 다시 내게 대접으로 돌아오게 되는 원리입니다. 세상 사람이 내게 천원을 요구할 때에 내가 이천 원을 주면, 그 사람이 나를 우습게보고 나중에 또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내게 시킬 때에 내가 그 일을 하면, 그 사람이 나를 바보처럼 생각할 수도 있고 나중에 또 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주님께서 가르쳐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40-42)
왜 이렇게 성도는 당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그것은 너무나 큰 사명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착한 일 한다고 그 사람이 주님을 영접한다는 보장이 있을까요? 상대방은 나를 미워하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까요? 꼭 내가 그렇게 보답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고 기도할 때에, 상대방인 돌이키지 않게 되면, 그 기도 제목대로 내게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 주님이 분명히 자리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심어져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그것이 매우 작고 보잘 것이 없을지라도, 그 작은 것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잊으면 안 됩니다. 그 작은 것이 나를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주님의 사랑과 능력은 작아 보일지라도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할 때에, 내가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애쓸 때에, 내가 겸손한 모습으로 섬길 때에, 주님의 능력은 나를 들어 사용하시고, 내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잘 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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