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반드시 오리니 요한계시록 16: 12-15
주님께서는 소경을 고쳐주시면서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 할 수 있을 때에 힘써 하라는 말씀입니다. 맡겨 주신 일이 있을 때에 꼭 하라는 말씀입니다.
전도서 3:1-8을 보면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올해는 이 때를 잘 맞춰서 지금 해야 할 일, 지금은 그만 두어야 할 일을 잘 구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때를 잘 맞춘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운 때’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셨는데, 그 좋은 지혜를 가지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일을 잘하라고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특히 우리 성도들은 지혜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많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녀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우리가 세상에서 지혜롭게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 성령을 받지 않았습니까? 성령은 ‘지혜의 영’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십자가의 은혜를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 우리 심령에 성령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성도가 어찌 지혜가 없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지혜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다보면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행치 않을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물론 핑계는 참 많습니다. 그 핑계는 결국 내가 성령의 이끌림보다 악한 영의 이끌림을 더 많이 받았다는 증거가 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고, 내 육신의 정욕을 좇아 살다보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벧후 3:10) 베드로는 이렇게 우리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뜻하지 않은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특히 무서운 암과 같은 질병은 갑자기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무섭고 두려운 일들은 갑자기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징계도 그렇습니다.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눅 12:45,46) 주님께서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경고입니까? 그러나 이 경고는 정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징계를 내리시기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까? 우리가 받은 성령의 지혜로 하나님의 일을 성실히 하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성실하게 해서 상급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우리 한국 교회 역사 중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훌륭한 목회자가 한 사람있습니다. 그는 바로 김 익두 목사입니다. 1874년 황해도 안악에서 출생하였습니다. 부친이 일찍 돌아가신 가정을 일찍부터 돌보면서 바른 생활을 잘하고 있던 그는 사기를 당해 모든 재산을 잃게 되엇고, 그때부터 타락의 길로 빠져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날마다 주색잡기에 빠져 방탕했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불량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하였는지 사람들이 '오늘 호랑이 익두인지 억두인지 만나지 않게 해 줍소서'하면서 성황당(城隍堂)에서 빌기도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강제로 돈을 빼앗아 "김내라"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회심한 후에는 그가 과거를 뉘우치고 사람을 때린 장소마다 찾아다니며 방성대곡으로 울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느 날인가 장에 나갔다가 서양 여자가 전도하며 전해준 전도지 사건을 계기로 회심하게 되었는데, 전도지를 받은 김익두는 '뭐 나더러 양귀신을 믿으라고' 하며 전도지로 코를 풀어 길바닥에 팽개치고 말았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청년! 전도지로 코를 풀면 코가 썩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그는 '어느 모로 보나 자기보다 개화되어 있는 서양 여자가 멀리 이국에 와서 저러는 것을 보면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마침 이때 친구의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순 한문으로 된 신약성서를 100번 읽으며 신앙에 심취했고 그 과정에서 가슴을 칼로 찢는 것 같은 불세례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삼 일간 금식을 하고 산에서 내려 올 때 큰 불덩어리가 가슴에 떨어져 화끈거리는 체험을 하였고 하늘에서 "김 익두야! 김 익두야!"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로 그 소리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임을 깨달았고 하염없이 울며 감사의 찬송을 불렀다고 합니다.
김익두 목사에게는 치유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최초의 이적은 1919년 12월 25일 달성군 현풍읍내 현풍교회에서였습니다. 거지 행각을 하며 살던 박수진이란 사람은 10년 전 사고로 아래턱이 떨어져 음식도 누워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김익두 목사는 그를 불쌍히 여겨 금식하며 기도했는데 박수진의 아래턱이 올라가 붙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감격한 박수진이 온 동네를 뛰어 다니며 '할렐루야! 감사합니다.'하면서 간증을 하여 온 동네가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의 신유의 역사는 이후 계속 되었고 곱사등이 소녀가 펴지기도 하고 소경이 눈을 뜨는 역사가 계속 되었는데, 이런 사건들을 동아일보 58호에서는 '김익두의 이적'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대구 집회에서 김경애라는 기생이 1년 남짓 중풍으로 고생하다가 김익두목사의 간절한 기도와 자신의 간절한 회개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후에 다시 기생의 생활로 돌아가는 바람에 병이 재발하고 말았습니다. 또 안악군 동문면에 최석황이라는 자는 30년이나 고생하던 종기를 치료받았는데 후에 타락하여 병이 재발하고 급기야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이 응한 사건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중병이 들어 침상에서 벽을 보며 간절히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치료하여 주셔서 15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더 살았지만, 치유된 이후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나라의 부강함을 자랑하였다가 차라리 고침을 받지 못했음만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임택권 목사는 '이적증명회'를 만들어 김익두 목사의 집회 현장에서 이적이 일어나는 장면을 기록하고 사진을 찍어 그것을 증명했는데 약 일만 명가량의 병자가 고침을 받았다고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김익두목사의 신유의 역사가 나타는 것은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병자가 회개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할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즉 신유의 역사는 인간의 능력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이 김익두 목사의 손자 며느리가 탈북을 해서 작년 4월에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압록강을 건너서 두 번씩이나 중국에 들어 갔으나 중국 공안에 붙들려 북한으로 송환이 되었다고 합니다. 탈북자들이 송환이 되면, 북한에서도 세상 끝이라고 부르는 ‘교화소’라는 곳으로 간다고 합니다. 무서운 보위대, 단련대, 도집결소, 보안소, 보안소구류장이라고 하는 곳들이 있는데, 이곳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죽기보다 더 어렵다고 합니다. 무려 6년 동안이나 이곳저곳의 수감소를 드나들면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고 합니다.
북한에는 성경과 찬송가책이 없어서 그냥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탄로나면 총살이나 정치범 수용소에 들어가서 짐승보다 못한 핍박과 고통을 받는다고 하며,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오지 못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한 번도 성경을 구경해 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가족끼리도 신앙은 비밀이기 때문에. 지하교회가 있다는 것도 모른다고 합니다.
중국으로 탈출을 했을 때에 그 귀한 성경책을 만나, 읽고 또 읽었다고 합니다. 송환 된 후에는 70이 넘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했고, 그 때 암기한 성경 구절을 전해 주면, 그것을 서로 외우는 형식으로 전해졌고, 찬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일에는 악취가 너무 심하고 눈과 얼굴까지 따끔거리는 재래식 변소에서 서너 명이 모여 남몰래 잠깐씩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함께하면 그 속에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을 붙잡고 만들어진 작은 교회였다고 합니다. 찬송을 부르다가 간수에게 결려 매질을 당하고 벌을 서는 벌칙을 받았지만, 그나마 운이 좋은 것이라고 합니다.
교화소에서는 인분과 흙을 섞어 거름을 만들어 들 것에 가득담은 후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일을 하루 종일 반복하는데, 노역 때문에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나는 성도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 분은 죽으면서 자신에게 유언을 남겼는데 “나는 죽어도 천국에 가니 울고 싶지 않습니다. 자매님은 살아서 마음껏 소리쳐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는 곳으로 가길 바랍니다.”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 탈북을 할 때에는 헤엄도 못 치는데 강물이 깊어서 떠내려가다시피 겨우 걸음을 떼는데 물 살이 세어 돌 조각이 와서 부딪쳐서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떠내려 가다가 ‘이대로 죽는구나’ 하는 생각에 ‘내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하는 기도를 올리는데 몸이 물가로 밀려 나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탈북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온 김익두 목사의 손자 며느리가 남기가 싶은 신앙의 유산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그 어느 곳에 있던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사랑하며 따라갈 수 있는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강조합니다. 말씀을 읽을 수 있을 때에 매일 많이 읽어두고, 비록 내 손에 쥔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믿음이 중요함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싶어 드릴 수 없는 곳이 우리나라의 가까운 북쪽에 있습니다. 성경 말씀, 찬송, 기도도 할 수 없는 그곳입니다. 들키기만 해도 수용소로 끌려가서 평생을 고역 속에 살다가 죽고 마는 곳, 죽어도 묻힐 곳이 없이 버려지게 되는데, 그래도 주님을 영접한 영혼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예배드리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북한의 성도들은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는 늘 마시는 물,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평소에는 귀중한 줄 모르듯이, 늘 우리 곁에 있는 성경책, 찬송가책이 귀한 줄 모르는 성도가 되면 안 되겠습니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고 했습니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객리는 성경에서 비늘이 없는 부정한 동물로 분류됩니다.(레 11:10) 고대 애굽인들은 이러한 개구리를 거룩한 동물로 여겨 신으로 숭배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직전에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를 통하여 일으킨 이적은 모두 애굽의 신으로 숭배되는 것들입니다. 이 개구리 모습에 비유된 세 더러운 영은 우두머리 되는 악의 세력의 연합체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더러운 것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데, 이것들은 귀신의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용, 짐승, 거짓 선지자 이렇게 3가지가 함께 역사하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동사(同事)하심을 모방하는 것으로, 이것 역시 사단이 하나님을 사칭하는 기만적인 술체의 하나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영인 성령과 반대되는 악한 영, 마귀의 영이 바로 귀신의 영입니다. 이 영은 미혹하는 영입니다. 세상의 왕들을 충동질하여 하나님의 군대와 전쟁을 벌이도록 간계를 부릴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적’을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귀신의 영들은 기만적인 사술로 세상의 권세자들을 속여서 그들로 하여금 자기 손아귀에 들어오도록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들은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그 힘을 집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날은 최후의 심판 날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날’즉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로도 표현하였습니다(고전 5:5; 빌1:6). 결국 짐승은 이제 재림하시는 주님과 한판 결기 위해 어리석게 세상의 힘을 집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짐승은 이 전쟁으로 완전히 패망하게 됩니다.(계 19:17-21)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자기 옷이 어떤 것입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입은 것입니다. 즉 영적으로 벌거벗은 수치를 당치 않도록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죄악 된 모습이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의롭게 되어, 의의 옷을 입은 자가 되었으며, 주님에 대한 믿음과 영적 순결을 수호하는 것을 가리켜 자기 옷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오실지 아니면 내일 오실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당장 오늘 밤이나 내일 오실 것이라고 겁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도적같이 오신다는 것은 주님께서 당장이라도 오실 것 같은 ‘긴박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주님의 재림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돌발적으로 일어날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살전 5:3).
우리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새로워진‘양심’은 ‘믿음 생활을 잘하라.’고 외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영혼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까? 애써 그 소리를 외면하는 것은 내 육신의 정욕으로 인함입니다. 이는 미혹하는 귀신의 영으로 인함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적 순결을 지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순결한 신부가 예복을 입고 신랑을 기다리는 모습을 비유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영적 순결은 성도가 하나님을 위하여 어떤 큰 일을 하는 것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한 절 읽되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으로 듣고, 짧은 시간을 기도하되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는 것같이 하는 것이 바로 영적 순결을 지키는 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결코 말씀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기도를 하는 척하지만, 중언부언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건강을 위하여 음식을 가려야 하지만, 달고 맛있는 것이 더 좋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더 먹고 싶은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 지식이 더 유익하게 느껴지고, 말씀보다는 내 생각이 더 지혜롭게 생각되어집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귀신의 영이 미혹시켰기 때문입니다.
내가 바로 설 수 있는 길, 주님 안에서 내 잘 되는 길은, 주님을 위하여 큰 일을 하는 것에 있지 않고, 바로 말씀 한 구절 보는 것부터 시작이 됩니다. 잠시라도 진정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그 기도대로 실천하려고 애쓰는 자세에서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 안에서 바로 서려고 애쓸 때에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믿음의 길은 지혜롭게 보이지 않고 답답해 보일 수 있습니다. 빠른 결실을 맺지 못하고 더디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길이 가장 안전하고 가장 빠르고 가장 완전하고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좁은 길을 갈 때에 하나님께서 올 해를 책임져 주십니다.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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