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도움

사도신경의 기원

chukang 2018. 12. 3. 19:53

사도신경의 기원에 대해



사도신경의 기원에 대해, 칼빈의 『기독교 강요』, 존 레이스의 『교회들의 신조들』, 필립 솨프의 『기독교 신조들』, A. A. 핫지의 『신학개요』, 조영엽 박사의 『사도신경 변호』 등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보았습니다.



사도신경은 주께서 승천하신 후 열흘째 되는 날에 사도들이 교훈의 통일성을 위해 성령의 감동으로 한 사람이 한 구절씩 말하여 작성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내용은 처음으로 4세기 말 아퀼레자의 루피누스(Rufinus of Aquileja)의 『사도신경강해』(Expositio Symboli)에 나온다. 또 같은 시대의 밀란의 암브로스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Schaff, p. 22).


동방교회에도 니케아 신조 같은 신조가 있었지만, 사도신경은 특히 서방교회의 산물이다(Schaff, p. 16). 그것은 세례자들의 학습 과정의 마지막 단계로 주기도문과 함께 사용되었고 후에는 공예배에 도입되었다. 니케아 회의 이전 교부들은 그것을 ‘신앙의 규칙,’ ‘사도적 전통,’ 그리고 후에는 ‘신앙의 상징’(the symbol of faith) 등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 세례용 신조는 처음에는 정확히 동일하지 않았고 교회마다 다른 형태를 취하였다(Schaff, pp. 16-17).



그러나 로렌조 발라가 사도신경의 사도 저작성에 대해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한 이후, 사도신경의 사도적 기원은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전설적이라고 증거되었다(Schaff, p. 23; Leith, p. 22).



사도신경의 사도적 저작성에 반대되는 논거들은 다음과 같다(Schaff, p. 23).
1. 성경의 침묵. 특히 사도행전에서 침묵하고 있음.
2. 속사도시대의 교부들과 니케아 회의 이전과 니케아 회의 시대의 모든 교부들과 회의들의 침묵.
3. 니케아 회의 시대의 교회들에 사용되었던 신앙의 규범들의 형태의 다양함.
4. 사도신경이 동방교회에서는 결코 통용되지 않았다는 사실.



서방교회에서 사도신경의 라틴어 본문을 우리에게 주는 최초의 저자는 4세기 말경의 루피누스(Rufinus)이다. 그때로부터 서방교회에서 세례용 신조로 사용된 가장 완전한 혹은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로마, 아퀼레자, 밀란, 라벤나, 칼타고, 히포의 교회들의 것들이었다(Schaff, p. 18).



로마교회의 신경은 옛날 형태보다 점차 몇 구절이 늘어났는데, 음부에 내려가심, 공동적 [교회], 성도의 교통, 영생 등이 그것이었다. 사도신경의 현재의 본문은 5세기 말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어려울 것이며 다른 형태들을 다 이기고 통일된 형태를 가진 것은 8세기가 되어서 이었다(Schaff, p. 19).



그러나 사도신경의 모든 내용들은 신약성경에 증거된 사도들의 가르침의 내용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사도신경의 내용들은 각개적으로 보면 다 니케아 회의 시대나 그 이전에 기원을 가지고 그 알맹이는 사도시대로 올라간다(Schaff, p. 20).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2. 16. 18).

옛날 저술가들은, 상당한 일치를 가지고, 그것을[사도신경을] 확실히 사도들에게 돌리고 그것이 사도들에 의해 함께 기록되고 발표되었거나, 그들의 손에 의해 전해졌고 선한 믿음 안에서 수집된 가르침의 요점이며 그래서 그 명칭에 합당하고 믿었다. 그것이 어느 곳에서 기원했든지 간에, 나는 그것이 교회의 매우 초기에, 사도 시대에 모두들의 동의에 의해 공적 고백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만큼 옛날부터 그것이 모든 경건한 자들 가운데서 거룩한 권위를 가졌던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것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사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오직 한가지 점은 논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의 신앙의 전체 역사가 그 안에 간결하게 그리고 명확한 순서로 요약되었고, 그것이 성경의 참된 증거들에 의해 확증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해된다면, 저자에 관해 고민하거나 다른 이와 다투는 것은 논점을 잃은 것이다. 사람이 성령의 확실한 진리를 가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누구의 입에 의해 말해졌는지나 그것이 누구의 손에 의해 기록되었는지를 동시에 알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을 선포한 회의도 비슷한 정신으로 소요리문답 끝에 십계명과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포함하였다(The Confession of Faith, p. 319). 거기에 보면,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은 “그것이 사도들에 의해 작성되었다거나 십계명과 주기도문처럼 정경으로 존중되어서가 아니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며 그리스도의 교회들에서 고대로부터 받아들여지는 기독교 신앙의 간략한 요점이기 때문에” 첨부한다고 말했다(p. 115; Hodge, p. 115).



사도신경은 루터와 칼빈을 비롯하여 개혁파 교회들의 신앙고백서들과 대다수의 개신교회들에서 사용해왔다. 사도신경의 내용은 어느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이 다 성경 진리에 합하다.



[참고자료]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2. 16. 18.
The Confession of Faith; the Larger and Shorter Catechisms (The Publications Committee of the Free Presbyterian Church of Scotland, 1976), p. 319.
Philip Schaff, Creeds of Christendom (1877; Baker, 1977), I, 14-23.
A. A. Hodge, Outlines of Theology for Students and Laymen (1860; Zondervan, 1879), p. 115.
John H. Leith, ed., Creeds of the Churches, 3rd ed. (John Knox Press, 1982), p. 22-28.
조영엽, 사도신경 변호 (큰샘출판사, 2004), 18-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