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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6주년 맞은 무료식당 인천 민들레국수집

chukang 2009. 10. 11. 20:15

6주년 맞은 무료식당 인천 민들레국수집


쇠고기 육개장으로 생일상..배고픈 이들이 VIP
그 곳에는 세 가지가 없다. 눈치와 동정, 그리고 긴 줄.
인천의 달동네인 동구 화수동 화도고개 꼭대기에 자리 잡은 '민들레국수집'. 2003년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문을 연 이 곳이 1일로 어느새 6주년을 맞이했다.

  민들레국수집은 누구나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무료식당이다.
'손님'들은 대부분 노숙을 하거나 쪽방에 사는 사람들이다. 식당 주인인 서영남(56)씨는 이들을 'VIP'라고 부른다. 이곳은 배고픈 사람에게 동정을 베푸는 곳이 아니라 섬기는 곳이기 때문이다.
국수집은 서씨가 교도소로 교정 사목을 하러 가는 목.금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다른 무료 급식소와는 달리 식사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사회에서 이미 경쟁에 밀리고 밀린 노숙자들이 이곳에서까지 '줄서기 경쟁'에 시달리게 하고 싶지 않다는 주인의 배려다. 혹시라도 손님이 너무 많아 줄이 생기는 날이면 맨 마지막에 선 사람부터 식사하게 한다. 누구나 양껏 먹을 수 있도록 식사도 뷔페식이다. 손님들이 눈치를 보지 않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하루에 두 번, 세 번 찾아와도 대환영이다. 밥도 반찬도 푸짐하다. 반찬만도 예닐곱 가지이며 메뉴도 매일매일 다르다. 1일에는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쇠고기'로 육개장을 끓여 생일상을 차렸다.

  식당 문을 연 지 만 6년, 변한 것도 많다.
25년간 천주교 수사 생활을 하다가 2001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겠다는 생각으로 환속한 서씨는 개업 첫날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어 하루를 공쳐야 했던 기억을 털어놓는다. 둘째 날은 동인천역을 돌아다니며 손님을 모았다. 하지만 이제 이곳에는 1일 평균 300여명이 북적댄다. 지난달 30일에는 국수집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손님이 다녀가기도 했다.
3평이 채 안 되던 비좁은 식당도 지난해 말 확장해 이제는 18평으로 넓어졌다. 6년 만에 식당이 6배가 된 셈이다. 여섯 사람이 앉으면 꽉 차던 좌석도 24석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여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경기침체가 심화하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손님이 400명을 넘는 날도 많다. 지난해 비슷한 시기와 비교해보면 배에 가까운 숫자다.

  손님들의 '출신'도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동인천역이나 부평역 등 인근에서 오는 노숙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서울은 물론 천안, 평택에서까지 먼 길을 찾아온다. 지하철에 무임승차할 용기가 없어 한 시간 넘게 걸어오는 이들도 있다. 밀려드는 손님이 버겁기도 하련만, 서씨는 더 많은 이를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것만이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는 "식당에서 800m 정도 떨어진 동인천역 역무원들이 무임승차한 노숙자에게 조금만 더 따뜻하게 대해준다면 보다 많은 손님이 전철을 타고 국수집에 올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민들레국수집은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정부 지원 대상은 만 65세 이상 노인으로 한정되고 하루 한 끼밖에 제공할 수밖에 없는데다가 쌀의 양도 1인당 155g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민들레국수집은 쌀 걱정을 하지 않는다. 몇 천원밖에 안 되는 한 달 용돈을 아껴 후원금을 보내오는 초등학생, 매주 한 끼 점심을 굶고 계란 2판을 사오는 집배원 아저씨, 자신이 파는 콩나물을 나눠주는 노점상 할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배려가 넘쳐나는 민들레국수집에는 없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국수다. 처음 식당 문을 열었을 때는 국수를 내놨지만 며칠씩 굶은 사람들에게 국수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밥으로 바꿨다. 하지만 서씨는 식당 이름을 바꾸지 않을 생각이다. 언젠가 손님들이 별식으로 국수를 찾을 날이 오기를 바라는 작은 희망 때문이다.



출처 : 김정희의 '꽃잎과 바위'
글쓴이 : 카나리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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