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제12장 강해 - 우상제거와 제사 제도
신명기는 죽음을 앞둔 모세가 남긴 세편의 고별 설교를 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1:1-4:43까지가 1차 설교이며, 4:44-26:19까지 제2차 설교에 해당하고, 제2차 설교는 크게 전, 후반부로 나누어지는데, 전반부 4:44-11:32은 율법의 입법 원리, 목적, 율법 준수의 이유, 준수시의 마땅한 자세, 순종에 따르는 결과 등 율법에 관련된 개관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후반부 12:1-26:19절은 율법의 세부 내용 자체를 강해하고 있습니다. 제2차 설교의 후반부의 첫머리에 속하는 본장과 다음 장은 여호와 신앙생활에 관한 규례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 장이 주로 제도적 측면에서 여호와 유일신 신앙을 확립할 것에 대한 규례라고 하겠습니다.
1-3절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가나안 종족들이 우상숭배 시에 사용하던 산당과 제단을 척결할 것을 명령하고 있고, 4-14절은 아무 장소에서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수 없고 오직 여호와께서 지정한 한 장소에서만 제사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9-14절은 가나안 정착 이후에는 한 곳을 유일 성소로 지정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15-28절은 구약 제사제도의 핵심이 희생 짐승의 피를 흘리는 것이므로, 이와 관련하여 백성들이 일생 생활 중에 음식으로 먹기 위하여 짐승을 잡을 때에도 그 피만은 범치 말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상생활 중에서도 제사 제도와 관련된 행위에 대해서는 조심하여 제사 제도의 거룩성을 보존하려는 동시에, 이를 통하여 제사 제도의 정신을 늘 기억시키기 위함입니다. 마지막으로 29-32절은 다시 한 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훗날 이방인들의 제사법을 모방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직 한 곳에서만 제사 드릴 것을 규정한 것은 그 제사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한 분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며, 이는 구약 성도가 제사드릴 수 있는 곳은 오직 성전 한 곳뿐이었듯이 신약 성도가 하나님께 나아갈 통로도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마 12:6; 요 2:19).
1: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얻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여기에서 중요한 키포인트는 ‘네게 주셔서 얻게 하신 땅’이라는 표현입니다. 6:1에서는 미래에 성취될 것을 나타내는 미래완료형으로 ‘얻을 땅’이라는 표현이었지만, 여기에서는 완료형으로 ‘얻게 하신 땅’이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히브리 문법에서 ‘확신의 완료형’(perfects of confidence)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의 소유권을 주셨음과 가나안 정복이 기정사실화되었음을 확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섬기는 곳’은 ‘예배 장소’입니다. 즉 여호와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을 때 그 땅은 여호와를 섬기는 장소로 사용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족속들이 우상숭배로 인해 더럽힌 모든 처소는 반드시 정결케 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런 명령 속에 숨어있는 뜻은 여호와께 예배드리는 장소는 반드시 거룩히 하여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 예배 장소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예비자의 마음가짐을 강조하고 있지만(요 4:21-24), 성도의 마음이 곧 ‘성전’이라는 개념이기 때문에 역시 구약과 상통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그들의 신전을 산꼭대기에 세웠는데, 산꼭대기는 신의 임재 장소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푸른 나무는 풍요의 신을 숭배하는 가나안 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그곳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3: 그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서~
가나안 족속들의 우상을 파괴하라는 명령은 7:5에서 주어졌습니다. ‘단’은 신전에 있는 제단을 말하고, ‘주상(柱像)’은 풍요의 남신인 바알을 상징하는 돌기둥이며, ‘아세라 상’은 풍요의 여신인 아세라를 상징하는 목상입니다. 여호와께 예배드려야 할 장소에서 우상들과 그 이름까지도 제거하라는 명령입니다. 우상의 존재를 흔적도 없이 제거하라는 명령입니다. 이는 우상을 숭배하려는 유혹을 제거하고 이방 종교의 제의와 제의의 대상들로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예배가 오염되지 않도록 의도된 것입니다. 각 신들을 상징하는 신상을 깬다는 것은 그 신들의 존재를 부인하는 행위이며, 신들이 보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함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섬기며 따라가야 하는데 그 증표는 자신이 하나님 외에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대상들을 제거하는 것에서 나타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4: 너희 하나님 여호와에게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
이는 가나안 족속들의 방식대로 임의로 선정한 장소에서 제단을 쌓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여호와를 섬겨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여호와께서 가나안 땅 중 한 곳을 택하여 중앙 성소로 삼을 것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중앙 성소의 단일화는 가나안 족속이 임의로 만든 제단들과 대조를 이룹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은 “예루살렘”이라고 알고 있지만, 초기 가나안의 정착 단계에서는 적용시킬 수 없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후 성막을 세운 곳은 ‘실로’(삼상 1:3)이며,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것은 후대인 솔로몬 때의 일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작정하신 곳이 성전이 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중앙 성소를 정하는데 있어서 인위적인 것을 완전히 배제하고 여호와의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6: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레위기에 규정된 각종 제사들(레 27:30-33;민15:4;18:21-24;29:39)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장소에서만 드리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처럼 편의와 필요에 따라 성소를 옮기지 말고, 오직 여호와께서 정하신 곳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들은 인간 중심적 사고를 버리고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할 때 비로소 여호와와 동행하는 은혜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7: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본 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어느 특정한 한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서 모든 일을 행한다는 사실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중앙 성소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곳에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셨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하라고 하는 것에는 두 가지가 강조되고 있는데, 여호와 앞에서의 신앙생활과, 여호와 앞에서의 사회생활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건전한 신앙생활이 있을 때 여호와께서는 성도들의 수고한 만큼 결실을 주시고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복이 주어질 때 행복한 가정생활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볼 때에 예배의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은 결과로 인한 복들을 헤아리는 시간이요, 기쁨의 시간입니다.
8: 우리가 오늘날 여기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서는 하지 말지니라.
이스라엘은 시내 산에서 제사 제도에 대한 규례 및 금지조항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레 17:1-10), 과야에서의 잦은 이동 때문에, 그 규례와 금지법을 준수하는 일에 백성들이 온전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서는 예물을 드리는 생활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도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져야 하는데, 그 이전에 자기의 소견대로 행하던 것을 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9: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가나안 땅을 ‘안식과 기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기업이며 동시에 그곳은 광야에서와 같이 더 이상 방랑이 없는 안식의 장소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성도의 영적 가나안, 천국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을 예표하는 것(히 9;15)으로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가나안뿐만 아니라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도록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하게 될 때~
성경에서 ‘안식’은 반드시 전쟁과 반대되는 개념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가나안에서의 안식도 역시 가나안 땅에 잇는 모든 이방 족속을 완전히 정복했을 때 온전한 안식이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안식이 주어질 때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 곳에서 제사와 예물을 드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때는 다윗의 때입니다. 삼하 7:1에서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입니다. 11절로 연결이 되어서 여호와께서 한 곳을 택하시는 일은 사방의 모든 대적을 이기고 안식이 성취된 후 곧 바로 있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2: 너희와 너희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한 장소 곧 성전에서 희생 제물을 드릴 때 이스라엘 백성들 뿐 아니라 노비들도 함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여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이는 출 20:10의 안식일 규례와도 밀접하게 연결이 되는데, 다시 말하면 성전의 건립과 안식은 동시에 성취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레위인들과도 그렇게 하라는 것은, 생계를 위한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들도 초청하여 잔치를 즐기며 생활의 풍요를 누리게 되는 때는,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득의 십일조를 잘 내고 종교적으로 성실할 때였습니다(민 18:21).
13,14: 너는 삼가서 네가 보이는 아무 곳에서든지 번제를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인위적인 제단에서가 아닌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 즉 성전에서 제사를 드려야 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 전체에서 한 지파를 택하고 그 지파의 영토 안에서 또 한 곳을 택하여 지정하실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 따라 유다 지파가 택함을 받았고, 그중 예루살렘이 그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로 볼 때 예루살렘 성전은 일찍부터 여호와께서 택하신 장소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15: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즐기는 대로~
모든 희생 제물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성소에서 잡아야 했지만 식용을 위해서는 각자 처소에서 필요한 만큼 도살할 수 있었습니다.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무론하고’에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 드린 희생제물은 의식상 정결한 사람만 먹을 수 있었는데, 식용으로 먹는 짐승의 고기는 아무나 먹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노루와 사슴을 먹음 같이’는 노루나 사슴은 제물용으로는 사용되지 않지만 식용으로는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음식으로 먹기 위해 죽인 고기는 정결한 자든, 부정한 자든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16: 그 피는 먹지 말고
피는 생명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피를 함부로 먹지 못하게 하신 것은 생명에 대한 주권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여호와께 있기 때문입니다(창 9:4; 레 17:11; 민 16:22). 이교도들은 제물을 잡아 그 피를 마시면 신들과 접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의 제의 풍습의 침투와 미신행위를 막이 위하여 이 금지법도 제정하셨습니다. 피는 먹지 않고 땅에 쏟으라는 것은, 그 피를 가까운 곳에 있는 이방인의 제단에 부을 염려를 없애기 위함입니다.
17-19: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 와 네 우양의 처음 낳은 것과 너희 서원을 갚는~
앞의 4-14절의 내용이 간략하게 요약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들을 저버리는 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레위인들의 기업은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2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히신 후에 네 마음에 고기를 먹고자~
이 규례는 모압 평지에 머물며, 모세의 설교를 듣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멀지 않아 가나안에 입성한 후에 시행될 것들입니다. 이러한 규례가 주어졌을 때 모압 평지에서 듣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가나안에서 누릴 복들을 생각하고 얼마나 꿈에 부풀었겠습니까?
21: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멀거든 내가 네게~
예배를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닌 고기는 성소에 가져오지 않더라도 먹을 수 있다는 내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법은 먼저 성막에 바치지 않고는 그 고기를 먹을 수 없도록 금지한 레위기 17:1-21와 배치되는 듯합니다. 그러나 레위기 17장의 상황을 살펴보면 광야 생활을 기준으로 하여 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용이하게 성막을 찾을 수 있었지만, 가나안에서의 생활은 다르기 때문에 편의를 위하여 집에서 짐승을 잡아먹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런 것은 기독교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대적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규칙으로 마련됨을 알 수 있습니다.
22-24절은 앞의 고기 먹는 법을 그대로 반복된 것이지만, 차이점은 광야에서나 가나안에서나 목적과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즉 성소에서 잡을 때나 집에서 잡을 때에나 동일한 마음가짐과 자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25: 너는 피를 먹지 말라 네가 이같이 여호와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면 너와 네 후손이~
여호와께서 주신 규례에 순종할 때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은 신명기 전체의 주제입니다. 그만큼 피의 규례는 철저하게 지켜야 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26: 오직 네 성물과 서원물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라.
성물은 율법에 규정된 모든 예물로서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특별히 구별해 놓은 것들을 가리킵니다(17; 민 18:8). 서원물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한 번 맹세한 서원에 대해서는 자신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원은 성도의 경건이나 성실함을 나타내는 증표가 됩니다(민 30:2; 전 5:4-6).
27: 네가 번제를 드릴 때에는 그 고기와 피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에 드릴 것이요~
고기를 태워서 드리는 제사는 속죄제, 속건제를 말하고, 이때에는 고기와 피를 모두 단에 붓고 태워야 합니다. ‘다른 제’는 화목제로 피는 단에 쏟고, 고기는 먹을 있습니다( 레위기 3:2, 8, 13).
28: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4-27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총칭하는 것으로 가나안 땅에서 지켜야 할 제사 규례를 성실하게 준수할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원한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쫓아 낼 그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절하시고 너로 그 땅을~
본 절에서 다시 맨 처음의 권면으로 돌아가 가나안 우상 숭배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30: 너는 스스로 삼가서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들지 말라~
우상숭배에 대한 유혹이 많은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가나안 종족들이 밟아왔던 전철을 다시 밟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나안 족속이 멸망 받음과 같이 이스라엘도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31: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의 꺼리시며 가증히~
자 기 자녀를 불살라 제물로 바치는 이 의식은 암몬 족속을 비롯하여 가나안 전 지역에서 유행하던 ‘몰렉’에게 드린 인신제사입니다(왕상 11:5; 왕하 23:10). 자녀를 제물로 바친 자에 대한 형벌은 죽음입니다(레위기 20: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감람 산에 몰렉 숭배를 위한 산당을 지었고(왕상 11:7) 아하스(대하 28:3)와 므낫세(왕하 21:6)는 자기 자식을 불살라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 의식은 북이스라엘 왕국이 망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인신 제사의 목적은 바친 자의 종교적 열성으로 자식까지 바쳐 노한 신을 달래, 신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복을 주게 하고 말겠다는데 있습니다. 그들은 신에 대한 제사의 목적을 신을 설득하고 달래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하고 순종함을 극으로 나타낸 것이 예배이며, 예물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2: 가감하지 말지니라.
이는 자신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서, 또는 시대적 상황에 편승하여 마음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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