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설교

2012년 신년 예배 -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chukang 2012. 1. 1. 12:20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시편 50:1-23

 

  2012년 새해 첫날이 주일이라서 참 좋습니다. 첫날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마치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서 더욱 좋은 것 같습니다. 월삭은 매월 첫날인데, 이 날에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민 10:10;28:11;29:6) 올 1월 1일은 새해 첫날이면서도 첫 월삭이며 첫 주일입니다. 올해에는 우리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한 해를 지낸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에게 올해에는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기대하기를 바랍니다.

  시편 50편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본적인 삶의 원칙 3가지가 다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재물에 관한 내용입니다. 천지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가 취득한 모든 재물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개념이 성도들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신행일치 즉 믿음과 행동이 일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실망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교회 다니는 사람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도 성도는 뭔가 자신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예배하는 자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자세는 이방인들이 우상에게 제사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참된 예배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참된 예배만이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신다는 것은 ‘내가 너의 믿음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1.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신명기 10: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하늘도 땅도 그리고 땅 위의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땅 위의 모든 것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식물, 동물 그리고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도 역시 하나님의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도 역시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경제 활동도 역시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조금 잘 살게 되거나 좋은 일이 있으면 ‘자긍’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시 49:6)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지하고 그로 인해 만족하기 보다는 도리어 자신들의 물질적인 부요함을 신뢰하고 그로 인해서만 만족해하는, 즉 현세적인 만족과 육신의 안일만을 좇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결코 그 풍부함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풍부함으로 다른 형제를 구속하는 선을 베풀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 풍부함으로는 결코 형제의 생명을 구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22-23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이 부자는 부요함으로 자긍하는 자였기 때문에, 결국 자신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음부에 떨어졌고 고통 중에서 천국의 나사로를 바라보는 처지가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천지만물이 하나님의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짐승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습니다. 인생의 참 가치는 이 세상의 물질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많이 가졌든지 적게 가졌든지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것은 반드시 구별해서 드려야만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성물’만은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십일조(레 27:30;대하 31:6)와 처음 열매(렘 2:3)와 직분(겔 44:8)까지도 성물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성전, 성전의 기명, 하나님께 바치는 모든 제물이 모두 성물입니다.

  이 성물을 함부로 취급해서도 안 되고, 부지중에 범해서도 안 됩니다. 특히 제사장, 레위인은 사람 중에서도 구별된 성물입니다. 우리는 모두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가장 기초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맡은 직분이 무엇입니까? 직분은 성물입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맡은 바 직분에 온전히 충성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는 한 해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외식적인 삶을 버리라.

  이 세상에 사는 사람치고 외식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일이지만, 성경에서는 외식하는 자들에 대한 무서운 경고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2,5,16에는 구제하는 경우에도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재물로 구제는 했으나 그 상은 이미 이 세상에서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상과, 천국에서의 상은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도할 때에도 사람이 듣도록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도 역시 그 상은 이미 받았다고 했습니다. 금식할 때에도 얼굴에 슬픈 기색을 하는 것은 외식하는 것이므로 이 역시도 그 상을 이미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외식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맡은 청지기로 이 세상을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으로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 재능 등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제 것인 양 생색을 내는 것 자체가 잘못인 것입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4-18) 이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외식하는 사람은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함은 물론이요 다른 사람까지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고 했습니다. 어떤 식으로 막는 줄 아십니까? 이들은 교인 하나를 얻으려고 방방곡곡을 누비다가 하나를 만나게 되면 그를 자신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마 23:13,15). 그래서 이단들이 무서운 것입니다. 말로는 천국으로 인도하는 참 진리를 증거한다고 합니다. 행동이 겉보기에는 거룩한 한 것 같습니다. 우리의 영적 분별력이 모자라게 되면 그들의 말이 매우 달콤하게 들리며 우리의 마음이 그들에게 쏠리게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 그러나 속아서 따라가게 되면 지옥문이 눈앞에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8) 우리는 과연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사람들 앞에서도 외식을 하지 않는 참 성도일까요? 우리 성도들은 믿음과 행함이 동일해야 합니다. 거짓된 모습으로는 사람을 속일 수 있으나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성도가 복을 받게 됩니다.

 

3. 감사로 제사드리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주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당시 유대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 제사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였습니다. 사마리아 땅에는 말씀이 왜곡되어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예배가 드려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모두 주님의 십자가로 제거된 후에는 말씀에 기초하여 신령한 마음이 된 성도들이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에 맞춰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게 됩니다.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 풍조에 맞춰서 해석하게 됩니다. 이런 모습들로는 결코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통치하시는 줄로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지배자가 되심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그런 하나님께는 이방인들이 우상에게 하듯이 단지 동물의 희생 제물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받으실 만한 산제사(롬 12:1)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나의 아버지가 되셔서 나를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가운데 감사하는 마음을 나아가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말씀에 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이 말씀은 아무런 제물로 제사를 드려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결코 형식적으로 제물만 드리고 참 감사가 없는 제사는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상달되는 참된 제사는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찬양이 깃들어 있는 제사여야 합니다.

  예배(Worship)는 하나님께 대하여 최고의 가치와 최상의 존경과 명예를 드린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예배는 창조주이시면서 구속주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피조물인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찬양하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그저 습관적으로 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났다.’(삼상 15:22)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의 외식에 대하여 많은 경고를 하셨으나,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세리는 성전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죄인이라는 고백을 할 때에 비록 외양은 갖추지 못했지만 그 기도를 칭찬하셨습니다(눅 18:13).

  또한 예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일부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내 것’을 주장하는 사람은 예배 시에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가 없습니다. 내가 가진 재물, 내가 가진 재능, 나의 직업, 나의 능력, 나의 자녀 등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 뜻대로 사용하지는 않았습니까?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려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것에서 감사하는 제사가 시작이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진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출 32:19) 모세는 여호수아만을 데리고 시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여호수아는 산 중턱에 머물러 있고 모세는 40일 금식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오게 됩니다. 아래쪽에 내려오니 밑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모세는 그 소리가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울부짖는 소리도 아님을 간파했습니다. 노래하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늦게 내려오자, 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송아지를 앞세우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며 뛰놀며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세가 결코 아닙니다. 즉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야 합니다. 사람이 북적북적하고 시끌시끌하고 찬송소리가 울려 퍼지니 사람들이 기뻐합니다. 마음이 흥분이 됩니다. 그러나 그런 예배는 참된 예배가 아닙니다. 사람의 기분을 맞추는 예배, 사람의 감정을 부추기는 예배 형식은 결코 참된 예배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예배가 아니고, 또 습관적으로 드리는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감사의 예배만이 하나님께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라면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런 마음을 기뻐 받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올해에는 바로 내 자신을 산제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복을 받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