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 도란

“주님이 침묵하실 때…”

chukang 2013. 11. 13. 07:12

“주님이 침묵하실 때…”

가나안 여인은 자기의 딸을 귀신들림으로부터 고쳐달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신앙적 고백을 하였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걸음을 뒤 좇아가며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다급하고 절박한 소리로 예수님의 응답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이방 여인이 계속해서 따라오면서 간청하는 것에 귀찮게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간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침묵은 분명히 의도적인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간청하여 여자를 빨리 보내달라고 부탁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때로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기 때문에 힘들어 하는 장면들을 여기저기 묘사하고 있습니다. 욥은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동쪽으로 가도 그가 계시지 않고 서쪽으로 가도 보이지 않으며 그가 북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남쪽으로 돌이키셔도 내가 뵈올 수 없구나.” (욥 23:8, 9)

아삽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협하고 있는 원수들에게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침묵을 지키지 마소서. 하나님이시여, 말없이 조용하게 계시지 마소서.“ (시 83:1)

하박국 선지자는 정의를 상실한 세태를 심판하지 않고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심경을 토로하였습니다


“야훼여,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이 소리, 언제 들어 주시렵니까? 호소하는 이 억울한 일, 언제 풀어 주시렵니까? 어인 일로 이렇듯이 애매한 일을 당하게 하시고 이 고생살이를 못 본 체하십니까? 보이느니 약탈과 억압뿐이요, 터지느니 시비와 말다툼뿐입니다. 법은 땅에 떨어지고 정의는 끝내 무너졌습니다. 못된 자들이 착한 사람을 등쳐 먹는 세상, 정의가 짓밟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합 1:2-4)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절박하게 기도하였지만 하나님은 때로는 당장 응답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이 아무런 의미가 없이 흘러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면 침묵의 시간이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얼마나 허망한 시간이겠습니까?

성경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침묵을 언급하면서 역설하고 있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침묵에는 어떤 의도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도는 성도에게 번영을 주고 미래와 희망을 주고자 하는 선한 계획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너희를 위한 나의 계획은 내가 알고 있다. 그것은 너희에게 재앙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번영을 주고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려는 계획이다.” (렘 29:11)

 

인간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침묵시간을 견디기가 힘들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비로소 그분의 선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가나안 여인은 주님의 침묵을 통하여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는 큰 믿음의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침묵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선한 일을 자기에게 반드시 이루리라는 통찰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박국은 아무런 열매가 없어도 오직 하나님만을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믿음의 도약을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판단 될 때에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고 그분을 끝까지 경배할 수 있는가? 가 성도가 씨름해야할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침묵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가는 길을 다 알고 계신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처럼 깨끗할 것이다.” (욥 23:10)/자료ⓒ창골산 봉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