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승패는 사무엘상 14:1-15
우리 모두 뉴스를 통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지난 23일 화요일에 북괴의 포탄 공격으로 연평도가 군부대와 민간인 지역에 큰 피해를 입었고, 병사도 2명이 죽고 민간인도 2명이나 죽고 많은 사람들이 중경상을 입은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인지 아니면, 간첩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북괴의 공격을 찬양하는 글도 인터넷에 올라오고, 예비군 동원령이라든지, 징집 명령이 내려졌다는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어 검거가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왜 북괴가 포탄 공격을 했는지 여러 가지 방면으로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을 해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북한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게다가 해마다 일어나는 홍수나 한발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하여 흉년이 계속 들고 있고, 극심한 식량난으로 인하여 많은 주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지만 북괴는 정권을 유지하여야만 하고, 그 중심은 군대입니다. 군대를 유지하는 것에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계속하여 핵개발을 하고 있고, 거기에 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북괴는 이 돈을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과 일본 등으로부터 조달을 받았습니다. 핵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우방국들은 경수로를 지어주기로 했고, 기름과 현물 등을 제공해 왔습니다. 전 김대중 대통령은 방북하여 김정일을 만나는 조건으로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였다는 것을 공공연한 비밀이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는 계속하여 북한을 지원해 왔던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금강산 관광을 통하여 또 개성공단을 통하여 북괴는 계속하여 달러를 제공 받았습니다. 이 돈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요? 북한 주민들을 위하여 사용된 것이 아니고 핵무기 개발과 군대 유지를 통하여 체제 유지에 쓴 것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이러한 무조건적인 지원을 자제하게 되었고, 금강산 관광객을 북괴군이 살해한 후에 관광이 중단이 되어 자금 조달에 차질을 가져오게 되었고, 그 모자라는 자금을 개성 공단 임금 협상을 통하여 보충하려고 했으나 그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6자 회담은 중지가 되어 핵무기를 포기를 통한 자금을 얻어 쓸 수도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중국의 원조를 통하여 제공 받을 수 있는 자금이나 물자도 한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북괴는 과거 김대중과 노무현을 통하여 제공 받던 자금을 이명박 정부에서도 해 주기를 강하게 요구했지만 거부를 당했습니다. 그 돈들이 북한정권 유지와 군대 무기 확충에 들어가는데,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 돈으로 우리를 향하여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사준 결과가 되기 때문에 무엇 때문에 돈을 주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나 민노당과 같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에서는 계속해서 북한에 돈을 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렇게 위험한 상황은 우리가 돈을 주지 않고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북한의 편을 들어 주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민주당은 북한을 공격하기는 했지만 입술로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고, 민노당은 오히려 북한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다 보고 듣지 않았습니까?
결국 북한괴뢰정권은 김정은 후계자 구도와 맞물려 어려운 경제 사정을 조금이라도 완화시켜보려고 연평도에 포사격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위협을 느낀 우리나라와 미국이나 일본 등이 6자 회담을 다시 시작하고 돈을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정치권에 분열을 일으키고 국론 분열을 일으켜 어떻게 해서든지 무상원조를 받아내려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마치 깡패들이 상점 주인을 공갈 협박하여 주기적으로 돈을 갈취하고 있는 것과 같으며, 주인이 돈을 주지 않으면 마치 상점 물건들을 훼손시키고 영업방해를 하여 돈을 받아내려고 하는 것과 같은 파렴치한 행동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중국은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돈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무역에서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그 돈으로 그들은 계속하여 핵무기를 비롯한 군수산업도 발전시키고, 북한에는 약간씩 원조를 해 주면서 자신들의 생각대로 조종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에도 중국이 보이는 태도를 보면서 우리는 한 가지 더 큰 걱정을 해야 합니다. 소위 ‘동북공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동북공정은 고구려가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거짓 문서화시키는 작업입니다. 그 작업은 왜 하는 것일까요? 중국은 고구려에 패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수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고구려를 중국 영토 내에 있는 소수민족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중국으로서는 그 수치를 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더 중요한 점은 남북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고구려의 계승자라고 생각하는 북한 정권과 그 영토가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을 할 수 있는 역사적인 근거가 될 수가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북한과 중국은 이미 전쟁 시에는 자동개입을 하도록 서로 방위조약이 체결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중국은 반드시 개입을 하게 되고, 우리로서는 통일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는 것을 가정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백두산은 반쪽씩 북한과 중국이 나누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 말기의 영토에는 백두산 넘어 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간도협약으로 인하여 이것을 강제로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간도 협약이란 “간도 협약(間島協約)은 일본 제국이 1905년 제2차 한일 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상태에서 1909년 9월 4일 청나라와 체결한 조약입니다. 경부선에 대한 철도부설권 등을 일본 제국이 가져가는 대신에, 간도를 청나라 영토로 인정하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 조약으로 간도에 대한 대한제국의 영유권 주장은 공식적으로 철회되고 만 것입니다. 중국은 남북통일이 되는데, 만일 남한이 통일을 이루게 된다면 그 영토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동북공정이라는 것을 통하여 역사를 날조하여 고구려가 중국 땅이었다고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번 연평도 사건을 통하여 자각해야 할 것은, 국제 정세나 남북 간의 상황도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경제적 우위, 군사적 우위,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배후에 두고 있다는 안도감 등과 같은 것들을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북괴의 호전적인 성격을 잊고 있었고, 설마 하는 생각 때문에 북괴의 공격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에 대한 회개가 따라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물론 세상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는 마귀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책임은 성도가 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된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설교하지 않고, 물질 중심주의적인 설교, 인본주의적인 설교, 이단 사설의 포용하는 신복음주의, 마귀의 앞잡이인 W.C.C 총회를 부산에서 개최하는 이러한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들을 회개해야만 합니다.
복음 전파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에 목회자는 온 마음을 다 쏟아야 하는데, 교회 성장주의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순수한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와 경건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 잘못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스스로 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틈을 타서 마귀는 한국 교회가 스스로 무너지도록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단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교회 성장주의에서는 이단이 정통이 되고, 정통이지만 교세가 약한 교회는 이단으로 되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적분별력이 없는 성도는 큰 교회에 나감으로써 자신의 신앙도 크다고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큰 건물을 짓는 것에 헌금을 하면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에도 빠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물질주의 성장주의에 빠지고 스스로 교만하게 되고 성결한 신앙생활을 등한시하게 되자 타락한 모습을 본 불신자들은 교회를 등지고 천주교나 불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것들에 스스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고, 교회 내의 거짓 선지자들의 책략으로 믿음이 없는 성도들은 이단의 속삭임이 달콤하게 들리고 거기에 빠지고 이단이 발흥하는 악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자신을 믿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느 정도 선까지 될까? 내 능력으로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또 어떤 일을 해결할 수 있을까? 또 우리 대한민국의 능력을 어느 정도까지 믿을 수 있을까요? 국가적인 면에서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 대한민국이 북한과의 싸움에서 어느 정도 승리를 할 수 있을까? 일본이 독도를 침공한다면 방어할 능력이 있을까? 중국이 우리 상품에 대한 수입금지령을 내린다면 우리 경제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까?
오늘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내려야 할 결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의 믿음을 보면서 우리도 어떤 일을 닥치든지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이 자라나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요나단이 블레셋 진영을 습격한 곳은 ‘믹마스’라는 곳으로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약 12km 정도밖에 되지 않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베냐민 지파의 관할인데, 암벽지대의 마을입니다. 이러한 지형은 전쟁을 하는데 있어서 군사전략을 세우기에 매우 적절한 곳이기도 합니다. 주위의 깊은 골짜기와 산의 돌출부 사이에 있는 들쑥날쑥한 보세스와 세네 사이의 좁은 길을 통해 밤에 매복했다가 날이 밝은 후 믹마스를 공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우세한 군대와 장비를 가지고 있던 블레셋 군대는 산악지대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든 자가 매복하였다가 블레셋의 파수꾼들을 죽이는데 성공하였고, 이로 인해 블레셋 군대 안에서 큰 혼란이 일어났을 때 사울의 군대가 이를 재빠르게 이용함으로써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완전히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요나단의 이러한 행동은 너무나 무모한 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요나단이 사울 왕에게 보고하고 허락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단지 자신의 병기를 든 소년만 데리고 몰래 진영을 이탈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상관의 창, 칼 및 방패 따위를 들고 다니면서 상관을 호위하던 부관과 같은 병사가 있었는데, 그를 가리켜 ‘병기를 든 소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총명하며 비교적 두터운 신임을 받는 자가 선발이 됩니다. 다윗도 한 때는 사울의 병기든 자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삼상 16:21).
왜 요나단은 사울 왕에게 이 사실을 고하지 않았을까요? 모든 여건에서 성공하기가 힘든 것이기 때문에 당시 의기소침해 있는 사울 왕은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고 요나단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요나단은 아버지로 인해 자신의 믿음의 행위에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울 왕은 ‘기브아 변경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에 머물고 있었으며, 당시 군대는 600명 밖에 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왕과 군대가 블레셋 진영을 잘 살펴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진영에서 ‘떨림’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15절을 보면 “들에 있는 진과 모든 백성 중에 떨림이 일어났고 부대와 노략군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부대와 노략군’이라는 말에서 부대는 블레셋 군대의 본대를 가리킵니다. 노략군은 삼대로 나누어서 진격하는 선발대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떨림은 두려움이나 공포를 말합니다. 땅이 진동하였다는 것은 지진이 일어난 것을 말합니다.
다시 6절로 가서 보면, 요나단은 자신의 병기 든 자에게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게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믿음 안에서 요나단은 이스라엘의 승리를 확신하며 블레셋인들 대하여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비웃었습니다. 이 말은 후일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향하여 외던 그 말이기도 합니다. 요나단은 능력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스라엘을 위하여 역사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도우심을 믿고 간구하는 것은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하는 겸허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병기든 자도 요나단의 믿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단 둘이 가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신도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들의 신앙은 어떤 모습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도 믿음으로 단 둘이 적진을 공격하러 갈 수 있을까요?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우리 성도들이 대장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야 할 모습이요, 고백해야 할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나단은 무모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9절에 보면, 블레셋 군인이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고 하면 가만히 있고,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올라가자고 하는 약속을 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확인하는 절차였습니다.
요나단과 병기든 자가 블레셋 군인에게 모습을 보이자, 그들은 “우리에게로 올라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 주신다는 표징이었습니다. 요나단과 병기든 자는 블레셋 진영으로 올라가는 즉시 저들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은 두 사람 앞에 블레셋 군대는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겨우 두 사람 앞에 블레셋 군대의 그 누구도 상대가 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였고, 두 사람은 반일 동안 20여명을 죽였는데, 이를 본 블레셋 군대는 극도의 공포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공포심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심어준 것인 줄로 믿습니다.
두 사람의 공격에 블레셋 군대가 공포심을 갖고, 게다가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이스라엘에게 붙이기 위한 역사입니다. 이 역사가 왜 그 때 맞춰서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곧 요나단의 믿음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 믿음을 기뻐하시는 증거입니다.
가뜩이나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고 있는데, 지진까지 일어나니 블레셋 군대는 혼비백산하여 이리저리 휩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있던 사울 왕과 군대는 즉시 진격하여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처럼 전쟁에서의 승리의 요인은 인간적인 요소에 있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지혜나 능력을 자랑하고,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고자 하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우리는 자신들의 힘만 믿고 교만하거나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을 더 의지하려는 자가 겪을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를 또한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원수 마귀의 앞잡이인 공산당과의 싸움에서 우리 대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우고 우리는 뒤따라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북한보다 나은 경제력, 나은 무기, 미국이라는 배경을 앞세우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그런 것들을 반드시 뒤따라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비록 우리 성도들이 지금은 이단에 현혹이 되기도 하고, 무사안일에 빠져있기도 하지만, 이런 계기를 통하여 내 믿음을 회복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다가와도 반드시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내 교만함을 버리고, 내 자존심을 버리고, 무릎을 꿇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앞에는 전쟁뿐만이 아니라, 직장의 문제, 진학의 문제, 학업의 문제도 반드시 이겨내야 할 과제입니다. 요나단과 병기 잡은 자와 같은 믿음으로 우리도 무장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고 달려 나가는 십자가의 군사가 되어 승리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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