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는 어떻게 의인이 될 수 있었나?
창 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 으며”
노아가 의인으로 불릴 수 있었던 배경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즉 앞의 8절을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시 시대적 배경도 필수조건입니다. 당시는 “죄악이 관영한 시대”입니다. 단순한 죄나 허물이 있는 시대가 아니라, 고착되고 증폭되어 가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뜻과는 완전히 어긋나 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죄의 시대입니다. 관영함이라는 말은 극히 많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의 본성상 그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깊은 죄악의 뿌리를 뽑아 낼 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인류 창조를 한탄하시고 근심하셨습니다. 사람의 상황으로 표현한다면 헐떡거리다, 신음하다, 숨이 차다는 뜻입니다. 즉 심령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입니다. 죄악이 온 세상을 타락하게 하고 인간 영혼을 황폐케 해버린 비극적인 현실을 바라보시고 하나님께선 마음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사무엘상 15: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하나님께는 인간과 같은 후회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표현은 다만 인간의 타락이나 배반, 또는 불순종 등에 대한 하나님의 감정을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의인화한 표현 즉 “신인동형동성적”표현입니다.
그리고 6:7을 보면 “나의 창조한 사람을”지면에서 쓸어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앞에 나온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에 대한 대답이 됩니다.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천사라고 하는 주장이 맞는다면,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천사들을 심판하셨을 것이지만, 오직 사람과 육축과 새들만 쓸어버리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다 죽여 없애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마치 홍수로 멸망시키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고 생육하고 번성케 하셨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범죄할 때에 그들을 다 죽이고 너(모세)로 새로운 민족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모세는 이것을 반대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죽이려고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다고 하는 것이 된다고 하였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하고, 또 심판을 한다면 누구를 남겨서 인류의 번성을 이루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노아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당시 사람들 중에 노아의 의로운 성품과 행실이 하나님의 눈에 꼭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여기서 은혜라는 말은 호의, 용납이라는 뜻도 있고, 사랑, 자비, 보호 등의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숱한 타락의 무리들 중에서 특별히 노아를 구별해 내사 그에게 사랑과 은총을 듬뿍 부어주신 것입니다.
9절에서 ‘노아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의인’이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결격 사유가 없는 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당시대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선하고 정직하며 덕이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즉 이 말은 종교적 측면에서(신앙적 측면) 의인이 아니라 윤리, 도덕적 측면에서 의인입니다. (참고: 에스겔 14: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20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오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겨우 자신만 구할 수 있을 정도의 ‘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완전하다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같은 완전함이 아닌 부분적 완전입니다. 도덕적 성실성이라는 맥락에서 완전입니다. 노아의 성품이 전혀 무죄하고 무흠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이 말은 당시대의 극심한 타락 상황 가운데서도 특별히 노아는 신앙적 측면에서 경건하고, 도덕적 측면에서 순결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동행의 삶으로 노아는 ‘당세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롬 3:10)
하나님의 본래 계획(생육하고 번성하라. 땅 위에 충만하라.)대로 실행하시며, 여인의 후손을 통하여 ‘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노아가 선택된 것입니다. 홍수는 인류의 멸절이 아니라 인류 정화였습니다. 노아가 의인이 된 것은 인간 편에서 보면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이며,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은혜를 입혀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덧입은 “전가된 의”와 동일하다고 하겠습니다.
'알기 쉬운 성경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스라엘의 진영과 행군순서 (0) | 2009.07.19 |
---|---|
현재에 충실하라! (0) | 2009.07.19 |
방주 건조 기간은 ? (0) | 2009.07.17 |
악한 세상과 의인 노아 (창세기 6:1-12) (0) | 2009.07.17 |
아벨의 제물과 가인의 제물 (0) | 2009.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