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제19장 정결법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영, 육간에 정결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육체적으로 불결하면서도 영적으로도 죄의 결과를 상징하는 시체와 접촉하였을 때에 그 부정을 성결하게 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외적 형식을 강조하는 ‘의식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구속사적인 면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과 같이 거룩해야 합니다. 구원의 서정에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0절은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을 만드는 규정, 11-22절은 시체와의 접촉으로 인한 부정을 씻기 위한 규정으로 나누어집니다.
1-10은 정결용 잿물 제조 규정입니다. 하나님께 정죄를 받은 출애굽 1세대들은 광야에서 40년 생활하는 동안 모두 죽었으며(14:29-32),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과 그에 따른 백성들의 원망 사건으로 인하여 계속적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세체와 접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정결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2: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네게로 끌어오게 하고.
‘법의 율례’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법’(토라)은 ‘목표물을 향해 물건을 내어 던지다’ ‘발사하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교훈, 법규, 율법을 의미합니다. ‘율례’(후카트)는 ‘명기하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문서에 의하여 공포된 법률’을 뜻합니다. 이 두 용어가 결합되어 이제 제시되는 ‘시체로 인한 부정을 정결케 하는 법’이 성문화되어 대대로 지켜야 할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붉은 암송아지’(파라)는 갓 태어난 새끼 송아지와 완전히 자란 소의 중간치 암소를 뜻한다고 합니다. 정결 의식에 쓰일 암송아지를 ‘붉은 색깔’로 제한시켰던 것은 그 색깔이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붉은 암송아지라 할지라도 붉은 색 외에 다른 색깔의 털이 3개만 있어서 부정한 것으로 취급되어 정결 의식에 사용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얼마나 정결과 거룩에 관심을 집중하고 계신지를 깨닫게 됩니다.
3: 너는 그것을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줄 것이요, 그는 그것을 진 밖으로 끌어내어서~
시체로 인한 정결 의식을 아론의 아들에게 위임시켰던 것은 대제사장인 아론이 혹시라도 부정한 것에 오염될까 염려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거룩성을 대변하는 대제사장이 만에 하나 부정하게 된다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룩성을 전혀 회복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반 제물은 번제단 북쪽 성막 뜰에서 잡았으나, 이 암송아지는 회중의 속죄를 위해 바쳐진 것이기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취급을 하여 진 밖에서 잡았습니다.(9; 레 1:7; 4:4,12,21) 이러한 것은 죽음은 무서운 것이며, 죽음과 관련된 모든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현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온 백성의 죄사함을 위하여 속죄제물로 바쳐진 주님은 성문 밖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이 송아지를 잡는 것은 레위인들이 하고 엘르아살은 감독을 하여야 했습니다. 다른 부정이 틈타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4: 그 피를 회막 앞을 향하여 일곱 번 뿌리고
피는 생명 그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에 회막을 향하여 뿌리는 것은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하나님께 죽음의 부정으로부터 생명의 원천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기 위함입니다. 회막에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장이며, 모든 인간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는 속죄소(시은소, 시은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곱은 완전수로 완전, 전체, 풍성함을 뜻합니다.
5: 그 암소를 자기 목전에서 불사르게 하되 그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을 불사르게 하고
회막 앞에 뿌린 피를 제외한 붉은 암소의 모든 부분을 태워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흠향하실 수 있도록 태워드리는 번제물과 달리(15:5-11), 불 속에서 온갖 부정한 것을 소멸시킨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고후 7:1; 약 1:21)
6: 동시에 제사장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을 취하여 암송아지를 사르는 불 가운데 던질 것이며
백향목은 향기롭고 잘 썩지 않고 윤택이 나는 나무로서 그 수명이 오래갑니다. 이는 영원한 생명력과 고결한 품성을 상징합니다. 우슬초는 담벼락과 바위틈에 야생하는 풀로(왕상 4:33), 식용과 약용으로 쓰였으며 그 줄기는 정결 의식에 사용되었습니다(출 12:22; ,레 14:4; 히 9:19). 그리고 홍색실은 인간의 속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이 세 가지를 암송아지와 함께 불사른 것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속사역과 그 영원한 효력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7: 제사장은 그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어갈 것이라 그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실제적으로 제사장이 암송아지를 잡은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지시를 내리신 것은 정결의식을 위해 잡는 송아지를 목격만 해도 부정함이 전염된 것으로 간주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정과 부패를 직접 자행하지는 않았더라도 그것을 묵인하거나 방관하였다면 그 역시 동일한 범죄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마음으로 지은 죄까지도 씻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송아지를 잡은 자나, 불사른 자도 하루 동안은 부정하였습니다. 사람의 시체를 접촉한 경우에는 7일 동안 부정하였습니다.
9: 이에 정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정한 자’는 암송아지를 잡거나 태우는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아서 부정하지 않은 자를 말합니다. 암송아지의 재는 백향목, 우슬초, 붉은 실과 함께 태워져서 ‘정결한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재를 일정한 장소에 보관시키는 것은 그 재를 자주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재를 물에 타서 부정을 깨끗하게 하는 물을 만들었습니다.
10: 암송아지의 재를 거둔 자도 그 옷을 빨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일체의 부정함에도 오염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재를 만지는 경우에는 의식적으로 부정함을 입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이는 타인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 희생 정신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일체의 흠이 없으시되, 죄 많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버리신 주님을 예표한다고 하겠습니다.
11-19절은 잿물의 용도와 사용법에 대한 내용입니다.
11: 시체를 만진 자는 칠 일을 부정하리니.
시체를 만진 자의 부정은 여러 군데에서 나타나지만(레 21:1; 민 5:2; 6:6; 9:6) 그 기간을 제시한 것은 본 절이 처음입니다.
12: 제 삼 일과 제 일 일에
비록 잿물로 몸을 씻는 점은 같지만 제 삼일의 의식과 제 칠일의 의식은 서로 그 의미가 다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삼일의 의식이 자신의 부정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면 제 칠일의 의식은 부정을 완전히 씻어 정하게 된 것을 상징한다고 하겠습니다.
13: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부정함에서의 해방이 결코 개인적인 관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시체와의 접촉을 개인의 범죄로 취급하고 있으며, 개인의 범죄는 그 자신에게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영향을 주며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결케 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서 끊어지고 마는 벌을 받게 됩니다. 측 ‘출교’를 의미합니다.
14: 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의 법은 이러하니~
장막 안에서, 집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로 자연사, 병사 모두가 포함이 됩니다. 이럴 경우에 장막에 들어가는 자나, 있던 자 모두 칠일 동안 부정합니다. 그리고 뚜껑이 열려있는 모든 그릇도 부정하게 취급을 했습니다.
16: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이운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칠 일 동안 부정하리니.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들과 접촉한 경우와 그 무덤과 접촉하였을 때에도 7일 동안 부정합니다. 전쟁터에서 죽는 것 자체는 영웅 취급을 받지만, 시체는 부정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무덤은 보통 동굴 형태로 만들어서 그 입구를 커다란 돌로 막는데, 일반인들이 식별할 수 있도록 회칠을 합니다. (마 23:27)
17: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취하여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여기에서 흐르는 물은 ‘생수’를 가리키는 말로 샘솟는 ‘샘물’을 의미합니다. 이 물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생명을 공급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정결 의식을 위해 암송아지의 재를 흐르는 물에 섞는다는 것은 우리가 죄로부터 성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의 말씀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18: 정한 자가 우슬초를 취하여 그 물을 찍어서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제사장이라도 부정하게 되면 이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이 하라는 규정이 없는 것으로 볼 때에, 정한 레위인들이 그 일도 감당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레위인의 손도 부족하다면 일반 백성들도 동참할 수 있다고 보겠습니다.
19: 제 삼일과 제 칠일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시체로 인해 부정한 자에게는 정결 의식이 두 차례에 걸쳐 반복되어져야 함을 말합니다. 처음의 것은 부정한 자의 자기 인식이며(갈 3:23-25), 나중의 것은 부정한 자의 정결 확인(롬 8:1,2)을 위함입니다. 두 번의 정결 의식은 죄로 부패된 우리의 본성의 정결을 위해서 반드시 자기 인식, 즉 회심의 단계를 거쳐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욥 33:27; 시 34:18; 요일 1:9).
20: 사람이 부정하고도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총회 중에서~
일반적으로 끊쳐진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쫓겨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출교입니다. 출애굽기 22:19에도 보면 성경에서 끊쳐진다고 하면 죽음의 의미합니다(레 18:29). 그렇기 때문에 부정한 자가 정결 의식을 행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경고라고 하겠습니다.
21: 이는 그들의 영영한 율례니라. 정결케 하는 물을 뿌린 자는 그 옷을 빨 것이며~
정결 의식은 대대로 지켜야 할 규례임을 말합니다. 오늘날 이 의식은 지켜지지 않는 것 같으나, 영적으로 볼 때에는 회개가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정결 의식을 행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죄와 연관되기 때문에 물을 뿌리는 자와, 정결케 하는 물을 만진 자도 하루 동안 부정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22: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죄악의 전염, 파급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개인의 죄는 사회적으로 확산되어 결국 사회의 파멸을 초래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미연에 방지하시는 규례를 정해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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