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 도란

사랑은 훈련이다

chukang 2014. 4. 1. 08:13

사랑은 훈련이다

 

 

옮겨온 글 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기술이라 했지만, 나는 사랑은 훈련이라 말하고 싶다.
사랑이 절로 솟는 감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닐찐대
사랑이 의지를 동반한 감정이라고 말할 수있을찐대
사랑은 감히 훈련이라 말하고 싶다.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허물과 단점 그리고 어이없는 약한 점들을 발견할 때 우린 실망하게 된다.

어디선가 들은 말이 있다.
험담과 중상모략의 차이를 아느냐고..
험담은 있는 허물을 있다 하는 것이고, 중상모략은 없는 허물을 있다고 하는 것이라고..

잠언서 말씀이 생각난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10장 12절의 말씀이다.

있는 허물을 있다하는 것은 사실일지는 모르지만 험담에 지나지 않음을 잊어선 안된다.
그리스도인은 사실이라고 다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사실이라 하더라도 사랑하기 때문에 애써 입을 닫는 훈련을 하는 사람들이다.

사랑이란 기도해주는 것이다.
허물이 보일 때, 약점이 눈에 띌 때
뒤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위하여 기도해주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허물을 하나님이 막아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예리한 통찰력과 지성만으론 안된다.
날카롭게 허물을 지적하고 모순을 밝혀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그리스도인은 도덕 경찰이 아니다.
높디높은 도덕의 잣대로 남들을 재단해대는 사람들이 아니다.

기도하지 않고, 기도해주지 않고 면전에서 따지기는 쉽다.
항의하고 갋아주기엔 조금도 어렵지 않다.
그런 일은 배우지 않아도, 훈련받지 않아도 다들 너무나 잘 한다.

창초에 에덴에서 선악을 아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까닭에
우리 모두는 선과 악을 알고 논하는 일에는 천부적인 재질들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만 놔두면, 땀 한방울 안흘리고도 율법으로 흐르게 된다.
그건 마치 물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허물이 보임에도, 할 말이 많음에도 입을 닫고 위하여 기도해주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은혜란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훈련이라 한다.
사랑은 훈련이라 한다.
훈련되지 않은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라 하지 못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래서 사랑을 훈련하는 사람들이다.
사랑받는 훈련, 그리고 사랑주는 훈련..
예수 그리스도가 그러셨던 것처럼 이 땅에 사는 동안 사랑을 훈련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창골산봉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