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성경 말씀

자유의지

chukang 2017. 1. 10. 20:55

자유의지

 

  자유의지가 무엇인가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속성이 무어인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속성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비공유적속성과 공유적속성이 있다. 비공유적속성은 말 그대로 공유할 수 없는 속성으로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다. 공유적속성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속성 중에서 사람도 가지고 있는 속성을 말한다.

 

비공유적속성: 무한성(무량성, 편재성), 절대성, 단순성(유일성 혹은 단일성), 자존성, 불변성, 완전성, 영원성

공유적속성: 영성, 생명성, 인격성(지, 정, 의), 사랑, 진실, 선, 긍휼, 공의, 거룩 등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에 바로 이 공유적 속성을 불어넣으셨다. 공유적 속성은 다름이 아닌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곧 image로서 보이는 형체가 아닌 속성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으셨다는 것은 피조물 중에서는 인간을 최고로 대우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사도 인간보다 못하게 지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 때에는 천사보다 능력이 모자라지만, 일단 천국으로 가게 되면 천사를 부리는 존재가 된다. 천사들에게는 복음의 비밀도 알려주지 않으셨다(벧전 1:12). 천사는 하나님의 부리는 종으로 성도를 돕는 역할을 한다.(행 12:11) 아브라함, 롯, 이삭, 야곱를 비롯하여 후대에는 다니엘, 마리아, 요셉, 엘리사벳, 베드로 고넬료 등도 도움을 받았다. 성도는 아무리 못하여도 최소한 천사와는 동등이다.(눅 20:36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성경에서 천사는 하나님의 피조물로 등장하지만, 성도는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서도 유일하게 ‘자녀’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에 단지 기계적 인간 즉 마치 로봇과 같이 조종하는 대로만 움직이는 존재로 지으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인격적 요소를 주시고, 주신 인격으로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신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바로 “자유의지”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죄를 지으라고 자유의지를 주셨겠느냐? 라고 하는 질문은 잘못된 생각이다. 천사에게도 인격성이 있기 때문에 자유의지가 있고,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하는 교만으로 인하여 스스로 타락한 것이 바로 사탄이요 그의 유혹에 넘어간 타락한 천사들이다.

 

  인류의 대표(아담이 인류의 대표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은 다음 기회에 설명하겠음)인 첫 아담이 죄를 지은 것은 순전히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한 판단이다. 아담이 어떻게 타락을 하였을까? 아담은 사단에게 직접 유혹을 받은 것이 아니다. 하와는 사단에게 직접 유혹되어 타락하였으나 아담은 사단의 유혹에 빠져 타락한 것이 아님은 성경이 증명해 준다(딤전 2: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만일 아담이 자유의지를 하나님만 경배하며 믿고 따르는데에 사용했다면 하와가 선악과를 먹으라고 했을 때에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 당연히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서 먹은 하와를 책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잘못을 회개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아담은 사단의 궤계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심사숙고해 본 후 스스로 결정하여 죄를 범한 것이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의식했을 뿐아니라, 그 행위에 따르는 엄숙한 결과까지도 알면서 아내의 불순종한 행위를 같이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주신 자유의지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에 사용하지 않고 사단에게 충성하기로 한 것이다. 아담스스로의 범죄다.

 

  만일 이 자유의지를 부인하게 되면 어떠한 결과가 초래할까?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나님께서 죄를 만드셨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이런 하나님을 믿고 섬길 수 있을까? 선하지만 때로는 마음대로 악을 만드시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섬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사단과 동일하게 만드는 너무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담이 스스로 죄를 지은 것이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죄를 짓도록 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에게는 아담에게 주어졌던 ‘자유의지’가 있을까? 있다. 이 자유의지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또 다시 ‘알미니안’과 ‘칼빈주의’가 대립하게 된다. 알미니안 주의에서는 아담이 타락하기는 하였지만 약간의 손상만 입었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스스로 영접하여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알미니안 주의에서는 구원을 받는 최종 결정권자는 ‘사람’에게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칼빈주의에서는 전적타락의 입장이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성령의 역사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예수를 주로 영접하도록 하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 알미니안 주의에서는 성령의 역사를 모르고,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구원의 결정은 사람에게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칼빈주의에서는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열고 움직이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이다. 이것을 칼빈주의에서 “무조건적 선택”이라고 한다.

 

  좀 더 쉽게 설명을 해 보면, 우리 모든 사람들이나 생물들에게는 ‘먹을 자유’가 있다. 이 자유는 전적으로 완전하게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만일 불의의 사고로 입을 다쳐서 손발이 있어도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면, 이 자유의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로뢰인 뵈트너는 ‘칼빈주의 5대 교리’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새는 날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새가 날개를 다쳐서 날지 못하는 상태라면, 날 자유는 있으나 날지 못하는 불완전한 자유라는 것이다. 새에게 있어서 나는 것을 못한다면 날아갈 수 있는 자유의지는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것이다. 즉 자유의지는 있으나 그 자유의지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 즉 ‘전적타락’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으면 안 되었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허락하신다. 믿는 것은 내가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성령께서 내 마음을 움직이셨기 때문에 믿게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5: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렇게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반면에 내가 예수님을 믿었다면, 내 스스로 언제든지 예수님을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고 싶어도 구원하지 못하는 결과가 주어진다. 그렇다면 이런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지으실 때에 육체만 지으신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열어 주실 때에만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