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두려워하느냐! 여호수아 1:1-9
이 세상에는 무섭고 두려운 것이 참 많이 있습니다.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시기에는 맹수들로 인하여 목숨을 잃는 것이 가장 두려웠고, 원인 모를 질병에 걸려 죽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행복은 더 많아져야 할 텐데 근심 걱정거리가 더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도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을 지나쳐 남을 해치는 경우고 있고, 개인의 이익이나 추한 쾌락을 위하여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고, 다른 사람을 통하여 고통을 가하기도 하고, 왕따를 시키기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남을 밟고 올라가야만 출세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사기, 공갈, 협박 등 인간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왜 그렇게 많이 있는 걸까요?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는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안 될까 얼마나 많은 걱정을 하고 있습니까? 교통사고는 왜 그렇게 많이 일어나는지. 비행기가 추락하고, 배가 침몰하면 몇 백 명씩 한꺼번에 죽습니다. 기차사고도 그렇습니다. 곳곳에 화산폭발과 지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토록 과학문명을 자랑하면서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너무나 무기력합니다. 특히 전쟁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전쟁은 곧 내가 죽지 않으려면 상대방을 죽여야만 합니다. 포탄 하나로 수십 만 명이 한꺼번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라고 하는 존재는 근심과 걱정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어떤 두려움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두려움의 원인을 파악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만 막연한 두려움입니까? 두려움의 원인을 알면서도 해쳐나갈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해결할 수가 없습니까? 두려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외부로부터 오는 두려움입니다.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 세상의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다. 둘째는 나의 내부에서부터 일어나는 두려움입니다. 이 두 가지 모두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심령이 매우 강인한 사람일 경우에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기는 합니다. 이런 사람은 대인 관계에서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잠언 16:32에서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라고 하여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성을 빼앗는 것보다 더 큰 일을 할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내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두려움을 극복하게 되면 세상으로부터 오는 외부적인 두려움까지도 해결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다스리며 스스로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내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이 바로 오늘 주신 말씀에 있습니다.
후계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가족들 가운데서도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후계자 자리를 노리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임자로부터 인정을 받고 낙점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겼더라도 전임자나 지도자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면 후계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에게는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 세상에 없는 인정을 한 가지 더 받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이었습니다. 항상 모세를 따라다니면서 시키는 일들을 잘 해내었습니다. 정말 충성된 종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올라 십계명을 받을 때에도 산 중턱까지 따라가서 함께 40일 동안 금식기도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가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도 그를 후계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여호수아의 충성과 그의 성품을 알고 계셨기에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에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음이 연약한 것입니다. 전에는 모세가 시키는 대로 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말렉과의 전쟁(출 17:9)을 할 때에도 모세가 뒤에서 기도할 때에 자신은 선봉장으로 나서서 싸움을 진두지휘하며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누구에게 의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자신이 결정을 하고 실행을 하고 모든 책임을 지는 최고 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는 모두가 자신을 책임져야만 하는 자신에게 있어서 최고의 지도자라고 하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지시하신 것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보면 5가지가 됩니다. ❶ 약속의 땅으로 가라. ❷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❸ 율법을 지키고 묵상하라. ❹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 ❺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신하라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묶으면 두 가지가 되는데 첫째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1.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이것은 가장 기본적이요 기초적인 자세입니다. 오늘날 운동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기초 체력을 다지는 것을 필수로 합니다. 이 체력이 없이는 경기 시간 내내 버티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기초 체력이 부족하게 되면, 쉽게 말하면 뒷심이 딸리게 되면 결국 패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달리기, 팔굽혀펴기 등 기초 체력부터 다지고 그 뒤에 기술을 연마하게 합니다.
그 다음에는 정신력 강화 훈련을 합니다. 정신력 강화 훈련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는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싸우기도 전에 ‘내가 혹시 지면 어떻게 하나!’ ‘상대는 너무 강해서 내가 이길 수가 없을 것 같아!’ 이런 마음이라면 그 게임에서는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혹시 또 모르죠, 상대방이 나보다 훨씬 더 심약해서, 나보다 더 주눅이 들어 있다면 혹시 이길 수도 있겠지만, 그런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도에게 있어서 생활은 사단과의 끊임없는 싸움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적인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패배하는 성도는 세상에서 혹 출세했다고 해도 그것은 겉모습일 뿐 실상은 실패한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 성공한 것입니까?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성공한 것입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인정해 줄 지 모르지만, 자신은 스스로 알 것입니다. 어쩌면 스스로를 속이든지 아니면 마귀에게 속아서 그것이 성공인줄로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 것을 얻고 자신의 양심을 잃게 되면 그것은 실패자입니다. 성도가 세상 적으로 출세했지만 그 영혼이 병이 들었다면 그것은 실패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의 후계자로 세운 여호수아가 실패하지 않도록 인도하시기 위하여 그 첫 번째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는 어떻게 그 말씀을 듣고 실천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즉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약속은 반드시 지키실 것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결코 강하고 담대하게 전쟁터에 나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주려고 한다는 미확실한 상황적인 말씀이 아닙니다. 이는 완료형 동사로 ‘이미 벌써 주었고, 지금도 주어지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나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그 발걸음이 닿는 곳은 모두 이스라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인간이 해야 할 부분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면 무엇 합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무한하시면 무엇 합니까? 내가 그것을 믿고 따라야만 내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시지만, 내가 그것을 믿지 않고 나가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네게 주었으니 너는 가서 취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왜 주저하고 있습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그 장마철 요단강물이 세차게 흘러가는 위험 속에서도 언약궤를 앞세우고 발걸음을 강물 속으로 옮겼습니다. 그 때에 강물은 마치 둑을 쌓은 것처럼 물이 일어나 쌓이고 백성들이 모두 그 옛날 홍해 바다가 갈라져 건넌 것과 마찬가지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진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약속을 하셨을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나의 앞날에 무엇을 예비해 놓으셨을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약속을 의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자녀들에게 수많은 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먼저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일어나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거친 요단강물을 건너가야만 합니다. 신앙적인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신앙만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비결입니다. 진취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마 11:12)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적극적으로 달려가는 신앙의 자세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라는 바를 얻고 누리는 신앙만이 살아있는 참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하였습니다. 믿음만이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게 할 것입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달할 자 없으리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생애 전반에 걸쳐 그의 절대적인 능력으로 이기도록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어떤 족속이든지 이스라엘 앞에서는 완전히 굴복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수하게 많은 전쟁을 치러야 하는 여호수아에게 특별한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시며, 여호수아가 계속해서 수행해야 할 가나안 정복 전쟁 중에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무기조차도 변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가나안 병사들은 앞선 문물과 앞선 병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정신력으로 제압당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이 쳐들어온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이길 수 없다는 두려움이 그들을 엄습했습니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미리 ‘왕벌’(출 23:28; 신 7:20; 수 24:12)을 보내셔서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싸우기도 전에 그들은 질 것이라고 이미 패배를 인정하였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서 싸우려고 준비하는 것만을 보여주어도 그들은 스스로 자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역사가 여러분에게도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니”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알던 그 하나님께서 이제 나와 친히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보다 훨씬 큰 이가 함께 하신다고 합니다. 모세가 믿고 의지하던 그 절대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여호수아와 함께 하심과 같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승리를 쟁취하십시오.
2. 율법을 지키고 묵상하라.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율법을 지키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네 마음에 드는 것은 지켜 행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성경 전체의 맥락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편의대로 성경을 해석하며 취사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코 성경을 대하는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가져야할 믿음의 태도가 아닌 것입니다. 말씀을 어떻게 지키느냐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믿음이 어떠한 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이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이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이 명령들을 제대로 지켰느냐의 여부에 달린 것입니다. 즉 인생의 성공의 비결이기도 한 것입니다.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일과 관련된 일중에 가장 결정적인 관건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 관계의 유지가 무엇입니까? 바로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자, 자신의 삶을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자,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복된 길로 인도하실 리가 만무하시기 때문입니다(신 28:15-68).
율법을 지키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율법의 정도로부터 이탈하여 인간적인 생각을 좇아 행하는 것을 금하라는 명령입니다. 온전히 지킬 때에 ‘형통’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면 왜 형통해 질까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에 지혜가 옵니다. 그 지혜를 통하여 사리를 분별할 수 있고, 하는 일마다 성공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말씀에 순종하는 그 마음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그가 행하는 사업 위에, 학업 위에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사업을 위해 만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나에게 도움이 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 내 앞 길에 도움이 되는 교훈을 듣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하나님이시라고 했는데, 약속은 쌍방 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너는 이렇게 하라든지, 네가 이렇게 하면 내가 이렇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며 즐겨하시는 분이시지만, 이렇게 조건을 반드시 내 거십니다. 그 이유는 절대적인 믿음과 철저한 순종을 요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이는 말씀에 사로잡히는 것을 말하는데, 내 기억과 생각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계속하여 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생각만 하는 것을 묵상이라고 하지 않고, ‘어떤 목적을 설정하고 그에 온 마음을 집중하여 사색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즉 자신의 모든 의지, 지, 정, 의를 동원한 총체적인 사고로 실천까지 이르는 추진력을 말합니다.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새겨 생활 속에 반영하는 것입니다(시 1:2; 119:97). 이런 자의 앞날이 평탄하고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더딘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데, 그 시기와 결정은 오직 하나님께만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내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데 왜 나를 이렇게 팽개쳐두고 계실까?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왜 나에게는 이토로 어려운 일을 시키는가? 원망과 불평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지는 것은 첫째는 아직 시기가 되지 않았음이며, 둘째는 내가 아직 하나님의 기준에 미달했다는 것이며, 이는 곧 아직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여 발걸음을 요단강으로 내딛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바랍니다. 그리고 의지하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 내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의 증표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지혜를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믿음의 길, 십자가의 길을 달려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나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내 하는 일을 형통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잘 됨으로 인하여 내가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나로 인하여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께서 더욱 존귀함을 받으시는 것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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