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룻기 제3장 강해: 지혜로운 나오미, 순종하는 룻

chukang 2015. 11. 29.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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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제3장 강해: 지혜로운 나오미, 순종하는 룻

 

   본 장에는 룻이 보아스에게 청혼을 하는 절정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모두 시어머니 나오미의 지혜에서 나온 것 입니다.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모든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절차가 정당하여야 하나님의 복은 물론 모든 사람들로부터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1-5: 룻에서 큰 호의를 베푼 보아스가 자기 가문의 기업 무를 자임을 알게 된 나오미가 룻을 보아스와 재혼시키기 위해 계획을 세웠습니다. 나오미는 룻으로 하여금 그 밤에 보아스가 자고 있는 타작마당으로 가서 그의 발치에 누었다가 그가 하는 말을 듣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이는 룻을 위한 자기희생적인 사랑입니다. 나오미에게 룻이 없는 삶은 생각할 수도 없었을 테지만 나오미가 룻의 재혼을 추진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버릴 수 있는 헌신적인 사랑의 소유자임을 보여줍니다. 룻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온전한 순종입니다. 이는 나오미에 대한 공경과 순종의 자세가 진실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이었으나 나오미의 지시에 전적으로 순종한 룻과 같이 성도들도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사항에 대해서는 그것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이 오묘하며 초월적이기 때문입니다(55:8, 9).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시는 것들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순종에 따른 복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1: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안식할 곳(마노아흐: מנוח)’쉬다’ ‘정착하다는 뜻의 누아흐(נוח)’에서 파생된 말로 쉼터’ ‘정착지’ ‘안식처를 가리킵니다. 여기에서는 몸과 마음을 의탁할 수 있는 새로운 보금자리 곧 가정(home)을 가리킵니다. 나오미는 이제 며느리 룻을 개가시켜 안정된 생활을 누리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이 말은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다고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네가 함께 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그가 오늘 밤에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본 절은 보아스의 생활이 매우 부유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많은 시종과 일꾼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친족입니다. 단순한 일가친척이 아니라 기업 무를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 있는 근족(Goel)입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자기 가문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런 위치에 있다는 것을 근거로 룻과 보아스를 맺어주려고 한 것입니다. 당시의 타작법은 대개 곡식단을 타작마당에 펴놓고 조심스럽게 발로 밟거나 막대기나 도리깨, 매끄러운 돌 등으로 두드려 떠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런 후 떨어진 낱알들을 모아서 바람에 날리도록 까불리면 지푸라기나 쭉정이들은 날아가고 알곡만 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타작을 위해서는 바람이 필수적으로 불어야 합니다. 팔레스틴의 경우 보리타작 시기에는 해가 진후에야 얼마가 동안 육지에서 지중해 쪽으로 바람이 분다고 합니다. 그래서 타작은 주로 저녁 무렵에 행해졌습니다.

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나오미는 룻에게 가급적이면 예쁘게 단정하도록 지시를 했습니다. 이는 보아스의 마음에 들도록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룻 또는 보아스의 신부가 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갖추도록 만들기 위한 조치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타작마당고대에는 곡식 단을 떨기 위한 타작마당으로 보통 단단하게 다져진 평지가 이용이 되었습니다. 또한 일부러 타작마당으로 만들기 위해 흙을 다져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보통 직정 30미터 정도의 원형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타작을 다 마친 다음에 보아스는 그동안 수고한 일꾼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꾼들의 노고를 치하며 같이 먹고 마시며 즐겼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보아스가 잠자리에 드는 때를 가리킵니다. 더 어두워지면 그 곳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미리 그곳의 위치를 알아두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 발치 이불을 들고발치 이불이란 그의 침상의 발 부분, 발의 자리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시리아 역복아랍 역본에서는 본 절을 그의 발아래서 자라고 번역했습니다. 당시 이불은 홑이불, 양가죽, 솜털 이불, 심지어는 외투를 벗어서 덮은 임시용 등으로 다양했습니다. ‘거기 누우라이 말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다릅니다. 첫째 의견은, 보아스가 룻과 성 관계를 갖도록 유도하라는 의미라는 것과 둘째 의견으로는, 나오미가 보아스에게 자신과 룻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취한 적극적인 방편이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룻에게 이미 마음으로 깊이 밀착되어 있음과 룻도 보아스에게 끌리고 있음을 예리한 여성적 직관으로 관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과감한 행동을 통해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자의 권리와 의무 이행을 요청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이 일을 계획하고 진행시키면서도 보아스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룻으로 하여금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깨우쳐주기는 하겠지만, 나머지 일을 보아스가 결정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고엘 제도를 잘 알고 있고 덕망 높은 보아스에 대한 나오미의 신뢰가 그만큼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5: 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계대결혼법이라는 풍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 여인인 처지에 밤중에 외간 남자의 침소에 찾아간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도 망설여지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모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룻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6-13: 룻은 시모의 지시대로 보아스의 발치에 누웠다가 그녀를 발견한 보아스에게 그가 엘리멜렉의 기업 무를 자임을 이유로 자신의 청혼을 받아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룻의 정숙함과 자신이 기업 무를 자임을 인식하고 있던 보아스는 조건부로 룻의 요청을 쾌히 승낙합니다. 그 조건은 엘리멜렉에게 자신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는데 그가 거절하면 자신이 승낙할 것이라고 하는 절차를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인간적인 인해관계에 얽매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율법을 성실하게 지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멸시하기보다는 그것을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 바로 보아스였습니다. 룻의 모습은 여 성도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룻은 시모의 지시를 한 번도 어기지 않고 성실하게 이행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고부관의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숙한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룻은 온 성읍 백성들에게 소문이 날 정도로 현숙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해야 합니다. 룻은 자신의 소욕을 따라 젊은 남자에게 시집가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이 많은 보아스와 결혼함으로써 죽은 남편의 대를 이으려고 한 것입니다.

 

6: 그가 타작마당으로 내려가서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

   이런 문장을 두괄식 구성이라고 합니다. 되어지는 순서에 따라 설명하지 않고 결말을 먼저 이야기하는 방법입니다.

 

7: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서 가서 노적가리 곁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보아스는 풍성한 보리 수확으로 마음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한 해의 풍성한 수확을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노적가리는 타작을 마친 곡식을 쌓아 놓은 더미입니다. 당시 일꾼들은 저녁 늦게까지 타작을 하고 나서 그 마당 곡식더미 곁에서 그대로 자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주인 보아스가 천한 일꾼들처럼 노적가리 곁에서 잔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해석을 합니다. 첫째, 보아스의 이런 행동이 단지 너무 시간이 늦어 그곳에서 잔 후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계속 일꾼들을 독려하기 위해서 라고 하는 것과 둘째 그 노적가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곳에서 잤다는 견해입니다. 그렇지만 사환을 시켜 타작마당을 지키도록 할 수도 있는 보아스가 친히 그곳을 지키기 위해서 잤다고는 해석하기가 무리가 있습니다. 나오미는 탈곡 시 베푸는 연회가 대개 밤늦게까지 진행되므로 보아스가 그곳에서 잘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룻으로 하여금 치장을 하고 찾아가도록 한 것입니다.

 

8: 밤중에 그 사람이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웠는지라

   보아스가 노적가리 곁에 누워 잠든 때와 룻이 그의 발치에 들어가 누운 때는 시간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문구입니다. 룻은 보아스가 깊이 잠든 후에 그의 이불 속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것은 싸늘한 밤공기에 잠이 어렴풋이 깨어서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9: 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룻은 실제로 보아스의 시녀가 아니지만 겸손과 자기비하의 표현이었습니다.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룻은 보아스에게 도움과 구혼을 하고 있습니다. ‘기업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비록 기업 무를 자가 그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반드시 의무를 행해야 한다는 강제성은 없었습니다(25:5-10). 이는 본인이 자원할 경우에만 이행되는 제도입니다. 더욱이 기업 무를 자가 반드시 죽은 형제의 아내와 결혼해야 한다는 계대결혼법에 얽매이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보아스가 룻의 요청을 거절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보아스는 흔쾌히 허락을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간섭하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仁愛)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내 딸아이는 나이가 많거나 지체 높은 사람이 젊은 여인을 향해 친근히 부를 때 사용되는 호칭입니다. 사실 룻은 매우 젊은 여인입니다. 결혼한 지 10년 즈음에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룻이 육신의 정욕을 좇았다면 젊은 사람을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모의 뜻을 따라 자기 아비 뻘 되는 나이(2:1)의 보아스에게 청혼한 것입니다.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룻이 빈부를 막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고 첫 남편의 기업을 잇기 위해 자신을 좇은 것에 대해 보아스는 큰 감동을 받은 것 같습니다. 룻의 처음 인애라면 첫째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시모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것이라면 나중 인애는 시모를 공경하고 육신의 정욕을 좇지 않고 시모의 명령과 율법에 충실했던 것이 나중 인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죽은 남편에게 베풀었던 룻의 사랑이 처음 인애였다면, ‘고엘 제도를 통해서 남편의 가문을 잇고자 하는 행위를 나중 인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 내 딸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보아스는 아무런 조건 없이 고엘의 의무와 더불어 룻의 청혼을 수락했습니다. 이는 육신의 안목을 좇지 않고 나오미 집안의 며느리로서 신실함을 지킨 룻의 인격적인 태도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현숙한(하일: היל)’은 남자에게 사용될 때에는 대개 강한, 용감한, 남자다운의 의미로 해석이 되고, 정신적인 의미와 물질적인 의미에서는 능력, 수완등을 뜻합니다. 누구든지 룻을 본 사람들은 그녀가 신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튼튼하고 감화력이 있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나의 성읍 백성은 문자적으로는 내 백성의 온 성읍또는 내 백성의 온 문()’이란 뜻입니다. 당시 성문은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며 화제거리를 이야기했던 장소로서 모든 소문들이 이곳을 통해서 퍼져나갔습니다.

12: 참으로 나는 네 기업을 무를 자나 무를 자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율법 규정상 고엘의 의무는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나오미에게는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던 것입니다. 보아스 자신이 롯을 취하고 기업을 무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하더라도 타인의 권리를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나오미는 더 가까운 친족을 무시하고 보아스로 하여금 고엘의 의무를 감당하게 하려고 했을까요? 그 이유는 그 친족이 보아스에 비해 기업을 무를 만한 덕망이나 재산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이행코자 아니하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울지니라.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대화가 진행되고 잇는 시간은 밤중이었으므로 성중의 문들은 아마 굳게 닫혀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룻이 성문 밖 보아스의 밭에서 성안의 집으로 돌아가려 해도 갈 수가 없는 시간입니다. 보아스는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아마도 둘은 세부적인 남은 절차를 의논하면서 밤을 보냈을 것으로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히브리인들의 일반적인 맹세 방법입니다. 이는 틀림없이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표현인 동시에 만일 지키지 못할 때는 증인이 되신 여호와께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14-18: 보아스로부터 긍정적인 답변과 보리 여섯 되를 받은 룻은 새벽 일찍 집으로 돌아와 시모에게 간밤의 일을 소상하게 고했습니다. 나오미는 룻으로 하여금 모든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자중하도록 당부를 합니다. 나오미와 룻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 했습니다. 남은 것은 보아스와 가장 가까운 친족과의 담판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룻에게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 하시는 일을 가만히 바라보자는 신앙적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이는 나오미가 하나님께서 이 일을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그 결과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16:1).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 중에는 그 결과까지 자신이 좌우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시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짓에 불과합니다. 이런 자세는 결코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씨 뿌리는 일이 없이 그 결실도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직분을 감당하지 않으면서도 결실 맺기를 바라는 자들에게서 있는 것마저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실 것입니다(25:24-30).

 

14: 룻이 새벽까지 그 발치에 누었다가 사람이 피차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의 말에 여인이 타작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여기에서 말하는 새벽은 사람이 아직 쉽게 서로를 알아볼 수 없는 미명의 시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룻은 성문이 열리는 새벽가지 보아스의 말에 따라 발치에 누워 있다가 아직 어두워서 사람들이 서로를 잘 알아보지 못하는 새벽에 일어난 것입니다. 룻이 밤에 보아스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계대결혼법에 따르고자 한 룻의 행위가 결코 부도덕한 것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져서 쓸데없는 구설수의 대상이 되고, 룻과 보아스 자신에게 피해가 올 것을 염려하여 지혜롭게 이를 방지하고자 한 것입니다.

 

15: 보아스가 가로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펴서 잡으라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이워주고 성으로 들어가니라.

   겉옷(미테파하트: מטפחת)’은 사 3:22에도 나오는데,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 많은 양의 보리를 운반할 수 있었다는 것을 들어서 외투 위의 큰 베일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섯 번 되어 주었다는 것의 양은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보아스가 룻에게 다만 여섯 번이나 되어 주었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16: 룻이 시모에게 이르니 그가 가로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룻이 그 사람의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고하고

   어떻게 되었느냐이 말은 직역하면 너는 누구인가?’가 됩니다. 그러나 문장 서두에 내 딸아라는 말이 나온 것에 비추어 볼 때 적절한 표현은 아닙니다. 이를 문맥에 맞게 보충하여 의역하면 보아스에게 시집가기로 했느냐? 혹은 어찌 되었느냐?’의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17: 가로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주며 이르기를 빈손으로 네 시모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빈손으로~ 가지 말라이는 실제적으로 양식을 제공했다는 차원보다 룻의 청혼을 보아스가 받아들였다는 것을 시모에게 알리는 의미가 더 크다고 하겠습니다. 보아스는 룻의 행동 이면에 나오미가 일을 계획하고 룻을 격려하였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입니다. 그래서 룻에게 보이를 주어 시모에게 보이게 함으로써 자신이 나오미의 의사를 존중하겠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섬세함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18: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 이제 그 결과를 겸손하게 하나님께 의탁하는 나오미의 신앙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면 그 결과가 자신의 뜻과는 반대되는 최악의 경우라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16:1).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나오미는 이제 보아스의 속마음을 완전히 알게 되었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안식을 주기 위해(3:15)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이 같은 말을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