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제9장 강해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과 율법
요단을 건너 가나안으로 입성하기 전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광야 생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이므로 교만하지 말 것과 율법에 절대 순종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5절은 가나안 정복이 장차 가능하게 될 근본 힘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죄악이 관영한 가나안 족속들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구로 사용하여 징계하신 결과입니다. 둘째,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열조와 맺은 언약을 성실히 지키신 결과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정직하거나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의하여 그 계획을 이루고 은혜를 베푸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아 들으라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니~
‘오늘’(하욤:היום)은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요단 동편 모압 평지에 도착해 있었던 그 즈음을 가리키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명기의 내용과 같은 모세의 설교가 끝난 직후라고 하겠습니다. ‘이 때에’, ‘바로 지금 곧’의 뜻으로 가나안 입성의 시기가 임박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가나안의 성은 견고하고 요새화되어 난공불락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보다 강대한 나라들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함락시키는 것은 불가능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그 백성은 네가 아는바 장대한 아난 자손이라 그에게 대한 말을 네가 들었나니 이르기를 누가~
거인족들을 이스라엘 스스로의 힘으로는 정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1,2절은 이스라엘로서는 도저히 점령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만 가능하다는 결론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3: 오늘날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불’은 죄를 소멸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총사령관이 되셔서 죄악으로 관영한 가나안을 친히 진멸시키실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하실까? 자신들이 가나안을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염려는 전혀 할 필요가 없습니다.
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나의 의로움을~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의로움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가나안을 정복했다는 것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군사력으로는 점령 불가능한 가나안을, 하나님께서 친히 능력으로 쫓아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스스로의 힘으로나 자신들이 의롭기 때문에 승리했다는 교만과 오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불의하고 악해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은 우리의 의나 수고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엡 2:8,9).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는 첫 번째 근거는 이스라엘이 의로운 것이 아니라 가나안의 악함 때문입니다. 악한 가나안을 축출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기 위한 신적 목적에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의로움을 만방에 알리기 위하여 가나안 정복을 성취하실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하여 증오하고, 자신의 공의로우심을 만방에 선포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5: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의롭거나 정직하기 때문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가나안보다 낫기 때문도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는 두 번째 근거는 이스라엘의 열조와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6-24절에서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행한 숱한 범죄에 대하여 회고하고 있습니다. 금송아지 숭배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도 가나안 족속들과 동일하게 우상숭배를 하였음을 상기시키면서 이스라엘의 죄가 가나안 족속들보다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6: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가나안을 이스라엘에게 주었으며, 이스라엘도 얼마든지 가나안에서 쫓겨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자격이 있어 그 땅에 들어갔다면 그들이 차후에 잘못한다고 하더라도 쫓아낼 근거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값없이 가나안에 들어갔기 때문에 비록 쫓겨난다고 할지라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아무런 공로 없이 가나안에 들어갔다고 해도 쫓아내지 않으십니다. 다만 이스라엘이 스스로 복을 걷어 차 버렸던 것입니다. ‘목이 곧은 백성’ 하나님께 반역과 불순종의 자세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과거 잘못을 지적하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목적이 있습니다.
7: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케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성경에 언급된 것만 치더라도,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기 전부터 불순종의 태도를 보였습니다(출 14:11). 모압 평지까지 도달해서도 추악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민 25:1-5). 그들의 삶은 항상 반역과 불순종으로 점철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8: 호렙 산에서 너희가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느니라.
목이 곧은 백성이며,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다고 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예가 바로 호렙 산에서의 금송아지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진멸하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필연적으로 반응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범죄할지라도 당장 징벌을 당하지 않는 것은 첫째 우리에게는 위대한 대언자가 계시며(요일 2:1), 둘째 하나님께서 인내하사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징벌을 당하지 않는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모르는체 묵과하신다거나,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셨다거나, 하나님이 죄를 가벼이 여기신다는 생각은 절대 금물입니다. 그렇게 착각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계속 쌓는 것뿐입니다.
9: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 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언약의 돌 판들은 십계명이 새겨져 잇는 두 개의 돌 판입니다. 십계명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지켜야 할 언약의 내용이기에 ‘언약의 돌 판’이라고 부르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증거물이라는 점에서 ‘증거판’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출 25:16). 십계명을 받기 위해서 모세는 시내 산에 올라가서 40주야 동안 금식하였습니다. 십계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0: 여호와께서 두 돌 판을 내게 주셨나니 그 판의 글은 하나님이 친수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
하나님께서 손가락이 있으셔서 ‘친수로 기록’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요 4:24) 손가락이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록하셨다는 말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래 언약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일방적인 약속이지만, ‘너희 총회 날에’라는 구절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언약에 대하여 분명하게 동의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이 언약을 불이행하는 것은 부당함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 총회(카할: קהל)는 신앙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을 지칭할 때 사용이 됩니다. 출애굽 제1년 3월에 열렸습니다(출 19:1).
11,12: 사십 주야가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돌판 곧 언약의 두 돌판을 주시고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아므카: עמך)은 원문에는 ‘네 백성’(your people)(출 32:7)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초두의 ‘네가’와 조화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직전까지만 해도 당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말씀하셨으면서도(출 29:45, 46), 여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의 백성’으로 말씀하시는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언약을 무효화시키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그 언약의 파기를 시사하는 두 돌판을 깨뜨려버리는 상징적 행동을 한 것입니다(17절).
“그들에게 명한 도를 속히 떠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명을 들은 것은 금송아지를 만들기 약 40일 전입니다. 불과 40일 만에 하나님의 계명을 잊은 것을 보아 그들이 얼마나 모이 곧은 백성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즉 철저한 이기주의를 말합니다.
13: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보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보다’(라아:ראה)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관계로 말미암은 경험에서 상대방을 상세히 알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까이에서 사펴본 결과 그들의 속성과 습성과 인격에 대하여 직접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목이 곧은 백성’으로 판단한 근거는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거듭하는 불순종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14: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고 너로 그들보다 강대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를 막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풀어져서 즉 자비하심을 발동시키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해 달라는 간청이나 기도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여 불같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 된 백성으로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신성화하여 섬길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경배했고,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심판하실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천하에서 지워버린다는 것은 언약 준수의 책임을 말하는 것으로, 계명을 지키지 않는 이스라엘을 심판한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 표현입니다. 이처럼 언약에 대한 불순종은 당연히 파멸과 죽음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이스라엘 대신 모세를 통하여 큰 나라를 세우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확인된 약속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지의 천명에 대하여 모세는 자신의 생명까지 내걸고 백성들을 위하여 탄원하였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가라앉히시고, 다시 파괴된 십계명을 주심으로써 언약 관계를 지속하셨습니다.
15: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산에는 불이 붙었고 언약의 두 돌 판은 내 손에 있었느니라.
불은 거룩을 범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가차 없는 징벌을 상징합니다(4:24). 언약의 말씀을 전하실 띠에 불이행에 따른 징 벌이 함께 경고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6: 내가 본 즉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모세는 우상숭배의 죄를 범한 이스라엘의 죄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의 심각성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변덕스러움을 밝히고 있습니다.
17: 내가 그 두 돌 판을 내 두 손에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었노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이미 맺어진 언약이 파기되었음을 선언하는 상징적 행동입니다. 이는 모세 쪽에서 분을 폭발시킨 결과가 아니라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언약이 무효화되고 깨어졌음을 가시적으로 보이는 엄숙한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18: 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사십 주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처음 십계명 두 돌 판을 받기 위하여 시내 산에 올라갔을 때처럼 또 다시 40일 금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십계명이 중요한 것이요, 이스라엘의 용서를 위한 중보 사역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19: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었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함으로 복을 받기보다 멸망 받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한다고 하여도 아무런 항변도 할 수 없는 것은 이미 모세 언약을 통하여 경고되어 진 것이기 때문입니다(5:1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중보 기도를 열납 하셨습니다.
20: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아론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일반 백성보다 더 맹렬하였습니다. 그는 모세를 대신하여 백성을 지도하는 막중한 책임이 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상을 만들지 못하게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제사장으로서 자신의 신분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21: 너희의 죄 곧 너희의 만든 송아지를 취하여 불살라 찧고 티끌 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송아지 형상을 본떠서 만든 신상은 애굽의 신 중 ‘아피스(Apis)'입니다.(출 32:1). 우상 숭배 행위뿐만 아니라 우상을 만든 일이나 소지하는 일 자체도 죄악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7:25,26) 우상을 갈아 뿌린 것은, 우상이 헛것이요, 무능력한 존재라는 것이요, 이스라엘이 멸망당할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아울러 보여주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황금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우상은 그 흔적 조차도 없애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 중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위해서는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함도 깨닫게 합니다.
22-24: 너희가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도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느니라.
‘다베라’는 출애굽 2년 2월 바란 광야에 도착했을 때 백성들이 자신들의 고생을 인해 하나님을 원망했던 것입니다(민 11:1-3). 맛사는 신 광야의 르비딤 부근으로, 마실 물의 부족으로 인해 모세에게 불평하고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출 17:1-7). 가브롯 핫다아와는 만나가 싫증난 백성들이 고기를 먹고 싶은 욕망으로 불평했다가 주동자들이 죽은 사건이 일어난 곳입니다(민 11:4-35). ‘가데스 바네아’는 12명의 정탐꾼을 선발하여 가나안을 탐지하게 했고, 여호와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이 불신앙으로 인한 부정적 보고를 하여 38년 동안의 방랑 생활을 시작된 곳입니다(민 31:1-14). 이렇게 열거된 것은 작은 사건에서 큰 사건 순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점점 더 사악해져 가고 있음을 표현하여 그들의 죄악성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책망하려는 의도입니다.
25-29절에서는 이스라엘의 패역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나안 족속들과 같이 진멸되지 않고 현재와 같이 복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원인을 설명합니다. 그것은 모세의 간절한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진멸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모세의 중보사역은 인류의 죄악을 담당하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에 화목을 도모하신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에 대한 예표가 됩니다.
25: 그 때에 여호와께서 너릐를 멸하겠다 하셨으므로 내가 여전히 사십 주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 받기 위하여 모세가 어떤 식으로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십 주야의 금식은 인간으로는 생과 사의 선택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26: 여호와께 간구하여 가로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주’(아도나이: אדני)는 창세기 15:2, 8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하나님의 호칭입니다. 이 호칭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를 받지 않으면 안 되며,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야만 하는 강조하는 문맥에서 사용이 됩니다. ‘여호와’의 명칭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언약의 주체이심을 강조하는 문맥에서 사용이 됩니다. ‘주 여호와’ 복합적으로 부르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져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27: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이 백성의 강퍅과 악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진멸을 면케 하려는 의도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는 중보 기도의 내용입니다. 이 호소는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번성이 열조와의 언약에 기인한 것임을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신실하기 때문에 중보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8: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내신 그 땅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땅으로~
애굽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모압 땅에서 멸하신다면 분명히 하나님을 욕되게 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더욱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29: 그들은 주의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이로소이다 하였었노라.
기업은 조상에게서 상속 된 재산입니다. 즉 절대로 포기되거나 양도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의하여 끊어져서 진멸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임을 강력하게 호소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회상의 목적은, 이스라엘의 의로움이나 정직함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거나 가나안 땅을 선물로 받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총과 열조들과의 언약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멸망당하고, 징계 받아야 하고,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었지, 사랑을 받을만한 아무런 조건이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들은 항상 자신의 마음속에는 어떠한 신앙적 가능성도 없음을 날마다 인시하고 인정하며 고백하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근거로 살아가는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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