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회장 일가의 자녀교육을 한 마디로 말하면 ‘가족 간의 인화를 중시하라’다. 특히 유교적 가풍이 강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자녀는 6남 4녀로 장남은 구자경 LG 그룹 명예회장이다.
구 명예회장은 선친인 구인회 창업주의 뒤를 이어 LG 그룹의 2대 회장을 역임했다.
3대 회장은 구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본무 회장이다.
한번 사귄 사람과 헤어지지 말고,
헤어진다면 적이 되지 마라 :생전에 창업주 연암 구인회 회장이 자손들에게 강조한 것.
이런 가르침은 70년 이상 지속됐던 허씨 가문과의 동업관계서도 적용됐다.
창립부터 2005년 LG(구씨 집안)와 GS(허씨 집안이 갖고 간 GS 칼텍스·GS 건설·GS홈쇼핑 등)로 나눠지기까지 LG 그룹에 참여한 구씨와 허씨의
일가는 수십 명에 이른다.
두 집안의 동업은 3대에 걸쳐졌고 양가 모두 다손이라 다른 재벌가에 비해 가계도가 복잡하다.
하지만 LG와 GS로 분사되는 과정에서도 양가는 잡음 없이 “부득이 헤어진다면 적이 되지 말라”는 구 회장의 가르침을 성실히 따랐다. 서로 양보해 적을 만들지 않고 분사에 성공했던 것.
유교적인 가정교육과 대를 잇은 가르침이 이룬 결과였다.
부는 스스로 일구어야 가치가 생긴다 : 구 회장의 지론은 ‘돈이란 벌 때 아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돈이자 동업자인 告 허준구 회장도 판매와 구매 일을 맡으면서 수금하러 다닐 때 고무신을 신고 다닐 정도로 창업주 구인회 회장과는 찰떡궁합이었다고 전해진다.
창업주를 필두로 이러한 근검절약 정신과 독립심은 지금까지 대대손손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을 사면 사용기한을 정해 그때까지 아껴 쓰도록 했다.
기한 전에 잊어버리거나 함부로 훼손하면 절대 돈을 주지 않았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부는 사람의 노력에 따른 결정체이지만 언젠가는 여러 제도를 통해
사회로 돌아가게 마련이다”고 강조해다. 그래선지 구본무 회장도 자녀들에게 늘 근검절약 정신을 강조하며 “가치 있는 일에 돈을 쓸 줄 아는 지혜”를 역설한다.
구본무 회장은 맞춤복 보다 자사인 LG패션 매장에서 기성복을 구입해 입는다고 알려져 있다.
어렵고 힘들고 더러운 것을 밑천으로 삼는다 : LG의 2대 회장인 구자경 명예회장은 부친인 구인회 창업주로부터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진주사법대학 졸업 후 5년간 교직에 있었던 구자경 명예회장은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경영자의 길을 걷게 되는데 1952년 당시 LG 그룹의 시초인 ‘락희화학’은 플라스틱 공업에 진출했다.
그때 아들에게 맡겨진 일은 새벽마다 몰려드는 상인들에게 제품을 나눠주고 낮 동안에도
공장에서 일 하다가 밤이면 하루 씩 번갈아가며 숙직하는 것이었다. 허름한 야전점퍼에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잠을 자야하는 겨울이 4년째 반복돼도 아버지는 고생한다는 위로의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당시 아들의 소원은 아버지로부터 칭찬 한마디 들어보는 것. 주변 사람들이 장남에 대한
혹독한 경영수업에 뭐라 할라치면 구인회 회장은 “대장장이는 하찮은 호미 한 자루 만드는 데도 담금질을 되풀이해 무쇠를 단련한다. 내 아들이 귀하니까 저렇게 일을 시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덕분에 구 명예회장은 현장에 대해선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의 전문가가 됐다.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정성을 쏟아라 : ‘현장중시’ 경영철학은 구본무 회장으로도 이어진다.
구본무 회장은 20년 넘게 경영수업을 받으며 실력을 닦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역시 조부에서 부친으로 이어지는 집안의 경영자 수업을 그대로 답습한 것.
구자경 명예회장은 가족들에게 “가족이기 때문에 쉽게 승진되고 사장, 임원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라.
이제부터는 너희들도 똑같이 경쟁이다”라고 늘 강조했다.
경쟁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고 기회 또한 동일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던 것.
누구를 후계자로 결정해서 그 능력을 향상시켜 나갈 것인지 항상 염두에 두고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선대 회장으로서의 준비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