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하고 싶은 마음 마태복음 7:21-27
중국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성형천국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특히 연예인들은 좀 더 예쁜 모습이 되기 위하여 얼굴뿐만 아니라 전신성형까지 하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한국 연예인들은 모두 성형미인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연예인들의 얼굴 옆면을 보면 대부분이 비슷비슷합니다. 동일한 형태의 실리콘을 넣었기 때문에 그 모양이 동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형미인이냐? 자연 미인이냐? 이렇게 구별을 한다는 것입니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여자들과 남자들까지도 성형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선남선녀가 만나서 결혼을 했습니다.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남편은 태어난 아기를 보면서 매우 실망을 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얼굴이 너무 못생겨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얼굴을 보면 코도 오똑하고 눈도 쌍꺼풀에 예쁘고 턱도 가름한 달걀형인데, 어떻게 태어난 아이는 이렇게 못생겼을까 하고 적이나 실망을 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여자가 남자의 잘생긴 얼굴에 반해서 결혼을 하고 애기를 낳았는데, 그 아기도 쌍꺼풀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남편이 자신이 결혼하기 전에 쌍꺼풀 수술을 고백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아빠 쪽도 닮지 않고 엄마 쪽도 닮지 않아서, 도대체 이 아기가 누구의 씨앗인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다가 결국 이혼을 하고 말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얼굴이 예쁜 것은 3년이고, 마음이 예쁜 것은 평생 간다.”는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멋지고 예쁜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고 해도, 자기 얼굴 예쁜 것만 내세우고 남편을 공경할 줄 모르면, 소박을 맞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성형을 하는 것일까요? 성경에 비추어 보면 그것은 ‘자신을 나타내기 위함’ 즉 자랑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남이 나를 알아봐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인간의 욕망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도 자기가 어떤 일을 해 내게 되면 어깨를 으쓱으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자기 만족감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남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하는 표현 동작이기도 합니다.
원초적 욕망이라고 해야 할까요?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항상 남보다 잘나기를 원하고, 남보다 위에 있기를 원하고,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칭찬을 받으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을 지어낼 정도로 칭찬이 그만큼 좋은 것이기는 합니다. 칭찬을 받을 만하면 칭찬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존감도 높아지고 더 열심히 하게 되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칭찬 때문에 잘못을 지적하지 못하면, 그 아이는 결국 칭찬 때문에 망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한 자녀 시대의 가정에서 칭찬만 듣는 아이는 항상 자신이 제일인 줄로 착각하게 됩니다. 남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화를 내고, 어떤 일을 해도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칭찬은 교만을 심어주고 사회성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요즘 심각한 학교 폭력의 주된 요인이 무엇입니까? 부모가 교육을 잘못시켜서 일까요? 물론 그런 면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요 요인은 아닙니다. 첫째 원인은 학생 자신이고, 그 다음이 학교 부모 사회가 연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요인을 잘 살펴보면 결국에는 그 가장 밑바닥에는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는 욕구가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잘못된 이기주의가 들어 있습니다. 학교에서 일진을 인정하지 않고 폭력을 인정하지 않고 개인적인 성격 탓으로 돌려 피해자 학생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그 부모에게 전가합니다. 이 또한 학교라고 하는 공동체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기 위한 추한 모습인 것입니다. 학생 주임 선생님이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몰랐다고 말하는 이유는,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무능력, 학교 측의 대응 방식, 교육청의 태도 이런 모든 것들과 ‘학생인권조례’라고 하는 것이 맛 물려 돌아가면서 선생으로서의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서울의 한 어린이 집에 13개월 된 유아를 맡겼는데, 전화가 와서 달려가 보니 아이가 화상을 입었는데, 얼음 팩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어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했더니, 원장이 아기를 앉고 라면을 먹으려고 하다가 국물이 쏟아져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화상을 난 사진을 보니, 손등, 발, 가슴, 배 등에 큰 상처가 났습니다. 이는 결코 라면 국물이 쏟아져서 생긴 상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도 어떻게 뜨거운 라면을 아기를 앉고 먹을 수 있습니까? 원장과 교사들이 입을 맞추어서 사건을 덮으려고 했습니다. 원장은 자신이 아이에게 얼마나 잘해 주었는가를 다른 원생 부모들에게 세뇌시켜서, 잘 처리하라고 압력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부모는 어린이집 원장이 사건을 덮으려고만 하고 핑계만 대는 것에 너무나 화가 났다고 합니다. 화상을 입는 순간 119로 신고해서 응급실로만 갔어도 되었을 텐데, 몇 시간을 그대로 데리고 있었다는 것부터 잘못된 자세라고 지적을 합니다. 잘못한 것이 없다면서도 500만원을 가지고 와서 합의를 보자고 하였답니다. 그리고 이제 어린이 집을 그만둔다고 마음대로 하라고 하였답니다. 보름 동안이나 찾아오지도 않기에 알고 보았더니, 근처로 이전을 하기 위해 준비하느라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잘못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동네에서는 어린이집을 할 수가 없으니까 이전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해당 구청에서도 이런 일에 대해서는 벌금 100만원과 2-3개월 영업정지 처분만 내린다고 합니다. 1인 시위를 하려고 하니까 오히려 동영상를 찍겠다고 하고 경찰에 신고를 하여 경찰관이 출동까지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덮으려고만 하고, 항상 남의 탓만 하는 시대입니다. 감추려고 한다고 결코 감춰지지 않습니다. 사랑과 신념이 없는 교육 사업, 교사 생활은 나에게는 물론 학생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가 없습니다. 특히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기 자랑과 자기 잘못을 덮으려고 하는 것은 동전의 앞뒤와 같은 것입니다. 그 뿌리가 같은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남들이 그렇게 하니,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나도 따라가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아니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야 할까요? 이 세상에 잘못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용기는 진실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용기가 자신을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놀라운 비밀이 담겨져 있는 것을 우리들은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애를 쓰게 됩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세상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답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세 가지의 원칙이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말로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요, 둘째는 자신을 자랑하는 것의 결국은 지옥에 간다는 것이요, 셋째는 주초를 반석에 놓지 않으면 무너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1. 말로만 하지 말자.
사람은 살다보면 빈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은 특히 남을 칭찬하는 말을 자주하게 됩니다. 그래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소위 ‘립 서비스’라고 하는 것이죠. 문제가 생기는 일도 아니고, 진실을 밝히는 것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 때로는 립 서비스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반드시 행동으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말로만 하는 때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어떤 곳에서든지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우리 성도들이 매우 조심해야 할 일이 바로 이 입술로만 ‘주님, 주님’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해요.’ ‘하나님 믿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앙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자들은 교회의 회원의 받아들여지고, 믿음의 형제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입술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마음속으로는 부인하는 것은 거짓 신앙고백입니다. 이런 자들은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은 거짓 선지자들과 같은 자들로, 겉으로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과 같이 위장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아서 나쁜 열매를 맺는 자들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자들에게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나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확실한 조건입니다. 즉 참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머리로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안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한순간 감정적으로 감동을 느끼거나, 기쁨을 느끼거나, 괴로움을 느끼거나 한다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요,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이단에 속한 자들은 얼마나 불쌍한 자들입니까? 잘못된 이단사설에 넘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 자신은 죽어라하고 예수님을 잘 믿은 것 같지만 그 결국은 지옥에 가게 됩니다. 정말로 죽도록 충성했는데 그 충성이 알고 보니 마귀에게 한 것이라면 얼마나 불쌍한 인생이겠습니까?
옛날 이스라엘에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나 항상 말로만 남을 도와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그런 사람에 대하여 죽은 믿음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행함으로 믿음을 보여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배가 고프고 헐벗은 사람에게, 배부르게 먹으라고 하면서 먹을 것을 주지 않는 사람, 추운 날씨에 따뜻하게 입으라고 하면서 입을 옷을 주지 않는 사람들의 믿음은 헛것입니다. 야고보는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습니다. 100세에 얻은 이삭을 제단에 바치는 행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믿음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약 2:21)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그나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다면, 아직까지는 믿음으로 연결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진정한 믿음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세상과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알면서, 십자가를 알면서, 믿음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는 여러 가지 방해 요소들을 속히 물리쳐야 합니다.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2. 나를 자랑하지 말자.
나에게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나에게 유익한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내게 유익한 일입니까? 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유익한 것입니까? 내가 배부르게 먹는 것이 유익한 일입니까? 남에게 칭찬을 받는 것이 유익한 일입니까? 아니면 출세해서 자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유익한 일입니까?
유익한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분명히 아니지만, 내 기분이 좋다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기분이 좋아진다고 내게 유익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즉 쾌락이라는 것이 나를 유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혀에 달콤하고, 맛있는 것을 배부르게 먹었다고 내가 건강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돈을 많이 벌었어도,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되면(눅 12:15-22; 16:22,23) 결코 유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신앙적으로도 그런 부류들이 있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이는 자기들의 주장일뿐입니다. ‘내가 이런 일을 했습니다.’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를 기대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들은 심판대 앞에 설 때까지도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며 자신들의 구원에 대해 전혀 의심이 없이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사역 중에 나타난 이적과 기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술의 신앙고백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사역이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조건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로 그들을 모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의 하는 모든 일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들을 완전한 공의로우심으로 심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저들을 알고 모르는 하는 ‘앎’은 지식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앎은 어떤 것입니까? ‘무조건적 선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조건적 사랑을 베푸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들은 예수님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말하고 가르쳤지만 실제로는 예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들이었음 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셨고 ‘내게서 떠나가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불법을 한 자들에 대한 심판을 뜻하는 것입니다.
불법이 무엇입니까?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완성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에 동참하지 않는 죄가 불법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많은 일을 ‘주의 이름으로’ 행했으나 가장 중요한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의 사랑의 십자가의 은혜를 입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신앙에서 가장 강조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5:35-40) 바로 하나님사랑과 이웃 사랑이 가장 큰 계명이요, 이것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그 어떤 큰일을 했다고 주장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결코 인정해 주지 않으며 불법을 행한 자들로 간주되어 심판을 받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고보가 강조하는 ‘행함’은 ‘믿음으로 하는 행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할 때에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주초를 반석위에 놓으라.
주초를 반석위에 놓으라는 것은 마태복음 5-7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의 총 결론에 해당합니다. 주님께서는 신앙의 열매, 즉 행함이 없는 자들과 믿음의 행함이 없는 자들이 심판을 받을 것을 언급한 후에 결론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의 복과, 행치 않는 자의 벌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구원과 심판을 결정하는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지식적으로 동의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에 있지 않고 그 말씀대로 행하느냐 행치 않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불순종할 것인가에 대한 양자택일의 결단을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집을 지을 때에 주초를 반석 위에 놓으라고 하였습니다. 집을 지을 때에는 기둥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 기둥을 바로 세우고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기둥을 놓을 때에 튼튼한 바위 위에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흙은 살짝 판 후에 놓는다든지, 말씀과 같이 모래 위에 놓게 되면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으나, 바람이 불면 흔들려 쓰러지고, 비가 오면 흙이 쓸려나가서 기초가 드러나고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크고 튼튼한 바위는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아무리 홍수가 나도 떠내려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런 반석과 같기를 바랍니다.
공부할 때에도 아무리 수학 문제를 많이 풀고 책상 앞에 오랜 시간을 앉아 있어도 성적은 결코 올라가지 않습니다. 무엇이 원인입니까? 공식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영어 단어를 모르는데 어떻게 해석을 하고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공부도 그렇고 세상 일도 그렇고 모든 일에는 기초가 없이는 안 되는 것을 누구나 다 알지 않습니까?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는 비가 올 때를 대비하지 않고 모래 위에 집을 지었다가 폭우가 몰아치면 그만 그 집을 잃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스스로 집을 잘 지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폭우가 내리자 그 집을 잃어버린 어리석은 자를 비유하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말씀을 듣고 행치 않아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게 될 자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평상시에는 평안해 보이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고, 행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갑자기 닥칠 마지막 때에는 말씀에 불순종한 자들은 가차 없이 멸망의 지옥 불 속으로 던져지고 말 것입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며 신앙 고백하면서 실제적으로는 말씀에 불순종하는 거짓 신앙인들도 지은 집이 무너짐 같이 하루 아침에 그 실상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두 가지의 길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서 넓고 큰 길로 가는 것과,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과 불순종하는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은 자유일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생명과 멸망으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말씀과 기도가 없이 믿음이 자랄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교회에 나오는 것이 즐겁고, 주의 일을 하는 것이 기쁠 수가 있겠습니까? 내 자랑이 없어져야 하나님의 말씀이 내 귀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없어져야 주님의 십자가가 내 눈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런 후에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이미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주님의 일은 큰 것을 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작은 소자를 위하여 하는 일이나 주님을 위한 물 한 잔을 드리는 일 즉 작은 것에 충성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요, 주님께서 이런 작은 일을 하는 자에게도 충성된 자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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