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가 의인으로 불릴 수 있었던 배경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즉 앞의 8절을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시 시대적 배경도 필수조건입니다. 당시는 “죄악이 관영한 시대”입니다. 단순한 죄나 허물이 있는 시대가 아니라, 고착되고 증폭되어 가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뜻과는 완전히 어긋나 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죄의 시대입니다. 관영함이라는 말은 극히 많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의 본성상 그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깊은 죄악의 뿌리를 뽑아 낼 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인류 창조를 한탄하시고 근심하셨습니다. 사람의 상황으로 표현한다면 헐떡거리다, 신음하다, 숨이 차다는 뜻입니다. 즉 심령이 찢어지는듯한 아픔입니다. 죄악이 온 세상을 타락하게 하고 인간 영혼을 황폐케 해버린 비극적인 현실을 바라보시고 하나님께선 마음이 찢어질듯한 고통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사무엘상 15: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하나님께는 인간과 같은 후회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표현은 다만 인간의 타락이나 배반, 또는 불순종 등에 대한 하나님의 감정을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의인화한 표현 즉 “신인동형동성적”표현입니다.
1절에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인구의 확장을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 위에 충만하라.”는 말씀의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딸들이 나니” 이 말은 여성 인구의 증가를 뜻하는 표현이 아니라, 조만한 이들로 인해 셋 계열의 경건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올무에 걸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2절)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2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첫 번째 견해: 하나님의 아들-귀족, 지체가 높은 집안의 청년, 사람의 딸-천민, 미천한 집안의 처녀라고 하는 것은 유대 랍비들의 견해지만 히브리 언어의 용법상 뒷받침을 받지 못하여 주목할 만한 견해가 되지 못함.
두 번째 견해: 하나님의 아들들-선한 천사, 사람의 딸-인간의 딸이라는 견해(요세푸스, 터툴리안, 루터 등이 주장)가 있습니다. 그 근거는 ‘천사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표기한 성경의 용례가 있기 때문이다. (욥 1:6;2:1;38:7;단3:25;유1:6,7) 반대 근거: ‘성도’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아들’로 칭하고 있습니다(신 32:5; 시73:15;80:17; 호1:10).
유다서에 나오는 내용은 ‘천사들의 결혼 행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천사는 결혼하지 않는다.(눅 20: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이처럼 천사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 영은 육체가 없으므로 혼인을 할 수 없고 자녀를 낳을 수도 없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을 천사라고 하고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는다면, 구속사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천사 중심이 될 것이다. 천사에게는 구속의 복음에 비밀이었다.(벧전 1:12)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인간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세 번째 견해: 하나님의 아들-경건한 셋 계열의 후손, 사람들의 딸-불경건한 가인의 후손으로 본다.
(어거스틴, 제롬, 칼빈 등) 이 견해는 성경에서 경건한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로 표기하고 있으며, 셋의 후손들에 의해서 비로소 여호와께 대한 경배가 행해졌다는 점(창 4:26). 무엇보다 신학적 의미와 구속사적 맥락 상 잘 부합이 된다.
딸들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인격적 지고성 또는 종교적 경건성과는 무관한 육체적 미모, 향락적 체위 등을 뜻한다. 따라서 오직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좇아(요일 2:16) 배우자를 취하는 당시대의 세속성과 타락상을 보여준다. 이 딸들을 “아내로 삼는지라” 이것은 간음행위를 뜻하지 않고 결혼행위를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라는 주장은 그 의미와 논리상 합당하지 않다.
그리고 6:7을 보면 “나의 창조한 사람을”지면에서 쓸어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앞에 나온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에 대한 대답이 됩니다.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천사라고 하는 주장이 맞는다면,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천사들을 심판하셨을 것이지만, 오직 사람과 육축과 새들만 쓸어버리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다 죽여 없애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마치 홍수로 멸망시키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고 생육하고 번성케 하셨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범죄할 때에 그들을 다 죽이고 너(모세)로 새로운 민족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모세는 이것을 반대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죽이려고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다고 하는 것이 된다고 하였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하고, 또 심판을 한다면 누구를 남겨서 인류의 번성을 이루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노아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당시 사람들 중에 노아의 의로운 성품과 행실이 하나님의 눈에 꼭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여기서 은혜라는 말은 호의, 용납이라는 뜻도 있고, 사랑, 자비, 보호 등의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숱한 타락의 무리들 중에서 특별히 노아를 구별해 내사 그에게 사랑과 은총을 듬뿍 부어주신 것입니다.
9절에서 ‘노아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의인’이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결격 사유가 없는 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당시대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선하고 정직하며 덕이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즉 이 말은 종교적 측면에서(신앙적 측면) 의인이 아니라 윤리, 도덕적 측면에서 의인입니다. (참고: 에스겔 14: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20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오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겨우 자신만 구할 수 있을 정도의 ‘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완전하다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같은 완전함이 아닌 부분적 완전입니다. 도덕적 성실성이라는 맥락에서 완전입니다. 노아의 성품이 전혀 무죄하고 무흠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이 말은 당시대의 극심한 타락 상황 가운데서도 특별히 노아는 신앙적 측면에서 경건하고, 도덕적 측면에서 순결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동행의 삶으로 노아는 ‘당세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롬 3:10)
하나님의 본래 계획(생육하고 번성하라. 땅 위에 충만하라.)대로 실행하시며, 여인의 후손을 통하여 ‘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노아가 선택된 것입니다. 홍수는 인류의 멸절이 아니라 인류 정화였습니다. 노아가 의인이 된 것은 인간 편에서 보면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이며,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은혜를 입혀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덧입은 “전가된 의”와 동일하다고 하겠습니다.
* 노아의 방주 건조 기간은 몇 년이나 걸렸는가?
6:3절에서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년이 되리라.” 이 말은 120년 후에 홍수 대심판을 집행하신다는 예언적 경고입니다. 홍수는 노아 600세에 있었으므로, 하나님의 경고는 480세 때에 있었습니다. 베드로후서 2:5에서는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라고 하여 당시대의 죄와 대비되는 노아의 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육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몸이 아니라 로마서 8:6에도 나오는 육체로 ‘사르크스’즉 죄의 오염으로 말미암아 심히 타락한 인간을 가리킵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날로부터 앞으로 120년 동안만 살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13절에서 다시 한 번 인간들의 멸망을 예고하시고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던 바로 그 때부터 시작했는지, 아니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시작했는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볼 때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인류의 멸망과 방주의 구원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노아는 순종하여 준행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왜 무려 120년 동안이라는 기간을 주셨을까요? 이 기간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기간입니다. 멸망을 받아 마땅한 악인이라도 돌이켜 회개하고 살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애타는 심경의 반영입니다. (에스겔 33:11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이렇게 긴 세월을 인간들에게 주셔서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기다렸지만, 결국 인간들은 회개치 아니하며, 노아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마침내 홍수로 멸망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과학자들은 이 홍수에 대하여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을까요? 정말로 있었던 일로 생각할지 아니면 몽상가의 허구로 이해할까요? 폭풍이나 대지진 등의 이상 현상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불안정한 기층 및 지각의 변동이 몇 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기권에는 범세계적으로 습기가 골고루 퍼져 있고 지구의 내부 상태도 극히 안정된 홍수 이전에는 이런 자연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심판을 위한 대홍수를 일으키는 과정에서 기층 및 지층이 모두 다 불안정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그 후부터는 계속되는 변동 과정에서 급격한 대재해가 있게 되었고 땅도 일부 지역이 크게 훼손되기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매우 과학적이라고 합니다.
기독교 과학자들은 빙하에 대하여 지구는 주기적으로 빙하기와 간빙기가 계속되는데, 현재는 간빙기에 해당 된다는 가정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즉 기독교 과학자들은 대홍수 당시 방출된 엄청난 양의 물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일단 증발된 물이 남.북극 등 양극 주변에서 급격히 냉각되어 눈으로 내려 빙하 현상을 보이게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만약 전지구적 대홍수가 사실이라면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현상이라는 점에 과학자들은 동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역으로 남. 북극의 빙하 현상은 대홍수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악이 관영했던 당시 사람들과 노아의 모습을 통하여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악은 반드시 심판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나쁜 짓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모르신다는 생각이나, 나쁜 짓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 등은 착각도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닙니다. 죄를 짓고 그 죄가 쌓이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징계를 받게 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는 언제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한 시간 뒤가 될지, 하루 뒤가 될지, 일주일 뒤가 될지, 한 달 뒤가 될지 일 년 뒤가 될지 알 수는 없으나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기로 작정하신 그 날과 그 시에 반드시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악인과 더불어 멸망치 않고 은총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의인일까요? 아니면 죄인일까요? 죄인도 되고 의인도 됩니다. 멸망을 당할 죄인이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멸망에서 제외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의 삶 속에서 옳지 않은 일들을 할 때에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모님의 교훈으로, 학교에서, 매스컴에서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돌이키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고쳐주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겸비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 때에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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