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성경 말씀

맥추감사절과 오순절 성령 강림

chukang 2010. 7. 4. 00:30

 

첨부파일 오순절 성령 강림 사도행전 2.hwp

 

오순절 성령 강림 사도행전 2:1-13

 

 설교 할 때에 ‘구속사’라는 말을 가끔 듣게 됩니다. 구속사라는 것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구속이 어떻게 시작이 되어 어떻게 끝맺음을 하는가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초 아담이 하나님과 맺은 선악과 언약을 어기고 타락하여 곧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법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법을 즉각 성취하신 것이 아니라 일단은 예수님께서 초림하셔서 구속 사역을 성취하시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옛 약속 즉 구약(舊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중심으로 하여 예수님께서 성육신(Incarnation)하시고 초림하실 때까지의 구약 시대의 역사가 진행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 성육신 초림하셔서 구속 사역을 일단 성취하신 후에도 즉각 구속을 통한 천국 구원을 주신 것이 아니라, 새로이 이러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믿는 자에게 세상 끝날 다시 재림하셔서 그 구속 사역의 최종 실현으로서 영원한 천국을 주실 것에 대한 새 약속 곧 신약(新約)을 예수님께서 새로 주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초림 이후 재림 때까지의 신약 시대의 역사가 새로이 진행되게 하셨습니다.

  스스로 타락하여 죄에 오염된 결과 그 심령이 완악해진 인간들 중 선택된 자들이 일단 과거에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구약의 약속대로 성취가 되었듯이, 이제 새로 주신 미래의 천국 구원의 최종 약속도 필히 성취될 것을 보다 더 잘 확신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현재 하나님께서 택한 모든 자의 충만한 수가 다 차기까지 재림과 종말이 유보되고 구속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 예수님께서는 전날 자신이 하나님의 보내심으로 이 땅에 오셨듯이 성령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하여 각 개인 성도에게 임하여 예수님의 전하신 복음을 믿고 중생하게 함은 물론이며, 계속 그 심령에 내주하여 성경의 진리를 비추시고 깨닫게 해 주심으로써 믿음 안에서 장성케 하시는 ‘보혜사’(the Helper)의 사역을 감당하시도록 하셨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란 바로 성령의 사역을 위하여 무덤에서 부활하신 뒤 40일을 이 땅에서 더 계시다가 감람산에서 승천하실 때에 약속하신 대로, 승천 후 10일 뒤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을 말합니다.

 

1. 오순절 성령 강림의 배경

  선악과 범죄 이전의 인간은 태초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직접적이고도 전인격적인 교제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죄로 오염된 후에는 절대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신약 시대의 예표로서의 일시적이고 단절적인 교제를 제외하고는 근본적으로 단절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성취된 후에는 각 성도가 중생하는 즉시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의인의 신본을 회복하게 되어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당시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을 상징하던 성전 지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고 마태복음 27:51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구속 사역의 결과로 천국이 ‘도래(到來)’하기 시작하였으나, 그 온전한 도래는 오직 세상 끝날 새 천국에서 이루어지게 하셨듯이, 이제 의인의 신분을 얻은 회개한 성도들과도 전인격적인 교제의 회복을 뒤로 미루시고, 일단 성령을 보내시고 성령을 통한 근본적인 교제는 회복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2. 오순절 사건 이후의 성령의 사역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일단 이 땅 역사에 전반적으로 임하신 성령께서는 이제 하나님께서 택하신 각 성도의 심령에 임하시어 먼저 그를 회개시키고 중생하게 하는 성령의 세례를 베풀어 주시고, 또 이후에도 그의 심령에 영속적으로 내주하시면서 각 성도와 교제를 계속하시며 도우고 계십니다. 한 마디로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성도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 직접적 교제를 나누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는 절대 주권자이시며 창조자이신 삼위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게 된 놀라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3. 구속사적 의미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전날 주님께서 공생애 도중과 그리고 마지막 부활 승천 시에 주신 약속대로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님의 약속은 신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 14:16; 16:7; 행 18:8) 또한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성령을 보내시고 교제를 나누시며 동행해 주신다는 점에서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심령 안에 성령을 모시고 교제를 나누는 우리 성도 각자의 고귀함과 아울러 그런 성령을 모신 자로서의 책임도 느끼게 됩니다.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의 전, 후를 크게 살펴볼 때,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중심으로 전 삼위일체의 공동 사역으로 진행되는 구속사의 일관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제1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법을 제정하시고 이를 약속하시면서 구약 시대에 주도적 역할을 하셨고, 제2위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신약을 개시하면서, 이제 같은 신약 시대이기는 하지만, 주님이 지상에 계시던 때와 달리 주님이 성천한 후 재림하시기 전까지의 현재에는 제3위 하나님이신 성령이 주님의 이루신 구속 사역의 공로를 각 성도들에게 적용하여 인치시며 주도적 역할을 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구속사는 그 시대에 따라서 어느 한 위 하나님께서 보다 더 주도적으로 사역하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삼위 하나님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원리를 중심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관되게 진행하시는 구원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성령의 역사의 결정적 사건인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유월절 후 첫 안식일 다음날로부터 50일째 되는 날로 가나안 땅에서 첫 수확을 거둬들인 것을 기념하는 감사절기입니다.(민 9:11;28:26) 즉 성령강림은 ‘맥추감사절’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오순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나안 땅에서의 새로운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성령을 통하여 성도의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을 예표해 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유월절 후 첫 안식일인 ‘부활주일’로부터 시작하여 50일 째 되는 날이 ‘성령강림주일’입니다. 한국 교회는 매년 7월 첫 번째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선포하고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하면 올해는 6월 6일이 성령강림주일이며 맥추감사주일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유월절 성만찬을 거행하셨습니다.  유월절 다음 날이 바로 안식이 시작이 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무교절’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유월절을 하루 당겨서 ‘목요일 밤에’ 거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셨고, 그 다음 날은 안식일(토요일)입니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 곧 일요일에 부활하셨습니다.  신약 교회는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새로운 안식일 곧 ‘주일’ 혹은 ‘주님의 날’로 정하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날짜 계산을 해 보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로부터 정확하게 50일만이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셨고, 승천하신지 10일 만에 성령의 강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일 년에 3번 예루살렘에 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되어 있는데,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입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남자뿐만 아니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과 열방에 흩어진 유대인까지 포함이 됩니다.(신 16:16) 천하 각국으로부터 많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운집한 것은 바로 이러한 규례를 지키기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은 한 곳에 모여서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강림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모인 곳이 어디일까요? 지금까지 알고 있는 장소는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대부분이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에 더 큰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하는 주장은 행전 1:13-15의 말씀을 근거로 합니다. 그곳에서 기도가 시작이 되었고, 제자들의 수가 무려 120명이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 시니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고 눅가복음 24:49-53절까지 기록하고 누가복음을 끝맺고 있다는 점과, 2:5-6을 보면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장소가 어디일까요? ‘성전’에 있었다고 하는 것 눅 24:53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할 수 있는 장소는 성전 밖에는 없습니다.  또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에 방언을 받고 기도하는 소리들을 각국 사람들이 다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맥추절에 예루살렘에 경배하러 온 모든 사람들이 다 들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성령의 강림은 자연스럽게 예루살렘 성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개인의 다락방 보다는 성전에서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도 한 것입니다.

  이 장소에 대한 문제가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강림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좀 더 세밀하게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신 후에 하시는 일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는 성령께서 강림하신 후에 초대 교회가 탄생이 되고 확장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1. 각 사람에게 임한 성령

  성령은 어느 한 사람이나 몇몇 사람이나 제자들에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각 사람 위에 임하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초대 교회의 태동을 가능하게 한 성령 강림은 바리새인과 제사장 중심의 종교적 엘리트가 아닌, 모든 성도들을 ‘만인제사장’으로 승격시키고 주님의 일을 힘 있게 증거하도록 하였습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한 모든 이들은 모두가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즉 오늘날에도 은혜를 사모하는 모든 성도들에게는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각 사람에게 나타난 현상은 ‘방언’의 은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방언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other tongues)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방언은 제각기 다른 언어, 즉 외국어를 가리킵니다.  이 방언은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새 방언’(new tongues, 막 16:17)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방언(고전 14:2)과는 구별이 됩니다.

  성령 강림으로 받은 방언의 특징은 첫째, 당시 세계 각국에서 몰려 온 순례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각각의 다양한 언어로 나타났다는 점입니다.(행 2:8)  일반적인 방언은 ‘통역’이 없이는 자신 뿐 아니라 듣는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없는(고전 14:13,19) ‘천사의 말’(고전 13:1)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일반 순례객들이 통역 없이 자신의 고유한 지상의 언어로 알아들을 수 있었던 사실은 당시로서는 매우 특별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여기에서의 방언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교회의 태동을 위한 단회적인(once for all) 사건이었던 점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만 일어난 단회적 사건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방언의 특징은 고린도 교회의 방언이 오늘날까지도 지속되는 것과는 뚜렷이 비교되는 것입니다.

 

2. 능력 있는 복음 증거

  14절 이하부터는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 강림의 현상으로 나타난 만국 방언에 대해 조롱하는 무리들에게 베드로가 설교를 통하여 성령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담대한 설교는 그의 이전의 모습, 즉 주를 세 번씩이나 부인하던 연약한 모습과는 큰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에 걸쳐 하신 말씀의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식한 어부 출신의 베드로가 성령 강림 이후 이처럼 능력 있는 설교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성령 충만한 자의 능력 있는 모습을 잘 보여 준다고 하겠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회중은 어떤 모습을 보였습니까? 37절 이하를 보면 마음에 찔려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는데, 그 인원이 무려 삼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사람들은 방언으로 말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어떤 이들은 기이히 여긴 반면, 어떤 이들은 ‘새 술’에 취했다고 비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성령 강림으로 방언을 받은 각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은 새 술에 취한 사람들입니다.  불신자들로서는 도무지 이해 할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을 때에 그 은혜로운 모습을 누가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는 같은 성도라도 은혜가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정말로 성령이라고 하는 새 술에 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힘 있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책임이라고 하겠습니다.

 

3. 사랑의 공동체 형성

  성령의 강림 후에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고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의 원형(原形)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특징은, 첫째 경건 생활에 힘썼습니다(42절).  성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여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기도에 힘쓰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먼저 사도의 가르침을 통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깊이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삶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기도생활은 성도들로 하여금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결코 흔들림이 없이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오직 복음 전파에 매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둘째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성도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자기의 재산과 물건들을 모두 내어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종류의 압력이나 강제에 의한 것이 절대로 아니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성도들만이 자발적으로 행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모습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성도들이 자기만의 만족이나 유익을 구하는 것보다 공동의 유익을 위해 힘쓰는 모습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고 하겠습니다.

  셋째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누구나 차별이 없이 떡을 떼고 음식을 먹음으로 주 안에서 모두가 한 형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 예식을 통해 그들은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고 동참하기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의 하나님 중심적인 삶과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빛의 역할을 하였으며, 이로 인해 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심으로써 점점 선교와 전도의 문이 활짝 열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맥추감사절에 오순절 성령의 강림이 있었다는 것은, 당시 성령 강림으로 은혜를 받은 각 사람들의 신앙생활에서 열매가 맺혀지는 것을 볼 때에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새로운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고, 노예로서의 삶이 아닌 자유인으로서 씨를 뿌려 농사를 지어 수확하는 새로운 삶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맥추감사절의 의의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성령의 열매들을 맺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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